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늦가을의 정취를 일깨우는 고운 빛깔의 단풍이 지역사회를 물들이면서 사뭇 다른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게 한다. 같은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도 각자의 색깔이 다르고 모양도 달라서 인간들과 같이 각자의 개성을 지닌 모습을 보여주어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에 취하게 된다. 이러한 낙엽이 보여주려는 의미는 스스로에게는 내년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안식을 준비하는 것이고, 기나긴 겨울을 준비하는 중생들에게는 동면의 시간을 재촉하는 것이며, 주위에서 경쟁하였던 동료에게는 일정한 휴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식과 지혜를 함께 갖춘 인간은 어떠한 관점에서 낙엽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일까? 단순하게 1년에 한 번씩 일어나는 주기적인 흐름이라는 생각과 자연에 순응하는 자연의 법칙이 작용한다고 인식하며 또는 과학이라는 지식의 창으로 분석하는 과정도 존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생각의 차이에도 고운 빛깔의 낙엽을 보면서 성내고 분노하는 것을 접고서, 잊고 있었던 주위의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다시 되새기는 때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부처님의 성품을 지니고 있으므로 진리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최고의 목적은 해탈이라고 말하는데 진리를 깨달았다는 뜻이다. 진리를 번역하여 도(道) 또는 법(法)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에는 세상의 이치를 간직하고 있다.라는 의미와 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과 인간의 사이에서 상통한다는 이치는 무엇이고, 범부인 중생일지라도 상식이라는 범주의 도덕과 가치는 모두가 알고 있다는 뜻인데, 어찌하여 삶을 꾸려가는데 과정에서의 행동은 동떨어지는 괴리는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인가. 그 틈새를 파고드는 미세한 차이는 마음과 지혜를 분리하여 생각하려는 이분법에 있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도 국무위원 한 사람의 문제로 국가 전체가 혼란과 갈등을 심하게 겪었고 지금도 그에 따른 영향은 진행형이다. 물론 현실의 무능한 정치를 빗대어 비판하려는 것이 아닌 국가를 운영하는 상식을 벗어난 듯한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한국 주변의 정치적인 상황이 그렇게 여유롭고 평화롭지 않고 갈등으로 치닫고 있고, 또한 세계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시점에서 국가를 경영하는 책임 있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근원적으로 중생들은 욕망에 얽매여서 진리를 향하여 나아가는데 장애를 초래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도덕에 집착하는 욕망이 없다면 축생과 다름이 없는 삶이 이어질 것이고, 진리에 대한 사랑을 거둔다면 인간의 세상에는 무질서와 혼란이 세상에 가득할 것이다. 자연계를 살펴보면 하나의 시작이 다른 시작의 연결고리로 이어지는 연기의 세계를 폭넓게 형성하여 가고 있다.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에도 의미가 부여된 것이고, 떨어지는 낙엽 하나에도 우리가 질서라는 이치를 관찰할 이치를 지니고 있다. 겨울을 준비하는 축생들이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무심하게 인간처럼 고운 단풍의 정취에 취하여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면 매서운 겨울 추위에 많은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인간은 지혜를 사랑하였던 노력의 결과로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던 지식과 역량을 갖추었고 눈이 날리는 겨울철에 축생들에게 먹이를 나눌 수 있는 삶의 여유도 갖출 수 있었다. 인간은 이렇게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고 질서에 순응하는 삶의 방식을 이끌어 오고 있다. 한국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현재의 정치와 경제적인 상황은 유쾌한 모습이 아니다. 그럼에도, 더욱 씁쓸한 것은 나와 타인이 더불어 살아가려는 노력보다는 사회의 패러다임이 점차 이적으로 변해가는 현실이다.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자연계의 질서와 인간계의 질서를 다시 한번 뒤돌아보면서 삶의 그림자를 관조하였으면 한다. 세영 수원사 주지 스님

[삶과 종교] 세월가면 잊혀질까

잔칫집에서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식들이 있다.그중에 대표적인 음식이 아마도 사라다 곧 과일 샐러드가 아닐까 싶다. 특별한 요리법이 필요하지 않고 재료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과일 샐러드. 특별한 비법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오랫동안 이 과일 샐러드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고 또 서민적인 음식으로 자리매김해 오고 있다. 이처럼 특별한 요리법이 없이도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흉내 낼 수 없는 마요네즈만의 독특한 맛과 특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좋아하는 과일 재료들을 먹기 좋게 썰어 고소 짭조름한 마요네즈를 넣어 버무리기만 하면 새콤달콤 고소달달한 과일 샐러드가 완성되니 말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잔칫집에 가신 날이면 뒷동산에 올라가 마냥 어머니를 기다리곤 했다.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하고 몰고 왔던 흙먼지가 한바탕 지나고 나면 어머니가 조심조심 내리셨다. 그때마다 어머니 손에는 항상 그렇게 꽁꽁 싸맨 짐 보따리가 들려져 있었다. 힘겹게 들고 오신 짐 보따리를 어머니는 마루에 걸터앉아 푸셨는데, 그때마다 동생이랑 필자는 배고픈 강아지들처럼 마냥 보따리를 쳐다보며 군침을 몰아 삼키곤 했다. 한번은 어머니께서 까만 비닐봉지에 하얀색 과일 무침을 내주셨는데 마요네즈에 사과와 밤, 건포도, 땅콩, 감 등을 넣어 비벼 만든 음식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이 음식을 어머니께서는 어디서 듣고 오셨는지 사라다라고 부르셨다. 시골 소년에게 짭조름하면서도 새콤달콤 고소달달한 사라다의 맛이란 그야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상의 맛이었다. 그 후로 어머니께서 동네잔치에 가시는 날이면 어김없이 사라다를 챙겨오라는 신신당부를 몇 번이고 되풀이했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께서 치매로 돌아가시기 몇 해 전,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사라다를 다시는 맛볼 수 없을 것 같아 어렵게 청한 그날에도 어머니는 늘 그랬던 것처럼 큰 양푼에 사라다를 잔뜩 버무려주셨다. 거짓말처럼 그날 그 사라다가 어머니의 마지막 사라다가 되었지만, 때로 삶이 무겁게 느껴질 때나 힘들다고 느껴질 때 양푼에 내주셨던 어머니의 사라다는 필자의 마음 안에 여전히 그립고 먹고 싶은 음식으로 남아있다. 누구나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추억 속의 음식들. 오랜 시간이 흘러갔어도 문득 그것은 여전히 우리의 군침을 돌게 하고 마음 어딘가에 묻어둔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불현듯이 옛날 추억 속의 음식이 떠오른다면 그것은 음식을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지금의 삶이 조금은 버겁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애타게도 그때 그 시절 그 음식을 해준, 나를 믿어주고 힘이 되어준 사람이 그립고 보고 싶어서일지 모른다. 피곤하고 지칠 때나 삶이 힘겹게 느껴질 때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했던 추억 속의 음식을 한번 맛나게 먹어보는 건 어떨까? 조금은 넉넉한 마음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인생의 맛은 참으로 다양하다. 귤처럼 새콤하다가도 단감처럼 달달하다. 사과처럼 달콤하다가도 아무 맛도 없이 그저 시원한 맛에 먹는 오이 같기도 하다. 때로 힘을 줘서 깨물어야 하는 딱딱한 날밤 같을 때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인생의 맛들도 마요네즈와 섞이고 어우러지면 맛좋은 과일 샐러드가 될 수 있겠다 생각하니 문득 삶이 아름다워진다. 김창해 천주교 수원교구 사회복음화국장 신부

