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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죽음, 사라진 존엄성] 上. 1번부터 6513번… 번호만 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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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죽음, 사라진 존엄성] 上. 1번부터 6513번… 번호만 남다

제 이름은 6488번… ‘발길 없는 지하창고로 갑니다’
인천 무연고사망자 매년 200여명... 市 공영장례, 유골함 보관 역할뿐
전문가 “가족들 추도 기회 마련을”... 市 “별빛당 이전 방안 검토할 것”

지난달 2일 인천가족공원 내 금마총분향소 지하 1층 무연고 사망자 유골함 안치실에서 비영리단체 ‘부귀후원회’의 회원들이 공영장례를 마친 무연고 사망자 김지훈씨(92•가명)를 추도하고 있다. 유골함 안치 이후에 일반인은 추도 등을 위해 이곳에 출입할 수 없다. 최종일기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옛말이 있다. 그러나 인천에는 이름조차 없이 4자리의 번호만 남겨두고 세상을 등지는 무연고자가 매년 200여명씩 나오고 있다. 또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위기와 1인 가구의 증가 등과 맞물려 인천의 무연고 사망자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추세에 맞춰 무연고 사망자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공영장례까지 등장했지만, 3시간가량의 짧은 장례를 마친 시신은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는 지하창고로 옮겨질 뿐이다. 이후에는 찾는 이도 없어 마치 실패한 인생처럼 오명이 더해진다. 이에 본보는 3차례에 걸쳐 인천의 무연고 사망자 실태를 짚어보고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존엄성 회복 방안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주>

김지훈씨(92·가명)는 올해 8월31일까지 인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홀로 지내다 지병으로 별세했다. 당시 119구급대원이 수습한 김씨의 시신은 가족으로부터 인수를 거부당했다. 일부 가족은 요양병원 비용이 부담스럽다며 김씨를 끝내 무연고자로 내몰았다. 김씨의 공영장례는 이로부터 1개월가량 뒤에야 열렸다. 시신을 인수할 가족을 찾고 인수 여부를 확인하는 행정절차 기간에 김씨의 시신은 병원 영안실에 머물러야 했다.

지난달 2일 인천가족공원에서 열린 김씨의 공영장례는 소외계층의 장례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부귀후원회’의 회원 9명이 함께했다. 공영장례는 인천시가 지난해 제정한 ‘인천시 공영장례 지원조례’에 따라 무연고 사망자를 지원하는 장례서비스다.

부귀후원회 회원들의 운구로 인천가족공원의 화장장으로 옮겨진 김씨를 위해 울어주는 이는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부귀후원회 회원 A씨는 “원래 무연고자 장례는 이렇게 조용하다”고 했다.

화장을 마치고 한줌의 재로 유골함에 담긴 김씨의 마지막 인사는 인천가족공원 한켠에 있는 금마총분향소 지하 1층 무연고 사망자 유골함 안치실에서 이뤄졌다. 김씨의 유골함에는 고인의 이름보다 더 큰 4자리의 숫자 ‘6488’이 무연번호로써 쓰여진 상태다. 금마총분향소에서는 이름이 아닌 무연번호로 유골함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9일 기준으로 공영장례 등을 통해 이곳에 자리잡은 무연고 사망자의 무연번호는 1번부터 6513번까지 있다.

김씨의 유골함은 안치가 끝나면 더는 만나볼 수 없다. 시신을 인수할 가족 등이 나타날 때까지 이곳의 문은 새로운 무연고 사망자의 유골함이 들어올 때 빼곤 다시 열리지 않는다.

이 같은 시의 공영장례 정책에 대해 전문가들은 무연고 사망자를 추도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또 경제적 문제 등으로 부득이하게 시신을 인수하지 못한 가족들에게도 추도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시의 공영장례는 무연고 사망자의 존엄성을 위한 정책이기보다는 유골함의 보관 절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허준수 숭실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장은 “이들을 대하는 방식은 존엄(Dignity)에 관한 것”이라며 “이들을 방치하는 게 아닌 보관의 장소도 다른 사람들이 와서 추도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내년에 무연고 사망자 유골함 일부를 빈소와 가까운 비교적 쾌적한 환경인 ‘별빛당’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김민·이루비·최종일기자

 ‘무연고 사망자’ 원인·연령별 분석 필요 

2018년 170명→지난해 253명 ‘증가세’ 1인가구 고립 예방위한 ‘서비스’ 필요

인천의 무연고 사망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원인별·연령별 분석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9일 인천시 등에 따르면 인천의 무연고 사망자는 지난 3년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8년 170명에서 2019년 206명, 지난해 253명으로 연평균 14.2%씩 늘어난 상태다. 이는 같은 기간 전국의 연평균 증가율 7.6%보다 6.6%p 높다.

인천의 연평균 증가율이 높은 이유 중에는 전국보다 높은 1인 가구의 증가율에 있다. 인천의 최근 3년간 1인 가구는 2018년 27만5천898가구에서 지난해 32만4천841가구로 17.7% 늘어났다. 같은 기간 전국의 1인 가구는 2018년 584만8천594가구에서 지난해 664만3천354가구로 13.6% 증가하며 인천보다 4.1%p 낮은 증가율을 나타냈다.

허준수 숭실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장은 “1인 가구가 고립에서 벗어나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방법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이와 함께 인천은 연령별 무연고 사망자의 비율이 달라 이를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발생한 인천의 무연고 사망자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연령대는 65세 이상(44.7%), 50~59세(23.3%), 40~49세(9.1%) 등이다.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층인 65세 이상 무연고자 등을 내버려두는 것은 사회체계의 신뢰 수준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이들이 무연고자 등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이루비·최종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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