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국립현대미술관의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II’ 과천관서 개막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근현대미술 주요작품 110여 점 소개
격동의 한국사에서 한국미술은 어떤 궤를 그려왔나. 또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시대상을 어떻게 그려냈을까.
한국근현대미술의 100년 역사와 정체성을 조명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II’가 26일 과천관에서 개막했다. 앞서 지난달 개막한 ‘한국근현대미술Ⅰ’에 이어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근현대미술 주요작품 110여 점을 소개한다. 김환기, 박생광, 박서보, 박이소, 서세옥, 성능경, 윤형근, 안규철, 이불, 이성자, 이우환, 최욱경 등 작가 70여 명의 작품을 통해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 등 격동의 시기를 거치며 변화를 거듭해 온 한국근현대미술사를 살폈다. 이건희컬렉션(Ⅰ41점, II 17점)을 추가로 선보이고, 수집 후 최초로 공개하는 작품도 11점에 이르러 더욱 눈길을 모은다.
전시는 김환기, 윤형근을 집중 조명하는 2개의 ‘작가의 방’을 포함해 총 11개의 소주제로 구성된다. 전시는 시대와 미술사조의 흐름을 따라 분류하며 그 안에 새롭게 해석되는 이야기는 소주제로 나눴다.
1부 ‘정부 수립과 미술’에서는 해방 이후 국가 주도로 추진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의 수상작을 중심으로 미술 제도와 화단의 다양한 흐름이 제시됐다. 류경채의 ‘폐림지 근방’(1949)은 국전 초대 대통령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전후 폐허가 된 대지를 사실과 추상이 공존하는 감각적 표현으로 담아냈다. 최초로 공개되는 안상철의 ‘청일’(1959)을 비롯해 박노수의 ‘선소운’(1955)은 국전 체제 안에서 한국화의 전통적 어법을 현대적으로 변형하려는 여러 시도들을 나타낸다.
또한 195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모더니즘 회화의 흐름을 조망한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모더니스트 여성 미술가들’, ‘행위, 사물, 개념: 전위미술의 실험들’, ‘한국화의 새로운 전환’, ‘동시대를 향하여’ 등 한국근현대미술사를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사회, 문화적 관점으로 서술하는 소주제를 통해 통상적인 미술사에서 놓치기 쉬웠던 작가와 작품을 재조명한다.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에서 주변화되었던 여성 미술가들의 실험과 시도는 이성자의 ‘극지로 가는 길 83년 11월’(1983), 심경자의 ‘별전’(1973) 등에서 만날 수 있다. 자연, 생명, 감정, 기억, 내면과 같이 감각적이고 상징적인 주제로 추상의 세계를 구축한 작품을 소개한다.
첫 번째 작가의 방인 ‘푸른 여백, 마음의 풍경: 김환기(1913-1974)’에서는 구상과 추상을 아우르며 독자적인 양식을 추구했던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의 작품세계를 시기별로 만난다.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된 김환기의 초기작 ‘론도’(1938)를 비롯해 한국적 감수성을 담아낸 파리 시기(1956-1959) 대표작 ‘산월’(1958), 반복되는 점과 푸른색의 화면을 통해 한국적 서정성과 여백의 미를 구현한 뉴욕 시기의 대표작 ‘새벽 #3’(1964–1965) 등도 함께 걸렸다. 이 곳에선 김환기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특별 제작한 공간향이 더해졌다. 김환기의 노스탤지어를 시각적 리듬감, 조형성과 함께 후각으로도 느낄 수 있어 그의 작품 세계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두 번째 작가의 방 ‘청다색, 천지문: 윤형근(1928–2007)’에서는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침묵과 절제의 회화를 구축한 윤형근을 만난다. 윤형근은 1928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참혹했던 역사적 시기에 청년기를 보내고 1973년엔 반공법 위반으로 고초를 겪기도 했던 인물. ‘69-E8’(1969), ‘청다색’(1976~1977) 등 존재의 본질과 인간의 고통, 숭고 등을 담아낸 그의 작품 세계를 좇아간다. 정재일 음악감독과 협업한 플레이리스트를 들을 수 있다.
시대를 지나 11부 ‘동시대를 향하여’에서는 민주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동시대 미술로 전환하게 된 199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이 소개된다. 눈을 사로잡는 작품은 1990년대 후반 사이보그 시리즈를 시작으로 기술과 신체의 결합, 미래적 존재에 대한 탐구로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받아 온 이불의 대표작 ‘스턴바우 No. 23’(2009). 2025년 신소장품으로 수집돼 처음 선보이는 이 작품은 거울, 유리, 금속, 반사 필름 등 다층적 재료가 얽혀 공중에 부유한다.
이현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100년의 한국근현대사를 함께하는 여정인만큼 관람객들이 쉬어가며 관람할 수 있도록 의자 등 쉴 수 있는 공간 배치 등에도 신경을 썼다”며 “작가의 방은 1년 단위로 교체되며, 일부 소주제 공간의 작품도 교체해 한국근현대미술사를 폭넓게 조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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