[삶과 종교] 단풍이 짙어가는 가을, 화쟁을 생각한다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정치적 갈등 상황에도, 나는 점점 더 짙어져 가는 단풍을 바라보면서 가을이 더욱 깊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 가을에 노랗게 물든 단풍을 가족과 함께 감상하거나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감상하는 것은 인생에서 더할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다. 나는 이런 한국의 정치적 갈등상황 이야기는 자제하는 편이다. 우리는 광화문이든 서초동이든 대한민국의 발전이라는 공통된 목표와 기원을 함께 염원한다는, 큰 의미의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 국민이 넓은 의미에서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대처로 가서 서로 악으로 혹은 적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지금의 지지율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렇더라도 나는 철학자로서,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 50년, 더 길게는 1천 년, 2천 년을 생각하고 바라보는 장기적인 안목에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주 오래된 고전을 들어 지혜를 찾아보고자 한다. 1천4백여 년 전 원효(元曉, 617~686)의 말을 빌려서 하면, 화쟁(和諍)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기신론소(起信論疏)」 생멸문(生滅門)에는 한쪽만을 고집하면,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에 떨어진다고 하였다. 또 그의 「열반경종요(涅槃經宗要)」 삼사문(三事門)에는 만일 한쪽만을 결정적으로 취하면 두 주장이 모두 그릇되게 되고, 만일 참으로 집착하지 않으면 두 주장이 모두 옳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런 사고방식을 중도(中道)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중도적 입장이 원효 용어로는 바로 화쟁(和諍)이다. 어느 한 쪽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 집착해서 그것만이 옳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상대의 감정과 말에도 귀를 기울이며 이해해보려고 해야 한다. 2천5백여 년 전 노자(老子)의 말을 빌려서 하면, 부쟁(不爭)하라. 그리고 이 싸움은 부득이한 경우고, 어쩔 수 없이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싸우게 된다면 싸움의 도(道)를 지키라고 하고 싶다. 『도덕경(道德經)』 제30장에서 도가 아니면 당장 그치라고 했다. 그리고 싸움에 뛰어난 이는 승부가 나면 그칠 뿐, 그 틈을 타 상대방을 핍박하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다. 역사의 교훈은 지금 이기더라도 언제까지나 이기기만 하고 살 수 없는 것이다. 승부가 나면 그뿐이지 그것으로 의기양양하면서 상대를 억누르거나 핍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노자의 도다. 서로 겸손해야 한다. 노자는 우리에게 승부는 마지못해 일시적으로 내는 것이라고 일러준다. 광화문이든 서초동이든 그들이 표면적으로 서로 다른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그들이 공통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기 때문에, 크게 그리고 깊게 보면 같은 길을 가는 대한민국의 같은 애국시민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표면적으로 다른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극단적으로 서로 적으로 혹은 악으로 생각하고 공격할 필요가 없으며, 또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정치지도자들도 그렇게 하지 않도록 말씀을 가려서 품위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현재 우리나라의 평화적인 대규모의 민주적인 집회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가 없는 평화로운 민주주의 정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그 결과가 우리의 미래에 양측 모두에게 자랑이 되고 좋은 일이 되길 바란다. 김원명 한국외대 철학과 교수

[삶과 종교] 분위기 조장하는 사회

9월에 이어 10월에도 연일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경쟁하듯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덕분에 우리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이상한 부류로 내몰릴 위기에 놓이기도 했었다. 마치 회색지대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개천절 휴일에 아들 잘 둔 덕분에 아내와 함께 생전 처음 개봉 이틀째밖에 되지 않은 수입 영화를 볼 수 있는 횡재를 했다. 개봉 첫날 40만 관객을 넘겼다는 영화 조커는 상영 전부터 매스컴을 통해 세뇌하던 대로 대체로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의 속에서 조커가 어떻게 탄생해 가는지를 보여줬다. 그러면서 영화를 보는 동안 어렵지 않게 조커를 배트맨과 비교할 수도 있었다. 정의의 사도 배트맨과 악의 화신 조커가 아니라 기득권자들의 수호자 배트맨과 기득권을 소유하지 못한 불특정 다수의 대변자 조커였다. 그리고 제작자의 의도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도 없을 만큼 양분된 사회 분위기와 그 분위기를 조장하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 사회인지도 보였다. 저명한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그의 사회학 개론서 「현대사회학」에서 가족과 또래 관계와 학교, 그리고 대중매체를 사회화를 대행하는 대행자로서 꼽고 있다. 특히 이 대행자 중에서 대중매체는 개인이 획득할 수 없는 막대한 종류의 정보를 조달해주기 때문에 사람들의 태도에 깊은 영향을 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이 책을 저술했던 1989년이 286 컴퓨터를 막 보급하려고 했던 때였음을 고려해 볼 때, 30년이 지난 지금은 인터넷을 통한 지식 정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넘쳐나고 있다. 또한, 이를 활용한 공식 또는 비공식적인 방송들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떠돌아다니는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탓에 기든스가 말했던 자발적 결사체들과 그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조작된 매체의 영향으로 동원한 결사체들이 소집되어 자신들의 신념과 소신대로 사회화를 대행하려고 서로 위협하면서 사회 분위기를 조장해 나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구약성서 잠언에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잠14:3)고 하였다. 또한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자기의 행동을 삼가느니라(잠14:15)고 했으며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잠14:16)고 하였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그래서 미련하여 판단이 흐리고 어리석은 사람은 온갖 유언비어에 유혹되고 분위기에 휩쓸려 방자하게 자만하다가 매를 자청할 것이고,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은 생각을 신중히 하여 악을 견제할 뿐만 아니라 행동과 언어를 절제하면서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조커가 누구 편이고 배트맨이 누구 편인가는 문제가 아니다. 분위기를 조장하려는 사람들이 수많은 조커와 배트맨을 만들어 내고, 그들로 하여금 영웅놀이에 빠져들게 하여 사회를 양분시키고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니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도 조작된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며 대처하는 슬기와 지혜가 무엇보다도 필요하겠다. 강종권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교수

[삶과 종교] 내면을 바라보는 시선

부처님께 대중들이 국가 존재의 의미를 질문 드렸을 때의 대답은 간결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스스로 화합해 만든 공동체이다 이와 같은 진리를 설하는 여러 논리의 가운데에서 우선으로 중요하게 사유해야 점은 개개인이 가진 존엄성의 가치에 있다. 부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대는 왕을 중심으로 국가의 체계가 조직되고 운영되던 수직적인 문화가 강조됐다. 지금처럼 개인의 권리인권을 강조할 수 있는 배경에는 문화를 창조하고 규칙을 운영하던 주체가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팔만사천의 법문의 중심에는 인간이 중시하는 휴머니즘이 기초를 이루고 이러한 사상의 토대 위에 인간을 위한 철학이라는 심오한 가르침을 구성하고 있다. 중요한 논점은 또한 여러 분야의 학문이 인간에게 어떠한 혜택으로 작용하는가를 첫째의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었다. 이러한 인간 중심주의를 더욱 진보시켰고, 보편적이고 평등한 견해를 견지하면서 신흥종교에서 빠르게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인간의 차별을 정당화했던 계급주의 타파를 완성하고자 노력했던 것이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인간을 만물의 중심으로 인식하는 오만한 사상이 현대사회에서 여러 자연재해와 사회적인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더라도 지금의 세상은 중심은 인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그에 알맞은 역량인 포용력과 관대함이 인간이 지나쳐 왔던 역사의 흐름에서 간절히 요구되는 시대이다. 인간만이 우월한 존재가 아닌 모든 생명체는 존재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평등주의를 견지해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가운데에서 세간(世間)은 세 종류로 이뤄졌다고 말씀 된다. 첫째는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환경인 기세 간이고, 둘째는 중생들이 서로 연결돼 영향을 주는 중생 세간이며, 셋째는 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오음세간이다. 그렇지만, 현실을 바라보면 서로 가슴에 상처를 남기도록 노력하는 행위를 선동하는 것이 아닌가를 고민하게 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자 존재하는 국가의 권력은 과연 정당하게 집행되고 합리적으로 견제되고 있는가를 되새기게 되는 현실이 씁쓸하다. 올해에는 예년과는 다르게 가을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다수 발생해 국민의 시름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화합해 국가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고, 서로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세력의 과시를 보여주는 듯하다. 나의 존재는 개별적인 생명체라고 인식할 수 있으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여러 경계로 구성된 세계이다. 이 세계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바탕은 자체에 부여된 질서이다. 국가의 질서는 개인의 사유나 특정한 집단의 정치철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서로 의견을 제시하고 합리적인 비판, 타협을 통해 결론이 도출돼야 한다. 나의 견해를 고집하는 현실과 나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았다고 타협을 거부하고 민주적 절차와 의무를 팽개치고 특정한 집단의 이익을 고집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한 사람은 곧 국가를 이루는 최소한의 구성원이고 국가는 이러한 구성원의 묵시적인 계약에 의지해 정치권력을 이양받아 우주에 내재하는 보편적인 질서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실천이다. 현재의 사회적 현상을 살펴보면서 남을 탓하기에 앞서 나의 내면을 세심히 살피고 인간으로서 근원적으로 지닌 휴머니즘의 가치를 냉철하게 성찰해 봤으면 한다. 세영 스님 수원사 주지

