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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디지털 리터러시와 소비역량

여정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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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만 해도 우리는 마트나 백화점에서 직접 물건을 고르고 계산대에 줄을 서서 결제하는 풍경에 익숙했다. 이제 소비는 더 이상 그런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모바일 앱, 소셜 플랫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공지능 추천 시스템을 통해 소비가 이뤄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가격 비교만 잘한다고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중심으로 설계된 디지털 소비 환경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지켜야 할 책임자가 되고 있다. 그래서 진짜 필요한 것은 소비자 역량이다.

 

수많은 디지털 정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상품의 성능, 가격, 환불 조건, 후기 등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고 소비자에게 불리한 조건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다. 디지털 콘텐츠나 서비스를 이용하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안전하게 내가 원하는 조건을 구매할 수 있고 결제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서 피해를 당했을 때 문제를 적극 해결할 수 있는 권리와 책임에 대한 역량까지 모두 포괄하는 것이 바로 디지털 리터러시다. 디지털 리터러시와 정보 판단 능력이 부족한 소비자는 허위광고나 과장 마케팅에 쉽게 속거나 피해를 보기 십상이다.

 

최근 ‘구독경제’가 소비생활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기존의 소유 중심, 일회성 소비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원하는 콘텐츠와 상품, 서비스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구독 서비스가 일상화됐다. OTT 등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음악 스트리밍, 전자책, 쇼핑 멤버십, 식료품, 학습 서비스 등 서비스 범위도 확장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은 평균 3.4개의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며 월평균 4만원, 연평균 50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그러나 한두 개의 소액 구독은 가벼워 보여도 구독 서비스 수가 늘어나면 관리와 지출에 대한 부담이 증가하는데 최근 조사에 따르면 71%에 달하는 소비자가 구독 서비스 관리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시스템에는 해지는 어렵고 유지되기 쉬운 구조가 숨어 있는데 이처럼 소비자의 행동을 교묘히 유도하는 ‘다크패턴 (Dark Pattern)’이라는 설계 전략이 있다. 다크패턴은 소비자가 불리한 선택을 하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된 UI(사용자 인터페이스)·UX(사용자 경험)를 말한다. 최근 구독경제 서비스에서 다크패턴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무료 체험을 미끼로 결제 정보를 미리 입력한 뒤 체험 종료 후 별도의 고지 없이 자동 유료 전환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 해지하려 해도 버튼은 보이지 않고 웹사이트를 몇 번이나 클릭해야 겨우 연락처를 찾을 수 있거나 고객센터는 연결되지 않고 ‘다음 결제일 하루 전까지 해지 가능’이라는 말만 화면에 남기도 한다. 일부 서비스에서는 저렴한 요금제를 작은 글씨나 접힌 메뉴에 숨기고 가장 비싼 요금제를 화면 중앙에 노출해 소비자를 유인하기도 한다. 다크패턴은 소비자에게 불필요한 지출을 유도하기도 하고 이러한 구조적 불합리함에 소비자들이 대응하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해지 방법을 찾지 못하거나 약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며 귀찮음과 불안감에 해지를 포기하는 일이 반복될 수 있는데 이는 단순히 서비스의 불친절함에 의한 것뿐만 아니라 소비자 자신의 역량 부족에서 비롯한 측면도 있다.

 

디지털 소비 환경에서 소비자는 매우 적극적인 주체가 돼가고 있다. 자신과 관련된 데이터 활용에 대해 주체적인 의사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고(마이데이터) 문제가 생겼을 때 고객센터에 이의를 제기하고 공정거래위원회나 한국소비자원 등 관련 기관을 통해 구제를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유튜브, SNS, 쇼핑 앱 등이 끊임없이 ‘지금 사야 한다’는 충동을 자극하지만 소비자는 한발 물러서 그것이 진짜 필요한지, 나의 가치와 맞는지, 지속가능한 소비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곧 미래를 위해 필요한 소비자 역량이다. 소비는 단순한 구매 행위가 아니다. 소비는 삶의 방식이며, 사회에 대한 태도이며, 나의 가치관이 드러나는 선택이다. 그 선택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읽는 눈, 권리를 지키는 힘, 가치를 판단하는 지석이 필요하다. 변화하는 소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소비자는 플랫폼 속의 타깃이 될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소비가 아니라 더 똑똑하고 더 주체적인 소비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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