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우리 스스로 한걸음이라도 떼자

최근 쏟아지는 북한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면 한반도 문제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이해할 만하다. 먼저 존 볼턴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은 그 선정적인 내용만큼 반응도 뜨거웠다. 정치 스캔들을 다루는 주간지에나 어울릴 것 같은 선정적인 표현으로 미국 정치의 속살을 보게 해줬다. 회고록 내용은 상당히 편향적이고 왜곡된 관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우리에게 무척 고마운 선물이기도 하다. 그동안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한반도 문제의 주요 등장인물들 역할과 속마음을 여실히 알게 됐기 때문이다. 회고록에서 언급되듯 볼턴과 일본 아베 총리는 중요한 고비마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북미협상 타결을 방해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앞으로 한국 정부에서 외교ㆍ안보 분야를 담당하게 될 책임자는 최소한 그들보다 몇 배는 더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은 물론이고 강한 의지와 추진력이 없다면 이 난관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북한 입장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북한은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만 도움을 요청하고 때때로 우리 정부를 배제하려 했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협상 실패로 북한은 큰 충격을 받았는데, 남한이 제안했던 영변 핵 폐기 카드를 가지고 협상에 임했기 때문에 원망이 더욱 컸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노력은 실제로 북미 간 의견 차이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비록 북한이 섭섭하게 느낀 점이 있을지라도 가장 믿을 수 있는 상대는 바로 남한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얼마 전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발표한 담화문을 보면 북한의 속내를 가늠해 볼 수 있다. 하노이 북미회담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에는 우리가 거래조건이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제재의 사슬을 끊고 하루라도 빨리 우리 인민들의 생활향상을 도모해보자고 일대 모험을 하던 시기였다고 언급한 대목이 있다. 우리 정부가 제시한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 공동번영의 비전에 북한도 상당히 호응했다고 보인다. 그래서 협상타결로 마무리되지 못한 것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당시엔 남북한 모두 플랜 B가 없었다. 사실 그동안 북미협상 실패에 대비한 대안을 준비하지 못한 근본적 이유는 미국이 합의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제시하는 방향을 그대로 따르지 않으면 동맹 관계에 금이 갈 것이라는 거짓 공포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동의하는 것과 반대하는 것 사이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지를 찾아 상대방을 설득하고 협상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국가 간 행위로서 이 때문에 한미동맹이 손상될 수는 없다. 지금 북한은 미국이 먼저 태도를 바꾸라는 입장이며, 대선을 앞둔 미국은 파격적 제안을 할 가능성이 작다. 그러나 마냥 기다린다고 저절로 기회가 조성되진 않는다. 미국 차기 정부가 우호적이라는 보장도 없고 외교안보 전략을 정비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오히려 바로 지금이 우리 정부가 나서야 할 시점이다. 경제제재가 해제되기 전이라도 남북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북미관계 개선을 전제로 하는 해법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남북 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 먼저 한걸음이라도 떼려고 노력할 때 북한과 미국도 우리를 존중해 줄 것이다. 민경태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아침을 열면서] 배금주의를 넘자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은 실패했다는 비판이 연일 제기되고 있다. 스무 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에도 서울 아파트 중위 값이 현 정부 들어 평균 3억원이 오르는 등 부동산 값이 폭등하고 있으니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질타는 어쩌면 당연하다. 이를 두고 야권은 공급보다 수요를 억제하고 시장에 맞서 시장을 억누르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주택 정책이 공급이 아니라 불로소득 차단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하지만 야권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의 부동산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시장주의에 기반한 공급위주의 정책도 부동산 가격 폭등과 가계부채 폭증을 비켜갈 수 없었다. 다른 상품처럼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상적으로 작동하지도 않는다. 인구는 감소하고 있고 가구 수도 조만간 감소할 상황에서 공급 부족 논리는 건설업자들 배를 불리는 일일 뿐 허상일 수도 있다. 과거와 다른 원인분석과 대응방식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선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부동산을 구매하고 있는가에 대한 분석이다. 한국감정원 발표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를 가장 많이 사들인 세대는 30대로 30.7%였다고 한다. 아무리 안정적인 수입이 있다고 해도 월급이 제자리인 시점에서 서울에서 9억원대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는 30대는 부모 찬스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이다. 미래 세대에 불평등을 대물림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둘째, 부동산 시장이 실물경제에 기반하고 있는가이다. 6월 한 달간 가계대출 규모가 8조원 이상 폭증했다. 주택담보대출 증가 규모는 5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조원 이상 늘어났다. 하지만 기업대출 증가율은 1조5천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도 줄어들었다. 대기업대출은 감소세로 전환됐고 중소기업대출은 소폭 증가하는데 그쳤다. 정상이 아니다. 셋째, 집값이 어떤 요인으로 하락했었는지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집 있는 빈곤층인 하우스푸어 문제가 제기되었던 시점은 2008년이었다. 정부의 부동산정책보다 미국의 금융위기라는 외생적 요인이 더 컸다. 외생적 충격요인이 정부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 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한가하게 지금과 같은 관료 주도의 기술적 부동산 정책으로는 비정상적인 투기 수요를 잡지 못한다. 특히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비정상적인 과열 현상의 요인이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 배금주의(맘모니즘) 때문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부동산 시장에 어슬렁거리는 배금주의의 유령은 경제 효율성을 저하하고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며, 민생구조를 파탄 내고 말 것이다. 한탕을 노리는 투기세력들이 준동하지 못하도록 불법 사행성 게임을 근절하듯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 아울러 보다 근본적인 방안으로는 부동산에 대한 시민의 인식 전환을 꾀하는 일이다. 오늘의 부동산 공화국을 만든 원죄는 집이 불법도박장과 같은 투기의 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을 공공재로 보는 시각과 집은 주거가 목적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다. 너무 이상적이거나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지난 2008년 집에 대한 인식을 묻는 한국리서치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거처 목적이라는 응답이 62.5%로 소유 목적이라는 응답 36.0%보다 26.5%p나 더 높았다. 우리 사회가 2008년도 이전으로만 돌아갈 수 있어도 가능한 일이다. 오현순 매니페스토연구소장

[아침을 열면서] 날 잊지 말아라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 다 가고 있다. 지난 6월25일에는 문재인 대통령 주관으로 625 전쟁 70주년 호국 보훈 행사가 있었다. 미국 하와이에서 봉환된 한국군 전사자 147위 유해를 맞이하는 뜻깊은 행사였다. 이날 행사 주제는 전사자들을 기리는 영웅들에게 경례(Salute to the Heroes)였다. 정부는 이 영웅들에 대해 625 행사 최초로 조포 21발을 발사해 국가 원수급 예우를 했다. 그러나 이날의 호국보훈 행사는 또 다른 진정한 영웅들을 잊고 있었다. 바로 6ㆍ25 전쟁 시 북한의 포로가 돼 살아서든, 유해로든 돌아오지 못한 영웅들이다. 625전쟁 정전협정 직후인 1953년 8월 유엔군사령부는 북한군ㆍ중국군에 포로가 되거나 실종된 국군 규모를 8만2천318명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1954년까지 진행된 포로교환을 통해 귀환한 국군은 8천343명에 불과하다. 최소 7만여명의 국군이 포로로 남았거나 실종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군과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거듭 제기했지만 북한은 그때마다 다른 인원들은 전향했다. 국군포로는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1994년 국군포로였던 조창호 소위가 극적으로 탈북에 성공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조 소위의 탈북은 북한 주장이 거짓임을 온몸으로 증거했다. 돌아온 국군포로나 탈북자의 증언 및 각종 자료 등에 따르면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들은 북한에서 인간 이하의 비참한 삶을 노예처럼 살았고 또 살고 있다. 이들은 불발탄을 해체하다 죽고, 광산 유독가스에 숨 막혀 죽었다. 손가락이 잘렸는데도 곡괭이를 들어야 했다. 지난 25년 동안 탈북해 귀환한 국군포로는 80명이다. 귀환 국군포로 숫자는 1994~1999년 8명에 불과했지만 2000년 한 해에 9명으로 늘었다. 2001년과 2002년엔 각각 6명이었다. 2004년엔 14명에 달했지만 2005년부터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2010년 1명을 끝으로 국군포로가 탈북 귀환했다는 소식은 없다. 2010년 이후로는 국군포로들의 연령이 90세 안팎에 달할 정도로 고령화가 진행돼 자력으로 귀환할 여력이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방부 기록에 의하면 생존자는 지난해 9월 기준 24명이다. 국군 포로를 돕는 인권단체인 물망초(날 잊지 말아라)의 박선영 이사장은 이제 230명 정도만 생존하신 걸로 추정한다고 했다. 정말 시간이 없다. 국가는 북한에 정당하게 제의해서 생존한 영웅들을 최대한 빨리 귀환시켜야 한다. 또 유해 발굴작업도 추진해서 돌아가신 영웅들의 유해를 신속히 봉환해야 마땅하다. 전 세계 경찰국가로 세계 분쟁에 관여하는 미국은 단 한 명의 병사도 적지에 남겨 놓지 않는다. 유해라도 반드시 데리고 온다. 지난주 봉환된 147위의 국군유해도 북한이 아니고 미국으로부터 봉환됐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의 수차례 진행됐던 남북고위급 및 정상회담에서도 국군포로에 대해 북측에 제의하지도 못했다. 국가를 지키려다 적지에 남은 국군 포로들은 70년째 남쪽을 바라보며 대한민국 정부가 구해줄 것이란 희망을 품고 있을 것이다. 도대체 이들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이들 7만의 영웅들은 우리에게 지금 잊혀 가고 있다. 우리는 그들 앞에 모두 죄인이다. 6월이 다 가는 월요일 아침을 열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7만여명의 돌아가셨거나 살아계신 진정한 영웅들의 절규를 대신해 외쳐본다. 날 잊지 말아라. 내 맘에 맺힌 조국이여! 김기호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아침을 열면서] 남북관계 우리도 잘못한 것은 반성하자

