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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4 (금) 메뉴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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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의 역사와 시대적 요구

미래학자인 토플러는 지방분권을 미래의 정치질서라고 했다. 시대적 변화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요구하고 있다. 중앙정부에 의한 획일적이고 하향적인 지배체제 대신에 지방의 다양한 정책과 상향적인 거버넌스체제가 필요하다. 세계화로 인하여 국가의 조정적인 기능이 약화되고 국경을 넘는 지역간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지역에서 지역문제에 대한 결정을 요구하게 되었다. 중앙에서 지역문제를 결정하는 중앙집권적인 체제로는 지역적인 여건에 맞추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결정의 속도에서 따라갈 수가 없다. 중앙정부에 의한 획일적인 결정보다는 지역 간의 경쟁 속에서 유발되는 혁신이 보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문제해결을 가능하게 한다. 미국의 지방분권적인 정치체제에 대해서 비효율적이라는 비판도 과거에 제기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이 그토록 오랫동안 세계적으로 선두를 유지해 온 것은 지역 간의 경쟁과 다양성에 뿌리를 둔 지방분권적 정치체제가 일조를 했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 로마제국의 번성도 그 뿌리에는 다양성과 지역적 특성을 존중하는 지방분권적 정치체제가 있다.

 

대다수 선진국이 선택한 지방분권

 

오늘날 시대를 앞서가는 선진국은 대체로 고도의 지방분권체제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미국이나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 호주 등은 오래전부터 지방분권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에 대해서 비교적 중앙집권적인 전통이 강한 프랑스도 헌법개정을 통하여 지방분권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적지 않은 논자들이 이들 분권국가들은 봉건시대부터 여러 제후국으로 나눠져 있어서 지방분권의 전통이 강하기 때문에 지방분권을 도입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중앙집권적이고 단일국가로 살아왔기 때문에 지방분권국가로 전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왕권강화를 위한 중앙집권적인 조치가 지속적으로 이어졌던 것은 사실이다. 대한민국 건국 후에도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는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중앙집권적인 전통을 가진 나라는 시대적 요구에 맞지 않는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를 고수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지방분권적인 국가는 독립된 국가들이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기 위한 양보에서 비롯된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고도화된 중앙집권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인위적인 노력으로 도입된 경우도 적지 않다. 2차대전 이후 나치의 중앙집권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이에 속한다. 우리가 분권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다면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지방분권을 실현하는 데 그만큼 용이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지방분권적인 전통이 약하다고 하여 시대적인 요구를 포기할 수는 없다. 여기에 지방분권의 어려움이 있고, 분권적인 전통이 강한 국가보다 더 많은 노력을 요한다.

 

우리도 국가경영 변화가 필요할 때

 

그렇다고 우리에게 지방분권적인 전통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신라, 고구려, 백제의 삼국시대를 거치면서 독립된 국가가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는 과정을 거쳤다. 당시 고구려와 백제, 신라는 한반도에 집착하지 않고 중국과 일본에 걸치는 방대한 제국을 경영하고 풍성한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킨 경험을 가지고 있다. 삼국이 서로 경쟁하면서 치열한 생존경쟁의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후삼국시대, 고려 말의 지방호족의 등장 등을 통하여 간헐적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현재도 정치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는 지역주의는 이러한 지방분권적 전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대적인 요구에 걸맞는 국가경영체제를 도입하는 데 있다. 지방의 세세한 일까지 중앙정부가 결정하는 하향적인 정치질서로는 다양성과 창의성, 효율성이 요구되는 시대의 국가경영을 할 수가 없다. 이제 지방의 문제는 지방이 알아서 결정하고 책임을 지도록 하고 중앙정부는 지방정부가 하기 어려운 사항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도록 하는 분권적인 국가경영전략이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삼국시대부터 뿌리 깊은 우리의 지역주의는 더 이상 망국병이 아니라 나라를 살리는 활국소(活國素)가 될 것이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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