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우리는 가끔 일탈을 꿈꾼다. 특별한 무언가가 벌어지지 않은 날엔 때론 무기력하기도 하며 특별한 일상을 고대하기도 한다. 여기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본인의 길을 꾸준히 걸어오며 저마다의 신념과 가치관을 삶에 녹여내는 이들이 있다. 매일 되풀이하며 갈고닦는 기술을 미래 세대에게 무형유산으로 남겨주는 경기도 명인들이다. 명인들이 자신만의 신념과 가치관으로 수십년간 지켜온 ‘하루’의 의미를 따라가봤다 경기도무형문화재 60호 신인영 야장 안성대장간 5대 야장… 60년 가까이 전통 기술 보존 앞장, 익산 미륵사지석탑 등 국내 주요 문화재 보수공사 참여 국내 유일 가능한 ‘접쇠’ 이용해 숭례문 철엽 제작·복원 칼·프라이팬 등 철물·도구 입소문… 해외서도 진가 알아봐 ■ 57년 담금질하며 지킨 ‘기본’... 해외서도 알아봐 하늘이 말갛게 푸르러 오기도 이른 오전 3시. 고요한 들판 가운데 대장간의 화덕이 붉은빛을 내뿜으며 칠흑 같은 어둠을 걷어낸다. 화덕 옆에는 한 남자가 직접 제작한 집게와 전등, 모루 받침대가 놓여 있다. 철을 식히는 담금질용 물통은 언제 가져왔는지도 모를 만큼 오랜 세월 그의 손에서 탄생한 제품을 묵묵히 받아왔다. 나무로 된 모루 받침대는 장비를 올려둬도 쉽게 떨어지지 않게 안쪽이 파여 있다. 망치는 그의 손에 맞는 두께의 고무로 감겨 있다. 저마다 시간의 흔적을 품은 물건들을 보고 있으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긍정하는 한 장인의 철학이 엿보인다. 경기도무형문화재 60호 신인영 야장(71)은 50년 넘게 ‘기본’을 지키며 전통 기술을 보존해 왔다. 그의 선명한 강철 제련 소리는 57년간 안성에서 이어졌다. 신 야장은 안성대장간의 4대 야장인 고모부 강석봉이 보관하던 장검에 매료돼 13세에 본격적으로 대장장이 일을 시작했다. 4년이 채 되지 않은 17세, 실력을 인정받아 안성대장간의 5대 야장이 됐다. 그는 1971년부터 10여년 동안 전국을 돌며 기술에 깊이를 더했다. 다시 안성대장간으로 돌아왔을 땐 국내에 그의 기술을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그가 만든 물건의 모든 부분에는 이유가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호미를 만들 때도 성에(호미의 목·슴베)의 휘어지는 각도를 토질·용도에 따라 달리 한다. 날의 각도도 흙이 반대편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계산해 만든다. 제작 과정도 마찬가지다. 근대화 이후 한쪽 모서리에 뿔이 달린 서양식 모루를 쓰는 대다수 대장간과 달리 그는 여전히 원통 모양의 전통 모루를 사용한다. 전통 장비를 사용해야 원래의 쓸모가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기본을 지켜왔기에 소실된 기술도 유일하게 보존하고 있다. 숭례문, 익산 미륵사지석탑, 안성 청룡사 등 국내 주요 문화재도 복원 당시 그의 손을 거쳤다. 특히 신 야장은 흙을 이용해 강도가 다른 두 철을 붙이는 ‘접쇠’가 가능한 국내 유일 대장장이로, 전소된 숭례문을 복원하는 데 이 같은 기술을 적극 활용했다. 신 야장은 접쇠를 이용해 ‘철엽’을 제작하기도 했다. 철엽은 침입과 화재를 막기 위해 나무 대문에 부착하는 물고기 비늘 모양 쇠붙이 장식이다. 그는 숭례문의 철엽 411개 중 270개를 전통 방식으로 복원했다. 여러 대장장이를 통솔해 철엽 외 받침쇠, 감잡이쇠 등 주요 철물 31종을 제작했으며 총 3만7천563개의 철물을 생산해 민족의 상징을 지켜냈다. 그의 철학은 해외에서도 알아봤다. 지난 2018년 유럽 최대 인테리어 박람회인 ‘메종&오브제’를 시작으로 그 진가가 드러났다. 신 야장의 철물과 도구들이 소개되며 입소문을 탔다. 유럽과 일본이 득세한 주방칼 시장에도 신 야장의 상품이 자리를 비집고 들어섰다. 대장간 최상품에 표시하는 나무 손잡이의 ‘X’ 표기는 해외에서도 알아보며 그가 57년 동안 작업해온 데 대한 자그마한 증명서가 됐다. 그는 “칼을 구매한 한 외국인이 ‘한국에도 칼이 있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지금까지의 노력을 해외에서도 알아보는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라고 밝혔다. 그는 옛 기술을 잊지 않으면서 현대에도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도전한다. 대장장이 기술로 도래를 이용한 장식, 프라이팬, 빵칼 등을 만드는 것이 그 예다. 최근 안성시 안성맞춤박물관에서는 그의 작품을 주제로 한 특별전까지 개최됐다. 신 야장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새해에도 일상을 유지할 계획이다. 그가 지금껏 대장장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평상심’이다. 