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대의기구 구성원의 보편성

민주주의는 국민 스스로 국민을 위한 결정을 하는 것이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경험에 기초한 정치이념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굴곡도 있었으나 그 쓰임새만큼은 의심받아 온 적이 없었다. 최근 진정한 민주주의의 구현 방법인 대의제가 전 국민 민주주의의 원리 구현에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의심을 받고 있다. 대의제는 수많은 국민이 정책 결정과 집행에 모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표를 뽑아 그들로 하여금 최선의 정책을 결정하게 하고 최선의 방법으로 이를 집행하게 하는 가장 안전한 제도다. 요즘 대의제 기관들은 본인의 역사적 사명을 잊은 채 영화 속의 인공지능(AI)처럼 돼 가고 있어 걱정스럽다. 전능하지도, 전지하지도 않은 대의업무 수행자들은 본인의 상황을 안 나머지 또 다른 국민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대변하는 다른 대의업무 수행자들과 수시로 협의하고 양보해 대의제 구성 원리가 잘 구현되도록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대의기관 구성원이 일부 국민의 이해관계만을 전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마치 일부 정보만 편향되게 학습하는 인공지능같이 민주주의 역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보완이 절실한 때다. 오히려 편향과 편식이 뉴노멀일 지경이다. 편향과 편식이 그들의 가장 안전한 성공 방정식이 돼 버렸다. 편향과 편식이 공공에, 국민에게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지보다 자신의 안위에, 자신의 정치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더 관심을 둔다. 다른 이해관계를 반영하려는 대의기관 구성원들과 상의 및 양보와 타협은커녕 식사도 같이 안 하는 것이 뉴노멀이 돼 가고 있다. 이 정도면 대의제가 왜 필요하고 왜 발전해 왔는지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즉, 제도적 취지를 몰각한 채 그냥 운영되고 있다는 의미다. 제한된 내용의 정보만을 학습한 힘센 인공지능이 자신의 결론이 전체를 위한 최선이라고 믿고 행동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 믿음이 강할수록 그만큼 다른 의견에 관심을 두지 않고 심지어 다른 의견을 선이 아닌 악으로 여길 확률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정치권이 이와 같다는 불안감이 커진다. 그래도 진영이란 프리즘은 국민의 이해관계를 모두 녹여 낼 큰 틀의 방법 구도로서 서로 잘 협의하고 타협하고 반영한다면 전 국민의 투표로 그때그때 의사를 확인해 뭔가를 결정하는 것보다 훨씬 유연하게 갈등을 녹이고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단으로 기능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각 진영 내에서도 일부 강한 의견을 우선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 커졌고 그 결과 일부 이해집단의 이익이 보편화 과정인 숙의나 타협 등 절차 없이 그대로 전체 뜻인 양 공익인 것으로 결정돼 버리곤 한다. 이미 이를 위한 인프라도 상당히 발전한 상태로 이를 대의기구 구성원은 선의와 사명에만 맡겨둘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이제 그들의 놀이터에 전 국민이 간섭하고 교정할 필요가 커졌다. 예전엔 기술적인 이유로 전 국민이 민주주의를 직접 구현하는 것이 제한적이었지만 이제는 대의기구를 구성할 때 하는 투표라는 방법의 전 국민 의사의 확인 절차를 정책 결정 때에도, 대의기구의 잘못을 꾸짖을 때에도 전기전자통신기술 발달의 덕을 볼 때다. 아니, 그래야만 할 때다. 전 국민이 보편적 정보를 대의기구 구성원에게 자주 제공하고 강제하는 제도를 만들어 편식하는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군림하는 영화를 편집할 때가 아닌가.

[세상읽기] AI 경쟁 알고리즘 아닌, 전력망이 결정

“AI의 다음 병목은 전기와 변압기다.” 일론 머스크의 이 경고는 초지능 시대의 성패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구동하는 물리적 인프라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인공지능(AI) 경쟁의 본질은 이미 소프트웨어를 넘어 에너지 인프라 경쟁으로 이동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글로벌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비량은 2024년 415TWh에서 2030년 945TWh로 두 배 이상 폭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데이터는 국경을 넘어 빛의 속도로 이동하지만 전기는 여전히 낡은 규제와 관료적 절차에 묶여 있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 AI는 혁신이 아니라 전원이 꺼진 모니터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AI 산업의 핵심 축인 경기도는 이 모순이 가장 먼저 터져 나오는 최전선이다. 수도권에 반도체, AI, 데이터센터가 밀집된 경기도의 전력 병목은 고밀도 기술 경제가 직면한 전 세계적 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최첨단 데이터센터 한 곳이 상시 필요로 하는 100MW 이상의 전력은 수십만 가구의 연간 소비량과 맞먹는다. 그러나 수도권 전력망의 구조는 과거 산업화 시대의 설계에 멈춰 있다. 남·동해안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으로 실어나르는 송전망은 이미 ‘계통 포화’라는 물리적 한계에 봉착했다. 실제로 수도권의 신규 전력 수전(受電) 신청의 상당수가 거절되거나 유예되는 ‘전력 경색’은 이제 상수가 됐다. 전력 공급 확답을 받지 못해 공장 착공조차 못하는 오늘의 현실은 대한민국 디지털 경쟁력의 고사(枯死)를 예고한다. 문제의 본질은 발전소의 숫자가 아니다. 생산된 전기를 필요한 곳으로 제때 전달하지 못하는 ‘에너지 고속도로’의 병목이 진짜 원인이다. 이제 AI 산업의 경쟁력은 서버 성능이 아니라 그 서버로 들어오는 변압기와 송전선에서 결정된다. 전력망은 더 이상 공공 유틸리티가 아니다. 국가의 연산 능력과 기술 주권을 좌우하는 전략자산이며 21세기 디지털 경제를 떠받치는 기반시설이다. 여기서 가장 치명적인 변수는 ‘시간의 비대칭’이다. 1, 2년 주기로 세대를 교체하는 AI 기술 속도를 인허가부터 완공까지 평균 13년이 걸리는 전력망 행정이 따라잡을 수 없다. 전력망 구축이 1년 지연될 때마다 해당 부지에 들어설 첨단 산업이 창출할 수조원의 부가가치는 증발한다. 이는 단순히 기업의 이전을 넘어 경기도의 미래를 지탱할 고부가가치 일자리와 세수 구조의 영구적 잠식을 의미한다. 인프라의 병목이 국가 자산의 소리 없는 유출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송전 갈등을 단순한 ‘님비(NIMBY)’로 치부하는 태도는 문제 해결을 늦출 뿐이다. 필요한 것은 도덕적 설득이 아닌 갈등을 제도적으로 흡수하는 설계다.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 간의 거리를 가격에 반영하는 지역별 한계 가격제(LMP)를 전격 도입하고 대규모 수요처에는 ‘계통 기여도’에 따른 인프라 분담금을 부과해야 한다. 동시에 국가 기간망 확충을 위한 인허가 패스트트랙을 가동하되 발생한 편익을 인근 주민들에게 ‘에너지 연금’ 형태로 되돌려주는 표준화된 보상 체계가 뒤따라야 한다. AI 시대의 에너지 전략은 선명해야 한다. 국가 기간망은 전략자산으로서 건설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고 동시에 소비지 인근에서 전력을 관리하는 분산형 에너지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초고압 직류송전(HVDC)과 실시간 계통 운영 기술은 이미 상용화 단계다. 부족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결단하지 못하는 제도의 속도다. AI 시대의 경쟁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전기가 먼저 도착하는 곳에서 시작된다. 에너지 고속도로는 국가 운영의 기본조건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행정의 결단이다. 이 결단은 기술 부처의 설명으로 대신될 수 없으며 정부와 정치가 공동으로 감당해야 할 선택의 문제다. 송전망 하나를 두고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기업과 일자리는 조용히 국경을 넘는다. 전력이 흐르지 않는 도시는 지능적일 수 없고 결단하지 않는 행정은 미래를 설계할 자격이 없다.

[세상읽기] 말의 해, 당근·채찍보다 ‘선명한 트랙’