2018년 남북 정상이 합의한 4ㆍ27 판문점 선언. 그 결실로 탄생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북한이 일방적으로 폭파했다. 게다가 최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쏟아내는 무례한 담화는 우리의 분노를 사고 있다. 북한의 잘못을 열거하자면 이 지면을 다 채워도 부족하다. 하지만 북한 비판은 잠시 접어두고 지금부터는 냉정하게 무엇이 문제였는지 되돌아보고자 한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쉬운 일이 북한 비난인데, 북한학자로서 쉬운 길로 가기보다는 필요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북한은 왜 이렇게 과격한 반응을 보일까. 일차적 원인은 전단 살포 문제인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적대 행위를 중지하기로 약속한 남북합의를 우리가 지키지 못한 것은 큰 오점이다. 그밖에 북미관계가 교착된 상태에서 남한으로부터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고 판단하고 대미협상 레버리지를 위해 긴장을 조장한다는 해석, 그리고 경제난으로 주민 불만이 높아져서 북한 내부를 단속하기 위함이라는 해석도 있다. 어쨌든 이런 식의 분노 표출은 북한 내부 상황이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매우 과격한 방식으로 SOS 신호를 보내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북한 경제는 극심한 위기에 처해 있다. 무역의 95%를 중국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대북제재 강화로 석탄철광석수산물 등 주요수출품목이 금지되고, 최근엔 코로나19 때문에 밀무역마저도 거의 중단됐다. 2020년 대중수출 전망은 2015년 대비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무역수지 적자로 외화 잔고가 바닥나서 생필품 수입이 중단되고 물가가 폭등하면 체제가 위협받을 수 있다. 한때 북한은 큰 변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이 능라도 5ㆍ1 경기장에서 15만 명의 평양 주민들에게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한 것은 과거엔 상상할 수 없었던 파격이었다. 우리가 제시한 남북 공동번영의 비전을 북한이 믿고 응해준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기대를 저버리는 실망스러운 결과만 이어졌다. 단적인 예로 2018년 말 독감치료제인 타미플루 지원에 남북이 합의했으나, 미국과 유엔사가 대북제재 저촉을 문제 삼아 승인이 계속 지연되다가 결국엔 지원이 무산되기도 했다. 북한에 트라우마를 남겨준 결정적 사건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협상 실패였는데, 이를 계기로 남한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원망이 고조됐다. 이후 북한은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관광 사업에 모든 노력을 쏟았다. 관광단지 개발현장에 김정은 위원장이 여러 차례 현지지도를 나가면서 독려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코로나19로 헛수고가 되면서 북한 정권의 지도력이 손상되는 위기를 맞았다. 반면 남한은 성공적인 코로나19 대처로 국제사회의 위상이 높아지고 G11 정상회의에 초대됐다. 자신들의 절박한 입장을 남한이 외면한다고 생각한 북한은 이제 서운함을 넘어 배신감을 느끼는 듯하다. 남북한 모두 서로에게 분노가 있지만 이제 그 악순환을 중단해야 한다. 정부 대처가 굴종적이라고 비난함으로써 남북 간 기 싸움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 이 상황을 냉정하게 관리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보자. 만약 정부가 잘못하거나 실행력이 떨어지면 국민이 나서서 강하게 질책할 필요도 있다. 국민의 뜻을 모아 오히려 대외협상력을 높이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강대국 사이에 끼여서 한반도 평화를 향한 어려운 길을 열어가는 우리 정부, 이제 진용을 가다듬고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도록 국민이 힘을 실어줘야 한다. 민경태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아침을 열면서] 국회, 일 열심히 할까봐 두려운 현실

미래통합당의 보이콧 속에 선출된 박병석 신임 국회의장은 국민의 국회, 국민을 지키는 국회, 국민이 원하는 국회, 국민의 내일을 여는 국회를 당부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신임 국회의장의 이와 같은 메시지가 지금까지 국민의 국회가 아니었다는 반증이며, 21대 국회에서 실현될 것이라 믿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20대 국회의 입법 성적은 낙제에 가깝다. 4년간 발의한 법안의 3분의 1 정도만 처리했을 뿐이다. 20대 국회에서는 총 8천904개의 법안이 처리됐다. 그마저도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141건의 안건이 2시간40분 만에, 1분13초마다 하나의 안건이 처리됐기에 가능했던 수치다. 17대 58%, 18대 55%, 19대의 45%와 비교해 확연히 부진한 성적표다. 입법부가 법을 무시한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져 후속 입법이 필요했던 법안의 처리 시한을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예산안의 법정 처리 시한을 단 한 번도 지키지 않았다. 공정한 피감기관 감시를 위해 상임위 배정 시 이해충돌 회피를 명시하고 있는 국회법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자초하기도 했다. 20대 국회가 최악국회, 식물국회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유는 결국 입법부로서의 역할 방기였다. 그렇다면 21대 국회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으로는 21대 국회 또한 그다지 큰 기대를 하기 어려울 듯 보인다. 매니페스토실천본부 발표에 따르면 GTX, KTX, 철도, 고속철, 지하철, 전철, 도로 등 SOC 공약이 후보자들의 전체 공약에서 14%를 차지했다. 입법 공약은 거의 없고 건설, 조성, 유치 등 지역개발 사업이 국회의원 공약의 대부분이었다. 희망상임위도 국토교통위 45.9%,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산자위) 31.5% 등이었고, 성평등 실현 등을 다루는 여성가족위는 2.5%에 불과했다. 이를 두고 국토교통위와 산자위에 소속된 의원들은 생환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것을 핑계로 유야무야 넘기려 할 뿐이다. 실제로 이번 총선에서 20대 현역 의원 전체 당선 비율은 41.7%였으나 국토교통위 소속 의원의 생환율은 56.7%로 가장 높았다. 산자위 소속 의원들도 평균 생환율보다 높은 44.4%였다. 하지만 이들 상임위 경험을 가진 위원 중 금품수수 등 비리나 논란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거나 구속된 의원들이 다수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0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입법권을 사유화한다는 비판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이해충돌 회피를 명시하고 있는 국회법 48조 7항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자금 수수 사건 재판이 진행 중인 국회의원들이 앞다투어 법제사법위를 지망하고 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금융기관 채용비리 사건에 연루됐던 의원은 버젓이 정무위 배정이 거론되고 있다. 부동산 정책과 세법을 다루는 국토교통위와 기획재정위에 부동산 부자의원들이 몰리고 있다. 이쯤 되니 국민의 국회로 거듭나겠다는 신임국회의장의 국회 당부가 현실화될지 강한 의문이 든다. 어쩌면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적 이익을 위해 일을 너무 열심히 할까 봐 두려운 것이 현실이다. 너의 섬, 여의도(汝矣島). 서민의 고단한 삶과 함께할 때, 입법부로서 역할에 충실할 때, 지역의 이익을 넘어 공존의 가치에 충실할 때, 특권을 내려놓고 국민의 봉사자로 일할 때만이 국민의 국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아직은 국회에 거는 기대가 남아있기에 드리는 고언이다. 오현순 매니페스토연구소장