연말에도 그는 본인의 길을 걸었고 새해에도 그의 길을 걸어갈 예정이다. 그는 “평상심을 잃으면 작업에도 영향이 있다. 늘 그렇듯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사람들에게 쓸모 있는 제품을 만들 것”이라며 다시 망치를 들었다. 고양송포호미걸이보존회장 조경희 명인 ‘호미걸이’ 노동 피로 풀고 풍년 기원하는 민속놀이 한동안 맥이 끊겼었지만 김현규 선생이 발굴·재현 후계자인 ‘조경희 명인’… 포용의 리더십 발휘하며 전수자들 이끌고 원형 재현·전수 보존 힘쓰고 있어 ■ 새해에도 ‘흥’ 잃지 않게... “우리는 호미걸이” 무대에 3열로 늘어선 ‘모’ 앞에서 ‘어이!’ 소리와 함께 북 연주자가 대북을 두드린다.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무대를 한바퀴 돌며 춤을 춘다. 춤을 멈추고 벼를 든 사람은 가장 앞 좌석에 있는 관객에게 벼를 전달하고 다시 춤사위를 보여준다. 이어 농민들이 북, 꽹과리, 장구, 징, 제금, 태평소 등의 악기를 들고 나온다. 고양특례시 송포동 대화마을에서 전승돼 온 놀이, 경기도무형문화재 22호 고양송포호미걸이의 첫 번째인 ‘상산제’에서 하늘이 내린 축복이 인간세상에 닿는 장면이다. 송포동은 고양의 유명 곡창지대이며 한반도 최초 재배 볍씨인 ‘가와지볍씨’가 발견된 지역이다. 5천여년 전부터 밭농사가 이뤄진 송포에서 매년 여름 한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기도하며 노동의 피로를 풀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시작됐다. ‘호미걸이’는 김매기를 끝내고 올해 농사는 끝났으니 내년을 대비해 호미를 씻어 걸어둔다는 의미다. 타 지역의 풍물이 북, 장구, 징, 꽹과리로 구성되는 데 비해 호미걸이풍물은 서양의 심벌즈와 비슷한 전통악기 ‘제금’을 추가해 듣는 사람과 연주하는 사람 모두의 흥을 더 돋운다. 고양송포호미걸이보존회 회장인 조경희 명인(63)은 호미걸이의 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1951년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맥이 끊겼던 고양송포호미걸이는 1977년 조경희 명인의 스승인 김현규 선생이 발굴·재현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1998년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으며 현재는 김현규 선생의 선택을 받은 조 명인이 전수자들을 이끌고 원형 재현과 전수 보존에 힘쓰고 있다. 음악과 전통에 끌렸던 조 명인은 30대라는 늦은 나이에 호미걸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고등학생 당시 선생님이었던 송용운 선생(전 고양예술고 이사장)에게 김현규 선생을 소개받아 호미걸이를 배우기 시작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김 선생은 조 명인이 고양 사람인 점, 악기와 소리의 재능, 전통을 이으려는 의지 등을 보고 후계자 교육을 시작했다. 조 명인은 해가 뜰 때부터 연습을 시작해 늦은 저녁까지 몰두한다. 그는 한 번의 공연을 위해 단원들과 두세달 합을 맞춘다. 두 딸도 각각 전수자·이수자로 함께 공연을 기획한다. 보존회장으로서 단원을 가르칠 때도 고민을 많이 한다. 한 번 명맥이 끊겼던 호미걸이이기 때문에 다그치거나 혼내는 것이 아닌,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한다. 단원 대부분이 나이가 많기에 누군가에게 하는 칭찬이 질투를 불러오지 않게, 무대에 서는 순서 때문에 기분이 상하지 않게 여러 방법을 생각하는 등 늘 즐겁게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한다. 조 명인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즐거움’과 ‘사명감’이다. ‘내가 아니면 없어진다’는 사명감에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조 명인은 “노동의 피로를 풀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놀 수 있도록 하는 호미걸이놀이처럼, 새해에도 계속 즐길 수 있게 원형을 보존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건주수습기자/사진=조주현기자
