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대책은 없고, 돈으로 상처 치유하겠다는 교육 당국

화성 능동고 급식종사자, 휴게실 상부장에 깔려 ‘참변’
교장, 남편 찾아 돈 건네… 거절하자 계좌에 622만원 입금
道교육청, 정식 사과는 없어…교육지원청 “위로금 차원”

2일 양평군의 한 대형병원 앞에서 6개월 전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온 조리실무사 아내의 휠체어를 남편 강태우씨(가명)가 밀어주고 있다. 윤원규기자

학생들의 끼니를 책임지는 공간이 ‘죽음의 급식실’이라는 오명을 썼다. 각종 질병과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작업을 이어가는 급식종사자는 쉬는 공간마저 엉망이다. 지난 6월 화성의 한 고등학교 급식실에서 근무하던 중년 여성은 휴게실 벽에 달린 옷장이 떨어지며 그 아래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그렇게 한 사람의 여생과 가족의 일상이 망가졌지만, 교육 당국은 제대로 된 사과조차 없다. 학교 급식실의 열악한 실태를 고발했던 경기일보는 급식종사자에게 최소한의 ‘쉴 공간’마저 허락되지 않은 현실을 집중 조명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1. 하반신 마비 온 ‘급식종사자’에게 사과 대신 돈봉투 건넸다


“사랑하는 아내와 다시 함께 걷는 날이 올까요”

2일 양평군의 한 대형병원 앞 벤치. 사진 속에서 활짝 미소 짓는 아내를 바라보던 강태우씨(가명)의 눈가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눈물이 한가득 고였다.

화성 능동고등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실무사로 근무하던 그의 아내 서정희씨(가명)는 지난 6월 한순간에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렸다. 비좁은 휴게실에서 동료들과 숨을 돌리던 그의 목 뒤로 벽에 달려 있던 거대한 옷장이 떨어진 것. 이 사고로 4명이 다쳤고 옷장에 깔린 서씨는 그대로 병원으로 실려 갔다.

의사의 진단은 경추 손상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 그야말로 참변이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이날도 어김없이 급식을 강행했다. 급식종사자 9명 중 절반에 가까운 4명이 부상을 당해 빠진 상태에서 학생들의 끼니를 만들게 한 것이다. 조리는 물론 배식 과정에서의 사고까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이후 강씨는 아내의 수발을 도맡으며 병원을 전전하고 있다. 얼마 전 새로 입원 수속을 마친 이 병원은 반년 새 4번째로 옮긴 병원이다. 아내의 회복은 한없이 더디지만, 병원마다 재활을 위해 머물 수 있는 기간은 제한된 탓이다. 병상에 몸을 뉘인 서씨는 현재까지 젓가락질조차 어려운 상태다.

강씨는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땐 으레 칼에 베이거나 뜨거운 것에 데인 상황을 떠올렸다”며 “그날 이후 아내가, 아들에겐 그늘이 되어주던 엄마가 자리를 비웠고 우리 가정은 박살났다”고 한숨지었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로 누군가의 부모가 된 이들 부부는 정작 자기 부모에겐 사고 사실조차 알리지 못하고 있다.

 

급식종사자들이 비좁은 휴게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 학비노조 제공

현재까지 경기도교육청의 공식적인 사과는 없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기지부와 만나 유감을 표명한 게 전부다. 당시 한 관계자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교육감님께서 일일이 사과해야 하느냐’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대책이라곤 상부장(벽에 달린 옷장)을 모두 없앤 것뿐이다.

사고 3개월 만인 지난 9월 이세웅 능동고 교장은 서씨 대신 남편의 일터를 찾아갔다. 그앞에 ‘돈봉투’를 내밀었다. 한 학교의 책임자가 보인 태도에 강씨는 ‘당신들은 정말 나쁜 사람’이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강씨가 한사코 거절하자 교장은 ‘교육가족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서씨의 급여 계좌에 622만원을 입금해 버렸다.

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회 안광률 부위원장은 “성의를 표시하려 했던 것 같지만, 피해를 본 당사자가 원한 건 공식적인 사과였을 것”이라며 “최소한 부교육감이라도 찾아가서 사과를 건넸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경기일보 취재진은 돈봉투를 건넨 경위를 묻기 위해 이세웅 교장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이에 대해 남현석 화성오산교육지원청 교육장은 “위로금 차원에서 교직원이 모은 성금을 건넨 것으로 보이지만, 전달하는 과정에서 아쉬운 점이 있던 것 같다”며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6월 화성 능동고에서 조리실무사로 근무하던 서정희씨(가명)는 휴게실 벽에 달린 옷장이 떨어지며 그 아래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하반신 마비를 겪게 된 그는 병원을 옮겨다니며 어렵사리 재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경기도교육청은 공식적으로 사과 한 번 하지 않고 있다. 사진은 남편 강태우씨(가명)가 아내의 휠체어 이동을 돕는 모습. 윤원규기자

