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주 인천지방변호사회 국제분쟁사건전담 특별법원유치위원장
2028년 인천고등법원 개원이 확정되고, 해사법원 유치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는 지금, 인천은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해야 합니다. 바로 국내에 산재한 국제적 업무 담당 법원들을 한데 모은 ‘인천국제법조타운’을 조성해 동북아시아의 명실상부한 법률 허브로 발돋움하는 것입니다. 최근 대한민국 사법부와 법조계의 움직임은 이러한 구상에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 국제분쟁해결시스템연구회(이하 연구회)가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등과 함께 '새로운 국제 IP 분쟁해결시스템 구축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한 것은 그 서막과 같습니다. 특히 연구회는 노태악 대법관을 회장으로, 전국의 각급 법관 56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해 대한민국이 국제 상사 및 지식재산 분쟁에서 아시아의 전략적 분쟁 해결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연구회의 노태악 회장은 세계지식재산기구(WIPO)가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운영돼 국제특허출원 4위, 국제상표출원 9위인 우리나라가 정작 소외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아시아 지역의 지식재산분쟁 조정센터나 전문법원을 우리나라의 관문 도시인 인천에 설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는 매우 시의적절한 제안입니다.
유럽연합(EU)이 2023년 6월 유럽 단일 특허의 보호 및 침해 방지를 위한 유럽 통합특허법원(UPC)을 설립한 것처럼, 아시아 역시 자체적인 지식재산권 분쟁 해결 메커니즘이 절실합니다. 이는 역내 국가들이 분쟁 해결을 위해 유럽이나 미국까지 가야 하는 불편함과 막대한 비용을 줄이고, 아시아 국가들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6위의 무역 대국이며, 대다수 기업이 상당한 지식재산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특허와 상표는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각국에 개별적으로 권리를 확보해야 하므로 국제 분쟁의 소지가 다분합니다. 이러한 지식재산권 분쟁은 관할권이 여러 곳에서 발생할 수 있고, 신속하고 전문적이며 경제적인 해결이 사업의 지속성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창조산업, ICT, 생명공학, 그리고 비디오게임, 소프트웨어, 콘텐츠 산업에 이르기까지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으며,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의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은 국가 경쟁력 강화와 직결됩니다.
국제 IP전문법원이나 분쟁센터를 유치하기에 최적의 장소는 노태악 연구회 회장이 언급했듯이 관문도시 인천입니다. 인천의 송도국제도시나 영종국제도시는 인천국제공항에서 불과 30분 거리에 위치해 국제적 접근성이 매우 뛰어납니다. 또한, 각종 컨벤션센터와 충분한 오피스 공간을 이미 갖추고 있으며, 국내 대기업 본사가 밀집한 서울에서의 접근성도 우수합니다. 송도와 영종이 국제도시로 구상된 근본적인 이유도 바로 이러한 탁월한 접근성 때문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 국제분쟁 해결을 위한 법조타운 또는 클러스터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사례는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싱가포르의 맥스웰 체임버스(Maxwell Chambers)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국제 중재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싱가포르 국제중재센터(SIAC),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 등 주요 국제중재기관들이 입주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국제분쟁 해결 허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영국 런던 역시 오랜 법치주의 역사와 함께 다수의 국제 로펌, 중재기관, 전문법원들이 밀집하여 국제 법률 서비스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 또한 ICC 국제중재법원 본부가 위치하며 국제 상사중재 분야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시들은 잘 갖춰진 인프라, 우수한 법률 전문가 그룹,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국제분쟁 해결 시장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인천국제법조타운’이 성공적으로 조성된다면 다음과 같은 광범위하고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현재 추진 중인 해사법원, 그리고 우리가 유치하고자 하는 국제분쟁센터, 나아가 국제 IP 분쟁 해결 기능(국제분쟁법원/재판부, WIPO 아시아 지부, IPO 조정센터, 아시아지식재산법원 등)이 한곳에 모여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기관간 협력을 촉진해 시너지를 창출합니다. 국제 중재 및 소송 유치로 인한 직접적인 법률 서비스 수익 증대와 국내외 대형 로펌, 회계법인, 컨설팅 기업 등의 유치 및 관련 산업(통번역, MICE, 숙박, 관광 등) 성장 견인하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 및 지역 경제 활성화가 기대됩니다. 국제 규범 형성에 있어 대한민국의 발언권 강화 및 국격이 제고되고, 국내 기업들이 해외 분쟁 발생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며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법률 지원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됩니다.
이러한 인천국제법조타운의 성공적인 조성을 위해서는 인천시 차원의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준비가 필수적입니다. 공항에서 가까운 송도나 영종에 국제 중재 및 소송을 위한 첨단 법정 시설과 대규모 컨퍼런스 시설, 스마트 오피스 빌딩 등 맞춤형 공간을 조성해야 합니다. 국제학교, 외국인 친화 병원, 다양한 문화 및 편의시설을 확충해 해외 법률 전문가와 그 가족들이 생활하기 좋은 환경도 필요합니다. 국제 로펌, 중재기관, 관련 기업 유치를 위한 세제 혜택, 재정 지원, 규제 완화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 패키지를 마련해야 합니다.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중재인, 변호사, 법학자 등을 초빙하고 이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 WIPO, ICC, UNCITRAL 등 주요 국제 법률 기구와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관련 국제회의 및 행사를 적극 유치해야 합니다. 법무부,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중앙정부 부처와의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해 국가적 지원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러한 구상은 아시아 각국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므로 우리 정부의 외교적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아세안 국가들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체결한 것은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대법원 국제분쟁해결시스템연구회의 출범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매우 시의적절한 움직임입니다. 연구회 구성원 대다수가 판사들이며, 그들 역시 지식재산권 분쟁의 국제적 성격을 깊이 인식하고 인천에 국제재판부나 법원 설치를 제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해사전문법원도 국제적 업무를 띄고 있으므로 국제법조타운에 같이 설치되면 좋습니다. 이제 인천지방변호사회도 이러한 대법원과 업계의 움직임에 발맞춰 인천시에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WIPO 아시아 지부 유치나 아시아지적재산권분쟁조정센터 설립을 위한 행정적 지원을 강력히 촉구해야 합니다. 저 또한 인천지방변호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동료 회원들과 함께 인천에 국제기구와 전문법원을 성공적으로 유치하고, 나아가 '인천국제법조타운'이라는 원대한 비전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인천이 동북아 물류 허브를 넘어, 세계적인 법률 서비스와 분쟁 해결의 중심지로 우뚝 설 그날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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