일요일 오후 은행나무 주변에 퍼지는 기분 좋은 오카리나 연주가 늦가을을 더욱 무르익게 했다. 나무 아래에 펼쳐진 평상 위로 주민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는 모습은 시골마을의 풍경처럼 정겨웠다. 일요일 오후 가족, 친구, 연인 또 낯선 이들과 함께한 음악과 간식과 문화예술. 지난해 11월 20일 광명시 옥길동 광명텃밭보급소에서 열린 ‘근거한 공간 교류 프로젝트-가을잔치’였다. 광명문화재단이 경기문화재단의 경기권역 생활문화 교류 및 확산 연계사업으로 진행한 ‘광명 생활문화 거점 활성화 사업-근거한 공간’ 프로그램 중 하나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지역 내 4곳의 생활문화 기획자들이 한데 모였다. 문화예술 활동가들이 본인이 기획한 내용으로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간 생활문화를 선보이고 더 많은 시민들이 즐길 수 있게 재현하며 더 많은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근거한 공간’ 사업은 민간 생활문화 공간과 광명문화재단의 협력체계를 구축해 지역 내 풍성한 생활문화 네트워크 기반을 조성했다. 그동안 지역 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생활문화 공간 초아픽과 광명텃밭보급소, 다온도예, 협동조합 담다 등 4곳을 연계해 민간 생활문화 공간과 재단의 협력체계를 구축, 시민이 언제 어디서든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역 내 풍성한 생활문화 네트워크 기반을 조성하고 시민의 문화 예술 향유를 끌어올린다는 목적이었다. 이날 열린 가을잔치에선 광명텃밭보급소는 자연 그대로의 텃밭을 공개하며 도심 속 힐링의 공간을 선사했다. 또 프로그램으로 파·보리 심기를 준비해 이곳을 찾아온 이들에게 체험 행사를 할 수 있게 했다. 3대가 함께 만드는 도자를 진행해 온 다온도예는 ‘셋이 모여 하나’ 공예 작품 전시를 열어 그동안 참여자들이 만든 도자기를 선보였다. 아이와 시아버지와 함께 3대가 4주간 토요일마다 프로그램에 참여해 작품을 만든 이소연씨(35) 가족은 이날 행사장을 찾아 직접 만든 작품을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 씨는 “코로나19로 누군가와 함께 어울리는 게 마땅치 않았는데 우리와 같은 가족 4, 5팀이 함께 모여 같은 공간에 머무르며 작품을 만드니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지역에서 문화공간으로 역할하며 바른먹거리를 선보이는 ‘담다’는 꽃 카나페와 고구마, 따뜻한 차를 제공했다. 담다는 평소에 해금 연주 등 공연을 선보이며 올바른 먹거리를 제공하는 공연기획과 케이터링을 선보여 왔다. 최민영 대표는 “이번에 생활문화 사업에 참여하면서 사람들이 공간에 모이니 서로 마음을 열고 마음을 나누는 것을 봤다. 코로나19 속에 사랑의 복원을 느꼈다”고 말했다. 치유 정원, 치유 원예를 선보이던 초아픽은 이번 사업으로 기존에 운영하던 사무실을 1층 정원으로 만들었다. 또 누구나 지나가다 들를 수 있게 개방했다. 마음을 나누고 정원 같은 공간에서 누구든 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선 오랫동안 밖에 나가기 어려웠던 여든의 할머니, 아기와 아등바등 하루하루를 보내는 젊은 엄마 등 저마다 쉽게 꺼내지 못할 이야기를 안고 사는 ‘우리’들이 오고갔다. 이날 가을잔치에선 꽃으로 작품을 만드는 ‘나만의 손수건 만들기’ 등을 진행해 많은 호응을 끌었다. 하우스 밖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텃밭과 공터에서 딱지치기, 고무줄놀이, 투호놀이, 제기차기 등 민속놀이가 이어졌다. 이날 여덟 살, 여섯 살 된 자녀와 함께 텃밭을 찾은 홍승재(36)·김현애씨(36) 부부는 나무 밑에서 음악을 즐기고 문화를 경험하며 타인과 함께 다르면서도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자체가 매우 즐겁고 소중하다며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들이 농장 체험을 하기 어려운데 도시에 살면 하기 쉽지 않은 파도 심어보고 날씨 좋은 날 나무 밑에서 간식도 먹으니 너무 즐거워요. 이런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교류하고 무언가를 함께하는 만남의 장이 열리는 자체가 모두에게 큰 경험이자 체험 아닐까요” 인터뷰 김유미 문화도시팀 대리 예술인·주민 잇는소통 공간 더 넓혀 ‘생활문화’ 활성화 Q 근거한 공간의 뜻이 궁금하다. A ‘근거한 공간’은 어떠한 곳을 거점으로 뜻밖의 만남이 이뤄지도록 한다는 공간이다. 근거한 공간에서의 뜻밖의 만남을 표방해 어떠한 곳을 거점으로 오고 감으로써 공간을 발굴하고 사람들이 생활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Q 가을잔치 행사를 보니 지역 곳곳에서 다양한 생활문화가 잘 발현돼 온 느낌이다. A 그동안 재단에선 생활문화 확산과 기획자 발굴 등을 위해 2020년 ‘생기발랄 0호점’, 2021년 ‘사이사이’, 2022년 ‘생기발랄 문화의 집’(광명문화재단 사업)과 경기문화재단의 ‘경기권역 생활문화 교류 및 확산 연계사업-근거한 공간’을 이어왔다. 