2026년은 말의 해다. 달리기의 대명사인 말이 더욱 잘 달리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사용되는 전통적인 비유가 ‘당근과 채찍’이다. 하지만 조직을 운영해본 경영자라면 달콤한 당근 혹은 센 채찍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말이 질주할 수 있는 ‘트랙’을 선명하게 그리는 일임을 안다. 그런데 한국에서 미국 캠퍼스를 운영하다 보면 이 비유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일상 언어가 된다. 미국식 속도와 한국식 절차가 같은 조직 안에서 서로 다른 박자로 뛰기 때문이다. 미국 조직은 이동성과 속도를 기본값으로 둔다. 계약이나 법이 특별히 제한하지 않는 한 비교적 유연하게 고용관계를 종료할 수 있다는 임의고용(at-will) 관행이 널리 이해되는 환경에서는 역할 전환과 관계 종료의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고 그 리듬에 맞춰 성과급, 사이닝 보너스, 지분보상 등 ‘당근’도 다층적으로 설계된다. 이는 테뉴어라는 극단적 보호장치가 존재하는 대학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미국 출신 교원을 채용할 때는 우리 역시 ‘미국적 근무환경’을 기대하는 시선 속에서 보상과 역할을 두고 매우 치열하고 창의적인 협상을 마주하곤 한다. 하지만 한국은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 등 불이익 처분을 제한하는 규범이 강하게 작동하고 ‘계약이 끝나면 끝’이라는 공식도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운영은 ‘빨리 바꾸는 기술’보다 바뀌어도 납득되는 설계를 먼저 요구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의 또 다른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한국은 ‘빨리빨리’와 혁신의 아이콘이 됐다. 반도체, 전자제품 같은 제조 경쟁력, 케이팝과 K-드라마로 대표되는 콘텐츠 파급력, 당일배송이 일상이 된 유통 혁신까지. 즉, ‘절차가 두꺼운 트랙’ 위에서도 한국 사회와 기업은 놀라운 랩타임을 만들어 왔다. 노동자 보호가 강화돼 온 배경—압축성장과 위기의 기억, 불안정의 비용을 개인에게만 전가하지 않으려는 사회적 선택—은 이해할 만하지만 그럼에도 결과는 경이롭다. 제약이 까다로운데도 속도를 내는 법을 배워온 경주마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캠퍼스를 운영하며 가장 고민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속도를 늦추는 게 아니라 속도를 ‘설명 가능하게’ 만드는 일이다. 내가 말하는 ‘트랙을 선명하게 그린다’는 것은 거창한 구조조정이 아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규칙을 구성원들이 서로 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조지메이슨대는 연례 업무평가에서 SMART 원칙으로 핵심성과지표(KPI)를 세운다. 목표가 구체적이고(Specific), 측정 가능하며(Measurable), 달성 가능하고(Achievable), 역할과 연동되며(Relevant), 기한이 분명해야(Time-bound) 한다는 뜻이다. 작년 한 해 우리는 이 방식을 ‘서류’가 아니라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해 HR 컨설턴트 출신 교수와 함께 전 직원이 부서별 워크숍과 개별 코칭을 받으며 스스로 KPI를 설계했다. “무엇을 언제까지 어떤 지표로 증명할 것인가”를 합의하는 과정 자체가 예고 없는 채찍을 줄이고 예측 가능한 당근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한국에 있는 미국 조직으로서의 정체성과 장점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송도에 설치된 미국 대학으로서의 우리의 역할도 분명해진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미국식 팀 기반 문제해결과 빠른 피드백 문화를 가르치되 그것이 한국의 제도, 관계, 문화 안에서 작동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기준의 명확화, 기록, 코칭, 내부 이동 같은 ‘성장 장치’—까지 함께 훈련할 수 있다. 동시에 기업, 특히 미국에서의 투자와 활동을 고민하는 조직에는 ‘교육형 컨설팅’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더 센 채찍이 아니라 예고된 트랙을 만드는 방법을 함께 설계하는 일이다. 말의 해에 당근과 채찍을 다시 꺼내 든다면 결론은 단순하다. 채찍을 더 들기 전에 트랙을 더 선명하게 그리자. 규칙이 명확하면 채찍은 약해도 되고 당근은 작아도 오래 간다. 그리고 예측 가능한 트랙은 조직이 속도를 잃지 않으면서도 신뢰를 쌓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세상읽기] 미국의 마두로 체포와 ‘국방경제’

미국은 3일 군사작전 시작 약 3시간 만에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해 압송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전쟁에 5년 넘게 묶여 있는 것을 고려하면 미국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첫째, 베네수엘라 정부의 관여 또는 묵인 속에 미국에 들어오던 마약 공급을 차단할 수 있다. 마약은 본인뿐 아니라 가정, 일터, 도시와 공동체를 파괴한다. 치료, 퇴치에 많은 나랏돈이 들어간다. 노동력, 생산성을 갉아먹는다. 마약 공급 차단은 국가 재정 부담 축소, 우수 인재와 노동력 확보로 연결돼 경제 기반을 강화한다. 둘째, 안정적인 석유공급 확보다. 베네수엘라는 손꼽히는 석유 생산국인데 중국, 러시아에 우호적이고 미국에 적대적이었다. 마두로 체포는 풍부한 석유를 미국에 공급해 물가 인상을 억제하고 산업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해 패권 다툼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전쟁이 나토(NATO)에서 러시아의 안보를 확보하는 것이 주된 목표라면 마두로 체포는 미국 중심의 경제 패권이 목표에 가깝다. 미국은 마두로 대통령을 ‘인형뽑기’하듯 체포했다. 탁월한 국방기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전투기, 폭격기 등 150여대 항공기와 최정예 병력을 투입했다. 그전에 마두로 대통령과 가족, 집무실, 거주지, 경호팀, 군부대의 현황, 수준, 습성, 움직임을 미리 파악했다. 거기에 국방, 외교, 내무, 재무, 정치, 마약 카르텔과 범죄 등 핵심 데이터를 확보해 분석을 마쳤다. 그러니 첨단 국방기술 전시회가 따로 없다. 물론 마두로 체포가 최종 목표는 아니다. 베네수엘라 정국을 안정시키고 정치, 경제, 사회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을 위협하는 마약 카르텔 해체, 석유 공급 안정화가 가능하고 미국 패권이 지켜진다. 여기에 미국의 데이터,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이 활용되고 미국 기업이 진출할 것이다. 국방기술 강화는 군사 위협으로부터 자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출발했다. 고품질 소프트웨어, 데이터, AI를 장착한 첨단 무기는 살상력을 높일 수 있지만 반대로 살상을 줄이고 쉽게 이기는 수단도 된다. 국방기술 고도화는 국방력 강화에만 그치지 않는다. 석유 등 원자재 확보, 마약 퇴치, 국제협상 주도 등 국방 이외 다양한 목적을 위해 활용된다. 특히 국방기술은 민간경제와 직결된다. 분쟁지역은 데이터, AI, 로봇, 드론, 자율주행 등 첨단기술과 산업을 실험하는 테스트베드다. 옛 소련은 최초 우주선 발사 등 최고의 국방기술을 보유했지만 그 기술로 민간경제를 키우지 못했기에 해체됐다. 미국은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국방기술을 민간에 이전해 경기 침체를 극복하고 산업과 시장의 성장기회로 만들었다. 과거 인터넷, 위성항법장치(GPS), 로봇, 암호, 화학물질, 치료제 등이 그렇다. 전쟁터를 분석하던 데이터 기술은 정부 적자를 줄이고 기업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국방기술을 키우고 민간 활용을 높이면 국방 우위를 넘어 경제장벽도 만들기 쉽다. 미국 패권의 비결이고 역사다. 두렵지 않을 수 없다. 우리도 다를 바 없다. 국방과 경제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세계가 지켜보기에 우리만의 국방력 강화는 쉽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방위산업 강국이다. 국제협력 속에 경제기술을 국방기술로 만들고 국방기술을 경제기술로 만들어야 한다. 국방기술은 국가 안보뿐 아니라 경제 발전의 핵심 요소임을 명심해야 한다.

[세상읽기] 지지율이란 핵심 참모의 두 얼굴

대통령, 정당 등 주체에 대한 지지율은 종합적인 의견 표명이라 할 수 있지만 지엽적인 사실과 그로 인한 정서적 요인이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임기제인 선출직의 경우 지지율이 낮아지거나 낮은 수준을 보이는 경우 과감한 개혁 등 미래를 위한 의제를 만드는 데 힘을 쓸 수 없다. 법적인 권한은 있는데 설득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지지율의 기본값이 사실상 정해져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은 지지율의 직접민주주의 장점 가미를 희석하고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정치적 양극화가 점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제시하거나 지지하는 정책 및 사안에 대해 맹목적인 동의를 하는 결과가 지지율에 반영되는 경우 지지율은 오히려 대의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즉, 정당이 지지율을 참고해 국민의 의사를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의 생각을 국민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시스템으로 기능하고 정당 등이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피하는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정당이 지지율이란 내비게이션을 미리 설계해 놓고 형식상으로는 실패할 수 없는 길을 가는 아주 손쉬운 대의민주주의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 주체들이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해 숙의하고 조정해 사회를 통합하는 방향의 운영이 아닌 자신들이 설정한 의제 등을 사실상 강요하는 방법으로 지지율 등 여론조사를 활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정당이 추구하는 정책 기조와 노선이 점점 더 희미해지는 현대에 있어 각 정당의 태생적 의제 설정의 한계도 사라진 마당이라 지지율을 통한 국민에 대한 정책 강요엔 거침이 없다. 이 같은 지지율의 역기능을 줄이고 순기능을 되찾기 위해 몇 가지 여론조사와 관련해 고민해 볼 지점이 있다. 첫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 등 조사는 지지율이 대통령의 유용한 참모이기도 하므로 지속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지만 각 정당 지지율과 별도로 ‘국회’의 의정 지지율도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 정당의 지지율만 조사 발표되는 경우 각 정당의 의정 활동의 총합인 국회 활동에 대한 평가가 조사 발표되지 않아 각 정당 상호 간 상대평가만 갖고 국민의 의사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당활동의 결실인 입법과 국정 견제 등 국회에 대한 평가를 통해 정치적 양극화의 영향을 덜 받는 성적표를 보는것이 필요하다. 정당에 대한 지지율 조사는 대부분 정책 등 설정된 의제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정당 내부의 분위기 등 도덕적 또는 정치적 평가가 지지율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둘째, 때로는 블라인드 여론조사를 통한 정책 지지율을 조사해야 한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각 정치 주체가 주장하는 정책 및 의제에 대해 해당 정치 주체를 지지하는 국민은 일단 찬성하는 분위기가 강한 현실에서 특정 정책이나 의제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다고 보는 것이 옳다. 따라서 특정 주제에 대해 정치 주체의 당론 등 입장이 비공개된 상태에서 여론조사를 하는 등 정책에 대한 지지율을 조사하고 발표한 후 각 정당의 입장이 사후에 국민에게 발표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여러 방법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실행해봄으로써 정치적 양극화를 완화하고 지지율이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며 선량들로 하여금 지지율만을 나침반으로 한 너무 손쉬운 정치를 향해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세상읽기] 누구의 완공인가… 거북섬이 남긴 ‘재정 카르마’