[아침을 열면서] 유월의 강을 잘 건너야 한다

송한준 유월이다. 파주 동화경모공원에 모신 아버지가 늘 마음 아파하셨던 달이다. 전쟁으로 헤어진 부모ㆍ형제, 북에 두고 온 가족을 평생 그리워하셨다. 아버지가 술잔을 기울이실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실향민 가족으로 살다 보니 나에게도 유월은 특별하다. 무거운 마음으로 호국보훈의 달을 맞았다. 올해는 6ㆍ25 전쟁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전쟁은 77만여명의 사상자를 냈고, 수많은 이산가족과 전쟁고아를 만들었다. 3년 뒤인 1953년에 총성은 멈췄지만 휴전이라는 미완의 과제를 남겼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수식어는 시간이 더할수록 물리적 분단에서 심리적 분단으로 확대됐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올해는 6ㆍ15 남북 공동선언 20주년이기도 하다. 2000년 조국 분단 후 첫 정상회담이 있었다. 이때 남북 정상은 자주적 통일 노력, 양측 통일방안의 공통점 인정, 이산가족과 비전향 장기수 문제 인도적 해결, 경제협력과 교류를 통한 신뢰 구축, 남북대화 조속 개최라는 5개 조항에 합의했다. 남북한 국방장관 회담을 비롯한 군사실무회담도 이어졌다. 이후 남북한 교류 협력에 많은 진전이 있었다. 6월6일은 현충일. 국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수많은 호국영령의 명복을 비는 날이다.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추모하는 국가추념일이기도 하다. 경기도에는 31개 시ㆍ군마다 현충탑이 있다. 6ㆍ25 전쟁에 참전했던 용사들의 헌신과 희생을 기리는 참전용사 기념탑도 곳곳에 있다. 자유가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으로 얻어진 것임을 잊지 않는다면 호국 유적지를 찾아 경건하게 예를 갖추는 것이 어떨까. 최근에는 훈훈한 소식이 들린다. 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으로 방역물품이 모자라 애태우는 나라가 많은데, 그중 6ㆍ25 참전 국가에 우리나라가 구호 물품을 보냈다. 부연하면 국가보훈처가 6ㆍ25 전쟁 22개 유엔 참전국의 참전용사에게 지난달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마스크를 지원했다. 이와는 별도로 각 자치단체도 지역 수호에 공헌했던 참전용사들에게 방역 물품을 전하기도 했다. 이런 것이 알려지자 대한민국은 고마움을 잊지 않는 나라로 전 세계에 인식됐다. 유월은 빛나는 달이기도 하다. 1일 의병의 날은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민중이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 왜적과 싸운 것을 기린다. 6ㆍ10 민주항쟁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장기집권을 저지한 범국민적 민주화 운동이다. 코로나19 위기를 잘 대응하는 국가로 세계가 격찬하는 대한민국의 모범 방역 원천은 자발적 참여 민주주의 시스템에 있다고 분석한 이도 있다. 그래서 유월은 한편으로는 아프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운 달이다. 남북 분단의 슬픔은 실향민 가족의 마음에서, 지난 비극의 역사에서, 또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에서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대북 전단 살포 문제가 불거져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깝다. 이는 4ㆍ27 판문점 선언에 위배되고, 파주연천 등 북한과 접경된 지역에 사는 주민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은 생전 전북대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전망이라는 강의를 통해 선비적인 문제의식과 상인적인 현실감각을 강조한 바 있다. 이상과 현실의 균형감각이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70년 분단을 넘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노력하는 지금이야말로 꼭 필요한 말이다. 오늘은 내일의 역사, 우리 앞에 흐르는 유월의 강을 잘 건너야 한다. 송한준 경기도의회 의장

[아침을 열면서] 세상이 목격할 ‘새 전략무기’

코로나로 전전긍긍하는 사이 어느새 6월이다. 그러나 우리가 코로나로 정신없이 보내는 사이에 북한은 세상이 목격하게 될 새 전략무기를 준비하고 있다. 북한은 겉으론 비핵화를 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신형전략무기의 4종 세트를 비롯한 새 전략무기를 개발해 왔다. 지난해와 지난 5월까지 18차례 발사시험을 해서 실전배치를 목전에 두고 있다. 더구나 유엔제재와 코로나로 국경을 봉쇄해서 경제가 바닥을 치고 있음에도 북한은 무섭게 새 전략무기를 개발해 오고 있다. 최근 북한이 새 전략무기를 완성한 것 같다. 지난주 두 번째 20일 이상 잠적했던 김정은이 또 깜짝 등장해서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지도했기 때문이다. 이 회의에서 김정은은 △나라의 핵전쟁 억제력을 더한층 강화하고 △전략 무력을 고도의 격동 상태에서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방침들과 △인민군 포병의 화력타격 능력을 결정적으로 높이는 중대한 조치를 강조했다. 김정은이 지도한 3가지 새로운 방침은 다음과 같은 충격적 실제 행동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세상이 목격할 북한의 새 전략무기는 잠수함발사탄도탄(SLBM)일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SLBM을 수중전략탄도탄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새 전략무기는 SLBM일 가능성이 크다. 진수가 임박한 신형 3천t급 잠수함에 고체연료인 북극성-3형 2~3발을 꽂아서 수중발사할 것이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은 북한이 3천~4천500t에 이르는 핵추진잠수함에서 SLBM을 발사하는 전략원잠(SSBN; Ship Submarine Ballistic missileNuclear)을 시현할 가능성이다. 전략원잠(SSBN)이야말로 미국의 심장을 겨누면서 진정한 제2격력(Second Strike Capability)으로서 핵 억제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세상이 목격할 북한의 새 전략무기는 고체연료 기반의 다탄두 대륙간탄도탄(ICBM)이거나 이스칸데르 및 에이태큼스 미사일일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지난해 서해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고체연료 연소시험을 했고, 2017년 11월29일에 이미 미사일 앞부분이 둥글어 탄두 2~3발 장착 가능한 화성-15형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은 고체연료를 사용한 500㎏의 핵탄두를 운반 가능하며 요격이 까다로운 북한판 이스칸데르급 미사일과 에이태큼스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셋째, 한국이 목격할 북한의 새 전략무기는 신형대구경(400㎜) 조종방사포 및 600㎜ 초대형방사포일 가능성도 높다. 북한은 지난주 이례적으로 포병전문가인 박정천 총참모장을 대장에서 차수로 진급시켰다. 포병애호가인 김정은과 포병전문가인 박정천의 조합은 또 다른 연평도 포격도발의 예고편이다. 연평도 포격도발 때도 포병애호가인 김정은과 포병전문가인 총참모장 리영호 차수와의 합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목격할 새 전략무기는 북한 말대로 6ㆍ25 조국해방전쟁 및 7ㆍ27 전승절에 맞춰 충격적 실제행동으로 보일 것 같다. 절대왕이자 신인 김정은이 당중앙군사위에서 고도의 격동 상태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온통 코로나에 팔려 있으면서 북한의 새 전략무기는 애써 무시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필자가 양치기 소년으로 매도당할 것 같은 6월의 첫날 아침이다. 김기호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아침을 열면서] 북한 포함한 ‘한반도뉴딜’로 확대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연설에서 한국판뉴딜을 국가프로젝트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대응의 모범으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국가기반시설의 스마트화 등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선도형 경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K-방역을 시작으로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K-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뉴딜의 공간적 범위를 국내에 한정하지 말고 북한을 포함하는 한반도뉴딜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남북협력 뉴딜은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 첫째, 4차 산업혁명 기술 분야에서 상호보완적 협력이 가능하다. 세계 각국에서 스마트시티가 시험 되고 자율주행차원격교육원격의료 등 기술이 발전했으나 실제로 구현하는 것에는 기술 외적인 어려움이 있다. 기존시스템의 기득권 집단으로부터 저항이 예상되므로,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고 관련 법률을 마련하는 등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북한이 추진하는 경제특구에 특별법을 적용해 첨단시스템의 테스트베드를 구축한다면 신속한 정책추진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분야에서 남한의 기업연구소가 북한의 컴퓨터 프로그래밍 인재를 양성해 활용하는 방안도 유망하다. 둘째, 한반도 차원의 국가기반시설 구축을 통해 미래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뉴딜 경제권을 동북아와 유라시아로 확대하기 위해선 한반도의 대동맥을 다시 이어야 한다. 북한을 통과하는 고속철도망이 구축된다면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 해양을 연결하는 접점으로서 한반도의 지리경제학적 잠재력을 되살리는 길이다. 경제적 영토가 확대되면 다양한 경협 사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 기회도 무궁무진하다. 우리 젊은이들은 앞선 기술과 아이디어로 북한 젊은이들과 함께 벤처기업을 창업하고, 중장년층은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하여 북한이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교육자문멘토링 등으로 기여할 수 있다. 셋째, 경제적 번영에 더불어 한반도 평화를 확보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평화경제는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이다. 남북의 평화는 경협을 통해 번영의 바탕이 되고, 경제적 성장은 다시 평화를 공고히 한다. 그런데 지금 북한은 제재로 인해 어려운 경제상황이 코로나19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시스템으로부터 고립된 북한을 그대로 놓아둔 채 남한만의 뉴딜로 격차가 확대된다면 미래 한반도 번영에 위협이 된다. 지금부터라도 남북한 경제적 격차를 완화하고 사회적문화적 상호 이해를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 미래세대 통합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 한반도뉴딜을 추진하기 위해선 대북 경제제재 완화가 시급하다. 우선 인도적 차원에서 보건의료 협력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북한 의료시스템을 선진화하는 것은 남북 주민의 안전한 교류와 한반도 인적자원의 확보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제재로부터 자유로운 관광 분야에서 남북 경협을 이어가야 한다. 아울러 철도는 비상업적 공공재로서 제재면제 조치를 적용할 수 있으므로 국제사회를 적극 설득할 필요가 있다. 그 어느 것도 쉽게 이뤄지지 않겠지만 북한을 포함하는 한반도뉴딜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번영을 가져올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 남북협력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K-모델을 만들어 전 세계에 보여줄 때다. 민경태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아침을 열면서] 한국형 뉴딜, 어디로 갈 것인가?