특히 문화활동이나 시민이 편히 활동할 수 있는 공공의 장소를 확보하고자 지역 내 17개 공간을 발굴해 ‘문화의 집’이란 이름을 주고 임대비 지원, 프로그램 진행을 위한 지원 등을 해왔다. Q 생활문화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도는 어떤가. A 지역에서 끊임없이 시민들이 편하게, 쉽게, 언제든지 즐길 수 있는 생활문화를 만들고자 재단에서도 부단히 노력해 왔다. 아직 이런 사업들이 초기 단계이지만 시민들의 호응도 높은 편이다. 지역에서 이런 생활문화를 기획하고 만드는 분들의 역량이 늘어나고 확산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무엇보다 재단과 민간이 함께하면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번 사업은 단체에서 역량을 발휘해 기획하고 사람들에게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프로그램이 확산되도록 초안을 만든 것 같아 꽤 의미 있는 것 같다.
문화체육관광부공무원노동조합은 4일 오후 서울 서계동 사무소에서 2022년도 ‘본받고 싶은 관리자’ 시상식을 개최했다. 지난 2017년부터 매년 실시해오고 있는 ‘본받고 싶은 관리자상’은 건전한 조직문화 조성에 기여하고 있다. 2022년에는 12월 19일부터 3일간 본부 실·국장과 과장, 소속기관 기관장과 부장(과장)·팀장 등을 대상으로 무기명 모바일 설문조사를 진행해 본부 2명, 소속기관 2명 모두 4명의 수상자를 선정했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본부 강석원 기획조정실장과 박승범 장관 비서실장 등 2명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으며, 소속기관 가운데는 박영국 한국예술종합학교 사무국장, 이정엽 국립부산국악원장이 받았다. 임석빈 문화체육관광부 노조위원장은 4명에게 감사패와 꽃다발을 전달하고 세대간 소통, 건강한 조직문화 형성에 교두보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 노조는 일회성 보여주기 행사에 그치지 않고 수상자들의 액자를 제작, 청사 로비에 게시함으로써 직원들에게 그 취지를 알리고 공직사회 내에서의 ‘공직 민주주의’가 확고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조직문화 혁신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 펼쳐 나간다는 계획이다.
경기아트센터의 신임 사장에 세종문화회관 예술단 운영본부장을 지낸 서춘기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 연구부교수가 내정됐다. 서 신임 사장 내정자는 ㈜한양 예술의 전당 건립업무 소장, 세종문화회관 예술단 운영본부 본부장, 안성시 안성맞춤 아트홀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문예회관 연합회 전문컨설턴트,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 연구부교수로 활동 중이다. 서 내정자는 ‘국악기 배치 형식 및 국악 전용 홀 음향설계 표준안에 관한 연구’ 등 공연장의 음향에 관한 연구를 하며 논문을 발표했다. 서 내정자는 이 달 예정된 경기도의회의 인사 청문회를 통과하면 인사권자인 김동연 경기도지사에 의해 최종 임명된다. 한편 경기아트센터는 지난해 1월 이우종 전 사장이 사퇴 한 후 1여년 간 경영본부장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돼 왔다.
한국서예학회 제13대 회장에 경기대 예술대학 장지훈 교수(49세)가 지난 1일 취임했다. 임기는 2024년 12월 31일까지 2년이다. 장 교수는 한국서예학회의 창립 멤버로 간사, 총무이사, 편집위원장, 부회장을 거치며 20여 년간 학회에 줄곧 몸담아왔다. 2008년부터 경기대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서예사’ 외 다수의 저서와 6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중국산동예술대학 특빙교수와 문화재청 전문위원 등을 겸하고 있다. 장 교수는 “한국연구재단에 유일하게 등재된 서예 분야의 전문학술단체인 만큼 24년 간 공들여 쌓아온 저력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국가에서 서예교육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 열악한 한국의 서예 교육환경과 지원정책 등 현실적인 문제를 학술적으로 풀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서예학회는 1998년 서예에 관한 학문적 연구와 한국 서예문화 발전을 목적으로 성균관대 송하경 교수를 초대회장으로 설립됐다. 2009년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로 선정됐으며 현존하는 한국 서예 분야 학술 단체 중 역사가 가장 길고 최대 규모의 연구자들이 포진하고 있다.