[삶과 종교] 잠시 멈추고 참 가치 돌아보기

이스라엘 민족의 지혜가 담겨 있는 탈무드에 나오는 돌멩이 가격 속 내용이다. 스승이 제자에게 돌멩이를 하나 주며 말했다. 이것을 시장에 갔다가 팔려고 하되 팔지는 마라. 이 말을 들은 제자는 시장 어귀에 깨끗한 하얀 보자기 위에 돌멩이 하나를 올려 두었다. 온종일 돌멩이를 앞에 두고 서 있는 청년을 보고 많은 사람이 비웃으며 지나갔다. 그런데 한 노인이 청년을 불쌍히 여겨 그 돌멩이를 사려고 했다. 내가 5천 원을 줄 테니 이 돌멩이를 나한테 팔고 저녁이나 먹고 들어가구려 제자는 팔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자 노인이 1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청년은 잠자코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들어 가격 흥정을 했다. 오만 원 십만 원 이십만 원 삼십만 원 오십만 원. 오천 원으로 시작된 돌멩이 값이 계속 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돌멩이가 엄청난 것인 줄 알고 서로 사려고 안간힘을 썼다. 마지막으로 처음의 그 노인이 비장하게 말했다. 백만 원을 줄 테니 나에게 파시오. 사람들은 입이 딱 벌어져서 포기하고 말았다. 나는 이 돌을 팔 수 없습니다. 단지 시세를 알아보러 여기에 나왔을 뿐입니다. 제자가 돌아오자 스승이 그를 보고 말했다. 알겠느냐? 사람들이 가격을 정하고 가치를 정하는 기준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우리의 인생기준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가치는 결정된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루키즘(Lookism) 시대라 한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시대라는 뜻이다. 내가 얼마짜리 옷을 입고 얼마짜리 신발을 신고 얼마짜리 액세서리를 하느냐에 따라서 내가 얼마짜리인가를 결정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기준이라는 것조차도 헛된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것은 내가 입은 겉치레에 달린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행동으로 삶을 살고 있는가에 달렸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치는 성경 말씀에 의하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마 16:26) 라고 한다. 한 사람의 목숨을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가를 볼 수 있다. 한 국가의 출발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한 사람을 사랑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우리나라도 사랑하게 된다. 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국가 사랑은 자칫 자신의 야망이나 아집에 불과하다. 상처 주는 행동과 폭력과 과격한 언어들이 서로 마음을 찢고 흥분하게 하고 싸우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부드러운 표현들을 하고도 얼마든지 자신들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 아무리 옳은 말도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면 그 말은 열매가 없다. 그런 말들에 대해서는 귀를 닫아 버리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모든 종교인들과 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극적인 단어로 사람들을 폭력으로 선동해선 안 된다. 더욱 지금은 나와 다른 주장을 펴는 사람들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우리들의 가치를 높은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이해와 존중은 신앙의 가장 기본이다. 다시 기본으로 잠시 돌아가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얻는 방법과 바꾸는 방법은 어떠해야 하는가? 를 돌아보며 참 가치 위에 우리나라의 품격이 담겨가길 기도한다. 조상훈 만방샘 목장교회 목사수지지부 FIM 이슬람선교학교장

[삶과 종교] 세월이 가면 알 수 있을까?

세월이 가면 알게 될 것입니다. 인생에는 성공도 없고 실패도 없다는 것을 오직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길만이 있다는 것을 세월이 가면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부자도 없고 가난도 없다는 것을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빈손이 되어 떠난다는 것을. 김용해 요한님의 시 「세월이 가면」의 일부이다. 세월이 가야 알게 되는 것들이 참 많다. 때로 당연히 알고 있다고 여겨졌던 무수한 것이 막상 냉혹한 현실 앞에선 진정 아는 게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중 죽음에 대한 우리의 앎이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우리 중에 150년 뒤에도 꼿꼿이 살아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실 우리는 가까운 가족이나 이웃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거의 매일같이 목격하며 산다. 모든 죽음이 그렇듯 당장에는 슬프고 안타깝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다. 우리는 다시 일상에 묻히고, 또다시 우리의 죽음을 나와 무관한 영역으로 미뤄두며 살아간다. 그 죽음이 나에게는 당장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우리의 생활은 항상 일이 먼저이고, 여전히 많은 일정을 소화해 내는 데에 온 마음과 정신을 쏟는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을 해야 하고 이왕이면 성공해야 하며 조금 더 바란다면 돈이 되는 일에 더 매진해야 한다. 종종 부모님을 찾아뵌다거나 가족들의 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뒷전이다. 그것은 또 때로 먹고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의 합리화를 낳는다. 절망스럽게도 우리는 우리 생에 대한 관전 포인트를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뒤늦게 깨닫는다.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알뜰하게 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숨을 몰아쉬는 직전에 가서야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무시하고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절망 속에서 숨을 거둔다. 죽을 때에 일을 더 하지 못해서 후회하는 사람들은 없다. 또 돈을 더 벌지 못해 후회하거나 더 높은 명예를 얻지 못해 후회하는 사람들도 없다. 하나같이 죽을 때 후회하는 것은 더 넉넉한 마음으로 살지 못해서, 더 사랑하지 못해서, 손 내밀어 용서하지 못해서 후회한다. 필자 역시 막상 아버지와의 이별을 맞이하고 보니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과 과정이 여간 쉽지가 않다. 그러니 내가 아는 것과 현실은 얼마나 먼 거리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 학창시절 한 교수 신부님의 말씀이 그러하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길고 먼 여행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여행이라고. 머리로 아는 것을 가슴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었을 게다. 나는 머리에서 가슴까지로의 여행길에서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가수 노사연의 노래 바램에는 이런 노랫말이 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도 고단한 주름살만 느는 늙음이 아니라 넉넉한 마음으로 영글어가는 익어감이었으면 좋겠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해진 날씨다. 우리 눈엔 그저 고요하게 보이지만 한 뼘 자라려고 1년을 치열하게 살았을 저 수많은 숲의 나무들과 들녘의 곡물들은 계절에 순응하며 이제 그 성장의 속도를 늦추고 열매를 내놓는다. 내려놔야 한다는 것과 때로 멈추어야 할 때를 알면서도 내려놓지도 멈추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내 삶은 진정 앎을 말할 자격이나 있을지 심히 부끄럽다. 이 깊어가는 계절의 길목에 서서 겸허히 나에게 묻는다. 방 안엔 며칠 동안 아무도 없었는데도 뿌연 먼지가 참 곱게도 쌓여 있다. 아무도 없던 방에도 이리 먼지가 쌓이는데 하물며 내 마음속은 그간의 숱한 만남과 일들로 하여 또 얼마나 많은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을까? 한 달 일정표는 벌써 해야 할 일정들로 빼곡하다. 잠시 마음의 창을 열어 환기를 시켜본다. 청명한 하늘만 바라봐도 금세 마음이 살찔 것 같은 이 가을, 조급한 발걸음 찬찬히 늦춰 걸으며 내일이면 후회할 것들과 세월이 가면 알게 될 것들에 대하여 잠시 생각에 잠겨 보는 건 어떨까? 김창해 천주교 수원교구 사회복음화국장 신부

