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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4 (금) 메뉴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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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 그러나, 축제는 이제 시작이다

다른 계절에 다녀온 느낌이었다. 지난주 특강을 위해 경남 창원에 내려갔을 때였다.

 

길가에 만발한 벚꽃에 눈이 부셔서 시선을 한 곳에 고정하지 못했다. 얼마 동안이나 흐드러졌던 걸까, 그새 꽃비로 흩날리고 있었다. 서럽게 눈이 부셨다. 좁디좁은 수도권에서 올망졸망 사느라, 하마 자연의 아름다움마저 잊고 지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새삼 아프고, 부끄러웠다. 문득 우리 강토의 넓이와 깊이를 생각했다.

 

함께 올라오길 바랐으나 한 이틀 말미를 주기로 하고 먼저 올라왔다. 인간의 욕망을 실어 나르는 문명의 이기는 남녘의 봄기운을 탑승시키지 않은 채 서둘러 날아올랐다. 화사함과 따사로움을 떨치고 돌아왔을 때 서울의 하늘은 예의 잿빛이었다. 하루 동안의 짧은 외출은 그렇게 아쉬움과 시샘으로 마음 한 구석에 유폐됐다.

 

4·11총선 이후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심란해하고 있다. 허무와 좌절의 카르텔이 반도의 반쪽을 뒤덮은 듯하다. 와중에 북한이 장거리로켓미사일을 발사했고, 유엔의 제재가 운위되고 있다. 저마다 총선 분석에 열을 올리지만 정작 본질을 헤집지는 못하고 있다. 혼돈스런 풍경이다.

 

그렇기로 봄은 봄이다. 봄이 봄이 아닐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내가 데리고 오지 않았다고 해서 올라오지 못할 일이 아니다. 때 되면 오르고 때 되면 사멸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움트는 꽃망울과 상승하는 대지의 기운에 설핏 신열이 나고 얼굴이 달뜬다. 마음이 그러하다. 가슴이 그러하고 머리가 그러하다. 봄이다, 완연한 봄이다.

곳곳에서 시작되는 봄의 축제들

 

관습과 경직의 사고를 내려놓고 봄의 기운에 온 몸을 맡길 일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자연의 명령이다. 다시 새로운 희망을 쏘아 올리기 위해 혼돈의 현실을 자연 속에 내맡겨야 한다. 긴장도 갈등도 잠시 내려놓을 일이다. 발끝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그러한 자연의 명령이 하달되고 있음을 느낀다. 거역할 수 없는 일이다.

 

도처에서 봄의 축제가 시작되고 있다. 물리칠 수 없는 자연의 힘에 잠시 기대어 충전의 시간을 가져보라는 의미일테다. 남녘의 벚꽃이 제 아무리 아름다웠기로서니 지난 일일 뿐, 지금 봄은 오롯이 우리들의 것이다. 이제 한바탕 축제를 벌일 시간이다.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경기도 곳곳에서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고,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서 우리들의 축제가 벌어지는 것이다. 원없이 취하기에 벚꽃 하나론 단조롭지 않느냐고 불만을 털어놓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일테다. ‘고양국제꽃박람회’(4월 26일~5월 13일)에 가볼 일이다.

 

책과 철쭉과 가족이 함께 어우러진 행복의 공간으로 들어서고 싶은 사람이라면 군포시의 ‘철쭉대축제’(5월 4일~13일)도 기대해 볼 일이다. 더 깊은 자연 속으로, 더 오래된 미래를 만나려거든 ‘연천 전곡리 구석기축제’(5월 4일~8일)가 그만일 듯하다.

봄을 즐기며 충전의 시간 가지자

 

잊지는 말자. 꽃의 축제라 해서 꽃을 위한 축제가 아니다. 오래된 미래로의 여행이라고 해서 과거로의 회귀를 기획한 것은 아닐 것이다. 축제란 본시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함께 어우러지자는 제안이다. 정치과잉으로 외려 정치혐오를 키우는 역설의 시대를 제정신으로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 우리는 이제 좀 쉬어야 한다. 하마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스럽기로서니 그예 휩쓸릴 일이 아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듯이 내려놓으면 비로소 얻는 것이 있다. 내려놓고, 낮추고, 풀어 헤치고, 덜어내는 것, 거기서 새로운 희망의 싹이 움튼다. 잔인한 4월과 계절의 여왕 5월엔 오롯이 봄의 축제에 몸과 마음을 맡길 일이다. 그리하여 다시금 우리 강토의 넓이와 깊이를 음미해 볼 일이다. 우리들의 축제는 이제 시작이다.

 

최준영 작가·거리의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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