도시는 완공되는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의 무구한 시간 속에서 비로소 제 얼굴을 드러낸다. 그러나 한국의 도시정책은 오랫동안 그 ‘이후의 시간’을 계획의 바깥으로 밀어내 왔다. 완공은 행정적 판단의 종결로 기록되지만 도시에 그것은 멈추지 않는 비용의 시간이 시작되는 시점일 뿐이다. 준공은 성과의 마침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거대한 비용의 개시다. 시흥 거북섬은 이 비대칭적 구조를 가장 투명하게 투영한다. 아시아 최대 인공 서핑장을 앞세워 해양 관광의 메카를 꿈꿨으나 개장 이후 직면한 70%에 육박하는 상가 공실률은 기대와 현실의 처참한 간극을 증명한다. 이를 특정 지자체의 실책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이는 한국식 도시개발이 구조적으로 반복해 온 경로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운영이 거세된 개발은 정책이 아니라 시차를 두고 배달되는 예정된 청구서에 가깝다. 도시계획의 본질은 무엇을 ‘지금의 성과’로 채택하고 무엇을 ‘미래의 관리’로 유예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시간의 배치에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정책 기조는 지나치게 건설 편향적이다. 건설의 시간은 공정표 아래 정밀하게 관리되지만 준공 이후 수십년간 이어질 유지의 시간은 계획의 시야에서 쉽게 탈락한다. 그 대가는 수치로 증명된다. 전국 지자체 공공시설의 80% 이상이 운영 수입으로 유지비조차 충당하지 못하는 구조적 적자 상태다. 국비로 건물을 올리는 데는 성공할지 모르나 그날부터 발생하는 관리·인건·보수 비용은 지방 재정을 장기적으로 잠식하는 늪이 된다. 특히 인구 감소 시대의 과잉 투자는 소수의 미래 세대가 다수의 빈 공간을 부양해야 하는 ‘재정적 연좌제’로 귀결된다. 유령 시설의 숨구멍을 붙잡기 위해 투입되는 혈세는 정작 돌봄과 교육에 쓰여야 할 지자체의 기회비용을 갉아먹는다. 밤이 되면 불 꺼진 상업지구를 지나며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도시는 행정적 마침표 이후에도 매일 생존을 위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서늘한 진실을 말이다.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는 이 문제를 ‘건설의 실패’가 아닌 ‘운영의 책임’으로 다루고 있다. 영국의 민자자금구상(PFI) 모델은 시설 타당성 검토 시 초기 건설비가 아니라 향후 수십년간의 총비용을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 일본 역시 ‘공공시설 백서’를 통해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할 유지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설의 통합과 축소라는 고통스러운 결단을 실행 중이다. 제도의 명칭보다 중요한 것은 운영 비용을 가시화하고 책임을 앞당기는 설계의 원리다. 이제 한국의 도시정책도 전환점을 맞아야 한다. 해법은 ‘생애주기책임제’의 도입이다. 예비타당성조사 단계에서 초기 공사비뿐 아니라 향후 30~50년의 운영·유지 비용을 의무적으로 산출하고 재정 지원의 조건으로 지속가능한 운영 계획을 요구해야 한다. 나아가 계획 대비 성과가 미달할 경우 차기 지원액을 조정하는 환류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정책 성과 지표 역시 화려한 리본 커팅식이 아니라 ‘준공 5년 후의 입주율과 재정자립도’를 향해야 한다. 그래야만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미래로 떠넘기는 무책임한 개발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인도 철학에서 말하는 ‘카르마(業)’는 단순한 응징이 아니다. 과거의 선택이 형태를 바꾼 채 현재와 미래에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구조적 인과율이다. 완공식의 환호는 찰나에 불과하지만 그 선택이 남긴 부채는 도시의 일상 속에서 거대한 고정 비용으로 숨 쉰다. 도시는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주어진 구조를 묵묵히 살아낼 뿐이다. 완공만을 성공으로 기록하는 정책은 반드시 운영의 시간 속에서 대가를 요구받는다. 거북섬은 우리 도시정책이 외면해 온 ‘재정의 카르마’를 보여주는 가장 통렬한 경고장이다. 도시의 미래는 준공식이 아니라 그 이후의 시간을 누가 어떻게 책임지는가에 달려 있다.

[세상읽기] AI 교육과 ‘업데이트 가능한 설계’

요즘 한국에서 인공지능(AI)은 유행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현재형이다. 2025년 9월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가 출범했고 ‘AI 고속도로’ 구축도 본격화됐다. 2026년 시행을 앞둔 ‘AI 기본법’은 산업과 공공 전반에 분명한 신호를 보낸다. 속도감 있게 활용하되 책임감 있게 통제하라는 것이다. 교육도 예외가 아니다. 2025년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둘러싼 현장의 외면과 비판은 이 전환기의 상징적 장면이다. 이러한 다양한 성장통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요구가 학교로 수렴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교실은 사회의 가장 치열한 예행연습장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도 변하고 있다. 기준은 ‘AI를 쓸 줄 아는가’가 아니라 ‘AI 에이전트를 관리·감독할 수 있는가’다. 결과를 뽑아내는 속도만큼이나 정확성, 저작권, 보안, 편향 같은 리스크를 식별하고 통제하는 품질관리 역량이 중요해졌다. 하지만 교육 현장의 논쟁은 여전히 ‘지금의 AI’에 많은 부분 고정돼 있다. 허용과 차단, 표절 단속 같은 절차적 고민 역시 필요한 과정이나 더욱 본질적인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AI는 무서운 속도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스탠퍼드 인간중심 인공지능 연구소(HAI)의 ‘AI 인덱스 2025’가 정리하듯 AI는 단순 생성 도구를 넘어 워크플로 전체를 수행하는 에이전트로 진화 중이다. 자료조사, 분석, 발표자료 제작, 일정 조정까지 맡기는 시대에 문장 표절 단속만으로는 답이 나오기 어렵다. 도구 목록을 규제하는 규칙은 금세 낡는다. 이제 교육은 기술이 바뀔 때마다 인간 역시 스스로를 재학습하는 역량, 즉 업데이트 가능한 설계를 가르쳐야 한다. 교육의 방점은 AI로 인한 ‘대체’가 아니라 ‘증강’에 찍혀야 한다. AI가 결과물을 더 잘 만들수록 교육은 산출물이 아니라 판단 과정을 평가해야 한다. 문제를 어떻게 정의했는가, AI의 답을 어떻게 검증했는가, 반례를 찾아 어떻게 수정했는가. 이 사고의 궤적이 학습이다. 완성본에 더해 수정 이력과 근거 확인 과정을 포트폴리오로 남기게 하는 방식이 더 적합하며 지속가능하다. 좋은 답은 AI가 만들 수 있지만 그 답을 믿어도 될지 최종 승인하는 책임은 인간의 몫이다. 이런 맥락에서 교육기관의 AI 규칙은 도구 가이드라인을 넘어 가치 중심의 원칙이어야 한다. 조지메이슨대의 ‘AI2Nexus’는 하나의 좋은 이정표를 제시한다. AI를 교육·연구·운영 전반에 통합하되 그것이 학습을 촉진하고 책임 있는 혁신과 사회적 임팩트로 연결돼야 한다는 방향성이다. 조지메이슨대 한국캠퍼스에서도 AI를 ‘사고의 가속기’로 활용하는 훈련을 다양한 수업에 적용하고 있다. 산하기관인 한국기능성게임연구소(KSGI)도 우즈베키스탄, 아랍에미리트(UAE) 등에서 추진하는 AI·확장현실(XR) 프로젝트를 통해 기술을 문화유산 보존 같은 가치 영역과 연결하며 ‘무엇을 바꿀지’만큼 ‘무엇을 지킬지’를 묻는다. AI 리터러시는 단순히 프롬프트 요령이 아니라 의심하고 확인하는 습관이다. 학생에게 AI 사용을 숨기게 하기보다 드러내고 검증하게 만드는 교실이 돼야 하며 교사의 역할도 정답 공급자에서 코치이자 품질관리자로 전환돼야 한다. 결론은 단순하다. AI가 영리해질수록 흔들리지 않는 질문의 힘, 검증의 끈기, 책임의 윤리를 기르는 것이 미래 교육의 본질이다. 기술이 인간을 앞지르는 영역이 많아질수록 역설적으로 우리는 가장 인간다운 능력을 더욱 정교하게 갈고닦아야 한다. AI가 그리는 지도 위에서 목적지와 나침반을 쥐는 존재는 결국 우리다.

