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시 ‘산길’ 봉사회 김재홍 회장 “아름다운 산 가꿔 후손에게 물려주는 삶을 살겠다”

“산을 울창하게 지키고 아름답게 가꿔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의무입니다" 15년이 넘는 세월동안 사비를 털어 산에 나무를 심고 가꿔온 동두천시 ‘산길’ 봉사회 김재홍 회장(74)의 바람이다. 순수 민간 봉사단체인 ‘산길 봉사회’는 아름다운 산을 가꾸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김 회장과 뜻을 같이하는 각계각층 3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1천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고 아름다운 산길 조성에 땀흘리고 있는 이들의 산사랑 열정은 각별하다. 소문을 통해 알게된 주변사람들의 호응도 높아져 동두천 최고의 참봉사단체로 우뚝 올라 찬사와 귀감이다. 이런 배경에는 불의를 보면 참지못해 ‘대나무’로 불리는 김 회장의 원칙과 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산길봉사회의 시작은 지난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당시 산에 매력에 빠져 함께 산에 올랐던 지인 2명과 함께 산으로부터 받는 큰 고마움을 무언가 선물로 보답하자는 취지로 왕방산 등산로 환경정화 청소활동, 가지치기, 넝쿨·돌맹이제거 등을 시작했다. 이후 2010년부터는 사비를 털어 죽어가는 나무를 살리고 오지재고개에 새로운 단풍나무를 심는 것도 이들의 일과였다. 그는 “심은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고 죽어가는 나무를 살리기 위해 차에 항상 장비와 물탱크를 싣고다니고 일주일에 6일은 산에서 보낸다”며 “힘든내색 하지 않고 묵묵히 협조하고 따라주는 회원들이 너무도 고맙다”고 말한다. 이들의 열정을 지켜본 주변인들의 관심이 커지자 동두천시를 비롯한 사회단체의 관심과 함께 봉사를 원하는 회원수도 날이갈수록 늘고 있다. 이에 힘입어 2015년부터 ‘내나무심기 운동’을 시작, 내나무를 심어달라는 많은 시민들의 요청도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부턴 아이들이 자신의 이름이 새긴 나무를 직접 심게해 자연의 고마움과 애향심 고취는 물론 탄소중립 생활실천 문화확산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1석3조의 봉사를 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엔 도민이 전하는 자원봉사 지원사업 ‘탄소중립과 산림녹화를 위한 내 나무 심기’에 선정, 경기도보조금 500만원의 사업비로 오지재고개 일원에 단풍나무 90주를 식재해 1차 목표인 1천그루 나무심기를 달성했다. 김 회장은 “자연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로 남은 여생 오지재고개 단풍터널·정원 조성 등 건강을 안겨주는 산에 보답하고 아름다운산을 가꿔 후손에게 물려주는 삶을 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동두천=송진의기자

동두천 유족의 품으로 안긴 호국영웅 故 박진호 일병

“이제서야 부모님 곁으로 돌아온 불효자를 용서해주세요” 6·25전쟁 당시 함경남도 장진군과 함주군 일대에서 전개됐던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호국의 영웅 고(故) 박진호 일병이 72년 만에 1만5찬470㎞를 돌아 19일 가족의 품으로 귀환했다. 고(故) 박진호 일병은 1950년 8월 23세의 나이로 입대해 미 7사단 31연대 소속(카투사)으로 참전, 같은 해 11월 함경남도 장진군과 함주군 일대에서 전개됐던 장진호 전투에서 치열한 교전 중 장렬히 전사했다. 현재 고인의 부모는 모두 생을 달리했고, 유가족으로는 8남매 중 두 명의 여동생과 한 명의 남동생이 생존해 있다. 물리적 시간과 거리를 돌아온 고(故) 박진호 일병은 이날 동두천시 국민체육센터에서 헌화, 6·25참전기장 수여, 추모사, 학생 편지낭독, 유가족 인사 등 국가보훈처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주관해 최고의 예우를 갖춰 엄숙히 거행된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통해 가족의 품에 안겼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과 유가족, 박형덕 동두천시장 등 200여명이 참석한 이번 행사는 호국영웅의 넋을 위로하고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온 유가족을 위로하며 아직 미수습 상태인 6·25전쟁 국군 전사자의 귀환을 염원했다. 박 일병의 유해는 이날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을 출발, 군사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동두천시 국민체육센터로 이동된 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직접 맞아 제단까지 모신 후 유가족들에게 전달됐다. 박 처장은 호국영웅에 대한 명예선양의 의미를 담은 ‘호국영웅 귀환패’와 전사자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을 유족 대표에게 전달했다. 박 처장은 “72년 기나 긴 세월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간직한 채 살아오신 유가족 분들께 진심어린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정부는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분들의 명예선양과 예우에 만전을 기함으로써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보훈’이 구현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도 이날 유족 대표에게 박 일병의 전사자 신원확인통지서를 전달하고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를 설명했다. 박 일병의 남동생인 박진우씨(75세)는 “형님이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전쟁 중 북한에서 돌아가신 것에 억장이 무너졌는데 유해를 찾아서 감개무량하다. 부모님이 계시는 선산(납골당)에 빨리 모시고 싶다”고 말했다. 박 일병의 유해는 귀환 행사를 마친 후 동두천시 탑동 조산마을에 있는 선산 가족 납골당으로 봉송, 고인의 부모 곁에 안장됐다. 한편, 박 일병이 전사한 장진호 전투(1950.11.27~12.11)는 미 제10군단의 해병 제1사단(배속 : 미 7사단 31연대)이 서부전선으로 진출하기 위해 장진호 북방으로 이동하던 중 중공군 제9병단 예하 7개 사단의 포위망을 형성한 장진호 계곡을 빠져 나오기 위해 2주 동안에 걸쳐 펼친 철수작전이다. 박 일병의 유해는 북한지역에서 발굴돼 1990~1994년에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실종자 확인국(DPAA)에 인계된 유해 중에 포함됐다. 이후 국유단과 DPAA가 공동으로 신원 확인을 진행하다 국군 전사자로 추정돼 국내로 봉환된 고인의 유해는 북한과 DPAA 하와이지부를 거쳐 총 1만 5470㎞에 이르는 긴 여정을 거쳐 고향 땅을 밟았다. 이어 고인의 남동생이 주변인의 권유로 유전자 시료 채취를 신청해 검사를 한 결과 지난달 형제관계가 나타나면서 유해의 신원이 확인됐다. 동두천=송진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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