‘안산 5개의 문화공간 6명의 호스트가 당신을 초대합니다. 상실, 쉼, 시작과 끝, 밥과 기억, 그림책, 비건, 필사, 기록, 예술, 환경과 회복을 키워드로 우리 만나요.’ 낯선 기획자들의 낯선 초대장이 지난해의 어느 날 안산에서 공개됐다. 뮤지컬 공연을 준비하거나 만나서 그냥 밥 먹는 모임, 필사를 하거나 빵을 만드는 등 주제도 색깔도 달랐다. 일시적인 모임과 소수 정예의 인원을 모집하는 느슨하고도 불특정한 만남. 많은 이들은 평소 경험하고 싶었던 주제였거나 왠지 끌리는 이 낯선 초대에 기꺼이 참여하고 그 문화를 경험했다. 안산의 문화플랫폼 열무가 경기문화재단의 2022 경기권역 생활문화 교류 및 확산 연계 사업으로 진행한 ‘초대: 살롱 드 안산’의 이야기다. ‘초대: 살롱 드 안산’은 6명의 호스트들이 시민과 생활문화를 나누고 기획자들이 스스로 참여자들과 생활문화를 만들어 나가도록 바탕을 만들었다. 초겨울을 향해 달려가던 지난해 11월2일 안산시 상록구에 위치한 문화플랫폼 열무. 초대에 참여한 6명의 기획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호스트들이 모여 각자 진행하는 생활문화 사업에 대해 공유하고 잘된 점과 어려운 점, 앞으로의 방향, 또 이들이 겪은 생활문화를 서로 나누기 위해서다. 열무의 신지은 대표는 지역 사업을 하면서 만났던 젊은 예술가, 청년 활동가들과 만나 경기문화재단의 2022 경기권역 생활문화 교류 및 확산 연계 사업에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 6명의 호스트들이 시민들과 나눌 주제를 하나씩 선정하게 하고, 참여자들을 모아 생활문화사업을 펼치도록 하는 플랫폼으로 역할했다. 저마다의 예술과 문화성을 가지고 안산에서 활동하던 호스트들은 각기 고민한 주제로 참여자를 초대했다. 아트벨라르떼 스튜디오는 완경이라는 새로운 출발점에 있는 사람들, 자신만의 랩소디를 만들고픈 이들을 위한 ‘경춘 씽어즈-나도 뮤지컬 배우다’를, 문화플랫폼 열무에선 쉼과 노래, 필사를 하는 ‘필사의 휴식’과 소중한 존재를 상실한 사람을 위한 ‘상실타래’를, 스스스튜디오는 시작이 두려운 사람과 반복된 루틴에 지친 사람을 위한 ‘시작하는 방’을, 청소년열정공간 99도씨는 밥 먹으며 수다 떨고 싶은 사람을 위한 ‘수수밥 살롱’을, 비건숲은 건강식을 지향하지만 달콤한 디저트를 끊지 못하는 사람 등을 위한 ‘그림책빵’을 열었다. 다른 분야인 만큼 공유되는 내용도, 생각도 달랐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처음 보는 다양한 소수들이 일시적인 모임에 나와 서로 마음을 다독이거나 공통된 문화를 나누었고 그 안에서 서로 좋은 에너지를 나눴다는 점이었다. 경춘씽어즈는 뮤지컬을 주제로 엄마들에게 해방구를 만들어 주고 삶에 또 다른 원동력을 주는 경험을 쌓아가고 있었다. 이곳에선 처음에 쭈뼛쭈뼛하던 엄마들이 ‘사실 고등학교 때 춤 좀 췄다’라고 고백을 하는가 하면, 그곳에서 자신을 발산했던 경험을 토대로 성당 성가대에 들어가기도 했다. 경춘씽어즈를 기획한 김혜영 대표는 “이게 문화예요? 하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맞다고 한다. 이것이 즐기는 문화이고 건전한 문화”라고 말했다. “생활문화는 고민해서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즐겨야 하는 것이죠. 인위적으로 기획할 필요가 없어요. 노는 문화를 건전하게 정착하고 널리 퍼뜨릴 필요가 있어요. 엄마가 스스로 행복하면 가정에도 행복이 찾아오지 않나요. 이런 프로그램이 많아져야 해요. 정신을 행복하게 하는건 나라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른과 청소년, 남녀 다 같이 모여 밥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99도씨는 밥의 힘을 이야기했다. 김부일 99도씨 대표는 “수요일에 서로 수저와 숟가락만 놓고 만나 밥 먹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눴는데, 청소년들이 자기 반 친구들을 데리고 오기도 했다. 앞으로 음식 초대전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져 연말에 각자 음식을 준비해와 먹으면서 함께 이야기를 하기로 했을 만큼, 일시적이었지만 그 안에서 서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고 말했다. 쉼과 노래, 필사를 진행한 ‘필사의 휴식’ 이유정 문화기획자는 필사의 휴식이란 모임이 일처럼 느껴졌지만, 그 시간이 쉬는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참여자들이 오히려 나를 위해 많이 해주는 느낌이 들어 마음 한편에 불편함으로 남아 있었다. 