[세상읽기] 21세기 공무원의 삶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막스 베버는 전제주의를 벗어나기 위한 핵심으로 관료제를 강조했다. 공무원은 철학, 이념을 가지거나 가치 판단을 해선 안 된다. 오직 법에 따라 전문적, 효율적, 합리적, 객관적, 중립적으로 일만 하면 한다. 영혼 없는 공무원만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리 공무원은 법에 따라 상관의 직무명령에 복종해야 했다. 최근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은 무조건적 복종의무를 폐지했다. 상관의 지휘감독을 따르되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위법하면 따르지 않아도 된다. 21세기 공무원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조선시대 중종은 조광조의 개혁이 왕권에 도전한다는 의심이 들자 기묘사화를 일으켜 처단했다. 중종의 명을 받아 조광조를 탄핵한 신하에 남곤이 있다. 조광조는 유교 원칙보다 실무를 중시하는 그를 배척했다. 남곤은 조광조를 죽이는 것은 지나치다며 극력 반대했지만 막지 못했다. 지위가 영의정에 이르렀지만 뇌물을 멀리하고 일에 최선을 다했다. 죽기 전에 자신의 모든 글을 불태웠다. 조광조의 죽음에 평생 부끄러움을 안고 살았다. 중국 당나라 초기 태종은 현무문의 난을 일으켜 태자인 형을 죽이고 아버지 고조를 퇴위시켜 왕위에 올랐다. 태자의 참모였던 위징을 추궁하고 처형하려 했다. 위징은 “부모형제도 나누지 못하는 것이 권력”이라며 “태자가 저의 말을 들었다면 당신은 황제가 되지 못했다”고 응수했다. 태종은 그를 용서하고 신하로 받아들였다. 마음은 불편해도 그의 견해를 경청했고 좋은 건의는 정책에 반영했다. 수나라의 패망 원인을 분석해 조세, 부역을 경감했다. ‘정관의 치’라는 태평성대를 역사에 남겼다. 오대십국시대 전쟁은 끝이 없고 삶은 궁핍했다. 많은 왕조가 오늘 세워졌다 내일 무너졌다. 당시 재상 풍도는 어떤가. 시를 남겼다. ‘입은 재앙을 부르고 혀는 몸을 자른다/입을 닫고 혀를 감추면 능히 편안하리라.’ 그는 5개 왕조, 황제 11명을 섬겼다. 항상 고위직에 있었고 백성의 칭송을 받았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일 잘하는 간신이다. 후주 세종이 전쟁에 직접 나가려 하자 황제가 다치면 안 되니 다른 장군을 보내라며 막아섰다. 세종은 직접 출전해 대승을 거뒀는데 반대한 풍도를 오히려 중용했다. 백성이 보기엔 충신이다. 요나라 태종이 침략해 백성을 죽이려 하자 “부처도 백성을 구할 수 없지만 대왕은 할 수 있다”고 구슬려 학살을 막았다. 관리의 착취를 막고 백성에겐 베풀었다. 명나라 해서는 누군가. 늦게 관리가 됐다. 황제의 향락과 무능을 탓하며 쇄신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황제는 격분해 그를 처형하려 했지만 폭군이라는 오명을 남기기 싫어 포기했다. 공직생활 30년의 절반이 보직이 없거나 유배상태였다. 법을 엄격히 시행했고 공사가 분명했다. 호족이 뺏은 땅을 백성에게 돌려줬다. 죽을 때 장례 치를 돈조차 없었다. 공무원에게 정권과 같은 영혼을 강요해선 안 된다. 정권의 공약을 충실히 실행하는 능력이 중요할 뿐이다. 지난 정권에서 열심히 했다고 배척해서도 안 된다. 춘추전국시대 초장왕은 후궁을 희롱한 장군을 용서함으로써 뒷날 전쟁에서 승리했다. 조조는 적장 원소와 내통한 수많은 관리를 용서해 삼국 통일의 연료로 삼았다. 공직에 우수한 사람이 모이고 두려움과 불안감 없이 일하는 데 집중해야 정권도 성공하고 대한민국도 성공한다.

[세상읽기] 눈사람 만들기와 현대판 목민의 필요성

어릴 때 눈 오는 날 눈을 뭉치거나 굴려 눈사람을 만들어 놓고 만족해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온 세상을 골고루 뒤덮은 눈을 굴려 만들어 놓은 눈사람이 바닥 어떤 눈보다도 가장 늦게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위정자들은 애써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어 놓고 그 눈사람이 돌봐야 할 사람의 전부인 양, 녹지 않고 있는 사람의 기준인 양 그렇게 세상을 잘 못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유의해야 하는 시대가 아닌지 모른다. 오히려 전근대보다 더욱 더 가족돌봄과 지역돌봄이 구조적으로 느슨해진 요즘 광범위한 수동적인 국민들에 대한 국가의 살핌이 더 필요해진 것 아닌가. 위정자의 눈으로.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의 목민이란 단어의 뜻은 백성을 기른다는 것으로 1818년 시대에나 쓸 수 있던 것이지 민주주의가 보편화된 현대에는 국민을 대하는 위정자의 자세로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겨 왔다. 현대 민주주의 속 국민은 정책의 수혜자와 위정자가 이론상 일치하기 때문이고 목민이란 단어가 주는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존재로서 상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류의 비약적 발전을 이끌어 온 자본주의는 다수를 위한 공리적 관점에서 국가가 관여해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사회가 보수 및 유지돼 왔다. 그런데 그 국가권력을 그때그때 구성하는 민주주의는 위정자의 편의적 관점에서 정치적 후견주의가 강화됨에 따라 다수인 수동적 국민을 위한, 수동적 국민에 의한 국가의 구성과 운영 원리로 기능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민을 위한’이란 민주 개념은 국가 기능 속에, 위정자의 가슴속에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절대왕정에서도. 근대에 이르러 이에 더해 ‘국민에 의한’이란 민주개념이 보편화 된 것인데 최근 ‘국민의 의한’이 ‘국민을 위한’에 도움이 덜 되는 황당한 상황이 전 세계적으로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국민 전체의 후견주의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습인데 적극적이고 조직화된 일부 사회세력이 여론을 주도해 선거가 치러지고 이들이 위정자의 임기 내 행동을 적극 감독함으로써 위정자들은 그들을 과다 의식해 정책을 만들어 집행하고 이해관계를 그들 중심으로 조정하게 된다. 현대 민주주의가 이같이 왜곡되게 기능하더라도 각계각층의 국민을 각각 대변하는 정당이 활성화돼 있다면 다극화될 뿐 정책의 입안과 수혜 과정에서 소외되는 국민이 적었을 텐데 정치적 양극화가 보편화돼 있어 정책의 입안과 수혜 과정에서 소외되는 국민이 늘고 있다. 이는 오늘 하루의 뉴스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조직화되거나 적극적인 국민층만이 위정자들에게 정책적 쟁점을 만들어 어필하게 되고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국민층은 그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도록 쟁점을 만들 수 없으며 위정자들은 쟁점 위주로 그들의 소임을 인식하고 매진한다. 이것이 요즘 정치 구조다. 역설적으로 ‘국민에 의한’ 민주주의가 위정자로 하여금 국민 상당수를 살피지 않게 해 진정한 민주주의 원리가 퇴색되게 만들고 있으므로 이제 1818년 목민의 개념을 통찰해 민주주의의 핵심은 ‘국민을 위한’이고 위정자의 제1의 의무가 ‘국민 모두를 위한’ 목민 의무임을 시급히 깨달아야 한다.

[세상읽기] 종묘 앞 140m의 욕망

도시의 성숙은 마천루를 얼마나 빨리 쌓아 올렸는가로 증명되지 않는다. 무엇을 지키고 어디를 비워둘지를 아는 ‘절제의 미학’, 그 고요한 멈춤이 자리 잡을 때 비로소 도시의 품격은 드러난다. 최근 종묘 앞 완충구역에 140m 고층 빌딩이 들어설 수 있다는 소식이 서울을 흔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한 구역의 재개발 여부를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도시 문명이 앞으로 어떤 질서와 기준으로 자신을 정의할지 묻는 근본적 질문이다. 종묘는 조선의 국가 질서가 박제된 공간이 아니라 한국 도시문명의 기원을 담은 심장부다. 유네스코가 이를 “국가의 세계관과 도시 구조가 통합된 예외적 사례”로 평가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정전(正殿)의 낮은 지붕선 위로 펼쳐진 하늘은 500년 동안 한번도 흔들리지 않은 도시의 윤리적 경계이며 권력이 스스로를 절제해 온 드문 기록이다. 이런 종묘의 완충구역에서 고도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은 이 오래된 경계를 단순한 개발 지표로 환산하겠다는 선언이자 도시가 스스로 세운 금도(禁度)를 시장 논리로 덮어 버리려는 위험한 시도다. 그러나 종묘 보존 논쟁에서 토지주와 상인의 절박함을 ‘탐욕’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문화재가 밥 먹여 주느냐”는 항변은 생존이 걸린 이들의 거친 외침이 아니라 수십년간 낙후를 감내해 온 도시 내부의 깊은 균열을 드러낸다. 문제는 욕망의 존재가 아니라 그 욕망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개발이냐 보존이냐라는 낡은 이분법만으로 도시의 시간을 끊어내는 방식은 이미 세계 도시들에서 유효한 해법이 아니다. 뉴욕은 같은 갈등에 ‘제3의 길’로 응답했다.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상부의 개발하지 않은 공중권(Air Rights)을 떼어내 인근 개발지로 사고팔 수 있도록 한 용적이양제(TDR)는 도시가 채택한 가장 창의적인 제도 중 하나다. 역사적 건물은 그대로 남기고 소유주는 개발 이익을 보상받으며 도시는 시간의 기억을 지켰다. 욕망을 억누르는 대신 우회시키는 방식으로 도시 전체의 품격을 높이는 문명적 해결 방식이었다. 경관은 단순한 ‘뷰(View)’가 아니다. 공동체가 축적한 시간이며 시민 누구나 평등하게 누려야 할 공공적 자산이다. 파리가 에펠탑 주변을 비워 두고 런던이 템스강 스카이라인을 관리하며 도쿄가 황궁 주변의 조망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은 관광 수입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 세대에게 남겨야 할 도시의 자존심이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판단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그 결정이 수도권 전체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인구 1천400만명의 거대한 메트로폴리탄을 이루는 경기도는 서울의 도시계획을 준거집단으로 삼아 왔다. 종묘 앞을 140m 건물로 가리는 순간 경기도가 수원화성이나 남한산성 주변의 경관축을 지켜낼 명분은 급격히 줄어든다. “서울도 하는데 왜 우리는 안 되는가”라는 논리가 퍼지는 순간 수도권의 고유한 풍광과 역사적 결은 도미노처럼 흔들릴 것이다. 도시는 기억으로 산다. 기억을 지운 자리에 아무리 웅장한 마천루를 세운들 그것은 결국 콘크리트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도시의 정체성은 스카이라인의 높이가 아니라 스스로 넘지 않으려는 선(線)에서 드러난다. 문명은 빠르게 건물을 올리는 기술이 아니라 긴 시간에 책임을 지는 태도로 완성된다. 종묘의 하늘을 가리려는 140m의 욕망 앞에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더 크고 높은 빌딩 숲인가, 아니면 500년의 시간을 품은 고요한 하늘인가. 그 선택이 곧 우리의 도시 문명이 지닌 ‘격(格)’을 결정할 것이다.