왜 사람들은 글을 읽다가 중요한 문장이 나오면 습관처럼 줄을 긋고 별표를 달게 되었을까. 별표를 달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애스터리스크(asterisk)는 little star(작은 별)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asterikos에서 왔다. 재앙이라는 뜻의 디제스터(disaster)는 그리스어로 별(aster)이 없는(dis) 상태를 의미한다. 망망대해에서 선원들에게 별은 항로의 방향을 잡아주었고, 별이 사라진다는 건 죽음이나 다름없었다. 한 사회가 큰 재난이 발생했을 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으면 더 큰 혼란과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방향을 잃고 혼란해진 틈을 타 경쟁과 돈으로 생존을 사고파는 끔찍한 방향으로 사회가 변하고 있다. 재난을 이윤 추구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자본주의를 가리켜 나오미 클라인은 쇼크 독트린: 자본주의 재앙의 도래에서 재난 자본주의(disaster capitalism)라 이름을 붙였다. 재난을 기회로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결탁해 공공의 부를 사물화하고 불평등을 확대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지난 7일 제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한국판 뉴딜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3대 프로젝트로는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사회간접자본 디지털화로 설정했다. 디지털 경제로의 가속화가 기본 방향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 한국판 뉴딜에도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희망의 좌표인 별, 방향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19 위기 국면을 틈타 재벌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른바 재난 자본주의가 심화될 것이라는 비판과 사람 없는 경제, 탈고용 경제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실 한국형 뉴딜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단골처럼 등장했다. 건설 산업이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다는 전제하에 건설 산업을 연착륙시키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새로운 합의(New Deal)라는 철학(방향)이 제거되고 방법(토목사업)만으로 사업이 진행됐다. 결과적으로 집값만 올렸다는 노무현 정부의 한국형 뉴딜, 녹색도 뉴딜도 없다는 비판을 받았던 이명박 정부의 녹색 뉴딜, 3대 미스터리라 불렸던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도 사실은 스타트뉴딜을 말하는 것이었고, 모두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세계적인 재난을 이용해 돈을 버는 백만장자가 미국에서 단 한 명도 나오질 않길 바란다. 뉴딜 정책을 추진했던 루스벨트 대통령이 제2차 세계 대전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자들을 강하게 비난한 말이다. 그가 추진했던 뉴딜은 토목사업 확대가 아닌 구제와 부흥, 개혁을 내세운 그야말로 정책의 방향을 대전환하는 혁명이었다. 한국형 뉴딜 또한 재난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합의, 과거와 다른 방식의 대전환으로 방향을 재검토해야 한다. 한국형 뉴딜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 지구 생명체를 구해야 한다.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3조원가량 더 필요했던 긴급재난지원금의 전 국민 지급 방침에 난색을 표하며 시간을 끌었던 기재부가 대기업에 지원되는 40조원가량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은 무섭도록 빠르게 처리했다. 공존의 가치는 소수 기업의 이윤보다 소중하다. 혁신성장의 이름으로 추진했지만 지지부진했던 대기업친화적인 사업들을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조성된 불안감으로 돌파하겠다는 것이 한국형 뉴딜 정책이라는 비판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오현순 매니페스토연구소장

[아침을 열면서] ‘사람 중심’이어야 산업재해 막는다

송한준 사흘 전, 이천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화염과 유독가스가 앗아간 노동자들의 목숨, 그들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마음 깊이 용서를 빌었다. 조문을 마치는 심정은 비통했다. 이천 물류창고에서 지금까지 밝혀진 당시 현장 상황은 여러 하청업체가 한꺼번에 우레탄 폼 시공과 용접 작업 등을 동시에 진행했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해양연구원 노조위원장 시절, 지역사회 봉사의 일환으로 노숙자 무료급식 시설을 조성하는 데 함께했다. 그때 용접이며 미장 등 건설 현장의 일을 배웠다. 짧은 경험이었지만, 서로 다른 분야의 작업이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몸소 체험한 바 있다. 이번 화재 사고 원인도 안전관리 책임자도 없이 서로 분야가 다른 작업자가 각자 맡은 분야를 완수하는 데 여념이 없다 보니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희생자 대부분이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이라는 점에서 더욱 가슴 아프다.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님의 희생을 계기로 지난 1월 새로운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법안 추진 과정에서 위험의 외주화는 여전히 미완의 숙제로 남겼다. 공기 단축이나 비용 절감에 시달리는 하청, 재하청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화재사고 현장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여섯 차례나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심사해 세 번 이상 화재(폭발) 위험 주의를 지적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조건부 적정 통보를 받았다니, 현장을 도외시한 탁상행정이 여전함을 보였다. 유사한 사고가 되풀이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대책, 즉 법과 제도의 정비가 시급함을 새삼 절감한다. 지난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로 40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던 사례를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시 사업주가 받은 처벌은 벌금 2천만 원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강력한 법 추진이 국회에서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7년 4월에 고 노회찬 국회의원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었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와 같은 사고가 났을 때, 경영자ㆍ원청 기업ㆍ공무원까지 엄격한 관리감독 책임을 묻게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법안은 3년째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21대 국회가 개원하면 우선적으로 제정해야 할 법이라고 생각한다. 경기도의회에서도 이 법의 제정을 촉구하면서 노동 현장의 재난재해 발생 시 책임을 강화할 수 있는 조례 제정이 지방의회 차원에서 가능한지 검토하고 있다. 경기지방고용노동청 신설도 급선무다. 현재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이 경기ㆍ인천ㆍ강원 지역을 관할하고 있는데, 이는 무리라고 본다. 경기도 사업체 수는 90만8천여 개이며, 종사자 수는 516만여 명으로 전국의 23.3%를 차지한다. 지청 단위에서 행정ㆍ민원을 도맡아 처리하기는 벅찰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동절에 밝힌 메시지처럼 노동자가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되려면 노동자 인권부터 보장해야 한다. 인권은 건강이고 안전이다. 우리들 생각부터 사람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법과 제도가 바뀌고, 행동이 바뀐다. 그래야 더는 노동자가 허무한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고, 그래야 노동자 주류 세상이 될 수 있다. 송한준 경기도의회 의장