[삶과 종교] 자신을 버려야 자신이 산다

조국 교수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것에 대한 국민 여론이 극렬하게 나뉘고 있다. 그리고 후대에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 역시도 나뉘리라 생각한다. 나는 조국 장관에 대한 온전한 평가는 앞으로 그가 장관직을 수행하며 걸어가는 길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제7장에 천장지구(天長地久)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땅은 영원히 오래간다는 말이다. 그다음 천지가 장구할 수 있는 까닭을 말하고 있다. 하늘과 땅이 장구한 이유는 자기부터 살겠다고 하지 않기 때문[以其不自生也]이라는 것이다. 신라 최치원(崔致遠)의 격황소서(檄黃巢書)로 한국에 잘 알려진 황소(黃巢, 835-884)의 난(875-884)이 있던 시기로 북송이 중원을 통일할 때(960)까지 거의 80여 년 동안 아비규환의 시대였던 당대(唐代) 말기와 오대(五代)의 대혼란기에 살았던 풍도(馮道, 882-954)라는 이가 있다. 그는 후량(後梁)을 시작으로 다섯 왕조를 거치면서 40여 년 동안 13명의 군주를 섬기면서, 재상을 지낸 기간만 20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동아시아 한자문명권에서 극명하게 나뉜다. 유가적 지향 인물들은 그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불사이군(不事二君)에 어긋나는 인물이었기에 혹독한 평가를 한다. 『신오대사(新五代史)』에서 송대의 구양수(歐陽修, 1007-1072)는 염치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였고,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은 간신의 수괴라고 하였다. 그리고 『속자치통감(續資治通鑑)』에서 호삼성(胡三省, 1230-1320)은 지위가 신하로서는 최고위까지 올랐건만 나라가 망해도 죽지 않고 그 군주들을 행인 취급한 위인이라고 비난했다. 반면에 어떤 이는 그를 절박한 시대에 역사적 소명을 충실히 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였다. 송대(宋代)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은 자신을 굽히면서까지 사람들을 평안히 해준 인물로 평가하며, 부처님이나 보살과 같은 격이라고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하나라의 걸왕을 섬기다 나중에 은나라의 탕왕을 섬긴 이윤에 그를 비유하기도 하였다. 명대의 이지(李贄, 1527-1602)는 풍도가 간신, 변절자라는 치욕스런 평가를 희생적으로 감수한 것이라 보았고, 그가 이런 희생을 감수한 까닭이 도탄에 빠진 무고한 백성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현대의 남회근(南懷瑾, 1928-2012) 역시 풍도를 노자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현명한 인물로 평가한다. 나는 여기서 누구의 평가가 더 옳고 그른지를 논하지 않겠다. 다만, 그의 평소 성품과 생활태도, 그리고 그의 업적은 무엇이고, 왜 역사적 평가가 갈리는지를 생각해보고 싶다. 그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는데, 거친 음식과 남루한 옷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주경야독을 하며 낮에는 일을 열심히 하고 밤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였고, 높은 관리가 되어서도 수행원과 한솥밥을 먹으며 검소하였고 소탈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정치적 수완이 남다르고, 윗사람이나 아랫사람 누구에게나 칭송을 들을 정도로 대인관계가 원만하였다고 한다. 그의 업적 가운데 가장 손꼽히고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최초로 구경(九經)을 목판으로 판각하고 인쇄해 간행했다는 것이다. 남회근이나 이지, 왕안석의 풍도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인 이유는 자신의 사사로움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조국 장관이 자신의 사사로움을 취하지 않고, 국민과 국가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헌신하는 장관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그가 그 자리를 떠났을 때, 자신을 비난하고 비판했던 이들에게도 존경을 받는 장관이 되길 바란다. 김원명 한국외대 철학과 교수

[삶과 종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울 수 있을까? 전래동화 콩쥐 팥쥐에 보면 계모인 팥쥐의 엄마가 콩쥐에게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워 넣으라고 심술을 부린다. 불가능한 일을 시켰다는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다나오스 왕의 딸 49명이 남편들을 살해한 죄로 지옥에서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형벌을 받는다. 물론 콩쥐는 두꺼비의 도움으로 계모의 심술을 일단락시키지만 다나오스 왕의 딸들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벌을 아직도 받고 있다. 과연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울 수 있을까? 조금 오래되었지만 2001년에 개봉되었던 달마야 놀자라는 영화에도 보면 이 선문답(禪問答) 같은 과제가 나온다. 속세에서 사고치고 산사로 숨어든 건달 일당과 수행 중이었던 스님들이 엎치락뒤치락 기(氣) 싸움을 벌이는 중에 노(老)스님이 던졌던 과제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먼저 채우는 쪽이 일승(一勝)하기로 한다는 것이다. 온갖 기발한 생각을 동원하지만 밑 빠진 독을 채울 수 없었던 한순간 건달 중 하나가 그 독을 들고 연못 속으로 뛰어들어 버렸다. 건달이 일승을 거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난 후에 건달 두목(?)이 노스님에게 자기들을 감싸주는 이유가 뭔지를 묻는다. 자기들에게 착하게 살라든지, 남을 괴롭히지 말라든지 뭔가 원하는 것이 있어서 자기들을 감싸주는 것이냐고 따지듯 하자 그러는 너는 밑 빠진 독을 어떻게 물속에 던질 생각하고 던졌는지를 노스님이 물었을 때 건달은 그냥 항아리를 물에 던졌을 뿐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때 노스님은 나도 밑 빠진 너희를 그냥 내 마음속에 던졌을 뿐이야. 나도 모르는 문제를 풀어놓고선 뭘 모른다고 자꾸 물어봐?라고 하신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울 수 있을까? 이 말은 밑이 빠진 독에 아무리 물을 부어도 채워지지 않듯이 노력이나 시간을 아무리 들여도 보람이 없는 일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래서 콩쥐에게는 계모의 심술로, 다나오스 왕의 딸들에게는 형벌로 적용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영원히 풀리지 않을 과제만은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밑 빠진 독 같은 문제, 밑 빠진 독 같은 인생이라 하더라도 내 마음에 던지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병에 물을 담으면 물병이 되고 술을 담으면 술병이 되며 꽃을 꽂을 때는 꽃병이 될 수 있듯이 우리의 마음에 신(神)을 담으면 신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면 아무리 밑 빠진 독일지라도 그 마음에 담기만 하면 신의 마음으로 채워져 어떤 어려움과 갈등도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사도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고 하였다.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스스로 낮추신 그 마음을 품으라는 말씀이다. 그래야 갈등도 해결되고 미움도 해소될 수 있다는 말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울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신의 마음을 품는 내 속에 던지기만 하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삶을 얼마든지 살 수 있겠다는 말이다. 강종권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교수

[삶과 종교] 종교인의 정치참여를 생각해 본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 나라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개인과 전체 모두가 적용되는 헌법의 수호를 받는다. 그런데 요즘 종교계 안에서 정치적인 논리와 정치활동을 하는 종교지도자들을 통하여 작지 않은 파장이 일고 있다. 과연 종교인들의 정치 참여는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성경은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관계가 정치적 관계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사는 이 사회는 정치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 정치적인 관계를 나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질서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보게 된다. 다스리는 자들은 자신들이 최고 상위에 있는 자들이 아님을 알고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며 그 사람의 직업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 것을 가르치며 또 낮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높은 곳의 사람들을 향하여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그 권위에 복종할 것을 가르친다. 이 말은 상호 사람의 존재를 존중하되 하는 역할에 대하여는 질서를 지키라는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기독교의 정치 목정에 대하여 가장 잘 보여주는 모습 중에 한 이야기가 있다. 18세기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노예무역이 전성기를 이루던 시기였다. 아메리카 대륙과 서인도제도의 대규모 농장산업이 발달하고 유럽의 식민지 확대정책 속에서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서인도제도에 판매하는 노예무역이 성행했다. 영국은 1771년 190척의 노예 무역선으로 연간 4만 7천 명을 운반했다고 기록할 정도로 노예를 사고파는 중심에 있었다. 동시에 기독교 정신에 따른 사회정의 실천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운동이 영국의 새로운 신앙운동으로 나타나면서, 인권의 문제와 노예무역에 대한 비판도 일어났다. 이 같은 시대배경 속에 노예무역 상인이었다가 성직자가 된 존 뉴턴은 젊은 정치인 윌리엄 윌버포스가 노예무역 폐지에 앞장서도록 영향을 끼친다. 윌버포스는 1789년 첫 노예무역 폐지 법안을 낸 이후 11번이나 법안 통과에 실패했지만 오랜 시간을 끈질기게 매달려 20여 년 만인 1807년에 노예무역 폐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1833년 영국의 모든 노예를 1년 내에 해방한다는 결정을 이끌어 내게 되었던 것이다. 정치적 행위는 사람들을 돕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해야 한다. 비인격적이고 비종교적이며 사람을 살해하는 언어를 함부로 말하는 종교적 정치형태는 금지되어야 한다. 종교인들의 정치참여가 금지되어 있지 않고 어느 부분은 사회참여가 필요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종교적 정치참여는 이미 종교의 틀을 넘어서 세상 정치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 보인다. 예수께서는 칼을 드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말씀하셨다. 주먹을 드는 자는 주먹으로 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웃에게 미련한 놈(라가)이라 하는 자는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나을 것이라 경고하셨다. 우리 모든 인간은 나하고 생각이 달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존귀한 존재임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축복하고 회복시키는 것이 바로 종교의 신앙이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저주하는 언어로는 치유와 회복이 일어날 수 없다. 답답하고 늦어 보여도 사랑하고 섬기며 눈물로 끌어 안아주는 사람이 분명히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온다는 성경의 말씀을 깊게 묵상하고 움직여야 하는 때가 아닐까 기도해 본다. 조상훈 만방샘 목장교회 목사수지지부 FIM이슬람선교학 교장

