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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카페] 첼리니의 소금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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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카페] 첼리니의 소금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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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베누토 첼리니(1500-1571)는 르네상스 시대 대표적인 조각가이자 금세공사였다.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첼리니의 이름을 지금까지 유명하게 만든 것은 소금 그릇 때문이다. 1543년에 제작된 <황금의 소금 상자>는 순금으로 조각된 소금 그릇으로 프랑스 왕에게 헌납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30㎝가 안 되는 이 금세공품은 한쪽에는 벌거벗은 바다의 신과 맞은편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여인이 배치된 형태인데, 그 세부의 정교함과 아름다움은 누구라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소금은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한 음식물이다. 원시 수렵시대에서 농경시대로 접어들면서 야생 동물의 고기 대신 농사를 통해 생산된 곡물이 인간들의 주 식량원이 됐다. 그러나 야생동물들의 고기에는 풍부한 소금이 있었지만 곡물에는 소금이 없었다. 그래서 인간은 생존을 위해 소금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됐다. 특히 내륙을 중심으로 형성된 국가들에게 소금은 국가의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한 물품이었던 것이다.

고대 국가들의 흥망성쇠도 바로 이 소금 때문으로 소금은 최초의 국제적인 무역 상품이 됐다. 이탈리아 작은 어촌 마을인 베니스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상업 도시가 된 것도, 17세기 세계 경제를 지배한 네덜란드의 성공도 바로 이 소금 때문이었다. 또한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는 특성 때문에 믿음과 신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배신자 유다 옆에 소금 그릇이 엎어져 있는데, 이것은 바로 배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첼리니는 미켈란젤로의 뒤를 이은 위대한 조각가로 평가받았지만 살인, 강도, 여성 편력 등 개인의 생활사는 엉망진창이었다. 특히 말년에 그러한 내용을 솔직하게 기록한 자서전을 발간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첼리니의 자서전에 감동해 독일어로 번역을 햤고 첼리니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칭송했다. 자유분방한 그의 삶이 마치 천재의 비사회적 전형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후대에 첼리니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가 제작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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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최근에 첼리니의 소금 그릇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2003년에 비엔나박물관에 전시된 소금 그릇이 도난당한 것이다. 당시 100만 유로의 현상금을 걸고 소금 그릇을 찾으려고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는데, 2006년 비엔나 북쪽의 숲속에서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소금 그릇이 발견됐다, 이후 미술관 측이 소금 그릇을 보험에 들었는데 보험금이 대략 800억원 정도였다.

첼리니는 르네상스 전성기에 살았던 사람으로 이전 세대가 하지 못했던 더 흥미롭고 비범한 것을 만들려고 했다. 르네상스 시대 에술가들은 당시의 혼란스러운 시대상에서 예술가라는 새로운 사회적 지위를 정립해야 하는 부담감(-책을 많이 읽어 고전에 대한 상당한 지식도 가지고 있어야 했다-)과 선배들인 중세 장인들의 방랑벽과 방탕한 생활 습관을 벗어나지 못한 애매한 상황이 바로 첼리니의 생애인 것이다.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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