[아침을 열면서] 독재정권의 종식과 후계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왔다. 산과 들은 푸르름의 싱그러움을 뽐내며 우리를 손짓하고 있다. 지난주 황금연휴에는 코로나로 갇혔던 수많은 인파로 산과 들과 바다가 북새통을 이뤘다. 그러면서도 눈과 귀는 20일 동안 잠적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행방과 상태 및 후계에 대한 궁금증에 쏠렸다. 과거에도 김정은이 여러 번 잠적했었지만 이번에는 CNN 등 세계 유수한 언론들과 탈북 및 북한전문가라는 유튜버들이 김정은의 중태, 유고, 급변사태, 김여정 후계론 등 온갖 루머와 억측을 쏟아냈다. 김정은의 신변에 관해 이토록 우리나라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그가 핵무기를 손에 쥔 절대독재자 이기 때문이다. 그의 손에 따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안보가 중대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절이었던 지난 1일 순천인비료공장을 찾아 준공식 테이프를 직접 끊는 김정은의 건재한 모습을 2일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방송이 송출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영상 속에 비친 김정은의 걸음이 약간 부자연스러웠고 녹색 카트에 타고 있는 것을 보고 여전히 건강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 녹색 카트 차량이 2008년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살아 나오면서 짧은 거리도 걷기 힘들어 현지지도 때마다 사용하던 차량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김정은이 녹색 카트 차량을 이용하는 것에 대하여 뇌졸중을 치료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제기됐다. 반복되는 김정은의 잠적과 건강문제를 계기로 독재정권의 종식형태와 세습 후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독재정권 연구가인 미국 일리노이대 밀란 스볼릭(Milan Svolik) 교수는 1946~2008년 기간 중 등장했다가 사라진 독재자 303명의 종식형태를 분석했다. 그 결과 독재자의 67%인 205명이 지배 엘리트 계층이 일으킨 쿠데타나 정변으로 제거됐다. 다음으로 민중봉기가 32명,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30명, 암살이 20명, 외세 간섭으로 제거 16명 순이었다. 그러나 현재 김정은은 건강문제가 최고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건강문제가 심각한 상황이 될 때를 대비해 후계문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백두혈통이며 친동생이고 정치국 후보위원이면서 당중앙위 조직지도부장인 김여정 후계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하지만 유교사회인 북한에서 여성독재자에 대한 부정적 견해도 만만치 않다. 김일성의 아들인 김평일 후계자론과 당정치국 상무위원인 최룡해ㆍ박봉주 등의 집단지도체제 등 여러 설이 나돌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 독재자들의 후계문제를 연구한 호주 멜버른대의 레슬리 홈스(Leslie Holmes) 교수는 후계자가 권력기반의 공고화를 위해선 중요 권력기관의 최고지위를 차지하고, 추종자가 권력기관을 장악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봤다. 그러나 현재 거론되고 있는 후계자들은 위 두 가지 조건을 다 충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더욱이 김정은의 아들이 10살 정도라고 하니 4대 세습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제 김정은의 건강과 후계문제는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다. 왕이면서 신(神) 같은 절대독재자의 건강과 후계문제는 우리나라의 안위에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기에 쉬쉬할 것이 아니라 철저한 연구와 대비가 필요하다. 김기호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아침을 열면서] 원산을 국제적인 의료휴양 관광지로 만들자

코로나19는 세계인의 이목을 한반도로 집중시키는 계기가 됐다. 여러 국가가 한국산 진단키트를 수입하고 드라이브스루 검사방식을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이제 한류의 영역이 보건의료 분야까지 확대돼 K-의료의 시대가 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보건의료 협력을 다룰 남북정상회담을 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북한의 자력갱생이 쉽지 않아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보건의료 협력과 식량지원을 함께 논의하자는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원산양덕삼지연 등 관광지를 개발해왔다. 관광은 경제제재 국면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올해 4월15일 완공 예정이었던 원산 갈마 해안관광지구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대신 최근 서둘러 착공된 평양종합병원 건설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선진국들도 국가적 위기에 처한 마당에 의료시스템이 미비한 상태로 해외관광객을 수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 입장이라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만약 남북정상회담에 보건의료 협력이 의제로 채택된다면 단순히 의약품과 물자를 지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북한 의료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도록 주요도시에 의료센터를 건설하고 첨단 의료기기 제공, 운영인력과 의료진 양성 등 시스템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남북한 주민 간 활발한 교류를 위해서나 해외관광객의 안전을 위해서도 북한 의료 선진화는 시급한 과제다. 아울러 의료 협력과 함께 관광 사업을 연계해 남북 경협을 추진하는 방안을 생각해보자. 예를 들면, 원산을 국제적인 의료휴양 관광지로 개발하는 것이다. 원산 갈마 해안관광지구에 대규모 해외관광객을 유치하고 호텔리조트컨벤션 사업을 원활히 운영하기 위해선 남한의 노하우가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의료기술과 헬스산업을 접목한 의료휴양 복합 관광지로 개발하자면 남북 협력이 절실하다. 북한으로서도 투자 재원을 분담하고 리스크를 줄이는 방안이 될 수 있다. 한반도의 허리에 자리 잡은 원산은 지리적으로 매력적인 곳이다. 서울과 평양으로부터 최단거리에 있는 동해안 항구도시로서 일본과 연계가 용이하며 국제 크루즈선박의 경유지로 개발할 수도 있다. 명사십리와 송도원의 아름다운 해변, 금강산, 마식령스키장, 통천온천 등 인근에 관광명소가 많다. 태백산맥 동쪽이라 겨울철 미세먼지의 영향도 적어서 휴양 및 요양시설의 위치로는 최적이다. 관광단지 개발을 위한 국제투자 유치도 검토해 보자. 원산 경제특구에 특별법을 적용하고 해외 투자자에게 주거리조트 단지를 분양해 재원을 마련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선 국제사회와 협력해 보건의료 및 관광 시설에 대한 투자를 허용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미국 입장에서는 인도적 차원에서 대북 제재를 완화한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다. 원산 국제 의료휴양 관광지의 미래를 꿈꿔 본다. 세계 각국에서 수준 높은 K-의료 서비스를 받으려고 원산에 와서 치료와 휴양을 한 후 관광을 한다. 한국의 노년층은 아름다운 해변의 실버타운을 분양받아 노후를 보낸다. 원산 경제특구에는 의료휴양에 특화된 남북협력 산업을 육성하고 원산항을 통해 수출한다. 이런 구상을 담은 원산 개발 방안을 올해 남북정상회담 의제로 제안하면 어떨까. 민경태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아침을 열면서] 정책·공약으로 재구성한 ‘총선 결과 분석’

4ㆍ15총선에서 민주당은 유례없는 압승을 거뒀다. 정부의 코로나19 위기 대응에 대한 긍정 평가,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는 야권에 대한 심판, 안티테제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줬다. 하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선거였기에 한 발 더 들어가서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어떤 요인들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는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우선 선거에서의 최대 변수인 전체 유권자 중 약 25%에 달하는 스윙보터(Swing-voter, 부동층 유권자)들의 표심을 세심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처럼 이념적 대립이 심화하는 상황에서는 결국 스윙보터들의 마음을 누가 얻느냐에 따라 결과가 바뀌기 때문이다. 스윙보터들은 대체로 이념보다는 가치와 정책대안 등 객관적인 요소에 반응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주요정당들의 공약 변화를 살펴보자. 민주당의 10대 핵심공약은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에서 경제, 복지, 환경ㆍ기후대책, 노동 등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생활밀착형 공약으로 변화했다. 통합당은 가계부담 완화와 서민금융, 주거안정 강조에서 기업친화적 시각이 한층 강화됐다. 민주당은 이념 중시에서 삶의 질 향상으로 무게 추를 옮겼고, 통합당은 서민복지를 강조했던 것에서 기업 활성화로 방향을 선회했으며, 스윙보터들은 민주당의 정책변화에 손을 들어줬다고 볼 수 있다. 18세 새내기 유권자의 선택도 짚어보자. 민주당은 자기 탐구 기회를 제공하는 한국형 갭이어(청년인생설계학교) 운영 활성화, 통합당은 공기청정기 추가 설치, 정의당은 사각형 학교 건물을 선진형 친환경 학교 건물로 바꾸는 동그라미 작은학교를 공약했다. 교복 입은 유권자를 보호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지,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고 있는지, 확연하게 구분이 되는 대목이다. 새내기 유권자들의 표심도 분명 이에 대한 평가가 반영됐을 것으로 판단된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부산과 울산, 경남 지역의 40석 중 7석을 차지했다. 이를 두고 지역구도가 다시 심화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부울경 지역의 민주당 득표율은 20대 총선보다 올랐고, 특히 부산 지역은 18개 지역구 중 16개 선거구에서의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이 모두 40%를 넘었다. 지역주의 심화보다는 수출과 내수, 고용의 다중 쓰나미를 겪는 대표적인 제조업 동남벨트에서 야권이 지역의 불만을 조직화하는 데 성공했고, 집권세력이 일자리 문제 해결에 대한 정책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중앙선관위가 지난 5~6일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후보 선택 기준에 대한 질문에 소속 정당, 31.1%, 정책ㆍ공약 28.7%, 인물ㆍ능력 25.2%, 정치 경력 5.5% 순으로 답했다. 그리고 응답자의 63.9%는 정책ㆍ공약을 인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20대 총선에서의 57.8%보다 6.1%가 높은 수치였다. 점차 유권자들은 정책ㆍ공약으로 각 정당과 후보자의 이미지를 형성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거 성패의 분석 또한 유권자의 선택적 지형의 변화에 맞춰, 그동안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았던 정책공약 중심의 면밀한 분석이 필요한 이유다. 오현순 매니페스토연구소장

