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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인터뷰] 최성용 대한역도연맹 회장

“불가능을 번쩍 들어올린 역도인… 유망주 발굴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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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다섯살 때 역도에 입문했으나, 체격이 왜소하다는 이유로 역도부에서 제외된 설움을 이겨내고 친구들 틈에 묻혀 ‘연습생’으로 훈련한 끝에 태극마크의 꿈을 이룬 소년. 

하지만 선수보다는 지도자로 더 명성을 떨친 그는 국가대표팀 코치ㆍ감독을 역임하면서 한국 역도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전병관(1992년 바르셀로나)을 키워냈다. 

또한 대한역도연맹 전무이사와 실무부회장으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리스트인 장미란, 사재혁을 비롯 역대 최고인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일궈내며 체육 행정가로도 성공의 길을 걸었다.

지난해에는 대한역도연맹 회장으로 취임한데 이어 올해 1월 아시아역도연맹 부회장과 11월 동아시아역도연맹 초대회장으로 잇따라 피선되는 겹경사를 맞이했다. ‘역도명문’ 수원중ㆍ고등학교 출신으로 50년 외길 역도 인생을 살아온 최성용(65) 대한역도연맹 회장(고양시청 총감독)의 성공 이야기다. 

지난 17일 경기도 선수 출신으로는 최초로 중앙 경기단체 수장이 된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인 최성용 회장을 만나 그의 역도 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Q 최근 동아시아역도연맹 창립총회에서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셨는데, 동아시아연맹의 창립 배경과 회장에 피선된 소감은.

A 동아시아연맹 창립 중요성에 대한 얘기가 오래전부터 논의됐지만 추진되지 못하다가 올해부터 다시 본격 논의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와 중국, 북한, 일본 등이 주축이 돼 동아시아 역도 활성화를 위한 필요성에 공감하고 지난달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서 8개국 회장단이 모여 만장일치로 저를 회장으로 선출했다.

동아시아연맹은 회원수가 8개국에 불과하지만 세계적인 역도 강국인 중국과 북한, 그리고 우리나라 등 아시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나라들이 소속돼 있어 향후 세계역도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휴스턴 세계선수권에서도 중국과 북한이 전체 15체급 가운데 8체급에서 금메달을 석권했을 정도로 동아시아가 세계역도의 중심에 있다. 따라서 앞으로 동아시아연맹의 역할이 중요한만큼 4년 임기동안 동아시아지역 역도 발전을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Q 경기도 체육인 출신으로는 최초로 국가대표 선수와 코치ㆍ감독, 중앙 경기단체 전무이사와 실무부회장을 거쳐 회장까지 오르셨다. 역도와 인연을 맺게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A 수원중학교 2학년 때 초창기에 20명을 뽑아 역도부를 꾸렸는데 나는 체격이 왜소해 배제가 됐었다. 하지만 역도를 계속 하고싶어 운동을 잘하는 친구를 따라다니며 훈련생으로 열심히 역도를 배웠다. 

그러다보니 수원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 3학년 때는 같이 운동을 시작한 모두가 도중 하차한 가운데 나 혼자 남아 운동을 하게 됐다. 유일하게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내면서 서울로 올라가 대학에서 운동을 해 국가대표로 발탁, 7년간 활동하다가 은퇴해 이후 국가대표팀 코치와 감독을 맡게 됐다.

 

Q 회장께서 운동할 당시는 현재와 비교할 때 환경이 매우 열악했을 것 같다. 당시의 운동환경과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

A 내가 처음 운동할 당시는 기구부터가 형편이 없었다. 쇠파이프 봉(bar)에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돌역기 판을 끼워 운동을 했다. 요즘처럼 정밀한 플레이트(철제 원반)가 없다보니 무게를 큰 것과 중간 것, 작은 것 등 3개로 만들어 개인의 중량에 맞게 끼워 운동을 했다. 무거운 것을 들때면 봉이 자주 휘어지기 때문에 이를 다시 펴서 활용하곤 했다. 

요즘과 같은 기구는 기대할 수 없었고, 고등학교에 가서야 무쇠봉에 쇠 플레이트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현재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다. 다행히 부모님이 갈비집을 운영했기 때문에 영양보충 만큼은 잘 돼서 빨리 성장할 수 있었다.

