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 (사)아리말연구소장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에 있으며 행정구역은 양수리(兩水里)……. 드라마 ‘첫사랑’으로 잘 알려진 오래 된 느티나무가 있고, 많은 영화나 드라마들을 찍은 곳이다. 강을 따라 걷는 둘레길을 잘 만들어 놓기도 했으며, 요즘은 연잎을 넣어 만든 먹거리와 연꽃이 좋은 세미원이 근처에 있어 인기몰이 중이다. 또 분위기 좋은 찻집들로도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예부터 이곳의 이름은 두물머리로 불려왔다. 두 개의 물줄기인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기에 두 개의 물을 ‘두 양(兩)’, ‘물 수(水)’를 써서 두물을 뜻하는 양수리라 불러왔다.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물이 만나 합쳐져 한강의 머리가 되는 곳이기에, 나루터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이 시작되는 곳이니 이름 뜻도 그렇고 역사도 깊은 곳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물이 만나서 한강의 머리가 되는 두물머리에 두물경이라는 한강 8경 중에 제1경이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오가는 배들이 보이지 않아도, 강원도와 경기도 충청도의 사람이며 물자들 특히 목재들을 실어나르던 황포돛배, 떼배들이 행주나루까지 행렬이 이어졌다고 하니 마음이 숙연해지기까지 하다.
두물경에는 ‘해동지도’의 광주부의 모습을 그려 놓았다. 여기에는 두물머리를 한자로 양수두(兩水頭)라 적었다. 두물이니 양(兩)으로 ‘두 양’자를 쓰고, 수(水)로 ‘물 수’자를 썼다. 그리고 한강의 머리를 뜻하는 두(頭)로 ‘머리 두’자를 썼다. 어찌 보면 참 당연하게 생각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지금의 광주에서 태어나셨다. 두물머리에서 머잖은 곳에 생가가 있다. 선생은 ‘귀전시초’에서 두물머리를 ‘이수두’로 부르고 있다. 두물경에 새겨진 모습을 그대로 옮겨본다.
귀전시초(歸田詩草)
다산 정약용
汕濕交流處(산습교류처)
村名二水頭(촌명이수두)
當門一店叟(당문일점수)
堅坐送行舟(견좌송행주)
산수와 습수가 합쳐 흐르는 곳
그 마을 이름이 바로 이수두인데
마을 앞의 한 전방 늙은이가
가만히 앉아 가는 배를 보내누나
※汕濕(산습) : 산수와 습수 (산수는 북한강, 습수는 남한강)
※汕 : 오구 산, 물고기 헤엄치는 모양 산
※오구 : 그물의 한 가지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물이 합쳐지는 이수두에서 깨달음을 얻어 달관했기에 복잡한 세상 일은 모두 내려놓았을 노인이 작은 점빵에 앉아서 떠나가는 쪽배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을 그림이 그려진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두물머리의 이름을 한자로 옮겨 적으면서 양수두나 이수두로 적고 있다. 양(兩), 이(二), 모두 둘의 뜻을 담았기에 산수와 습수를 합한 산습이라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정해진 이름이 두물머리이기에 우리 말 뜻을 살리려고 두물머리라 적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이수두’라거나 ‘양수두’라거나 까닭 없이 이름을 이래저래 옮겨부른 것이 아니다.
두물은 豆勿, 斗物… 등으로 이름소리를 따라 한자로 옮겨쓸 수도 있었겠지만 그 뜻이 중요하기 때문에 양수두, 이수두로 적었을 뿐이다. 두물머리란 한 가지 이름을 한자의 뜻대로 옮겨 적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런 지혜를 읽는 힘을 길러야 한다. 조선 후기의 다산이 살던 때에도 이두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심지어 독립선언서, 일제강점기의 판결문에도 이두의 흔적들은 남아 있다.
그럼, 여기서 끝일까? 두물머리는 한강의 머리이다. 한강의 새로운 시작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땅이름이며 글자들이…. 우리말을 한자로 옮겨 적었음을 알아야 한다. 두물머리는 우리가 찾아야할 우리네의 이름이다. ‘양수’가 아닌 ‘두물’이 될 때 한강의 머리가 된다. 이 겨레의 말을 한자로 옮겨 쓴 역사들을 이제는 되찾아가야 한다. 조상들의 지혜로운 이름들로 되돌아가기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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