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는 또 다른 규제를 불렀다. 겹겹이 쌓인 규제는 서로 충돌하면서 기상천외한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달라진 규제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본다. 가까스로 적응하려고 하니 환경이 또 달라진다.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다. 달라진 규제환경으로 이전의 생활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해버린 사람도 적지 않다. 되돌아갈 수조차 없다. 그냥 또 버텨야 한다. 이들에게 남은 건 원망과 분노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진 규제라고 하더라도 결과가 나쁘면 잘못된 규제다.
재건축 2년 실거주 요건이 1년 만에 철회됐다. 등록임대주택 제도는 원점에서 다시 검토한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시장작동을 어렵게 하던 잘못된 규제를 걷어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앞으로 또 무엇을 잃게 될지 우려스럽다.
재건축 2년 실거주 요건 강화로 지난해 많은 단지가 조합설립 인가를 받았다. 세입자를 내보내고 낡은 주택을 고쳤다. 집주인으로서 분양권을 받으려는 조치였다. 재건축 단지서 밀려난 세입자는 갈 곳을 잃었다.
재건축 단지는 입지 등에 비해 전세가가 매우 낮다. 통상적으로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율이 60~70% 선이지만 재건축 단지는 30~40% 수준이다. 재건축 단지에서 살던 전세금으로는 인근의 주택을 구할 수 없다. 임대차 3법 도입으로 매물이 크게 줄었을 뿐만 아니라, 있어도 전세금은 부르는 게 값인 수준으로 높아져 버렸기 때문이다. 대출받아 높아져 버린 전세금을 충당하던가 주거 형태를 인근의 연립, 빌라로 바꾸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조용하던 연립, 빌라시장마저 가격이 들썩이게 된 이유다. 이마저도 어려우면 입지를 포기하고 외곽에 거처를 마련해야 한다. 통근ㆍ통학을 위한 교통량 증가 원인이다.
세입자 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주택 매수에 나선다. 김포, 고양, 파주시 등 집값이 오를 것 같지 않았던 수도권 지역까지 집값이 들썩인다. 수도권 전역의 주택시장이 혼란스럽다.
정부는 재건축 단지에 대한 투기 억제를 위해 재건축 2년 실거주 요건을 강화했다. 임차인의 거주 안정 보장 및 주거비부담 완화를 위해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했다. 각각의 정책 수단을 개별적으로 보면 뭐가 문제일까 싶다.
문제는 재건축이 낮은 임대료를 내는 아파트 전ㆍ월세 시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또 저가 아파트 전ㆍ월세 시장의 불안이 인근 비아파트 저가 전ㆍ월세 시장과 매매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재건축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집주인뿐만 아니라 사는 세입자의 거주 불안도 크게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사전에 고려하지 못했다.
이처럼 주택시장은 거미줄 같다. 상당히 복잡하다. 집값 외에도 주택 유형, 주택입지, 점유방식, 주택규모, 건축 년도 등 다양한 요인의 하위시장으로 얽혀 있다. 게다가 사람들의 심리가 의사결정에 크게 작용한다. 규제만으로 주택시장을 관리할 수 없는 이유다. 주거 불안이 커질수록 사람들의 내 집 마련 욕구는 커질 수밖에 없다. 집값이 크게 상승하면 사람들의 집에 대한 투자 욕구는 줄어들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한 주택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주택정책은 실종된 지 오래다. 집값에 매몰된 ‘주택 정치’가 난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주택시장 내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집값 잡기에 매몰된 주택 정치를 멈추고 국민의 주거 안정과 주거수준 향상을 위한 제대로 된 주택정책의 틀을 다시 마련해 잘못된 주택시장을 바로잡아야 한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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