다들 자기의 진짜 마음과 이야기할 때 서로 공감하고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열무는 지난해 12월9일 6명의 호스트가 그동안 각자의 주제로 나눈 생활문화를 교류하는 ‘초대 나눔날’ 행사를 열었다. 모임에서 나눴던 대화, 전시, 공연, 참여 활동 등을 기획자들이 각자의 부스에서 재현하도록 했다. 모든 것은 자연스러웠다. 여섯 명의 호스트가 ‘함께 웃을 수 있는’, ‘스스로 행복한’, ‘느슨하게 연결하고’, ‘배움이 되는’, ‘꼭 그러지 않아도 되는’ 등 삶과 일상에서 구체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놓고 이웃을 초대했다. 신지은 대표는 “기획자로 직접 참여하지 않고 플랫폼 역할을 하며 내가 한 게 없는데, 한 게 있었다. 문화예술기획자로 얻은 큰 행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 신지은 문화플랫폼 열무 대표 Q 이곳 열무가 생활문화 플랫폼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가. A 열무는 2022년 설립했다. 마을 안에서 새로운 소통 방법, 새로운 마을 활동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흔히 하는 교육 프로그램인 마을 만들기, 환경개선 등으론 새로운 마을 활동, 생활문화가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독립적인 개인이 제대로 선 채로 소통하고 연대해야 지속 가능할 수 있다고 느꼈다. 예술가, 문화기획자들이 자기 안에서 출발해 뭔가를 만들어내야 생활문화가 확산된다. 그래서 그동안 직접 기획자로 역할을 하다가 이번엔 매개자로, 플랫폼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됐다. Q 호스트에게 주제를 맡기고 그 이야기를 한데 아우른 게 신선하다. A 이번 생활문화사업은 주최하는 기획자, 우리 호스트가 자기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 자기 문제여야 한다는 데서 출발했다. 일상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생활문화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총 4명만 되면 시작할 수 있다. 거창하지 않아도, 내 문제를 끄집어내고 내 의지를 다른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 그게 문화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업에서 호스트가 시민들과 함께 활동한 내용과 짚어낸 일상의 문제가 기대 이상으로 잘 나왔다. Q 생활문화에 대한 정의가 다양한데. A 삶의 문화, 일상의 문화다. ‘자기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 감정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표현하는가’ 이게 생활문화다. 혼자 할 수도 있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이 없는지 조금씩 만나서 이야기해보는 것이다. 프로그램과 다르고 동아리와도 다르다. 이번 사업명을 ‘초대’라고 정의한 것도 동아리와 다르단 걸 보여주고 실험해보자는 취지가 담겼다. 정자연기자·이나경수습기자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에 유인택 전 예술의전당 사장(67)이 30일 임명됐다. 유 신임 대표이사는 서울 경복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제약학과를 졸업한 뒤 홍익대학교 공연예술대학원에서 예술학을 전공했다. 문화콘텐츠 벤처캐피탈인 아시아문화기술투자(주)에서 공동대표를 역임했으며,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뮤지컬스쿨원장,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뮤지컬 단장, 동양예술극장 대표를 지냈다. 또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한국문화예술회 위원, 2019년부터 올해 6월까지 예술의 전당 사장을 역임하면서 문화예술계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왔다. 유 신임 대표이사의 임기는 2년이다.