[삶과 종교] 조직사회와 역할

인간은 지구라는 행성의 역사에서 아주 짧은 시간에 만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하였고 신의 영역이라고 인식되었던 여러 부분까지도 그 이치를 구명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조건으로 첫 번째는 조직사회의 구성과 운영을 합리적으로 이끈 지식과 지혜가 뒷받침되었던 이면이 존재하고 있다. 같은 부류가 협동하여 살아가는 존재들은 사자와 같은 육식동물의 사회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으나, 우리들의 가까운 주변에서는 개미의 군집에서도 손쉽게 바라볼 수 있다. 따라서 조직사회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고 우주의 법칙에서 원초적으로 존재하였던 하나의 이치이다. 인간들이 동경하는 천상(天上) 세계의 천인(天人)들이 살아가는 삶의 과정에서는 더욱 세련되고 발전된 형태를 경전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현대사회에서 교육의 기초를 담당하고 있는 유치원과 비슷한 형태를 제시하고 있다. 『아함경』에서는 아기의 부모가 존재하더라도 일정하게 성장하는 시기까지는 남녀노소가 공동으로 양육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고 전한다. 이와 같은 천상의 세계에서도 계급에 따른 지위를 가지고 태어나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므로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역동적인 삶과는 차이가 있다. 이 세계에서는 인간들이 불합리하다고 인식하여 개선한 계급이 존재하고 있어 오히려 우리가 가진 기회의 평등은 적어지는 형태를 지니게 되고, 신분이 고착화되는 사회조직이 형성된다. 그러므로 부처가 이 세상에서 출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제자들이 국가의 존재하는 의미를 물었을 때에 부처님께서는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의무이다.라고 명쾌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국가는 조직 가운데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강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에는 그 조직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합의가 기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인간은 선과 악을 함께 선택하는 존재이고 이것은 스스로 업과 조직의 업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국가의 권력은 국민이 자신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를 위하여 지도자들에게 위임하였다고 말씀하셨다. 불교에서 말하는 전륜성왕의 조건의 가운데에는 군대와 신하를 언급하고 있다. 곧 전륜성왕도 군대와 정부가 없으면 통치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논리를 현재의 한국에 적용한다면 어떠한 시각으로 생각하여야 하는가? 현재 이 나라의 정치권과 정부의 역할은 국민이 지도자들에게 위임한 권력을 합리적으로 집행하고 있는가? 남을 탓하는 것이 아니고 내 탓이오.라는 겸손한 생각과 행동을 이 시대의 지도자들에게 기대하여 본다. 세영스님 수원사 주지

[삶과 종교]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양국 간의 관계는 1966년 6월 22일의 한일 기본 조약으로 인한 관계 정상화 이후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고 있다. 물론 과거 한국 정부는 몇몇 굵직한 사건으로 인해 국교 단절의 비상 카드를 꺼낸 들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의 사태는 그때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결과적으로 일본 정부의 무역 규제가 한국에서는 보복으로 받아들여졌고, 화이트 리스트 배제로 인한 경제 침탈이 시작된 시점에 정부는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는 등 나름대로 국제법과 국내법에 필요한 초강경의 대응 조치를 취해 가고 있다. 사건 이후 국내의 대표적 지상파 방송에서 막바지 일본 참의원 선거 유세 속에서 현 사태를 주시하는 그들의 속내를 살펴보았는데, 수출 규제를 정당하게 여기는 70% 이상 일본인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입장에서는 1965년 한일청구협정에서 약속한 청구권 포기를 어겨 더 이상 지금까지의 한국에 대한 우대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강제징용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을 내린 한국 대법원의 결정에 대한 명백한 보복성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는 안보상의 이유로 내려진 조치라고 하지만 그 이유가 타당하지 않다. 이와 함께 일본 내 여론은 현재 한국 정부가 북한과 사이좋게 지내고 중국 주도로 움직이는 데 대한 염려와 함께, 한국으로 수출된 것이 군사적으로 전용된다면 자기들 입장에서는 곤란하기 때문에 규제가 아니라 무역 관리를 제대로 하는 것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특히 여기에 한 몫 더하는 반한 감정을 부추기는 일본 정치인들의 서슴지 않은 언행과 무례함은 143년 전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에서 행했던 일본의 태도를 재현해 보는 것 같아 심히 불쾌할 정도이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은 좌와 우의 문제도 아니고 당론으로 각을 세울 문제도 아니다. 1591년 3월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왔던 조선의 동ㆍ서인 관료들의 각기 다른 보고는 이듬해 임진년부터 시작된 7년 왜란을 초래했고, 병자년 막바지인 1636년 12월 2일에 시작된 호란으로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던 조선은 주화론과 주전론자로 나뉘어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수치를 당하며 전쟁발발 2개월이 되기도 전에 항복했던 역사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지금의 문제는 국가의 이익이 우선되고 국민의 힘이 하나 되어야 할 때이다. 국가가 비굴하면 국민이 비참해진다. 그러므로 국민을 움직이려고 여론을 호도해서도 안 되겠고, 국민을 이용하려고 정치를 내세워서도 안 되겠다. 국민의 자발적 참여가 관건이다. 7년의 임진왜란이 항복으로 끝나지 않은 것은 백성의 의로운 자발적 참여가 있었기 때문이고, 2개월의 병자호란이 항복으로 끝난 것은 백성의 참여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국민의 동의를 받아낼 수 없고, 자발적 참여를 요구할 수도 없겠지만 2016년 10월의 촛불혁명 때처럼 한 사람 한 사람 국민의 자발적 참여가 필요할 때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구약성서에 한 사람이면 패하고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는데,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전 4:12)고 했다. 이 나라를 지탱하고 끌어가는 힘은 좌우의 이념이나 당론으로 움직이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이다. 정치가 기술이고 견제라면 국민은 힘이다. 국가 대 국가의 대립에서 국민의 협력은 절대적인 국가의 힘이 된다. 이후 정세의 추이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한 사람의 힘이라도 더 해 일본의 경제 침탈을 극복하는 저력을 보일 때이다. 강종권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교수

[삶과 종교] 기억과 화해

요즘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 조치에 맞서 일본산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일본의 부당한 처사에 이성적이고 성숙된 모습으로 움직이는 우리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 죠지 산타아나(1863-1952)는 그의 저서 이성의 생활에서 역사를 배우지 않는 이들은 그 역사를 반복할 운명에 놓이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E.H.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 했다. 우리는 역사에서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항상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을 배우게 된다. 새로운 것은 오래된 것에서 생겨나며오래된 것은 새로운 것에서 의미가 충만해진다. 지혜롭고 성숙한 사람은 자신을 성찰하며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일제의 침략으로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겪었다. 임진왜란과 한일합방 이후 겪은 우리 민족의 고통은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정신대 할머니들의 고통, 강제 징용자들의 피해, 독립 운동에 목숨을 바친 유공자들과 그 후손들에게 행해진 억압과 폭력에 대한 일본의 반성은 없다.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고 부정하며, 정당한 피해 보상에 대한 요구를 무시한 채 비상식적인 경제보복으로 맞서고 있다. 가톨릭 교회는 지난 2000년에 그리스도의 탄생 2000년을 맞아 큰 기쁨을 의미하는 대희년을 지낸 적이 있다. 먼저 교회는 2000년 대희년 3월 12일을 용서의 날로 정하고 지난 역사에서 교회의 아들딸들이 행한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미사를 봉헌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교회가 인류에게 저지른 과오를 기억과 화해 : 교회의 과거 범죄라는 제목으로 발표하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참회의 미사를 봉헌했다. 교회는 삼천년기를 준비하면서 참회를 통하여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고자 했다. 그리고 그러한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부족하지만 쇄신과 변화의 몸살을 지금도 앓고 있다. 우리의 신앙은 고백한다. 과거의 죄악과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정직하고 용기있는 행동이다.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서 어둠에서 빛으로 더 희망적인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아베 정부와 국민이 지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반성과 피해 보상을 통해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세계 평화와 인류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길 기대한다. 유주성 천주교 수원교구 해외 선교 실장 신부