[세상읽기] 스타트업·대학의 새로운 행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한미 협상 팩트시트 발표 이후 한미 통상 환경은 한층 선명해졌다. 미국이 제조·첨단기술·공급망을 자국 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제시한 보조금과 규제 개편은 단순한 산업정책을 넘어 국가전략에 가깝다. 최근 한국 스타트업들이 유독 미국을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수 포화, 인력 불균형, 기술 경쟁 심화 속에서 미국은 새로운 선택지가 아니라 사실상 ‘첫 번째 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창업 초기부터 해외 진출을 전제로 태어나는 ‘본 글로벌(Born-global)’ 기업의 패턴이 한국에서도 뚜렷해지고 있다. 이들은 속도보다 국제화 준비도를 중시한다. 문제는 미국 시장이 기회의 크기만큼 진입장벽도 높다는 점이다. 주마다 다른 법무·세무 제도, 기술 기업이 마주하는 FDA·HIPAA 등 규제 장벽, 시장 신뢰 확보를 위한 검증 과정까지미국 진출은 본질적으로 다시 ‘0에서 1을 만드는 과정’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한미 네트워크를 가진 대학의 역할이 새롭게 주목받는다. 대학의 강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제도적·공공적 신뢰성으로 초기 시장 진입의 문턱을 낮출 수 있다. 둘째, 연구·기술 검증 인프라를 통해 기술 기업이 요구받는 객관적 신뢰를 제공한다. 셋째, 지속가능하고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보유해 스타트업이 스스로 확보하기 어려운 연결성을 제공한다. 즉, 대학은 기업이 단독으로 만들기 어려운 ‘국제화의 기반 시설’을 이미 갖춘 셈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이러한 기반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그중 한 예가 조지메이슨대가 보유한 한미 캠퍼스 연계와 현지 생태계를 활용한 소프트 랜딩 프로그램들이다. 조지메이슨 한국캠퍼스의 혁신창업센터는 워싱턴DC 인근 북부 버지니아의 NISA(Northern Virginia International Soft-Landing Accelerator)와 연계해 한국 스타트업의 미국 시장 안착을 지원한다. NISA는 미국 공공기관과 대학이 공동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매년 전 세계 15~20개 기업을 선발해 사업전략, 규제·법무 준비, 투자자 매칭을 지원한다. 이후 최종 선정된 기업은 6개월간 현지 혁신지구에서 실험실과 오피스를 무상 제공받으며 미국 시장에 필요한 검증·네트워킹을 집중적으로 확보한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미국 시장이 요구하는 제도적 신뢰와 초기 내재적 리스크를 줄여주는 ‘착륙 플랫폼’에 가깝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특정 기관의 활동을 넘어 하나의 흐름을 시사한다. 즉, 글로벌 진출을 희망하는 스타트업이 정교하게 설계된 국제화 플랫폼을 통해 제대로 미국에 착륙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의미다. APEC 이후의 통상 환경은 한국 스타트업에 분명한 기회다. 그러나 그 기회는 준비된 이들에게만 열린다. 미국으로 향하는 한국 스타트업 2.0 시대, 이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구조다. 그리고 그 구조 속에서 대학은 글로벌 기업의 출발선을 함께 설계하는 든든한 동반자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세상읽기] 사이버안보, 골든타임이 중요하다

사이버 공격과 침해 사고가 유독 많았다. SK텔레콤, 롯데카드 등 민간기업만이 아니다. 정부 업무용 ‘온나라시스템’도 뚫렸다. 한국만 그럴까. 미국 버라이존, 티모바일, AT&T 등 외국 기업도 마찬가지다. 아랍에미리트 등에선 가상자산거래소가 해킹되고 암호화폐가 탈취됐다. 사이버 사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선 대규모 화재 사고가 있었다. 이유가 뭘까. 코로나 팬데믹 이후 원격근무가 많아졌다. 직장을 벗어나 집, 카페 등 업무환경이 다양화됐다. 접속기기도 노트북, 스마트폰 등으로 확대됐다. 바뀐 환경에서 시스템 오류와 실수가 겹치면서 해킹세력에 다양한 공격 접점을 제공했다. 오랜 경기 침체와 맞물리며 취약점이 늘고 사이버공격이 거세졌다. 인공지능(AI) 등 신기술까지 활용해 속임수 이메일, 휴대폰 문자 작성, 악성코드 투입, 데이터 조작, 페이크 영상으로 위협 강도와 정밀도를 높였다. 공격 방법도 지능적이다. 오래전에 악성코드를 심어두고 침해 시기를 저울질한다. 피해 기업에 대한 심층 연구를 통해 효과적인 공격 방법을 실행한다. 피해 기업의 노력만으론 침해 사고를 막기 어려워졌다. 침해 사고가 밝혀지지 않은 기업도 안심할 수 없다. 피해를 당했는지 모르고 있을 수 있다. 해킹 진원지로 중국, 북한을 강력하게 의심할 뿐 공격루트와 세력을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사이버공격을 탐지하는 화이트해커의 ‘프랙보고서’가 공개된 후에야 침해 사고 피해를 알아차린 기관과 기업도 있다. 캄보디아 피싱범죄는 어떤가. 고수익 유혹에 속아 범죄조직에 가담함으로써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이 일었다. 많은 국민이 생명, 신체, 재산 피해를 입었다. 대통령의 결단이 있고서야 대응 조치가 취해졌다. 범죄조직은 단속을 피해 근거지를 옮기고 있지만 여전히 조직력과 자본력을 가지고 있다. 해킹, 테러세력 등 다른 범죄조직과 제휴를 강화한다면 어떻게 될까. AI 등 신기술을 장착하고 고도화, 지능화한다면 누가 그들을 막을 수 있을까. 기관과 기업은 AI대전환을 통해 체질 개선과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그러나 초기 AI는 데이터 부족과 알고리즘 미흡으로 사이버 위협 징후를 놓치거나 해킹세력에 당할 위험이 있다. 관공서, 통신사, 금융사만 아니라 법무법인, 회계법인 등 고소득이 있는 곳도 노리고 있다. 당연히 국가보안시설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 핵심 정보가 해커의 손에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경제 위협을 넘어 국가 존립을 흔드는 안보 위협이 된다. 근본척인 해결책은 기술이다. 입법을 통해 ‘국가보안기술연구소’의 위상을 강화해 지원하고 사이버안보 기술 고도화에 주력해야 한다.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인수합병, 기술 교류를 통해 보안업체를 육성하고 해외 핵심 기술도 도입해야 한다. 물리적 공격과 사이버공격을 뒤섞은 복합 위협에도 대비해야 한다. 관계기관 사이에 칸막이 없는 원활한 협력체계 등 컨트롤타워를 갖추고 사이버안보 거버넌스를 확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탄탄한 생태계를 가동해 소규모 공격도 조기 탐지와 실시간 대응 등 철통같이 막아야 한다. 올해 터지고 보완했으니 내년엔 괜찮으리라 속단해선 안 된다. 사이버 위협의 일상화, 지능화 등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근본적인 반성과 개혁이 없다면 미래도 올해와 다르지 않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사이버안보는 물론이고 우리의 조국도 존립할 수 없다.

