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은 선거의 해이다. 국회의원 총선거가 4월에 있고, 대통령선거가 12월에 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문을 열고 들어갈 수도 있고, 날개도 없이 추락할 수도 있다.
세계금융질서와 경제질서는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확실성 속에서 거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또한 북한문제가 언제 우리의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으로 다가올 것인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국가의 운명이 걸린 양대선거를 앞두고 있다.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나라의 살림을 거덜 낼 수도 있는 포퓰리즘 대형공약이 갈수록 늘어나기 때문이다. 행정수도이전이나 혁신도시 건설로 중앙부처의 지방이전, 과학벨트유치, 4대강사업, 국제공항건설 등이 대표적이다. 행정수도 이전은 충청도표는 결집되어 있으나 수도권의 표는 분산되어 있다는 허점을 노린 전략적 공약이다.
이러한 국책사업 내지 대형개발사업 공약은 그 성과를 입증하기 어렵다. 선거일정에 급조되는 것이 대부분이고, 선거과정에서 논란은 결국 정치적인 공방에 그친다. 해방 후 지금까지 선거때마다 지역공약이 난무하였고 이를 수행하기 위한 예산투입이 천문학적인 숫자였지만 지역공약으로 잘살게 되었다는 지역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민들이나 정치인들이 대형개발공약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중앙정부가 이들 사업을 위해 지역에 뿌리는 돈을 공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역민이나 지방정치인은 우선 지역에서 돈잔치를 하고 보자는 계산이 깔려있고, 후보자들이나 정당들로 어차피 자기 돈이 아니고 국민세금으로 선심이나 쓰고 표나 얻어 보자는 계산이 깔려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당선되고 해결하면 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대형공약을 내세운 정당이나 후보자가 당선되면 정책의 타당성과는 관계없이 공약했기 때문에 집행해야 하는 압력을 받는다. 공약준수의무를 두고두고 강요받게 된다.
이번 정부에 들어서 지역이기주의적인 공약외에 계층이기주의적인 공약이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다. 무상급식을 비롯한 반값등록금, 반값아파트, 무상보육 등 무상시리즈나 반값시리즈 공약이 봇물 터진 듯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복지공약이다. 고소득층이나 중산층의 표는 분산되어 있고 저소득층은 표가 집중된다는 계산에서 나온 공약이다.
하지만 우리가 부러워했던 서구의 복지국가들의 재정위기로 인해 국민의 생활을 절단내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다. 제3의 해결방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파탄을 맞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지역이기주의와 계층이기주의에 편승한 대형공약이 국가의 재정에 파탄을 초래할 수 있는 정도로 갈수록 규모가 커진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과거에는 몇 십억, 몇 백억짜리 공약이었다. 하지만 얼마전부터 수천억짜리 공약을 넘어 단위가 커져서 수조 내지 수십조, 수백조 공약으로 몸집이 늘어나고 있다. 결국 국민의 세부담으로 돌아오고, 국민의 살림살이를 휘청거리게 할 수 있다. 이에 다음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선심성 대형공약에 대한 국민적인 대응이 매우 시급하다.
먼저 국민의 의식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선거 때마다 세금논쟁이 핵심을 이룬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무현정부에 들어오면서 부자들에 대한 징벌적 중과세와 이번 정부들어 부자감세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음 선거에서는 대형공약으로 인한 혜택과 국민의 세부담사이에 형성되는 조세가격에 국민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투표의 중요한 잣대로 삼아야 한다.
또한 대형공약에 대해서는 국가차원의 중립적 평가위원회를 설치하여 성과가 입증된 경우에만 집행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평가용역을 담당한 기관이 고의나 과실로 평가를 잘못하여 예산방비를 초래한 경우에는 일정한 변상책임을 지도록 하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수혜자 부담의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지방에서 지역개발공약을 유치하는 경우에는 그 비용의 일부를 그 지역부담으로 하여야 한다. 그래야 남의 돈으로 살림을 사는 자의 도덕적 해이를 극복할 수 있다. 실패한 대형공약으로 세금을 낭비한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기우 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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