[삶과 종교] 책 속에서 만나는 비전의 힘

인생을 살면서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는 참 많은 것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게 된다. 그중에 제일은 바로 책이다. 나는 책에서 인생을 배우고 학문을 배우고 삶을 배워왔다. 무더위와 장마가 시작되고 길거리보다는 시원한 곳을 찾게 될 때가 되어서 평소에 존경하던 한 어른의 책을 손에 들었다. 그 책 감동 편에 나오는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짐승 가운데 인간의 눈을 제일 많이 닮은 것은 무엇일까요? 동물학자들은 그것을 사자라고 합니다. 힘이 센 백수의 왕이라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자는 들판에서 사는 짐승이라 언제나 먼 지평을 바라보며 자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초식동물들은 발 밑의 풀만을 보고 다니기에 시야가 좁고 호랑이는 숲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먼 곳을 볼 수 없지만 사자는 들판에서 먼 곳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인간이 두 발로 서서 먼 곳을 바라볼 수 있기에 인간이라고 작가 선생은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지금, 여기의 발 밑이 아니라 먼 내일과 더 넓은 지평을 꿈꾸며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바로 인간만이 가진 꿈, 즉 비전(Vision)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꿈을 잃으면 우리는 현실의 여기에만 머무르게 된다. 우리가 가야 하고 찾아야 하는 것은 여기에 있지 않고 여기 너머 저기에 있을 테다. 가끔 종교를 향하여 쓴소리 하시는 분들 중에 종교는 배부른 자들의 사치라고 꼬집는 분들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종교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이 땅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형이상학적인 신앙의 문제가 어찌 한 술의 밥과 한 조각의 떡과 견주겠는가? 그러므로 종교는 배부른 자들이 갖는 철학적 사치의 성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삶의 고통의 문제 앞에서 인간의 한계를 직면했을 때 또는 배고픔의 절정에서 굶주림의 극에 달했을 때 그때에도 우리는 종교를 찾는다. 그것은 바로 눈앞의 현실의 문제 속에도 종교는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내 안에서만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고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주변의 자연을 돌아보면 그곳엔 창조주의 섭리와 이치와 인생의 길이 있다. 그리고 그 원리의 삶이 복음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눈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 우리의 인생의 답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을 찾게 된다. 우리의 두 발은 지금 우리의 인생을 오늘을 밟고 있지만, 우리의 눈은 더 넓은 미래의 꿈의 지경을 바라보며 오늘도 그 꿈들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다. 이 꿈꾸는 길에 이 더운 날 책 한 권 옆에 끼고 그 책 속에서 우리 모두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목도되는 걸음들이 되시길 축원해 본다. 조상훈 만방샘 목장교회 목사수지지부 FIM이슬람선교학 교장

[삶과 종교] 세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7월의 햇볕이 따가워지고 장마철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린 지도 여러 날이 지났지만 열기를 식혀주는 장맛비의 시원한 추억은 아직 낯설게 느껴지는 풍경이다. 지구촌의 여러 지역에서 폭염에 시달리고 있어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기상이변은 아닐지라도 백 년 전의 우리 조상이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현대와 같이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을 현실에서는 이성적인 사유보다는 감정적인 사고가 앞선 영향으로 하늘에 대한 원망과 인간 세상에 대한 자책이 공존하였을 것이다. 지구라는 행성도 하나의 유기체의 범주를 벗어나서 생명체의 기능을 갖추고 스스로 변화를 모색한다는 존재임을 인간은 오만하게 무시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면서 큰 지혜를 가질 수 있는 존재로서 석가모니불의 관점에서 관찰하였을 때 유일하게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존재이다. 물론 육도의 수직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인간세상 위에 천상이라는 세계가 펼쳐져 있으나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성불을 향해 있지 않은 사상적 특성으로 부처가 출현하기 어려운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세상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인간을 비롯한 중생들이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에서 존재하는 환경을 기세 간으로 구분하고, 중생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환경을 중생 세간으로 구분하며, 중생이 살아가는 몸을 오음세간으로 구분하고 있다. 즉 중생들은 나라는 존재와 우리라는 공동체와 환경이라는 세간(世間)에서 삶을 수놓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그물의 연결점과 같은 구조로 연결된 관계가 무한히 펼쳐져 있는 것이다. 항상 인식되는 관념에서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아도 모든 생명체는 대중을 벗어나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중에 대한 배려보다는 개인의 이익에 우선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금강경에서 첫째로 경계하는 아상(我相)이다. 이러한 아상이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아만(我慢)이 아닌 스스로 품격을 높이는 자존(自尊)으로 작용한다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인다. 자신의 품격을 지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의 품격을 존중하겠는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자리이타의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남을 자비롭게 사랑하는 존경심이 있음을 폭넓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기세 간에서 펼쳐지는 현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언론에서 지구촌이라는 단어는 낯선 표현은 아닌데 이해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갈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한국은 일본과의 과거부터 이웃이라는 관계가 무색하게 좋지 못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고 현재까지도 청산되지 못한 잔재가 많이 남아있다. 이러한 역사의 뒤안길에는 위정자들의 잘못이 우선적으로 부상하겠으나, 이와 같은 문제를 역사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국민의 몫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일본과의 통상마찰이 심각하게 대립하게 있는 상태에 이르게 된 이면에는 기초적인 기술적인 투자에 소홀했던 우리의 과거도 되돌아 보아야 한다. 한국의 현재의 현실은 중생 세간에서 벌어지는 사유의 법칙, 즉 이 시대의 사상적인 조류가 세계의 흐름과는 대치되는 현상으로 진행됐던 것이다. 중생 세간은 한국에만 펼쳐지는 것이 아니고 대륙과 해양을 넘어서 인류가 존재하는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까닭이다. 중생들은 이기적인 심성과 부처의 심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심성의 변화는 시대의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자신의 과오를 되돌아보지 않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며, 역사를 분석하지 않는다면 과거의 공업(共業)을 다시 되풀이할 뿐이다. 중생이 부처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현실의 세간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지혜의 눈이 첫걸음인 것이다. 세영스님 수원사 주지