[아침을 열면서] 우리 모두 지도자가 됩시다

송한준 지난주에 4ㆍ15 총선 사전투표를 했다. 보조보행기에 의지한 채 투표장으로 향하는 어르신도 있었고, 올해 첫 투표권을 행사하는 앳된 얼굴의 유권자들도 만났다. 코로나19의 엄중한 상황에서도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모습은 진지하고 아름다웠다. 한편으로는 선출직인 내 자리의 무거움도 다시금 느껴졌다. 10여 년 전, 처음 선출직인 도의원 후보로 나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직장에서 노조위원장을 했기에 남 앞에 많이 서봤다. 그런데 유세 현장에서 대중 앞에 서니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선출직에 나서기 전에는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때가 됐구나, 또 시끄럽구나 뭐 이런 느낌으로 유세 현장을 지나쳤던 것 같다. 나는 유세차에 올라 이런저런 공약을 열심히 설명하는데 사람들 반응이 싸늘했다. 그나마 힐끗 쳐다보는 관심이 반가웠는데, 그 눈빛에서도 불신이 가득했다. 첫날의 유세를 되돌아보며 밤새 고민했다. 주민들이 정말 원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래서 내린 결론이 백지 공약이었다. 다음날부터 나는 주민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공약으로 채워 넣어서 실천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귀를 열었더니 주민들 마음이 조금씩 열렸다. 선출직이 되는 과정은 이렇듯 사람의 마음을 얻는 과정이다. 거기까지의 절차가 결코 녹록지 않다. 우선은 경선 후보의 자격을 검증받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정당 경선에서 당원의 표심을 얻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역의 정당 후보가 된다. 이후 유권자를 본격적으로 만나는 것은 선거를 앞둔 2주 남짓이다. 이 기간에 최대한 인지도도 높여야 하고, 공약도 알려야 한다. 제한된 시간 속에 피가 마른다. 선거란 각 정당의 지지도와 시대 흐름, 유권자의 사회적 요구 등 복합적인 요소가 있어서 마지막 순간까지 결과를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유권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선거를 통해 세상의 변화를 원하고, 좀 더 삶이 나아지기를 희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선택하려고 고민하게 된다. 저마다 지역의 후보를 보면서 사람 됨됨이도 보고 공약도 살피고, 주변의 평판도 듣는다. 이렇게 고심해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다. 그 한 표 때문에 당락이 갈리는 상황들을 우리는 종종 봐왔다. 올해 총선에서도 유권자의 고민이 어느 곳으로 향할지 자못 궁금하다. 올해 총선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째는 선거법 개정으로 투표 연령이 만 18세로 확대된 점이다. 그동안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만 선거 연령이 만 19세였다. 만시지탄이지만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정치에 대한 관심도 갖게 되고, 다양한 세대의 입장을 표명할 수 있게 된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 두 번째는 선거법 개정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처음 도입된다는 점이다. 거대 양당 체제로는 세상의 변화와 다양한 가치를 반영하기에 역부족이다. 본래 제도 취지와 현실이 다른 부분은 있지만 새로운 시대의 출발점인 것은 분명하다. 모레 4월15일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내가 존경하는 노무현 대통령님 말씀으로 투표해야 하는 이유를 대신하고자 한다. 주권자로서의 책임을 다합시다. 추종하는 시민에서 참여하는 시민으로 스스로의 위상을 바꿉시다. 그리고 시민은 선택합니다. 선택을 잘하는 시민, 그래서 지도자를 만들고 지도자를 이끌고 가는 시민. 지도자와 시민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지도자가 됩시다. 송한준 경기도의회 의장

[아침을 열면서] 폭군, 은하군

봄을 알리는 개나리, 진달래, 목련이 활짝 폈다. 봄꽃 축제의 상징인 벚꽃도 만개했다. 그러나 여의도 벚꽃길은 텅 비었다. 코로나19의 감염을 피하려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기 때문이다. 정작 봄은 왔으나 봄 같지가 않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봄은커녕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다. 어쩌다 코로나 비루스(바이러스)에 걸리기라도 하면 곧바로 죽기 때문이다. 영양결핍으로 면역력이 약해져 병사하기도 하지만 감염된 사실이 알려지면 총살당하기 때문이다. 방역과 보건 인프라가 허술한 북한은 전염병 감염을 국가존망 차원에서 강력히 통제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귀한 인명을 총살시킨다하니 말문이 막힌다. 북한전략센터가 발간한 북한 엘리트 처형과 숙청에 관한 2018 연구조사보고서는 김정은의 잔인무도함을 고발했다. 단순히 김정은 눈 밖에 나기만 해도 처형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김정은에 대한 박수를 건성으로 치거나, 자세가 삐딱하거나 회의 중에 졸기만해도 처형됐다. 여기엔 백두혈통도 군수뇌도 예외가 없었다. 고모부인 장성택 당부장, 현영철 인민무력상, 김용진 내각부총리가 대표적 사례다. 처형방식도 김정은의 말에 따라 달라졌다. 대동강 자라공장 지배인은 김정은에게 자라가 죽은 이유를 전기탓으로 돌리다가 즉각 총살됐다. 그나마 김정은이 살아 있을 가치가 없는 놈이라고 말해서 시신이라도 남겼다. 김정은이 땅에 묻힐 자격도 없는 놈이라고 말한 자들은 고사기관총에 의해 형체가 사라졌다. 은하수관현악단 및 왕재산경음악단 단원 12명은 고사총에 사살되고 장갑차에 시신이 처참히 훼손됐다. 오상헌 인민보안성 8국장은 장성택을 옹위했다는 죄목으로 고사총으로 처형당한후 화염방사기로 시신이 전소됐다. 이복형인 김정남은 대낮에 국제공항에서 화학무기에 독살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김정은은 2012년 집권 이후 421명을 처형했다. 처형 대상과 방식도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보다 더 무차별적이고 잔인하다. 감정 기복과 변덕이 심해서 기분에 따라 간부들을 강등시키고 숙청하고 죽인다. 그러나 백성의 목숨을 우습게 여긴 폭군은 오래갈 수 없다. 독재연구가 게데스는 독재국가의 수명을 70년이라고 했다. 구소련도 71년 만에 무너졌다. 브라운리는 2차대전 이후 권력세습을 시도한 28명의 독재자 중에서 9명만 세습에 성공했고 3대세습은 북한이 유일하다고 분석했다. 김정은이 김일성 태양왕과 김정일 광명성왕을 모시는 효자 은하왕이라고 선전해도 그 끝이 멀지 않았다. 하늘이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역사는 연산군과 광해군에 이어 은하군도 폭군으로 기록할 것이다. 그럼에도 김정은을 위인이라고 연구하는 대학생진보연합이 활개치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다음 주 총선일인 4월15일은 김일성의 생일이기도 하다. 북한 주민들은 겉으론 태양절이라고 기뻐하지만 속으론 폭군 김정은을 두려워하며 멀리하고 있다. 코로나보다도 폭군, 은하군으로 인해 떨고 있는 북한 주민들이 안타까운 아침이다. 김기호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아침을 열면서] 개성에 남북협력 의료센터를 만들자

