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은 동맹의 성격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주요 의제는 한반도 안보 문제만이 아니라 기후변화와 보건협력, 첨단기술 분야 공급망 등 다양한 국제현안을 포함했으며, 공간적 범위도 한반도를 넘어 인도·태평양과 전 세계로 확장됐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역할이 확대됨에 따라 일본을 중심으로 한국을 그 아래에 두고 관리하던 미국의 동북아 전략도 변화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 배경에는 미·중 전략경쟁, 특히 첨단기술 분야 패권경쟁이 있다. 미국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해 반도체·배터리·희토류·의약품 등 4대 핵심 품목에서 동맹국과 연계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한국을 들여다보니 반도체와 배터리 제조 능력만이 아니라, 마스크 같은 소비재 산업부터 전자·조선·철강·화학 등 주요산업, 그리고 4차 산업혁명 분야 잠재력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
앞으로 수십년간 지속할 미·중 갈등은 극단적 무력충돌로 이어지기보다 대립·경쟁·협력 상황이 복합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즉 미·소 냉전시대와 같은 군사·안보적 대립이 아니라 기술·경제적 패권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기존 남북·북미 간 합의를 수용하고, 남북관계의 자율성을 인정했다. 이제 한반도 문제를 안보로부터 경제로 전환하고 남북한 평화를 통해 경제적 번영으로 연결할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변화된 북한의 미래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미국과 전쟁을 겪었던 베트남이 국제자본을 유치해서 경제를 개혁·개방하고 오히려 친서방국가로 변신한 사례가 있다. 당장 미국이 북한에 직접 투자하지 않는다 해도 우선 남북한의 경제협력을 허용한다면 북한 경제가 간접적으로 글로벌 경제와 연결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 스냅백 조건을 걸고 경제제재 완화조치를 적용하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고 전향적 태도를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북한의 대중무역 의존도는 95%를 넘고 기형적으로 중국에 의존하는 상태다. 대북 경제제재는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실효성은 없는 반면, 북한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어 중국에 더욱 밀착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처럼 한반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일방적으로 커지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미·일이 경제적으로 북한을 포용함으로써 글로벌 경제와 북한을 이어주는 새로운 구상이 필요하다. 과거 냉전시대부터 이어져 온 한·미·일과 북·중·러 대립 구도를 탈피하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경제적으로 연결되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민경태 국립통일교육원 교수
댓글(0)
댓글운영규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