[삶과 종교] 한여름, 아버지의 복숭아

지난 며칠 동안 폭염경보와 폭염주의보 발령이 있을 만큼 몹시 더웠다. 나는 무더운 여름이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더욱 생각난다. 아버지가 더욱 그리워지는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아버지 기일이 음력으로 7월 초, 양력으로는 8월 초 무더운 여름이기 때문이다. 둘째, 내 고향 시골 마을에 사시며 농사를 지으시던 아버지가 한여름이면 복숭아를 먹으러 시골 고향마을에 오라고 전화하시곤 했던 기억 때문이다. 나의 고향은 복숭아로 유명한 곳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한여름이면 늘 복숭아를 먹으며 자랐다. 할아버지가 우리 마을에서 가장 처음으로 복숭아 농사를 지으셨다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부터 우리 집 가까이에 복숭아 과수원이 있었다. 점차 동네 사람들은 우리집을 따라 밭이 있으면 대개 복숭아나무를 심었고 복숭아를 재배하게 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농사를 지어야만 맛볼 수 있는 복숭아 맛을 경험했다. 완전히 익은 복숭아는 냉장고 밖에서 2~3일 정도 지나면 농익어 물러버린다. 그래서 유통을 위한 복숭아는 현지에서 먹기 좋게 잘 익기 전 이틀이나 사흘 정도 먼저 따서 가락동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사먹는 복숭아는 하루 이틀 정도 덜 익은 것이다. 그러니 과수원의 나무에서 잘 익은 복숭아와는 맛에 차이가 생긴다. 복숭아 맛의 차이의 원인은 이 외에도 많다. 과수원의 위치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복숭아를 기르는 분의 기술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가지치기와 접과를 언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어떤 거름을 언제 어떻게 주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복숭아나무가 병충해에 얼마나 강한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또 같은 사람이 기르는 같은 과수원의 같은 나무라고 해도 그 나무 수령에 따라서, 또 같은 나무라고 해도 복숭아가 달린 가지의 위치, 또 같은 하나의 가지에 몇 과의 복숭아가 달렸느냐에 따라서도 미세하게 그 맛이 달라지는 것이다. 물론 보통 사람들은 이것들을 구분할 수 없는 것 같다. 또 나와 같은 고향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런 미세한 차이를 얼마나 잘 느끼는지 잘 모르겠다. 아버지는 복숭아 농사를 잘 짓는 편이셨던 것 같다. 적어도 우리 동네에서는 아버지가 복숭아 농사를 가장 잘 지으셨던 것 같다. 나는 맛의 차이가 느껴져서 고향 복숭아가 아니면 거의 사먹지 않는다. 나는 어려서부터 복숭아를 많이 먹고 자랐지만, 고향에 사는 동안에는 복숭아가 풍성했기 때문에 내가 복숭아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잘 몰랐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고향을 떠나 부천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복숭아를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름이 되었는데도 고향에 가서 복숭아를 먹지 못하면, 나는 안달이 났다. 한여름 주말이면 복숭아를 먹어야 해서도 고향을 가야 했다. 집에서 먹을 복숭아가 떨어지면, 더더욱 안달이 났다. 아버지는 내가 복숭아를 무척 좋아하는 걸 당연히 아셨을 것이다. 어느 해부터는 우리 과수원에서 가장 큰 복숭아를 따는 날이면 전화하셔서 복숭아 먹으러 오라고 하셨다. 5㎏짜리 복숭아 한 상자에 10개 이하가 들어가는 크기 복숭아면 최상품이다. 그런 복숭아가 나무에서 농익어 완숙된 것이라면, 그건 아마도 이 세상에서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것과 같이 맛있는 복숭아 맛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건 보통 사람들은 도저히 맛볼 수 없는 맛이다. 그런 복숭아를 직접 맛보려면, 어느 과수원이든 그것을 따지 않고 따로 익도록 놓아두어야 한다. 아버지는 그 복숭아를 놓아두시고 매해 나에게 전화했던 것이다. 이제 나는 아버지가 따로 남겨놓은 완숙된 복숭아 맛을 볼 수 없다. 나는 요 며칠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일명「부모은중경」)을 읽으며, 부모님의 자애와 자식의 효를 생각했다. 곧 다가올 음력 7월 초에는 아버지 제사가 있고, 음력 7월15일은 우란제일(盂蘭祭日)이다. 한여름이면 다시는 먹을 수 없는 아버지의 복숭아가 더 그립다. 김원명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

[삶과 종교] 대한문 유감

30년 전 구세군사관학교에 입교한 후 매주 목요일이면 대한문 앞에서 가로전도를 했었다. 브라스밴드와 탬버린 연주를 할 때면 바쁘지도 않은 걸음을 총총거리다가도 힐끔거리며 지나가던 행인들과 가끔은 한산한 광장의 한쪽에서 부끄러운 듯이 탁발하던 스님의 조용한 염불이 어우러지곤 했었다. 언제부턴가 그곳에는 온갖 시위대들이 우후죽순 진을 치고 있어서 한 번이라도 그 앞을 지날라치면 연간 불편하지가 않다. 지난봄 어느 토요일 오후 교우들과 함께 북악산을 등반한 후 창의문(彰義門)을 빠져나와 지하철 1호선을 타려고 서촌, 효자동, 신문로를 거쳐 정동 길을 걸어오다가 계획에 없던 덕수궁을 관람하기로 했다. 그런데 입구인 대한문의 작은 광장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이 북적거렸고, 심지어 대형 무대 차량까지 점거해 소란 피우는 통에 겨우 한 명 지날 수 있는 임시 통로를 이용하면서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대한문은 대한제국의 정궁이었던 덕수궁(경운궁)의 정문이다. 을미년인 1895년 일본 낭인들에 의해 왕비를 시해당한 고종 임금은 4개월 후인 이듬해 2월 11일 비밀리에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어(移御)하여 파천(播遷)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1년을 지낸 1897년 2월 20일 정궁이었던 경복궁으로 환궁(還宮)하지 않고 러시아와 영국, 미국 등 강대국의 공사관들이 밀집해 있었던 가까운 경운궁으로 이궁(移宮)한 후인 그해 9월 17일 고종 임금의 황제 즉위식과 더불어 경운궁은 대한제국의 정궁이 됐다. 원래 경운궁의 정문은 인화문(仁化門)이었지만 1906년 중화전 등을 재건하면서 동쪽의 대안문(大安門)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치고 궁의 정문으로 삼았으면 1907년 7월 일제의 횡포로 고종이 퇴위하고 순종이 즉위하면서 경운궁을 덕수궁이라고 부르게 됐다. 1910년 일제에 의해 늑탈될 때까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제국의 정궁 정문이었던 대안문(대한문) 앞에는 많은 시위가 있었다. 이전의 정궁이었던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에서 유림이 왕을 움직이기 위해 상소하며 시위했듯이 대한제국의 정궁 정문이었던 대안문(대한문)에서도 독립협회와 유림, 그리고 조선의 자주독립을 열망하는 선각자들의 상소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때는 그곳이 상소를 들을 수 있는 귀와 시위를 볼 수 있는 눈이 있던 정치적 장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곳은 제국의 중심지가 아니다. 백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의 덕수궁 대한문은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둘러보는 역사문화유산이 되어 더 이상 들을 귀도 없고 응답할 입도 없다. 정책을 요구하고 응답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시청 앞이나 청와대 앞으로 가면 될 것을 왜 굳이 좁은 대한문 앞을 점거해 관광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구약성서 잠언에 지혜 없는 자는 그의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 하느니라(잠 11:12)고 했다. 또한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잠 12:15)고 했다. 시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지혜롭게 적절한 장소를 택해서 하라는 말이다. 역사문화유산의 장소인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남겨두라는 말이다. 강종권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교수

[삶과 종교] 심는 대로 거두는 진리를 생각하며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이라는 독일 철학자의 논리를 굳이 끌어들이지 않아도 세상은 정, 반, 합의 역사로 만들어져 가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세상은 언제나 변하고 그 변화는 익숙함을 지키려는 힘과 변화를 원하는 새로운 논리를 원하는 힘의 충돌을 통하여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충돌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 낸다. 이 과정이 얼마나 서로 존중하며 합의해 나가는가에 개인이든 사회이든 국가이든 그들에게 선진국과 후진국이라는 등급이 매겨져 간다. 2천년 전 예수님이 온 세상의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계획을 실행하실 때 예수님을 체포하러 온 종교지도자들과 유대군인들이 예수님을 붙잡아 체포했다. 그때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 중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잡은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그의 단칼로 잘라버렸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를 지키기 위한 제자로서의 당연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자신을 보호하려던 제자 베드로를 향하여 칼을 사용하는 자는 칼로 망한다라고 야단치시면서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의 귀를 치유하여 주신다. 옳은 일을 하기 원한다면 그 방법도 옳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분명하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나라, 사회, 개인, 정치로부터 종교까지 돌아보면서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사회 전반에 걸쳐서 여론이 극심하게 양쪽으로 나뉘고 극단적인 표현들이 많아지고 있다. 모든 삶의 원리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다. 이 시대의 필요한 것은 서로에게 극단적인 돌을 던져 서로 공격함으로 이 나라가 선진국의 면모를 갖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며 기다려 주는 사회의 분위기가 우리를 선진국민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정치의 여야가 어찌 싸우지 않고 발전해 갈 수 있으랴마는 나라의 국민과 국익을 위하여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한목소리를 낼 수도 있는 성숙한 대통령과 국회와 지도자들이 있을 때 그 나라의 운명은 만들어져 간다.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줄 수 있을 때, 그리고 그들의 삶도 존중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성숙함의 태도를 이 땅에 심어갈 때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서 그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지나친 급진적인 말과 태도와 행동이 아닌 함께 모여 토론과 나눔과 대화가 살아나는 그런 성숙함의 대한민국을 꿈꾸어 본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즐겨볼 수 있는 그런 자신감과 여유를 기대해 본다. 그러고자 오늘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 모든 세상의 진리는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라시며 제자의 칼날을 야단치던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조상훈만방샘 목장교회 목사수지지부 FIM이슬람선교학교장

