"가족과 돌아왔다" 역경 헤치고 다시 한국 땅 밟은 빌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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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피난길에 오른 가족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떠났던 고려인 동포 최빌리안씨가 가족을 데리고 인천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 입국장을 나서며 기뻐하고 있다. 조주현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피난길에 오른 가족을 만나기 위해 떠난 고려인 동포(경기일보 4월1일자 4면)가 돌아왔다.

15일 오후 안산시 고려인문화센터에서 다시 만난 최빌리안(33·우크라이나). 한 달 하고도 보름 전 터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그는 루마니아를 거쳐 몰도바로 향했다. 아내와 어린 아들딸이 피난을 떠난 곳이었다. 빌리안은 어렵사리 가족과 상봉했지만 현지 대사관 시스템이 붕괴돼 곧장 돌아올 수 없었고, 결국 구호단체가 구해준 공동숙소에 300유로(약 40만원)를 내고 짐을 풀었다.

빌리안은 홀로 루마니아를 오가면서 여행증명서 발급을 시도했다. 여권이 없는 가족들은 몰도바에 머물러야 했고, 국경을 넘나들다 보니 교통비로만 수백만원을 썼다. 우리 정부가 가족 초청범위를 넓혔으나 아들이 재혼한 아내의 자녀인 게 발목을 잡았다. 실제로는 한 가족이지만, 별도의 입양 절차를 밟지 않아 서류상으로는 아들과 아내의 가족관계만 인정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빌리안은 포기하지 않았고 그의 출국을 도왔던 안산시 고려인문화센터(사단법인 너머)에서도 외교부 등에 호소문을 보냈다. 우여곡절 끝에 빌리안은 아내와의 혼인증명서, 아내와 아들 사이의 출생증명서로 ‘가족’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빌리안 가족은 몰도바에서 기차를 타고 루마니아로, 다시 카타르로 가 지난달 23일 인천국제공항에 발을 디뎠다.

빌리안은 아들의 여행증명서가 발급되던 당시를 회상하며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러나 그의 낯엔 금세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가족을 데려오며 진 빚만 1천만원이 넘는 데다 당장 한국에서 생계를 꾸려나가기엔 주머니 사정이 막막해서다. 빌리안은 한국에 온 뒤 곧장 공장으로 복귀했고, 아내 역시 일거리를 찾아나섰지만 대화도 통하지 않고 정식비자도 아닌 탓에 쉽지 않다.

그 사이 어린 아이들은 학교나 유치원 대신 집에서 하루종일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어린 딸을 유치원에 보내고 싶지만 외국인등록증이 없어 불가능한 상황이다.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는 것도, 다시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는 것도 결국 가장인 빌리안에겐 ‘돈’의 문제다. 비단 빌리안 가족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동포가 처한 상황인 만큼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이유다.

빌리안은 “다시 한국 땅을 밟았을 때 마음 속에 있던 무거운 짐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면서도 “아내는 아직 현지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걱정하며 슬퍼하고 있다.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고 우리 가족과 동포들도 안정을 되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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