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 로고
2025.07.01 (화) 메뉴 메뉴
위로가기 버튼

[천자춘추] 모래알 사회와 정치의 역할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

image

국민의 총력전으로 산업화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많은 청년들의 희생으로 민주화를 성취했는데 정작 대다수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다. 행복감은 떨어지고 자살률은 세계 최고다.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쏟아지면서 중산층이 붕괴되고 취업과 결혼, 출산을 포기한 N포 세대가 출현했다.

 

한국인은 정부나 국회, 사법부, 지방자치단체 등 공적 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 공적 부문의 신뢰 저하에 따른 영향으로 거짓말 범죄로 불리는 사기, 무고, 위증에 대한 고소·고발이 급증하고 있다. 바가지, 전세사기, 주가조작 등의 문제는 사회적 자본인 신뢰가 떨어지면서 발생한다. 서로를 믿지 못하니 불신과 갈등이 커지고 타인을 속여 이득을 보려는 이들이 늘어난다.

 

한국 사회는 불신의 임계치를 넘어섰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정부, 사회단체, 리더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이들에 대한 신뢰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불신이 만연하면 협력해야만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을 수행하지 못한다. 국민은 정부의 일에 냉소적이고 정치권은 정파적 이익에 부합하는 일에만 합의를 보며 국민을 무시하고 한때 중재자의 역할을 했던 시민사회까지 신뢰를 잃었다.

 

신뢰가 없다는 건 타인과 사회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고,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도울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스웨덴과 노르웨이 같은 복지국가는 한국과 달리 두터운 신뢰 사회다. 그들은 월급의 절반가량을 세금으로 내고, 세금을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사용하는 데 동의한다. 나중에 자신이 약자의 처지가 됐을 때 정부가 세금으로 나를 도와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누구도 믿지 못하는 한국 사회는 남을 돕는 데 인색하고 나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거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위험과 재난에 대비하지 못하는 모래알 사회가 된 것이다. 믿음과 끈기가 없으니까 모아 놓으면 흐트러진다. 불안을 느끼지만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협력, 공동체의 회복을 향한 마음의 준비가 미흡하다.

 

불신 사회를 극복할 방안은 없는가?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 각자의 이익을 위한 극단적인 경쟁만 존재하는 사회를 벗어나 함께 사는 삶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지도력이 절실하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같은 꿈을 꾸게 만들고, 손을 잡게 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과 의구심은 여전하지만 아직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정치는 한 사회가 맞닥뜨린 공동의 과제를 슬기롭게 풀어내는 현실적인 기예이기 때문이다.

댓글(0)

댓글운영규칙

-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 대상을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법률에 의해 제해될 수 있습니다. 공공기기에서는 사용 후 로그아웃 해주세요.

0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