[삶과 종교] 공덕심과 이기심

인간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알맞은 기념일을 제정해 사회에 소속된 구성원들을 통합하고 공통된 목표를 이루고자 특정한 목표를 추구하게 된다. 이러한 기념일은 역사적인 산물로서 그 시대의 가치관을 담고 있으며 후세에 가치의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도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관의 근거가 특정한 사상이나 선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한 국가를 넘어서 인류에게 많은 고통과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다. 종교가 특정한 이념을 지향해 지금도 갈등을 유발하는 모습을 현재에도 우리는 살펴볼 수 있다. 또 특정한 지도자에 의한 선동정치에 의해 얼마나 많은 전쟁의 광풍에 여러 국가가 휘말려 들어갔던가? 세계대전을 겪고서 1세기도 지나지 않았으나 우리는 전쟁의 상흔을 가볍게 치부하고 민족의 분단과 대치 속에서도 과연 무엇을 위해 피를 흘리면서 갈등했는가를 냉철하게 사유하고 관조하는 자화상의 모습이 부족해 보인다. 대한민국은 과거의 많은 외침과 전쟁을 겪으면서도 국가의 독립과 가치관을 이어오면서 자긍심과 수준이 높은 문화를 이뤘으므로 우수한 민족임에는 틀림이 없다. 중국에는 50여 종족이 넘는 소수민족이 있고 그 가운데에서 대제국을 이룩하였던 청나라의 만주족은 현재 50만 명 정도가 남아있다고 알려졌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옛 왕조와 같은 번성하는 국가를 건립함에는 많은 현실의 제약이 따를 것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를 여러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겠으나 부처님께서 제시하는 법문에서는 국왕이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라고 설하셨고, 이와 같은 목적을 위하여 일반 국민은 권력을 국왕에게 임시로 위임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국가를 다스리는 위정자와 국민은 서로 지배하고 지배를 당하는 계급적인 신분이 아닌 서로 하나의 배를 같이 탄 존재라는 의미이다. 배를 운용하는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을 안전하고 신속하게 목적지에 닿을 수 있게 하면서 중간에 일어나는 여러 상황에서 발생하는 돌발적인 변수에 합리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선동적인 승객들의 행동에 휘말려서 배를 이끈다면 더 큰 고통을 자초할 수 있다. 한국에서 많이 강조되는 부분이 영웅심을 부추기는 여러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어느 시대에서든 영웅의 탄생을 기대하는 심리는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영웅이 존재한다는 현실은 인간사회가 많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또 다른 현실의 어두운 단면을 강조하는 것이다. 폭력에도 양면성이 존재하고 있어 국가에 의하여 위임받은 폭력이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트려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경우도 발견된다. 과연 인간이 인간을 대상으로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조금 더 나아가면 침략전쟁을 미화하면서 다른 국가를 파괴한 경우를 영웅시하는 경향도 역사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데, 극단적으로 인종청소라는 인간의 인성마저도 파괴하는 사례가 몇십 년 전까지도 발생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추악한 이면에는 집단의 이기심이라는 가면을 공덕심으로 포장해 대중들을 현혹시켰던 시대적인 패러다임이 우리의 내면에 숨어서 존재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인간들은 누구나가 궁극적으로 이기적이다. 그렇지만, 인간이 축생들과 다른 점은 이러한 이기적인 마음의 대중을 향하는 공덕심으로 변화시키려는 마음의 자세와 현실적인 노력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영웅을 찾고 영웅을 세우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영웅이 없었던 우리들의 삶이 무미하고 건조하였던 것은 아니었잖는가? 누구나 이기적인 마음에서 안주하고자 생각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탈피하고자 하는데, 세상의 이치는 단순하고 명확한 것이다. 내가 싫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고 내가 먼저 스스로 참고 인내하며 노력하는 것은 공덕심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공덕심은 멀리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나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작은 배려부터 실천하는 것이다. 세영 스님 수원사 주지

[삶과 종교] 통도사를 통해 본 고대 한국인의 종교적 통찰과 지혜

양산 통도사는 합천 해인사와 순천 송광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중 하나다. 불보(佛寶)는 통도사이고, 법보(法寶)는 해인사이고, 승보(僧寶)는 송광사다. 그래서 한국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보아야 할 절 가운데 하나다. 통도사란 이름은 통만법(通萬法) 도중생(度衆生)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통도사의 이름을 현대적으로 풀어 해석하면, 한편으로는 온갖 진리를 두루 꿰뚫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이 절을 처음 연 이가 원효(元曉, 617-686)보다 한 세대 위의 자장율사(慈藏律師, 590-658)다. 자장은 636년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643년 귀국하였다. 귀국 후 자장이 머물며 수행한 곳이 자장암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자장암이 통도사의 시작일 것이다. 통도사는 통도사 전각과 탑 그리고 암자 등 사찰 건축물과 탱화 등 불교적 유물 자체로도 그 의미가 크지만, 통도사를 감싸는 산과 들, 그리고 그곳을 만들고 지켜온 스님들의 수행과 신도들의 믿음이 어울려 지혜를 빚어내 비로소 온전한 통도사가 된다. 먼저, 통도사와 통도사를 감싸고 있는 영축산 이야기를 하겠다. 통도사의 뒷산은 영축산으로 해발 1천m가 넘는 높은 바위산이다. 그런데 이 높은 바위산이 병풍처럼 통도사를 둘러싸고 있다. 통도사의 뒷산인 영축산은 높은 바위산 모습의 강건함과 대나무 소쿠리같이 통도사를 넓게 둘러싼 모습의 넓은 포용력을 가진 온화함을 함께 갖추고 있다. 통도사 터는 바로 이런 영축산의 강건한 기와 유순한 기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통도사 터는 바로 한국불교 사찰의 종가라는 이름을 얻을 만한 기운을 지닌 터다. 다음으로, 통도사의 핵심인 금강계단을 이야기를 하겠다. 이 금강계단에서 계율을 받아야 스님의 도력이 비로소 생긴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 금강계단이 용이 살던 늪지대였고, 이 늪을 흙으로 메우고 금강계단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현재 대웅전 앞의 둥그런 모습의 연못과, 영산전 앞의 작은 연못은 이 절을 지키는 신장이 된 용의 출입구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늪에는 물의 신인 여덟 분의 용신들이 살았고, 이 용신들은 농경시대 전통신앙의 숭배대상이었다. 한국의 용은 유럽의 드래곤과는 다른 것이다. 유럽의 드래곤을 동아시아에서 용이라고 번역해서 한국의 용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가 전래되던 초기에는 외래종교인 불교의 고승은 전통신앙의 대상인 용신과 싸워서이기고 용신이 살던 늪에 절을 짓는다. 통도사에 전해지는 설화는 자장율사가 도술을 부려 아홉 마리의 용신이 살던 연못에서 여덟 마리 용을 쫓아내고 그곳에 절을 짓는데, 핵심이 금강계단인 것이다. 불교 전래 이전 신앙대상이었던 용신은 이제 부처로 대체되고, 마지막 남은 용신은 자장 율사에게 굴복하여 용신에서 멋진 용으로 변모하고 절을 지키는 신장으로 함께 숭배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극락보전 후면에 그려진 반야용선(般若龍船) 그림 이야기를 하겠다. 이 그림은 고승에게 굴복한 용신은 이제 지혜의 용신으로서 배가 되어서 앞에는 중생을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인왕보살, 뒤에는 지옥의 중생을 구제하는 대원보살인 지장보살을, 그 가운데에는 많은 중생을 싣고 생사의 파도를 타고 넘어가면서 극락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고대 한국인들이 그들의 산천(山川) 안에서 자라나온 토속종교와 외래종교인 불교를 그들의 산천 안에서 이해ㆍ흡수ㆍ융합ㆍ창조해온 그들의 통찰과 지혜의 모습이다. 김원명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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