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개최된 ‘세계 문자 올림픽’에서 한국이 2회 연속 금메달을 수상했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지난 2009년 10월 자국에서 창조한 문자를 가진 나라 16개국이 모여 자국언어의 우수성을 겨루게 된 것을 필두로 올해 태국 방콕에서 열린 세계 문자 올림픽에서는 자국에서 창조한 문자를 쓰는 독일, 스페인 등과 타국 문자를 차용, 개조해 쓰는 나라까지 총 27개국이 참가했다.
한글은 1997년 유엔 산하기관인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유네스코에서는 문맹퇴치에 크게 이바지한 사람들에게 주는 상 이름을 ‘세종대왕상’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더구나 올 여름 문자가 없어 곤란을 겪고 있던 인도네시아 소수 민족 찌아찌아족이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할 공식 문자로 한글을 도입하기도 했는데, 이는 한글의 가치와 공적을 국제적으로 인정 받은 실례들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전파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국내선 홀대받는 세계문화유산
이렇게 국제적으로 대우받는 한글이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찬밥신세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1926년 일제 치하에서도 한글학회에서 ‘한글날’의 전신인 ‘가갸날’을 제정해 면면을 이어오다가 1949년 ‘한글날’이라는 이름하에 공식 공휴일로 지정돼 온국민이 한글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그러나 공휴일이 너무 많아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떨어져 경제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1991년 한글날을 법정공휴일에서 제외함으로써 우리 국민들 마음에서 한글날이라는 기억을 시나브로 지우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기까지 하다.
또한 요즘 우리 사회에서의 언어 타락 현상은 도를 넘어섰다는 느낌이 든다. SNS를 통한 우리말에는 없던 저속한 은어, 비속어, 엉터리 수준의 한글 철자법 등이 우후죽순처럼 돋아나고 있는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 라디오나 TV 등 대중매체에서도 거침없이 타락한 언어들을 쏟아 내고 있다. 특히, 이른바 막장 드라마라 지칭되는 공중파 방송에서조차 거친소리, 된소리, 야한 표현 들이 난무하고 있어 자라나는 어린이, 청소년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날 우리글과 말이 이토록 오염되고 혼탁하게 된 것은 소위 지식인, 문화인, 언론인들에게도 막중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지적해 두고자 한다. 특히, 근년에 들어 이른바 첨단지식인을 자처하는 일부 사이비 지식인들이 몰상식하기 짝이 없는 별의별 해괴한 요설과 망언을 동원해서 소위 ‘영어공용화론’까지 무분별하게 퍼뜨림으로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전형적인 사이비 지식인들은 국무회의, 국회, 국방부, 법원, 공영방송, 검찰, 경찰 등에서도 한글과 영어를 함께 쓰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민간기업 뿐 아니라 공기업까지 회사명을 영어로 바꾸고 일상에서도 영어가 한국어처럼 쓰이는 광풍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한반도가 영어 몸살을 앓고 있는게 현실이다. 외래어의 남용을 막고 한글의 사용을 늘려 나가야 할 마당에, 오히려 영어와 한글을 공용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 낭비적 발상이며 어불성설인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아끼고 지켜나가야
이제, 한글은 우리의 자랑일 뿐 아니라 세계인의 문화유산이다. 일제의 병탄과 남북 분단 상황에서도 민족 정체성을 지켜준 버팀목이었으며, 발성 구조와 철자를 일치시켜 세계의 어떤 말이든 표기할 수 있고 또 표기된 것을 소리로 재현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과학적인 글이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는 국력에 실려 언어가 확산됐다면 이제는 국력이 문화의 힘에 의존한다. 전 세계에 퍼져나간 한류라든가 싸이의 ‘강남 스타일’ 열풍에서 보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문화전쟁의 시대인 것이다.
민족의 얼과 혼이 담긴 한글을 사해만방에 자랑하고 경축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자성하고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공경호 오산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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