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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순 칼럼]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행복하다면
오피니언 오현순 칼럼

[오현순 칼럼]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행복하다면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하다면, 우리도 행복하단다.” 다비드 칼 리가 쓰고 마르코 모사가 그린 그림책 ‘나도 가족일까?’에서 부모가 보리스에게 보낸 쪽지에 적혀 있는 글이다. 아이가 없는 부부는 늪에서 우연히 물고기와 인간의 몸을 반씩 지닌 아기를 발견하게 되고 아이(보리스)의 부모가 된다. 하지만 보리스는 인간의 몸과 다른 자신을 보며 자신과 닮은 누군가를 찾아 늪으로 떠난다. 그곳에서도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슬픔에 빠진 순간, 늪의 바닥에 있는 보리스의 부모가 보낸 수많은 빈병 안의 쪽지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쪽지에 새겨진 위의 글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된다. 닮지도 않고 혈연관계도 아니며, 심지어 종(種)도 다른 보리스가 어디에 있든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진정한 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과 달리, 법과 정책은 여전히 전통적 가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행 민법과 건강가족기본법에는 가족을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단위를 가족으로 인정하고 있다. 비혼, 동거가족, 1인 가구 등은 가족 유형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부양, 돌봄, 교육, 주거, 의료 등 다양한 복지서비스로부터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영화 ‘어느 가족’에서 할머니의 연금으로 여섯 식구가 근근이 살아가는 비혈연 가족이 법적 가족으로 인정을 받았다면, 아이들은 도둑질하지 않았을 것이고, 학교도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가정폭력과 냉소에서 벗어나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전통적 가족 체계가 무너져 비정상 가족이 늘어나면 사회가 흔들린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법적, 사회적 힘은 아직도 강력하다. 생존에서 시작된 가족의 탄생은 농경사회, 종교의 전파, 과학기술의 발전 등 정치, 경제, 사회의 흐름에 따라 형태와 역할도 변해 온 것이 사실이다. 가족의 형태는 고정된 것이 아니기에 그 시대 시민의 욕구와 열망에 따라 재구성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정부, 국회에서 관련 법과 정책을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가족 개념을 재정립하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도 사회적 복지를 보장받을 수 있게 하려고 민법, 건강가정기본법을 개정할 계획에 있다. 더 나아가 프랑스의 시민연대협약, 독일의 생활동반자관계법안과 유사한 ‘생활동반자법’도 계속 논의 중이다. 주목할 점은 반려동물도 가족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법적 지위를 개선한다는 것이다.

건강가정기본법의 목적에는 특히 ‘가족의 유지’를 강조한다. 하지만 가족의 유지를 위해 가정폭력 등 각종 불합리한 상황에도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가족유지’가 아닌 ‘가족 구성원 개인의 존엄과 행복’에 목적을 둬야 한다. 혈연적 관계를 넘어 사회적 공존을 통해 친밀과 돌봄, 부양을 실천하는 다양한 결합들이 탄생하고 그 탓에 개인의 삶이 행복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행복하다면 그곳이 내가 머물러도 될 가족공동체가 아닐까.

오현순 공공의제연구소 오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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