북한은 지난 17일 동평양 문수거리 인근에 평양종합병원을 착공했다. 기존에 계획된 사업을 조정하면서까지 병원 건설에 필요한 자재와 설비를 앞당겨 공급해 오는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일에 완공하는 것이 목표다. 당초 종합병원 건설 계획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올해 초 중국의 코로나19 상황을 보고 200일 내 완공 속도전을 추진하게 됐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 등 여러 선진국들도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시설이 미비한 북한으로서는 매우 심각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 평양종합병원의 위치가 특이하다. 평양에는 대동강을 가로지르는 2개의 경관축이 있는데, 하나는 김일성 광장과 주체사상탑을 연결하는 축이며 다른 하나는 만수대 언덕과 당창건기념탑을 연결하는 축이다. 이렇게 중요한 두 번째 축선 상에 건물을 지어서 경관을 막아서는 것은 이례적이다. 사실상 이곳은 조망을 위해 비워두었던 공간이라서 길쭉한 장방형이기 때문에 대규모 시설이 들어서기엔 통상적 기준으로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제약을 극복하고 설계된 건물은 오히려 상당히 현대적인 스타일을 갖추게 됐다. 여기에서도 김정은 시대에 크게 달라진 북한의 모습이 엿보인다. 평양종합병원 부지 선정은 과거 유산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주의적인 접근이다. 기존에는 만수대 김일성김정일 동상에서 대동강 건너편 당창건기념탑이 바로 내려다보였지만 앞으로는 평양종합병원이 보이게 된다. 현재 북한은 코로나19를 차단하기 위해 상당한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국경을 봉쇄하고 있으나 이를 무한정 지속하기는 어렵다. 경제제재가 완전히 해제되기 전까지 북한이 기대할 수 있는 사업은 관광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원산양덕삼지연 등 주요 관광지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하지만 의료시스템이 미비한 상태에서 대규모 관광객이 유입되는 것은 재앙이 될 수 있다. 다른 국가들의 상황이 호전된 이후에도 북한에게는 여전히 큰 위협으로 남게 될 것이다. 따라서 다른 어떤 경협에 우선해서 보건의료 분야 협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북한 주민의 건강은 당장 남북한 교류를 위해서나 미래 한반도 인적자원의 확보를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다. 단순히 약품과 물자를 지원하는 수준이 아니라, 대규모로 의료장비를 공급하고 북한 주요도시에 종합병원을 건설해서 의료 수준을 선진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최소한 관광과 보건의료 시설에 대한 투자는 경제제재 면제 조치가 필요하다. 최근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대북 제재 완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서울과 평양을 연결하는 경의선의 거점 개성에 남북협력 의료센터를 만들자. 북한 의료진을 양성하는 의과대학을 설립하고, 의료장비와 약품을 생산하는 기지로 활용하는 것이다. 또한 DMZ 국제평화지대 및 생태공원과 연계한 의료휴양컨벤션 시설을 갖추어 세계적인 의료 관광지로 육성하자. 개성공단이 한반도를 대표하는 의료산업 클러스터로 성장해서 여기서 생산된 의료품이 전 세계로 수출되는 날을 꿈꿔 본다. 민경태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아침을 열면서] 최고의 백신은 연대와 협동

정신과 의사 프리드먼 박사는 뉴욕 타임즈의 기고문을 통해 인간의 본성은 두려움을 앞서는 이타심 있으며, 공포심을 버리고 이타심을 갖는 것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응하는 최선책이라 조언했다. 대중들은 새로운 위험에 대해서는 최악을 가정하는 경향이 있으나 인간은 자신만이 아닌 공동체 전체에게 이익이 되는 이타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결국 최고의 백신은 인간의 본성인 이타심이라는 주장이다. 이타심과 이기심을 주제로 한 인간본성론에 대한 논쟁은 오래전부터 치열하게 전개됐다. 분명한 것은 언제나 우리는 재난을 당하면 위기 돌파를 위해 친사회적이고 이타적인 행동으로 대응해왔다는 것이다. IMF 외환위기 때의 금 모으기 운동이 그랬고, 태안기름유출사고 현장의 피해복구를 위한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이 그랬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코로나19 사태는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고 신종 바이러스라는 예측불가능성에서 오는 두려움으로 인해 이성적 사고는 물론 이타심이 작동하기 힘든 상태로 내몰릴 수 있다는 점이다. 단적인 사례로, 주식시장이 주가 폭락으로 패닉에 빠져드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지난 19일 코스피와 코스닥지수가 동시에 전일 종가 지수 대비 8% 이상 급락했다. 그로 인해 서킷브레이커와 사이드카가 동시에 발동됐다. 이른바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가 11년 4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주식시장이 위기가 닥치자 겁에 질려 한꺼번에 출구를 향해 질주하는 소떼와 같은 군집행동(herd behavior)을 보이고 있으며, 악마는 가장 뒤처진 사람을 잡아간다며 아우성치고 있다. 자기 이익에만 민첩할 뿐이다. 패닉에 빠진 주식시장과 달리 시민사회는 두려움과 이기심에 앞서는 이타심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다. 기초수급자 할머니가 생활지원금을 모아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써 달라며 기부했고, 경희대생들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을 돕기 위한 자발적 모금을 펼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에 적극 동참하고 있으며,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 착용이 보편화되고 있다. 각계각층의 모금과 물품 지원, 의료진과 공무원에게 보내는 감사의 손 편지, 광주와 대구 달빛동맹의 병상 나눔, 피해 농가를 돕기 위한 착한 소비 운동 등을 보면서 시민들은 연대와 협력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는 기회가 됐을 것이다. 그래서 코로나19의 극복은 백신과 치료제 개발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1990년대까지 서구의 진화론은 인간 행동의 동기를 이기심 하나로 설명했고, 이는 경제 이론 전반을 지배해왔다. 그러나 영장류행동 전문가인 드 발에 의하면 20세기 말에 이르러 어린아이와 유인원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인간의 두뇌는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고 서로를 보살피도록 설계돼 있다고 밝혀낸다. 슈퍼협동존재(supercooperator)로의 전환을 선언하게 이르렀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본성은 하나로만 설명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오히려 다양한 특성들이 공존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위기의 상황에서는 이타심이 이기심을 압도할 때만이 위기에 대항할 수 있는 본능적 감각을 인류는 내재하고 있다고 믿는다. 코로나 시국의 시민들의 숭고한 헌신, 연대와 협력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오현순 매니페스토연구소장

[아침을 열면서] 해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

아침 출근길, 약국 앞의 긴 줄을 보곤 한다.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닌데 내 잘못인 양 미안해진다. 코로나19를 이겨내는 데 마스크가 필수품이 됐다. 그런데 시장 자율에 맡겨 놓았더니 천정부지로 가격이 뛰고 사재기가 판을 친다. 이에 정부가 개입, 마스크 공급을 관리하게 됐다. 지정 판매처가 생겼으며, 5부제도 도입했다. 그랬는데도 조기 품절로 발걸음을 돌리는 사례가 많다. 생활 주변 마스크 판매처의 재고 현황을 알려주는 공공 데이터 활용 앱이 등장한 것도 그래서다. 마스크가 꼭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양보하겠다는 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바이러스가 낳은 국가적 위기를 우리는 지금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고 있다. 총,균,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투로 죽은 사람보다 전쟁 때문에 발생한 세균으로 희생된 사람이 더 많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살상 무기보다 더 위험한 것이 전염병이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튼튼한 항체가 형성되고 있어 다행이다. 인류를 위협하는 무서운 바이러스에 정책적으로 재빠르게 대처하고, 수준 높은 의술과 방역체계로 확진율 대비 사망률이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미 사스(2002년), 신종 플루(2009년), 메르스(2015년) 등을 통해 감염 사회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과 능력을 축적한 덕분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졌다. 사스가 발병하자 설치한 조직인데, 알다시피 요즘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총지휘하며 우리나라의 방역과 의료시스템을 전 세계의 좋은 모델로 만들어나가고 있다. 전염병이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는 학습효과도 얻고 있다.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물리적 거리가 생기는 만큼 마음은 오히려 가깝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바이러스 확산에 따라 얼어붙게 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우분투(남아프리카의 반투어로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는 뜻) 정신을 활발하게 펼치는 것도 주목할 만한 좋은 현상이다. 코로나19 발병 초기에 비상대책본부를 꾸리고 일일 상황 회의를 진행해 온 경기도의회는 오는 23일 추경을 위한 임시회를 열 예정이다. 경제 생태계가 파괴되는 상황을 더 수수방관해서는 안 되겠다는 현장의 절박감 때문이다. 집단 감염 예방 조치도 시행했다. 구로 콜센터 집단 감염에서 보듯이 밀집된 곳에 많은 사람이 모이면 전염병이 확산할 위험도가 매우 높다. 경기도의회는 출입자 통제시스템을 가동해 발열을 체크하고, 직원들에게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선제적 예방에 힘쓸 것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소외 계층에 대한 관심을 어느 때보다 높이고 있다. 전염병과 같은 재난ㆍ재해 때일수록 이들은 사회적으로 더욱더 취약해진다. 도민의 대의기관으로서 사회적 약자의 삶이 안전하도록 세심하게 살피고 있다. 며칠 전에는 경기도의회 도의원과 직원이 십시일반 모금한 1천300만여 원을 대구ㆍ경북 위기 극복에 써달라고 대한적십자사에 전달하기도 했다. 바야흐로 3월, 코로나19로 3ㆍ1독립운동 101주년을 제대로 기리지 못해 아쉽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 됐던 3월의 역사를 기억하며, 서로 믿고 힘을 모아 역경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어느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국난 극복이 취미인 나라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을 취미처럼 여길 수야 없지만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장래, 국가의 미래는 분명 밝을 것이다. 아침 해가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하듯 우리는 지금 새로운 태양을 맞이하는 터널의 끝에 서 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송한준 경기도의회 의장