기아 AutoLand 화성(공장장 송민수)과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지역본부(본부장 김창연)가 ‘2022 기아챌린지 ECO프로젝트’ 대장정을 마친 뒤 지난 27일 수료식을 진행했다. ‘2022 기아챌린지 ECO프로젝트’는 기아 AutoLand 화성이 12년째 지속해 온 사회공헌 활동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지역본부도 힘을 6년째 보태 왔다. 매 해 초·중·고·대학생 각각의 실정에 맞게 지역 내 학생들을 위한 기회 창출의 장이 마련된다. ‘즐거운 환경학교실’(초등), ‘ECO 리더되기’(중등), ‘2050 미래학교’(고등)’ , ‘ECO서포터즈’(대학생)로 세분화된다. 지난 5월20일엔 대학생이 중심이 되는 ECO서포터즈 발대식이 열렸다. 6월부터 12월까지 20명의 학생이 ‘에코백’, ‘ESG 워너비’, ‘오블’, ‘기아에코렐라’ 등의 총 4개팀을 이뤄 친환경 미래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이들은 홍보 영상 제작, 환경보호 기자단 활동, 지역아동센터 환경교육, 화성시민 대상 환경캠페인 등을 통해 지역민들과 소통했다. 6개월여의 여정 끝에 지난 27일 수료식이 성료했다. 수료식에선 ‘ESG 워너비’가 우수 조로, 우수 서포터로는 김혜일, 신원섭, 홍미림 학생이 선정됐다. 홍미림 기아챌린지 ECO 서포터즈 회장(경기대 4년)은 “시민들에게 환경을 보호하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면서 “기아 AutoLand 화성과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소감을 전했다. 기아 AutoLand 화성 관계자는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새해에도 서포터즈 학생들이 더 많은 성장을 할 수 있게 지원하겠다”면서 “지역의 더 많은 학생들과 소통을 이어가며 사회공헌에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기대도, 아쉬움도 많았던 2022년이 저물어 간다. 2022년 마지막 일몰을 보며 한 해의 아쉬움을 털어버리고 2023년 첫 일출을 보며 의지를 다져보는 것은 어떨까. 경기도내 일몰·일출 명소를 찾아봤다. ■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하는 2023년... ‘수종사’와 ‘독산성·세마대지’로 북한강과 남한강의 강줄기가 하나된 모습에서 한 폭의 산수화를 떠올리게 된다. 운길산에 자리한 남양주 수종사는 세조가 집권하던 1459년에 지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두물머리를 바라보면서 맞이하는 일출은 도내에서 손꼽히는 절경이다. 선조들은 일찍이 절을 둘러싼 경치를 두고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군자유삼락·君子有三樂)’에 빗대 수종사에서의 즐거운 경험을 풀어냈다. 겸재 정선도 수종사와 운길산 자락의 경관을 화폭에 담아냈다. 새해 1월1일 이곳에선 오전 7시45분에 해가 솟아난다. 전망 좋은 터는 세 군데다. 500살 넘게 자리를 지켜온 은행나무 옆, 삼정헌 옆마당, 절의 최상단에 위치한 산신각이다. 이 중 산신각에선 두물머리와 산 능선으로 이어지는 장관을 만난다. 가슴을 가득 메우는 자연 경관을 보고 싶다면 오산의 독산성과 세마대지로 발을 옮기자. 독산성은 백제시대에 처음 쌓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오산과 수원, 화성에 고루 걸친 평야에 솟아 있어 사방이 한눈에 담겨 어떤 전망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성벽을 따라 하늘과 자연을 만끽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을 다잡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동문이 있는 보적사 뒤편으로 넘어가면 세마대를 만날 수 있다. 세마대는 이름처럼 ‘말을 씻긴 곳’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이곳에 주둔했던 권율 장군이 왜군에게 포위되는 위기에 처하자, 산 위에서 흰 말에게 백미를 부어 말을 씻기는 시늉을 했다. 이에 멀리서 지켜보던 왜군이 산성 내에 물이 풍부하다고 착각해 퇴각했다는 일화가 있다. 성벽을 따라 나 있는 길은 완만한 평지에 가까워 거니는 데 힘들지 않다. 역사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이곳은 이제 관광객이 북적대는 신년 일출 명소가 됐다. 신년 해돋이를 볼 수 있는 시각은 오전 7시45분이다. ■ 아쉬웠던 마음 떠나 보내는 2022년... ‘궁평항’과 ‘왕송호수’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 화성시의 해안선 남쪽 항구인 궁평항에 들러 해넘이를 만끽하는 건 어떨까. 도내 유일의 국가 어항인 이곳은 200여척의 어선이 오가는 선착장과 해산물을 만날 수 있는 수산물직판장이 모여 있는 관광 명소다. 남쪽 방파제엔 해상낚시터 ‘피싱피어’가 있다. 풍광을 즐기는 전망대인 이곳에 저물녘 즈음 도착했다면, Y자형 다리에서 붉게 물들어가는 바다와 하늘에 몸을 맡겨 본다. 31일의 일몰 시각은 오후 5시25분으로 예정돼 있다. 이보다 일찍 도착해 궁평낙조길을 걷다가 선착장이나 방파제 끝에 자리한 정자 궁평루 근처에서 저무는 석양을 바라 보자. 불그스름하게 물드는 사람들의 얼굴과 자연 풍광들. 함께 일몰을 보러 온 사람들은 저마다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제 물어볼 시간이다. 나 자신에게, 또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한 해 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말이다. 차분한 마음으로 해넘이를 음미하고 싶다면, 의왕 왕송호수의 문을 두드려 보자. 70여년 전 의왕역 남쪽에 조성된 저수지로, 격변의 시기를 고스란히 버텨낸 곳이다.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인 왕송호수는 한때 민물고기의 성지로 알려져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이후 건물 개발 등 환경 변화로 인해 수질이 악화되고 방치되기 시작했지만,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시민들의 일상과 함께하는 생태 호수로 거듭났다. 차량이 없어도 좋다. 의왕역에서 20여분 걷다 보면 어느새 왕송호수의 평화로운 정취에 물드는 느낌을 받는다. 올해 마지막 날 이곳의 일몰 시각은 오후 5시23분으로 예상된다. 해가 뉘엿뉘엿 수면에 녹아드는 시간대를 잘 골랐다면 원목 그네의자가 놓인 호숫가에서 사색에 잠겨 보자. 고요한 호수를 앞에 두고서 저무는 한 해를 돌아본다. 호수에 이는 파문, 반짝이는 윤슬 속에서 지난날을 돌아보고 다가올 날을 그릴 여유를 발견한다.