[세상읽기] 정치 속 세이의 법칙

상품과 서비스의 적절한 가격 결정 원리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결론적으로 경쟁이 보장된 경제 환경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원리다.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하기 때문에 공급이 있으면 그만큼의 수요가 생겨나므로 수요 부족 때문에 공급 과잉이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세이의 법칙도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생산자 내지 상품이나 서비스의 공급자가 광고 등을 통해 상품 및 서비스의 본래의 기능적 장점 외에 서사를 부여하거나 소비자의 상품에 대한 기대 외의 욕구를 창출하는 방법으로 생산자 내지 공급자가 수요를 창출하거나 수요의 내용까지 좌우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우리는 경제적·정치적 발전을 통해 금전적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됐다. 즉, 풍요로운 사회가 돼 왔다.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고쿠분 고이치로)이란 책에 의하면 풍요로운 사회는 우리에게 한가함을 선물했으나 우리 중 누구는 때때로 그 한가함 때문에 지루함을 느낀다고 한다. 즉,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다양한 생활에 필수적이지 않은 행동과 소비를 때때론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이다. 수요 우위의 결정 시스템이 근본인 민주주의하에서의 정치 서비스 공급체계에서도 일시적이 아닌 지속적이고 급격한 변화가 보이고 있다. 이는 바람직한 모습으로의 변화가 아니어서 미래의 정치 서비스 수요자들 입장에서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공급되는 정치 서비스의 내용과 방향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정치 서비스의 소비자인 국민의 날것 그대로의 의사가 중요한 것이 민주주의인 것이다. 그런데 정치 수요의 내용에 따라 정치 서비스의 내용이나 공급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적지만 강력하고 선정적인 일부 정치 공급자에 의해 정치 수요자의 욕구의 내용이 바뀌고 결정되곤 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 공급자도 아니고 정치 수요자도 아닌 적은 수의 강력한 팬덤층이 정치 공급자와 공생관계를 통해 수요의 모습과 빈도를 결정함으로써 사회 전체 정치 수요의 크기와 방향이 왜곡되곤 한다. 정치 서비스의 본질을 완전히 벗어나 정치 공급자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일부 소비자층과의 관계가 정치 서비스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을 넘어 서비스의 방향에 대한 옳고 그름도 판단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공급자만을 위한 거래는 있을 수 없고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없도록 설계된 것이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고 이러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정치 영역에 적용된 것이 민주주의 원리다. 그래서 수년간의 간격을 두고 선거를 통해 거래조건을 맞춰 왔던 것이다. 이러한 진정한 민주주의 원리를 통해 연령대 간, 과거와 미래세대 간, 지역 간의 이해관계가 조절되고 절충돼 공동체가 비교적 조화롭게 운영돼 왔던 것으로 진정한 민주주의가 소비자주권을 정치제도화 한 것이다. 최근 정치 서비스에서조차 정치 공급자가 서비스와 상관 없는 서사를 서비스에 입히거나 공급자 본인에 입히는 등의 방법으로 은연중 소비자로 하여금 소비의 내용이나 소비 여부를 바꾸도록 하는 등 세이의 법칙이 통하는 장으로 만들고 있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정치 서비스 공급자 주권화는 공동체의 자원 분배를 왜곡시키고 잠재력을 약화시키며 갈등을 키워가는 것임을 역사적으로 있었던 일시적 정치 공급자 주권시대를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를 위해 정치 영역에서 세이의 법칙을 추방하자.

[세상읽기] 10·15 부동산 대책의 딜레마

광풍(狂風)이 지나간 자리에 혹한(酷寒)이 찾아왔다. ‘영끌’과 ‘패닉바잉’의 함성이 뒤섞이던 부동산 시장은 이제 거래가 실종된 침묵의 계곡으로 변했다. 이재명 정부가 10·15대책을 통해 선포한 ‘부동산 불로소득 시대의 종언’은 자산 불평등에 신음하는 시대가 기다려 온 정의로운 선언이었다. 지난 10년간 노동의 가치는 조롱당했고 아파트 가격은 평범한 시민의 삶을 옥죄는 족쇄가 됐다. 그 비정상적 열병을 끊으려는 시도, 그 방향 자체를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투기적 관성에 제동을 거는 것은 곪아 터진 환부를 도려내는 외과수술에 가깝다. 하지만 선한 의도가 늘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투기 수요를 박멸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는 시장 생태계의 순환을 멈추게 했다. 바이러스를 잡기 위해 혈류까지 막아 버린 셈이다. 서울 외곽과 수도권 중저가 단지에서는 퇴로를 잃은 매도자와 진입로를 찾지 못한 매수자의 탄식이 메아리친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대책 이후 약 75% 감소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돈맥경화다. 주요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신규 취급액은 9월 대비 40% 이상 급감했고 승인 거절률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대출이라는 마지막 사다리가 걷어차이자 청년과 신혼부부의 ‘내 집 마련’은 신기루가 됐다. 평범한 실수요자마저 잠재적 투기꾼으로 오인받는 이 풍경은 정책이 지향한 ‘안정’이 아니라 모든 흐름이 멈춰버린 ‘정지(停止)’에 더 가깝다. 규제의 강도보다 위험한 것은 ‘정책의 요동’이다 문제의 근원은 시장에 각인된 ‘학습된 불신’이다. 한국의 부동산 정책사는 ‘규제 강화→시장 냉각→규제 완화→시장 과열’의 채찍 효과(Whiplash)로 점철돼 왔다. 정책의 일관성이 무너지면 시장 참여자들은 다음 정권의 정책 변화를 예측하며 움직인다. 이재명 정부가 진정 싸워야 할 적은 투기세력의 탐욕이 아니라 이처럼 깊게 내재한 ‘정책 불신의 병리’ 그 자체다. 정부가 제공해야 할 최고의 공공재는 ‘예측 가능성’이다 정부가 시장을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지만 신뢰할 수 있는 규칙의 언어는 만들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규제’가 아닌 ‘흔들리지 않는 시간표’다. 정권의 임기를 뛰어넘는 ‘부동산 정책 5개년 로드맵’을 제시하고 그 약속을 사회적 계약으로 지켜내야 한다. 이를 통해 시장 참여자들이 미래를 설계할 최소한의 좌표를 확보할 때 비로소 흩어진 신뢰가 복원될 것이다. 10·15대책이 강력한 의지의 산물이었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섬세한 감각의 정책이다. 모든 연주자에게 똑같은 악보를 강요하는 지휘자는 불협화음만 만든다. 투기적 수요에는 단호한 잣대를 들이대되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와 장기 무주택 서민에게는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숨통을 틔워주는 ‘핀셋형 안전장치’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예컨대 부부합산 소득 1억원 이하, 주택가격 6억원 이하의 생애최초 구입자에게 LTV 한도를 기존보다 10~20%포인트 상향하고 정책모기지와 연계해 초기 3년간 고정금리, 전매제한을 조건으로 지원하는 식이다. 투기를 막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지만 평범한 시민의 희망까지 막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의 나침반은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려면 나침반만으로는 부족하다. 속도계와 수심계를 함께 살피는 노련한 항해술이 필요하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강력한 부동산 대책은 가격 통제가 아니라 신뢰의 설계다. 정부가 시장에 제공할 최고의 공공재는 흔들리지 않는 예측 가능성이다.

[세상읽기] 머무르며 이어지는 K-컬처

세계는 지금 한국을 ‘콘텐츠 강국’이라 부른다. 오늘날 K-문화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인이 즐기고 공감하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음악,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다양한 분야의 K-콘텐츠는 한국의 언어와 역사,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강력한 매개체로 기능하며 국가 간 상호 이해와 교류를 촉진하는 중요한 ‘소프트 파워’가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 흐름을 ‘전파’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 누가 더 많이 보고, 어디까지 퍼졌는가에 집중하는 동안 그 콘텐츠가 어떻게 이해되고 다른 문화와 만나 어떤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K-컬처의 지속가능한 성장은 단순히 무엇을 ‘만드는가’를 넘어 그 문화가 어떻게 ‘머무르고’, ‘관계로 이어지는가’를 고민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인천국제공항을 빠져나오는 외국인 손에는 대부분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다. 그들이 만나는 한국은 거리의 냄새나 사람들의 얼굴보다 먼저 알고리즘이 선별한 ‘K-컬처 클립’이다. 방문보다 콘텐츠가 앞서고 관계보다 소비가 먼저 재생되는 구조 속에서 공항과 테마파크, 쇼핑몰 등 화려한 공간은 늘어났지만 머물며 배우고 서로의 언어로 말을 건넬 수 있는 ‘문화적 머무름의 공간’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인천이 추진 중인 K-콘랜드 프로젝트는 매우 상징적이다. 인천국제공항 인근에 조성될 이 복합 콘텐츠 클러스터는 공연, 체험, 숙박이 결합된 ‘머무름의 인프라’를 지향한다. 세계인이 공항을 통해 한국을 처음 만나는 그 순간부터 콘텐츠를 ‘보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고 머무는’ 경험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K-컬처가 관계로 전환되는 그 첫 번째 물리적 실험이 인천에서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지역적 흐름은 최근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새 정부는 K-콘텐츠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비전을 내놓았다. 산업 규모를 300조원으로 확대하고 해외 진출과 국제 협력을 위한 규제 완화, 세제 지원, 아레나 건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단순한 수출 산업이 아닌 한국의 정체성과 문화적 공명을 이끄는 ‘국가 전략 자산’으로 콘텐츠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다. 결국 이 두 흐름(인천의 공간 전략과 국가의 정책 전략)은 같은 목표를 향한다. K-콘텐츠를 ‘소비’에서 ‘공존’으로, ‘유행’에서 ‘지속가능한 관계’로 옮겨 놓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K-콘텐츠에 관심을 가진 젊은 인재들이 더 오랜 머무름과 배움을 목표로 오도록 하는 대학들의 K-콘텐츠 교육 허브로서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특히 인천 송도에 자리한 인천글로벌캠퍼스 같은 시설은 미국 대학의 확장 캠퍼스를 넘어 문화적 머무름을 교류로, 교류를 K-컬처 전달로 확장시키는 공공외교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에서 출발한 이야기들을 다양한 국적, 인종,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유하면서 K-콘텐츠라는 공통관심사로 서로 만나고 섞이는 가운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무엇인가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 K-콘텐츠의 미래는 거대한 스크린이나 화려한 쇼케이스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세계인의 마음속에 오래 머무르는 이야기,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그 문화적 관계 속에 있다.

