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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규의 思각思각] 5월엔 뻔한 말 좀 합시다
오피니언 이민규의 思각思각

[이민규의 思각思각] 5월엔 뻔한 말 좀 합시다

몇 년 전 어버이날, 한 취업포털사이트에서 대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부모님에게 가장 하기 힘든 말은 무엇인가?’ 1위가 ‘사랑합니다’였다. 그렇다면 부모들이 자식들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 역시 ‘사랑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생 자녀들은 왜 세상에서 자기를 가장 사랑하는 부모가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을 가장 하기 힘들다고 했을까?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어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상담할 때 가족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해보라고 권한다. 그러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반문한다. “마음이 중요하지 그걸 꼭 말로 해야 합니까?” 물론 마음도 중요하다. 그러나 표현은 더 중요하다. 그런데 왜 표현이 잘 안 될까? 거기에는 몇 가지 심리학적인 이유가 있다.

첫째,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남이 어쩌다 한 번 베푼 작은 친절에는 고맙다는 말을 잘하면서도 정작 누구보다 감사해야 할 가족에게는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기보다 오히려 투덜거릴 때가 더 많다. 가족들이 베푼 것은 당연한 것이고, 가족은 늘 내가 어떻게 하든 다 받아주면서 붙박이처럼 거기에 존재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 표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기 때문이다. 관계의 질은 표현에 의해 결정되고 사랑하는 마음이 아무리 가득해도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건 마치 비싼 선물을 사서 포장까지 해놓고 건네주지 않고 내가 갖고 있는 것과 같다. 종은 울려야 종이고 사랑은 표현해야 사랑이다.

셋째, 표현방법을 공부하고 연습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저절로 우러나오는 감정이고 마음속에 담고 있으면 저절로 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랑이란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표현을 연습해야 하는 일종의 기술이고 예술이다.

거창하게 표현하라는 것이 아니다. 흔하고 뻔한 말로 표현하면 된다. 상담을 하다보면 행복한 가정에는 공통점이 있다. 뻔한 말을 잘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불행한 가정은 뻔한 말을 잘 안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말들이다. ‘잘 잤어?’ ‘고마워’ ‘엄마가 미안해’ ‘잘했어’ ‘괜찮아’ ‘수고했어’ ‘아빠는 너 믿지’ ‘알라뷰’ ‘아빠가 좋아요’….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은 뻔한 말을 잘 하는지 여부에 의해서 갈라지기 때문에 나는 이를 ‘뻔한 말 효과’라고 한다.

행복한 가정은 당연한 일 속에서도 감사할 일을 찾아내 고마움을 표현하고, 문제가 생기면 상대방을 탓하기보다 자신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고 얼른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도 그만하면 잘 했다고 격려하고, 실수를 했을 때는 괜찮다고 안심을 시켜준다. 작은 일에도 감탄하고 감동하면서 상대방에게 기운을 넣어준다.

상담을 하다보면 가슴과 입까지의 거리는 30㎝ 밖에 안 되는데 가슴속에 담아둔 사랑을 말로 표현하는데 30년 이상 걸렸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표현을 미루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앞으로도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이며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사람에게 해야 할 정말 중요한 말을 마지막 순간까지 미루다 마지막 순간이 지난 다음에야 과거형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평생 임종환자의 심리를 연구했던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그녀의 마지막 책 <인생수업>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당부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십시오’

나중으로 미루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밤 12시가 되기 전에 가족 중 누군가에게 뻔한 말로 사랑을 표현하자. 마주 앉아 가만히 눈을 맞추고 말로 해도 좋고, 전화나 메일, 문자 한 통, 쪽지 한 장으로도 좋다. 진심을 담아 사랑을 표현할 때, 최대의 수혜자는 내 자신이 된다. 내가 가장 먼저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은 표현이 얼마나 큰일로 이어질 지는 아무도 모른다.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테레사 수녀님에게 어떤 기자가 물었다. “세계평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수녀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집으로 가서 가족을 사랑해주세요” 오늘 표현한 뻔한 말 한 마디는 말 한 마디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평화의 시작점이 된다.

이민규 아주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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