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원 단국대 철학과 교수
필자는 10월18일부터 21일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공자 탄신 2천575주년과 국제유학연합회 결성 3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이 학술대회는 여러 가지로 놀라웠다. 학술대회 개막식을 우리의 국회 격에 해당하는 인민대회당에서 했고 개막 연설을 중앙정부의 핵심 간부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 했다. 대회 규모 역시 전 세계 110개국, 300여명의 외국인을 포함 730여명이 참가한 초대형이었다. 흡사 ‘유교 올림픽’이 열린 분위기였다. 대회 스태프로 참여한 중국 대학생들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의 자원봉사자들과 매우 흡사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한국인이 이런 소식을 들으면 대부분 유교가 뭐라고 국가가 나서 그런 행사를 벌이냐고 의아해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에서 유교는 중국 정부의 정치이념, 사회교육, 국제문화 교류 등을 아우르는 키워드다. 정치적으로는 중화주의, 책임과 돌봄 등의 유교적 정치사상으로 중국적 사회주의 정치이념을 보완한다. 사회교육 측면에서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각종 민간 단체가 대중화된 유학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대중의 문화적 소양을 고취한다. 그리고 이 같은 교육에 힘입어 중국인들은 오늘날 중화 제국의 공민으로서 문화적 자긍심을 외국인과의 문화 교류상에서도 한껏 드러낸다.
사실 오늘날 중국에서 유교의 드높은 지위는 한 세기 전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주지하다시피 20세기 내내 중국에서 유교는 근대화의 커다란 걸림돌로 여겨졌다. 대표적으로 1915~1924년 중국을 서구화하려는 신문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일부 지식인들은 공자 타도를 구호로 내걸었다. 급기야 1960~1970년대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유교를 낡은 사상, 낡은 관념 등으로 취급하며 공자와 유학을 남김없이 중국인의 삶에서 지우려 했다. 그러다가 중국이 개혁개방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유교도 서서히 복권된다. 1980년대에 유학 재평가가 조심스럽게 이뤄지더니 1990년대부터는 국학 열기가 끓어오르고 2010년대 이후에는 유교 중국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유교의 지위가 격상한다.
오늘날 중국에서 유교가 높은 위상을 차지한 덕분에 필자는 이번 베이징에서의 체류 기간 매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다 귀국길에 오르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느낌이 들었다. 하나는 부러움이다. 의도야 무엇이든 유학 내지는 철학, 더 넓게 말하면 인문학이 한 사회의 중심부에서 묵직한 소리를 내고 사회 각계에서 이를 경청하는 사건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노벨 문학상 정도는 받아야 비로소 주목하는 우리 사회의 인문학에 대한 냉담함이 씁쓸하다. 다른 하나는 답답함이다. 중국 정부의 유학에 대한 전폭적 지원의 이면에 학문 사상에 대한 과도한 통제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학이 정치권력과 밀착하면 제왕학으로 변질된다는 사실은 이미 고대 유학의 역사가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유교 혹은 인문학과 정치권력 사이의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절한 자리는 어디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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