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빠질 수 없는 패션 아이템, 스카프가 아닐까 싶다. 스카프는 일교차가 큰 요즘 같은 날씨에 멋을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온 효과도 그만이다.
누에가 만들어 낸 명주실은 오래 전부터 인기있는 천이었다. 그 덕에 비단 실을 뽑아내는 누에 역시 천충(天蟲, 하늘의 벌레)이라 불리며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비단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부(富)의 상징으로 대표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랬던 누에가 언젠가부턴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생활패턴이 서구화되면서 비단을 찾는 손길은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전세계 75% 이상을 차지한다는 중국의 값싼 원사도 원인 중 하나다. 가격 경쟁에서 밀린 누에 농장이 하나 둘 문을 닫으면서 누에산업은 점차 사라져갔다. 하지만 인간과 함께 5천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온 누에를 기억 속에 묻기엔 아까운 곤충이다.
최근 자연스레 잊혀지는 듯 했던 누에가 찬란한 반란을 일으켰다. 발상의 전환을 통한 변화가 누에산업의 탈바꿈을 시도하고 나섰다. 비단실만 뽑았던 누에의 가치에 대한 편견을 뒤집은 것이다.
섬유산업에 치우쳐 보이지 않던 누에의 가치는 다양했다. 천연 건강식품으로써 누에가 갖고 있는 탁월한 효능을 끄집어냈다. 지혜로운 우리 조상들은 ‘동의보감’을 통해 ‘누에와 관련된 많은 양잠산물 즉 뽕잎, 누에똥, 누에번데기 등은 소갈증인 당뇨병에 좋다’는 것을 알아냈다.
농촌진흥청은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연구한 끝에 누에 유충이 양잠산물의 종합이라는 점에 착안, 누에분말 혈당강하제를 개발했다. 또 누에의 몸에 신비의 균이라 불리는 동충하초균을 인위로 접종해 야생에서 수집되는 동충하초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도 세계 최초로 만들어 냈다.
누에의 변신은 생활용품과 의료용 소재로도 빛났다. 누에에서 뽑아낸 실크단백질을 이용해 화장품과 치약, 비누로 재탄생했고, 인공고막과 인공뼈, 인공체 보형물 등 의료용 소재로도 인정받아 첨단 신소재로 발돋움하며 연구가 한창이다.
최근엔 생명공학기술을 만나 별도의 염색 없이 칼라 형광 실크를 생산할 수 있는 형광누에로 재탄생되며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천연 빛깔을 뽐낼 수 있게 됐다. 시선의 폭을 넓히고 생각의 틀을 깨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현재 우리 농업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마술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비단 뽑는 벌레라는 타이틀에 얽매여 있던 누에. 그동안 몰라봤던 누에의 무한 변신을 통해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거듭날 누에산업의 놀라운 미래를 기대해본다.
라승용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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