[세상읽기] AI 거품, 다룰 줄 알아야

2000년 세계를 강타한 ‘닷컴버블’을 기억하자. 인터넷 기업 주가는 과도하게 상승했다가 그대로 붕괴했다. 기업은 방문자 수 등 과장된 지표로 고평가되고 인수합병을 더해 판을 키웠다. 주식시장에 들어온 돈은 흥청망청 쓰이고 연구개발과 투자로 이어지지 않았다. 주식시장은 대략 80%까지 폭락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도 거품이 빠르게 커졌다가 순식간에 빠진 경우다. 집값이 계속 오른다는 기대를 심었다. 금융기관은 돈을 빌려주며 집을 사게 했고 집을 담보로 잡은 파생상품을 팔아 고수익을 냈다. 집값 상승이 멈추고 급락하자 사람들은 빚을 갚지 못해 파산했다. 금융기관부터 도산해 세계경제를 연쇄적 위험에 빠뜨렸다. 거품이 뭔가. 상품 가치는 변함없는데 기대만으로 수요가 크게 늘면 가격이 급격하게 치솟다가 떨어진다. 상품 가격과 실재 가치의 차이가 거품이다. 최근 인공지능(AI) 거품론이 거세다. 반도체, 그래픽처리장치 등 인프라 수요에 힘입어 AI 기업 주가가 가파르게 올랐지만 그에 비례하는 실적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고성능 컴퓨팅시스템을 구축·운영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 오픈AI는 1조원 규모의 컴퓨팅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자금 조달을 추진하고 있다. 다른 AI 기업도 다르지 않다. 시장과열 예측지수 중 버핏지수(미국 상장주식 시가총액÷국민총생산)는 최근 210%를 넘었고 닷컴버블, 코로나 직후의 유동성 수준을 상회했다. AI 시장에 자금이 흘러드는 방법은 주식 및 채권 구입, 공적 지원금, 출자 및 대출, 인수합병, 지분매각 등이다. 자금은 AI 생태계를 구성하는 기업, 금융기관 등 이해관계자 간에 순환되며 신용통화량을 키운다. AI 기업의 잠재력 확인이 쉽지 않다면 거품 위험이 커진다. 거품은 풍부한 유동성을 만들어 투자를 쉽게 한다. 연구개발과 각종 실험이 이뤄지고 상품개발을 촉진한다. 인재도 돈의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 대외 홍보를 통해 고객 인지도를 높인다. AI 산업 전반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AI를 도입한 기업은 고용대체를 통해 비용을 줄인다. 인력을 재조정하고 직원이 도태된다. 고객도 AI 일상화를 받아들인다. AI를 활용하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인식한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700조원 규모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선언 이후 세계가 군비경쟁 하듯 AI에 돈을 넣는다. 그런데 성과를 내지 못하고 거품이 터지면 어떻게 될까.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오픈AI의 샘 올트먼은 AI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만 작은 규모의 AI 기업이 수십억달러를 쉽게 유치하는 등 비정상적 과열을 경고했다. JP모건의 제임스 다이먼 회장도 10년 넘게 신용 중심 강세장이 이어지면서 과열 위험이 있다고 했다. AI 거품을 다룰 수 있어야 AI 강국이 된다. 큰 틀에서 거품을 예측하고 경고해야 한다. 막내 우유값을 아껴 장남만 도와선 안 되듯 대기업에 유동성이 몰리는 것도 좋지 않다. 대·중·소기업의 공존을 도모해야 한다. 잠재력 없이 거품에 올라탄 기업은 막아야 한다. 시기와 이슈에 따라 거품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불필요한 거품은 살짝 꺼뜨리는 것도 필요하다. 거품을 관리하지 못하면 투기 등 불법을 통해 부의 분배를 왜곡하고 불만과 저항을 야기한다. 거품을 악용, 유언비어 등 정보를 왜곡해 돈벌이를 하는 범죄도 막아야 한다. 거품이 시장의 통제 수준을 넘기 전에 양질의 AI 신상품을 만드는 등 실물경제를 끌어올려야 한다. 거품이 욕실을 가득 채우기 전에 목욕을 끝내야 한다.

[세상읽기] 시제 프리즘을 통한 세상 엿보기

우리의 일상생활 환경을 구성하는 다양한 분야를 시제, 즉 과거 현재 미래란 관점으로 바라보면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교육, 정치, 사법, 자치입법, 과학기술, 산업, 예술문화, 지방행정, 언론 등 우리 생활의 과거 현재 미래를 결정짓거나 그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각 분야에서 만들어지는 정책, 작품, 입법, 재판, 기술 등 콘텐츠도 담당자들의 가치관에 따라 과거형, 현재몰입형, 미래지향형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과학은 미래지향적이고 사법은 과거를 대상으로 하며 입법은 시제보다는 보편성을, 행정 중 일반행정은 미래형, 준사법행정은 과거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그 속성으로 평가돼 왔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법 행위 중 단죄를 통해 유사 범죄를 예방하고자 하는 예방 효과와 재범의 가능성 유무만이 미래형 성격이고 나머지 사법 행위의 대상과 목적은 과거 행위와 현상에 대한 법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인 것이다. 국회와 지방의회 등이 주로 행하는 입법은 국민과 주민의 위임을 받아 국민과 주민의 현재부터 미래의 안전과 풍요를 위해 각종 사회적 약속을 만드는 것으로 미래형이어야 한다. 광의의 행정 중 수사 등 준사법 기능을 제외하면 과학기술 산업 등 경제도 지금부터 앞으로 잘살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고 안전관리 등 일반 행정은 물론이고 국방도 안전 및 국방의 대비태세를 강구하는 미래형이며 외교도 미래형이고 환경도 미래형이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각 분야의 바람직한 시제가 뒤엉켜 바람직한 대상에 대한 혼란이 가중되고 있고 방향 자체를 잃은 것처럼 보여 안타깝다. 국회는 입법을 통해 미래를 계획하고 바람직한 우리 사회의 미래상을 구현하기보다는 과거 현상 내지 행동에 대해 스스로 평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즉, 과거 사회 현상이나 행동에 대한 정치적 옳고 그름, 이롭고 해로움의 평가는 국민이 선거 등을 통해 내리는 것이지 평가 대상인 정치인들이 입법 등을 통해 스스로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되는 것이다. 국회가 과거의 사법의 판단도, 현재의 사법의 판단도, 미래의 사법의 판단도 입법 등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미래를 만들어 달라는 국민의 뜻에 전념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사법도 과거의 현상이나 행위에 대한 보편적 판단을 넘어 미래의 국회와 행정의 대응을 기대하거나 염려한 판단을 내린다면 국민이 직간접적으로 위임한 위임의 한계를 넘는 것일 수 있다. 행정이 과거의 행위 등의 진단에 너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면 당연히 미래를 설계하고 현재를 미래로 이끌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이 부족해질 것이다. 그 행정을 이끌 국민의 대표자 임기가 정해진 경우에는 더욱 그럴 것은 자명하다. 정치가 미래시제여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툼의 여지가 적다. 우리 정치권과 직업공무원집단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놓고 고민하고 경쟁해 그 성과를 토대로 심판인 국민의 판단을 받는 기본구도가 활성화됐으면 좋겠다. 정치권 인사도, 직업공무원도 스스로 최종 판단의 주체가 아니므로 상대방을 평가하고 심판하는 역할로 미래를 설계할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읽기] AI 교통 시스템