#2. 道교육청 ‘급식종사자 휴게공간’ 매뉴얼, 안 지켜도 그만


열악한 급식실에 이어 급식종사자의 ‘쉴 공간’까지 엉망으로 드러났지만, 교육 당국의 개선 움직임은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2일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도교육청은 지난 2015년 초 자체적인 급식시설 개선매뉴얼을 발간했다. 안전하고 편리한 급식실 환경 조성으로 산업재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취지라는 게 도교육청의 설명이다. 각급 학교는 이 지침에 따라 휴게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강제가 아닌 권고에 그친다.

도교육청 매뉴얼을 적용하면 급식종사자 한 사람당 최소 1.64㎡의 휴게공간이 필요하다. 1.64㎡를 평수로 환산하면 0.5평도 안되는 면적인데, 통상 카페 매장 입구에 깔린 발판의 크기와 비슷하다. 성인 남성 1명이 눕기에도 버거운 공간이다.

앞서 사고가 발생했던 화성 능동고등학교에선 급식종사자 9명이 근무했다. 휴게공간은 26.6㎡로, 인당 2.9㎡의 공간이 확보됐다. 도교육청 기준과 비교하면 2배에 가까울 정도로 널찍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9명이 벽에 기댄 채 마주 앉아 다리를 교차시켜야 할 정도로 비좁았다. 조리실무사를 덮친 옷장이 벽 위로 올라간 것도 공간이 부족해서였다.

 

급식종사자들이 비좁은 휴게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 학비노조 제공

이처럼 도교육청의 자체적인 기준도 상당히 좁은 공간만 확보하도록 돼 있지만, 정작 도교육청은 지난 6월 사고 직후 급식종사자 휴게공간에 대한 점검을 실시하며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을 따른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부 기준을 적용하면 인당 1㎡만 확보해도 된다.

올해 도교육청 교육협력국에 대한 행정사무감사에서도 훨씬 널널한 노동부 기준으로 실태 확인이 이뤄졌다. 지난 7월 기준 도내 학교 2천209곳 중 도교육청 매뉴얼에 미달하는 학교는 307곳으로, 13.9%를 차지한다. 반면, 노동부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하면 미달 학교는 32곳(1.4%),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

도교육청은 편의를 위해 급식실 주변에 휴게공간을 마련하려 하지만, 기존 학교들은 구조 변경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교육 당국이 자체 매뉴얼 대신 사용했던 노동부 가이드라인에선 ‘작업공간에서 걸어서 3~5분 내에 이동할 수 있는 위치’일 경우 기준을 충족한다고 한다. 학교 내 다른 공간을 활용해도 충분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경기지역 학교 급식실 휴게공간 실태 (7월 기준)

최진선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기지부장은 “경기도교육청이 자체 지침을 세우고도 그에 충족하지 못하는 학교들이 많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며 “공간을 즉각 창출하기 어려운 학교들이 많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지만, 지금 리모델링하거나 신축하는 학교 급식실도 기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고 질타했다.

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회 박옥분 의원은 “급식종사자에 대한 노동권과 휴식권을 우선 보장할 수 있도록 학교 시설을 개선해야 한다”며 “보다 나은 환경에서 아이들의 먹거리를 준비할 수 있도록 과감한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교육청 학교급식협력과 관계자는 “매뉴얼을 만든 건 잘해보고자 하는 취지였고, 교육청도 국가기관이니 고용노동부 권고 사항을 따르면 법적으로 문제는 없는 셈”이라면서도 “휴게공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편 지난 6월 화성 능동고 상부장 추락사고로 하반신 마비를 겪고 있는 조리실무사 서정희씨(가명)의 남편 강태우씨(가명)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난달 15일 청와대 국민청원을 게재했다.

강씨는 청원을 통해 “처음 학교에선 사고 경위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해주지도 않았고 언론에 몇번 언급되고 나서야 교장이 찾아왔지만, 대책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며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의 공식 사과와 피해 보상,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한다”고 호소했다. 해당 청원에는 2일 오후 7시50분 기준으로 1만9천848명이 동의했으며, 청원은 오는 15일 마감된다.

장희준ㆍ김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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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댓글 운영규정
이우선 21-12-04 10:23:13

급식실 하반신마비 사고에 근로계약서상 갑인 이재정교육감의 사과와 피해보상을 요구합니다.

이우선 21-12-04 10:21:50

♡능동고 국민청원 도와주세요♡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602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