[아침을 열면서] 내 나라 내 백성이 ‘열 곱절 백 곱절’ 더 소중하오

김기호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석권하면서 한국은 물론 전 세계의 영화 역사를 새로 썼다. 더욱이 비영어권국가에서 그것도 가장 백미인 작품상을 거머쥐어서 희열이 컸다. 필자는 영화광은 아니다. 그러나 영화로 본 리더십을 강의하면서 영화에 푹 빠졌다. 강의는 나라를 지키고 백성의 기쁨과 고통을 좌우하는 지도자의 리더십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명장면이다. 대역 광해가 편전(便殿)에서 주재하는 조회(朝會)에서 판서들이 앞다투어 명(明)나라에 보낼 조공을 진언한다. 호조판서는 황실에 은자 4만5천냥, 놋그릇 70사, 공녀(貢女) 40명을 보내자고 한다. 예조판서는 사신에게 금 한 관을 선물하자고 한다. 병조판서는 후금과 전쟁 중에 있는 명에 기마 500두, 궁수 3천명, 기병 1천명을 포함해 2만명 파병을 제안한다. 비주류 참판이 2만명이나 보내면 북방 경비가 소홀해질 수 있을 텐데라면서 걱정하자 주류 정승이 이 나라가 있는 것이 누구 덕이냐. 오랑캐와 싸우다 짓밟히는 한이 있더라도 사대(事大)의 예를 다해야 한다고 면박을 준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이 영화의 명장면을 다시 보는 것 같다. 이번 장면의 주된 차이는 왕부터 중국과 운명공동체라고 하면서 앞장섰다는 점이다. 판서들도 덩달아 중국에 마스크 수백만 장을 비롯 500만달러 규모의 물품을 조공하고 있다. 이미 방호복 10만개, 안면보호구 약 5천개, 라텍스 장갑 14만켤레, 분무형 소독기 1천470대 등이 중국에 전달됐다. 반면에 정작 우리 의료진은 방호복이 없고 백성은 나라 잃은 난민도 아닌데 마스크 한 장 구해보겠다고 길고 긴 줄을 서고 있다. 이제는 마스크 배급제마저 시행된다고 한다. 무시무시한 전염력에도 불구하고 병상 부족으로 집에 머무는 감염자도 상당수다.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안에만 갇혀 있는데 아이들마저 돌보라고 하니 갑갑함에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 우리는 발병국이며 감염원인 중국인의 출입을 막지 않는데 적반하장격으로 중국에서 우리 백성은 무시당하고 있다.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출입금지, 강제 격리를 당하는 국제적 미아라는 수모까지 겪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8일 오전 9시 기준 7천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50명에 육박하며 의심환자도 16만 명에 이르렀다. 사람을 만나야 사는 세상인데 사람 만나기가 두려운 세상이 됐다. 백성의 소중한 일상이 무너졌고 나라는 거의 정지된 듯하다. 코리안이 코로나가 됐다는 자조적인 말까지 나왔다. 세계 10위 산업대국이요, 아카데미 상까지 휩쓰는 코리아가 어쩌다 이 지경이 돼가는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영화는 백성의 고달픈 삶을몸소 겪은 거지출신의 대역왕이 정승판서들의 사대굴종 언행에 분노하면서 명장면이 됐다. 백성이 지아비라 부르는 왕이라면 빼앗고 훔치고 빌어먹을지언정 내 그들을 살려야겠소. 그대들이 죽고 못 사는 사대의 예(禮)보다 내 나라 내 백성이 열 곱절 백 곱절은 더 소중하오. 창문마저 열기가 두려운 이 아침에,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내 백성이 더 소중하다는 광해의 외침이 더욱 크게 메아리쳐 온다. 김기호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아침을 열면서] 바이러스는 인류를 어떻게 진화시킬까

코로나 바이러스 공포가 우리 삶을 뒤덮고 있다. 특히 한국의 상황이 심각하지만 다행인 것은 정부의 적극적 태도이다. 미국 타임지도 한국의 확진자 급증은 상대적인 개방성과 투명성 때문이라며, 높은 진단능력, 자유로운 언론, 민주적 책임시스템 등을 긍정 평가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해서 숨은 감염자까지 찾아내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반면, 일본과 미국은 감염 의심자에 대한 검사가 미흡해서 우려되는 상황이다. 빌 게이츠는 인류에게 가장 두려운 재난이 핵무기도 기후변화도 아닌 바이러스라고 경고한 바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완전히 퇴치되기보다 만성감염병으로 남게 될 것으로 예측한다. 또한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어도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변이해서 새로운 위협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인류가 바이러스와 공존하며 살아가기 위해 생활방식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방향에서 미래 변화를 예상해 보았다. 첫째, 개인보호장비의 활용이다. 마스크는 이제 필수품이며 공공장소에서 일상화됐지만, 착용은 실제로 매우 불편하다. 앞으로 이를 해결한 마스크헬멧의복 형태의 전자장치가 등장할 수 있다. 인류의 조상은 옷이 없었으나 이젠 입는 것이 당연하듯, 미래 인류에게는 에어필터에어컨히터가 부착된 인체보조장치가 일상화될 수 있다. 착용해도 호흡이 편하고 바이러스와 미세먼지로부터 보호해주며 항상 최적온도 유지도 가능할 것이다. 둘째, 도시공간의 개인화다. 도시는 집적화를 통해 인류문명의 진보를 가능하게 해줬다. 다양한 기능이 집약돼 효율적이며, 여러 사람의 교류를 통해 창의적 활동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조건은 바이러스에게도 유리하다. 그렇다고 인류가 도시를 포기하고 분산거주방식으로 회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도시 내 개인간격 유지를 위한 셀 형태 공간구조로 진화될 수 있다. 주택에서도 1인 단위공간이 기본이 되고, 필요시에만 공동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즉, 집적화된 대도시에서 개인화된 공간이 확대되는 것이다. 셋째, 비접촉비대면 라이프스타일의 확대다. 많은 사람이 직접 모이는 집회는 줄어들고 개인 접촉을 최소화하도록 변화될 것이다. 온라인 회의와 전자 상거래가 확대되고, 직접 대면하는 것은 매우 제한될 수 있다. 또한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하는 비접촉식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발달될 것이다. 음성동작화상인식을 통해 엘리베이터를 조작하고 자동문을 개폐하는 식으로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가속될 것이다. 이 같은 변화 방향이 실제로 구현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 파급 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스타워즈 다스베이더의 검은색 헬멧은 아니더라도, 세련된 디자인의 개인보호장비가 유행할 수 있다. 자율주행 개인 교통수단과 1인 주거가 확산되고, 종교집회와 학교교육 방식에도 일대 전환이 올 수 있다. 인류의 삶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화하기 위해선 바이러스로부터 얻은 오늘의 교훈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민경태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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