 

Q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국가대표 코치를 맡아 한국역도 사상 처음으로 전병관 선수의 금메달을 일궈냈다. 당시 감회가 남달랐을 텐테.

A 당시 56㎏급에서는 전병관과 라이벌인 중국의 류서우빈이 워낙 강한 선수여서 은메달을 목표로 출전했다. 류서우빈이 인상 종목에서 강한 반면, 전병관은 용상에서 우위를 보여 인상에서 얼마나 격차를 최소화 하느냐가 승부의 관건이었다. 따라서 인상 종목에 중점을 둬 훈련하는 도중 대회를 며칠 앞두고 류서우빈이 허리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연막전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일단 좋은 징조여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경기에 임한 끝에 (전)병관이가 너무 경기를 잘 해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다. 당시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 너무도 기쁜 마음에 병관이를 안고 펄쩍펄쩍 뛰면서 경기장을 뛰어다닌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 역도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Q 대한역도연맹 실무부회장으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장미란과 사재혁의 금메달 획득을 진두지휘 하셨다. 하지만 최근 한국역도는 아시안게임에서 조차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지 못할 정도로 침체했는데 이유와 대책은.

A 실무부회장을 맡은 뒤 장미란을 18세 때부터 발굴해 4~5년간 집중적인 비밀 훈련을 시켜 육성한 끝에 올림픽 금메달을 만들었다. 유망주에 대한 조기 발굴과 육성이 필요한 데 전임 회장의 전횡으로 인해 2년동안 신인 발굴을 하지 못하면서 그 후유증이 지금까지 나타나고 있다. 

내년 리우 올림픽에서는 남자 사재혁과 여자 윤진희 정도가 동메달을 바라볼 정도다. 연맹에서는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목표로 남녀 각 2명의 17~18세 유망주들을 발굴해 베이징 올림픽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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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북한역도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 정상급이다. 회장께서는 남북한의 역도 교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추진 상황을 소개해 달라.

A 2년전 아시아 클럽선수권대회에 부단장으로 방북을 했을 당시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역도경기장을 찾아 3시간 관전을 하며 지시하는 등 역도에 관심이 많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또한 북한은 역도를 전략종목으로 선정해 특수훈련을 시키는 등 최고의 관심종목이다. 

내가 아시아연맹 부회장과 동아시아연맹 회장을 맡은 뒤에는 북한과의 교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달말 또는 내년 1월 초에 아시아연맹 사무총장인 이라크의 젤룻이 중간 역할을 하기 위해 1차 방북한다. 

이 결과를 토대로 2차에는 내가 직접 북한에 들어갈 생각이다. 방북이 성사가 되면 2017년 동아시아연맹 첫 대회를 북한에서 치르려 한다. 또한 남북 선수단의 상호 교환 방문을 통한 합동훈련도 추진할 계획이다.

 

Q 평생 역도인으로 살아오시면서 선수ㆍ지도자ㆍ행정가로서 느꼈던 가장 보람된 순간과 어려웠던 시기는 언제인가.

A 15살에 운동을 시작해 50년을 한 길만 걸어왔다. 선수부터 국가대표 코치ㆍ감독을 거쳐 회장까지 올랐기 때문에 여한이 없다. 가장 보람된 순간이라면 전병관과 장미란의 금메달 획득에 일조를 했던 것이 영원히 남는다. 더불어 지난 2009년 내가 몸담고 있는 고양시에 한국 역도 사상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를 유치해 성공적으로 치뤄낸 것이다.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전임 회장시절 이유없이 연맹의 모든 직책에서 배척돼 2년동안 역도계에서 멀어졌을 당시다.

 

Q 앞으로의 바램과 목표가 있으시다면.

A 여력이 된다면 앞으로 많은 후원사를 모아 제2의 전병관, 장미란, 사재혁 같은 선수를 육성할 수 있는 상비군 제도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다. 어린 선수를 체계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주는 것이 내 역도인생의 마지막 꿈이다. 또한 역도 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한 생활체육 동호인대회와 지방 역도의 활성화에 힘쓸 계획이다. 

글=황선학기자

사진=김시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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