서로 죽일 듯이 달려드는 뒤틀린 모녀 관계를 담아낸 이야기로 독립 영화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인물이 있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2021)로 첫 장편 연출작을 선보인 김세인 영화 감독(30)이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국내외 각종 영화제에 초청되고 수상하면서 화제 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을 비롯한 5관왕, 제10회 무주산골영화제 뉴비전상,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발견 부문 대상 등을 받아 국내 유수 영화제를 휩쓸었다. 멜버른국제영화제, 에딘버러국제영화제 등 해외에서도 초청받아 이목을 끌었다. 영화가 지난달 10일 극장가에서도 개봉하면서 일반 관객들과 함께 하는 더 폭넓은 교류의 장이 열렸다. 12월 들어서는 한국영상자료원의 독립영화 연말정산 상영이나 지난 2, 3일 수원미디어센터에서 열렸던 제7회 수원사람들영화제에서의 관객과의 대화 자리 등을 통해서도 지역 곳곳의 관객들과 소통을 이어갔다. 김 감독은 가까운 인간 관계 속에서 쉽사리 표출할 수 없는 감정들, 몸과 몸이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순간에 주목해 왔다. ‘뮤즈가 나에게 준 건 잠수병이었다’(2013), ‘햄스터’(2016), ‘불놀이’와 ‘컨테이너’(2018) 등의 단편에 이어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로 그의 행보가 이어진다. 그의 단편엔 불안정한 성장기에 놓인 인물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외로움에서 촉발된 다양한 감정들을 응시했던 김 감독은 문득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는 사실을 느꼈고 장편 연출작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준비했다. 최근 수원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는 “2016년에 처음 트리트먼트를 쓰기 시작했을 때, 삶에서 직면했던 문제가 ‘엄마와의 관계’였다”며 “처음엔 무게 중심이 딸 쪽에 있었지만, 갈수록 엄마와 딸의 관계를 균형 있게 다루는 방향으로 계획했다”고 회상했다. 그에 따라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를 보는 관객들은 엄마 수경과 딸 이정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고민에 빠진다. 엄마는 자동차로 딸을 받아버리고, 딸은 엄마의 스카프를 난도질하고, 서로 죽일 듯 달려들다가도 다시 가까워진다. 김 감독은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만 느껴지는 미묘한 감정의 골을 포착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이를 위해 젖은 속옷, 피다 버린 담배 꽁초 등의 물건으로 둘 사이의 심리적 거리감을 형상화했다. 그는 사회적인 메시지 자체를 강조하는 데엔 재미를 못 느끼는 편이라 인물들을 묘사하는 데 더 흥미를 느낀다. 특히 그의 관심사는 모자라고 부족해도 자아와 내면을 조금씩 형성하는 인물을 바라보는 작업에 맞닿아 있다. 이는 평소 그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연결된다. 삶은 명쾌하게 정리될 수 없기에, 계속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불완전한 순간을 잠시 붙잡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는 주로 전체 대신 부분을 담는다. 신체의 일부나 얼굴로 화면을 채우는 구간들이 그렇다. 그는 이에 대해 “인물이 느끼는 촉감 등의 감각에 늘 관심이 많았다”면서 이로 인해 스크린을 메우는 피사체들의 몸에 주목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감독은 저마다 지닌 몸의 흉터나 피부의 촉감, 근육 형태에 생활 습관과 살아온 모습이 배어 있다고 여기며 작업을 이어 왔다. 김 감독은 정신 없이 올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그는 차기작에 대해선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지금껏 그래 왔듯 어두운 감정을 다루는 일도 필요하지만 앞으로는 부드러운 감성을 풀어놓는 이야기도 시도해 보고 싶다”고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