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 자충수(自充手)라는 용어가 있다. 스스로 자신이 나아갈 수 있는 활로를 채우는 수를 뒀을 때, 쉽게 스스로 가져온 불리한 결과를 말한다. 바둑에서 가장 흔한 패배의 원인이자 모든 걸 수포로 돌릴 수 있는 수다. 양평군이 연일 울분을 토하고 있다. 양평에서 나고 자라 군민을 위해 봉사해 오던 한 공무원의 죽음 때문이다. 특검의 수사를 받고 온 다음 날 작성한 메모에는 강압, 무시, 수모, 멸시, 강요 같은 단어가 18번이나 나온다. 21장 분량의 유서에도 같은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진다. 동료 공무원, 지역주민, 정치권까지 가리지 않고 일제히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한다. 이런 목소리가 커진 건 특검이 스스로 불러온 자충수 때문이다. 특검 조사의 부당함을 말하다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수사의 정당성, 범죄 성립 여부 같은 것을 따지기 전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특검은 일단 이 죽음에서 잘못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그럼에도 문 밖 배웅을 이유로 강압수사는 없었다고 했다. 유서가 남겨진 변사 사건에서 유족의 반대에도 부검을 했다. 두 번째 자충수다. 통상 검찰·경찰의 수사지침들과 맞지 않은 행보다. 원본이 아닌 촬영본 유서를 유족에게 보여줬다. 석연치도, 일반적이지도 않은 행동으로 의혹을 남겼다. 그리고 15일, 고인이 서명하며 괴로웠다고 말한 조서의 열람·등사를 거부했다. 당사자 사망으로 변호인과의 수임 계약을 인정할 수 없다는 거다. 고인이 왜 괴로워했는지 보여줄 조서를, 숱한 의혹이 쏟아짐에도 제공하지 않는 것 역시 통상의 검찰 수사와 차이를 보인다. 특검이 성과에 급급해 자충수를 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검은 감찰 수준으로 수사 방식과 과정을 살피겠다고 했다. 그러나 여러 번 둔 자충수는 그 정도로 거둘 수 없다. 지금이라도 객관적으로 이 죽음의 진실을 가려줄 별도의 조사 기관이 필요하다.
오피니언
김경희 기자
2025-10-16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