오전 5시30분, 스마트폰 알람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커피 향과 뒤섞인 체념의 공기 속에서 현관문을 나서는 경기도민의 발걸음은 무겁다. 이것은 단순한 출근이 아니다. 하루 중 가장 맑은 정신으로 빛나야 할 ‘골든타임’을 붉은 후미등의 행렬에 저당 잡히는, 매일 아침 반복되는 ‘소리 없는 전쟁’이다. 이 전쟁의 현실은 통계로 증명된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출퇴근자의 평균 통근 시간은 73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8분)의 두 배가 넘는다. 특히 경기도민은 하루 평균 86분을 길 위에서 보낸다. 이 수치는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540시간, 즉 22일 이상을 도로에서 허비한다는 뜻이다. 그 시간이 본래의 삶에 쓰였다면 누군가에게는 아이와 함께하는 저녁식사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도전을 위한 배움의 기회가 됐을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체념의 교향곡을 멈추게 할 지휘자가 나타난다면 어떨까. 그 유력한 후보로 인공지능(AI)이 무대 위로 오르고 있다. AI 기반 교통 시스템은 단순히 신호를 바꾸고 길을 안내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신호등, 버스, 지하철, 개인 차량, 심지어 보행자의 스마트폰까지 도시의 모든 교통 요소를 거미줄처럼 연결해 살아 숨 쉬는 ‘디지털 신경망’을 구축하는 것에 가깝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실시간으로 호흡하고 반응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모범 사례로 꼽히는 싱가포르는 이미 도시의 혈관인 도로망에 막힘 없는 혈류를 공급하는 ‘인공 심장’을 이식했으며 이를 통해 교통 체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 절감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거대한 비전이 경기도의 도로망 위에 펼쳐진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매일 출근길이 단 15분만 단축된다면 한 달이면 10시간, 1년이면 120시간에 달한다. 경기도 전체 노동인구 약 700만명을 기준으로 하면 절약되는 시간은 연간 8억4천만시간에 이른다. 이를 단순히 최저임금(2025년 기준 시급 1만30원)으로 환산하면 약 8조4천억원의 경제적 가치가 발생한다. 실제로 안양시가 최근 시범 운영하는 AI 기반 길 안내 키오스크는 데이터 기반 교통 서비스가 어떻게 우리의 삶에 실질적인 온기를 더하는지 보여주는 작은 증거다. 하지만 이 거대한 신경망을 가동시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내놓아야 할까. 우리의 모든 움직임이 데이터가 될 때 그 데이터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는 먼 미래의 두려움이 아닌 세계 각국이 이미 씨름 중인 현실의 과제다. 유럽연합(EU)은 2024년 확정된 ‘AI 법안(AI Act)’을 통해 도시 교통망 같은 고위험 AI 시스템에 대해 투명성 확보와 인간의 감독 의무를 법제화했다. 독일, 프랑스 등은 지방정부 단위에서 알고리즘 영향평가(AIA)를 의무화하며 시민이 개발 단계부터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경기도 역시 ‘AI 교통 혁신’을 도입하기 이전에 데이터 거버넌스와 디지털 격차 방지 대책을 선행해야 한다. AI가 효율성의 가면을 쓰고 특정 지역, 특정 계층을 소외시키는 ‘디지털 차별’을 막는 것은 기술 도입만큼이나 중요한 사회적 안전장치다. 결국 AI 교통 시스템의 도입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철학으로 기술을 다룰 것인가에 대한 방향 설정이다. 경기도의 선도적 역할은 단순히 남보다 빨리 신기술을 도입하는 ‘속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민의 삶과 안전, 존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방향’의 올바름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AI에 내려야 할 궁극적인 명령은 ‘가장 빠른 길’을 찾아달라는 것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길’을 안내해달라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AI를 통해 더 빠른 도시를 원하는가 아니면 더 행복한 도시를 원하는가. 경기도의 아침이 이 질문에 대한 현명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기를 기대한다.

[세상읽기] 지피지기 백전불태

미국과 협상할 때 상대측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미국은 세계 최대 시장이자 최강국이잖아요. 결국 우리가 따라가야죠.” 하지만 현대 협상 이론의 원조격인 하버드 PON(Program on Negotiation)은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그들이 말하는 협상 성공의 7요소 중 하나인 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협상 결렬 시의 최선 대안)에 따르면 협상력은 힘의 크기가 아니라 협상이 결렬될 경우 얼마나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다른 선택지가 있는가로 결정된다. 이 관점은 적대적인 힘 겨루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호 의존하는 파트너 사이일수록 서로의 제약과 대안을 이해해야 신뢰를 쌓을 수 있고 서로 만족하는 협의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미국과의 협상에서 일본과 인도의 행보는 대조적이다. 일본은 비교적 일찍 미국과 협약에 서명했다. 그 결과 자동차 등 일부 품목의 관세가 15%로 조정됐지만 여전히 기존 세율보다 높아 국내 산업에 부담이 되고 있다. 투자금 사용처와 수익 배분에 있어서도 일방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반면 인도는 ‘전략적 자율성’을 내세우며 미국의 시장 개방·관세 요구에 신중히 대응했다.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지속하고 농업·유제품 개방에도 소극적이었으며 미국의 최대 50% 보복관세에도 공급망 다변화(BATNA 강화)로 버텨 왔다. 그런데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모디 총리의 75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통화를 나눈 뒤 양국 분위기가 달라졌다. 무역당국은 협상을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positive & forward-looking)이라 표현했고 미국의 관세 완화 가능성도 거론된다. 인도가 유지한 기조가 결국 협상 분위기를 바꾼 것이다. 이들의 행보에서 한국 역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9월 조지아주 현대·LG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대규모 단속을 벌여 수백명의 한국인 기술자들을 연행했다. 약 76억달러 규모의 투자, 수천개의 일자리가 걸린 프로젝트였기에 미국 내에서도 “외국기업 투자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린다”는 비판이 나왔다. 협상 결렬의 대가가 미국에도 크다는 점이 드러난 장면이다. 또 미국은 최근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라는 이름으로 자국 조선업 재건 구상을 추진 중이다. 한국은 세계적 기술력과 숙련 인력을 기반으로 미국 내 조선소 현대화, 정비(MRO), 인력 양성, 부품 공급망 구축 등을 패키지로 제안했다. 이 협력은 어느 한쪽의 승리를 위한 게임이 아니다. 미국은 숙련 인력과 부품 공급망을, 한국은 안정적 투자 환경과 예측 가능한 제도(비자 등)를 필요로 한다. 서로의 BATNA를 이해하고 존중할 때 신뢰를 기반으로 서로의 이익 (Interests) 역시 존중하는 협의에 이를 수 있다. 한국은 흔히 미국과의 협상에서 ‘약자’라는 전제를 깔고 출발한다. 그러나 일본과 인도의 상반된 행보, 그리고 조지아와 MASGA 사례가 보여주듯 미국도 결코 무한한 대안을 가진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진 기술력과 투자 역량은 미국에도 꼭 필요한 카드다. 따라서 한국은 BATNA를 포함한 요소들을 두루 고려한 총체적 전략을 세워 보다 유연하고 여유롭게 협상 테이블에 임할 수 있다. 협상력은 힘의 크기가 아니라 준비된 대안에서 나오며 상대와 나의 BATNA를 정확히 이해할 때 대등한 파트너십이 가능하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협상도 예외는 아니다.

[세상읽기] 법치의 근본, 법학 발전 나서야

무더운 여름이 끝나면 수확의 계절이 온다. 뿌린 것 없이 수확을 기대하긴 어렵다. 법률시장은 어떤가. 옛날엔 평생을 통틀어 소송 등 법률 분쟁을 경험하기 쉽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다. 고소고발로 수사기관을 드나들거나 법원에서 형사재판을 받고 채권채무, 임대차, 손해배상 등 민사재판에 시달린다. 마음고생은 덤이다. 법은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존재양식의 탐구’, ‘법의 제조’ 등의 저술을 남긴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생각을 보자. 법은 갈등하고 이탈하는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제도를 다시 연결한다. 느슨하지만 분산되지 않게 공동체를 지키고 활력을 유지한다. 법은 반복적으로 시행되면서 형식과 위상이 강화된다. 종교처럼 강력하진 않지만 국민을 구속하는 핵심 장치가 된다. 자본주의는 이성과 과학을 수단으로 인공지능 등 디지털 세상으로 나아간다. 기존의 이해관계는 급변하고 복잡해져 갈등을 빚고 분쟁을 일으킨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법의 제정, 개정, 폐기가 빈번하면서 법의 위상이 흔들린다. 국회 의결 등 요건을 갖추지만 법의 가치는 훼손되고 공정성이 흔들린다. 국민의 지지를 받은 권력기관조차 법 위반과 악용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다. 바야흐로 법치주의의 위기가 오고 있다. 처음 법학교육이 등장한 후로 대학은 법학을 연구하고 정부는 사법시험을 통해 법조인을 배출했다. 법학교육은 법의 근본원리에 더해 타당성, 당위성, 가치와 한계를 논했다. 법률실무는 구체적 분쟁에서 해결책을 제시했다.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이 설립됐고 2025년 5월 기준 변호사만 4만명을 넘어선다. 판검사를 합치면 5만명에 이른다. 실무 중심으로 법학교육이 발전하면서 법의 본질과 원리 탐구 등 법학 연구가 정체되고 있다. 정치에선 정적 제거와 지지층 결집을 위해 법을 악용한다. 법학자, 변호사만 아니라 일부 판검사마저 법률기술을 창안해 편을 가른다. 경제에서도 시장 우위 및 경쟁 기업을 제거하기 위해 규제기관 제소와 형사 고소고발 등 분쟁 절차를 남용하고 있다. 정치적 타협과 건전한 경쟁은 뒷전이다. 법학의 고민과 역할을 되살려야 한다. 법률실무도 업의 본질을 생각해야 한다.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의 빈틈이나 논리를 찾아 이기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법의 근본적인 목적이나 본질, 원리를 먼저 찾아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이 법술전문대학원이 될 순 없다. 법과대학도 마찬가지다. 교수가 정치권과 기업에 줄을 대고 해외 사례, 입법례를 끌어들여 입맛에 맞는 논리를 만든다. 법학의 본질에 충실하다고 볼 수 있을까. 도덕은 타인의 자유를 위해 나의 자유를 줄이는 미덕이고 법은 타인의 자유와 나의 자유의 경계를 짓는 일이다. 법률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라투르는 근대인을 이해관계에 함몰되지 않고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현대 법률가에게 적용해도 틀리지 않다. 법학자 오토 마이어는 확고한 법 이념 없이 법의 통일적, 체계적 해석과 집행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로스코 파운드는 뭐라고 했을까. 법은 안정돼야 하지만 정지해선 안 된다고 했다. 법학자와 실무자 간 지루한 갈등을 끝내야 한다. 법치주의의 근본을 세운다는 목표로 법학의 공동연구와 제도 개선 등 법학 발전에 나서야 한다. 법학이 바로 서야 법치가 바로 서고 대한민국이 바로 선다. 그것이 국민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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