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 완벽했지만 시설은 부실… 다산 설계의 ‘명암’
정약용은 화성 기본계획으로 ‘성설’뿐만 아니라 ‘도설’도 만들어 제안했다. 도설은 옹성, 포루, 현안, 누조, 기중에 관한 기본계획이다. 도설은 성설과 달리 어제로 공포하지도 않았고 의궤에 싣지도 않았다. 그래서 정약용의 문집인 여유당전서를 참고해야 한다. 지난번 성설에 이어 오늘은 도설을 평가할 예정이다.
도설은 중국 문헌을 인용해 설치 목적, 중요성, 관련 제도에 관해 설명하고 설명 끝에 화성에 적용할 기준을 제시하는 형식으로 썼다. 이제부터 준공도서 ‘화성성역의궤’와 비교하며 정약용의 계획이 실제로 얼마만큼 받아들여졌는지 도설을 평가해 보자.
첫째, 옹성도설의 ‘옹성’이다. 옹성은 문을 방어하기 위한 반원형으로 생긴 문의 외성이다. 성을 함락하려면 가장 먼저 문을 공격한다. 문은 성 전체에서 가장 취약한 곳이고 성안 전체를 함락하는 데 유리한 도로와 통하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문마다 각각 옹성을 두고 거기에 작은 문을 하나씩 설치하라”고 제안했다. 실제로 화성에는 문마다 옹성을 뒀다. 다만 옹성 문은 북옹성과 남옹성에만 뒀고 동옹성과 서옹성에는 문 대신 옹성 한쪽을 개방하고 출입했다. 이유는 개방된 쪽으로 거대한 자성치(自成雉)가 있어 개방된 곳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옹성에 대한 정약용의 제안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아주 높게 평가된다.
둘째, 현안도설의 ‘현안’이다. 현안은 치성의 전면에 가까이 접근한 적을 감시하는 시설이다. 돌출된 치성의 외면은 감시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류성룡도 현안을 치 한 개와 맞먹는다고 했다. 정약용은 “옹성과 치성에 현안을 설치하고 설치 위치는 치의 외면에, 그리고 수량은 각각 몇 개씩 설치하라”고 제안했다.
실제로 옹성과 모든 치성에 현안을 설치했다. 위치도 전면에 설치했고 수량은 방어 중요도에 따라 차등을 둬 설치했다. 원성에도 현안을 설치한 경우도 있다. 이는 당시 현안에 대한 중요성을 말해준다. 현안에 대한 정약용의 제안은 모두 받아들여졌다. 아주 높게 평가된다.
셋째, 누조도설의 ‘누조’다. 누조는 오성지(五星池)를 말한다. 나무 문짝 위에 설치하는 물통이 오성지이고 불붙은 나무 문짝을 끄기 위한 시설이다. 그러나 사실은 불을 끄는 것보다 나무 문짝에 불이 붙는 것을 지연시키는 게 목적이다. 나무 문짝에는 쇠판인 철엽을 입혔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설치 장소로 옹성 문 위를 제안했다.
실제로 문이 있는 북옹성과 남옹성에 오성지를 설치했다. 문제는 설치한 오성지가 구멍 위치가 잘못됐다고 정약용 자신이 비판한 점이다. 이는 정약용의 잘못된 비판이다. “오성지는 왜 무용지물이 됐을까” 편을 참고하면 된다. 정약용의 지적과 관계없이 높게 평가된다.
넷째, 기중도설의 ‘기중’으로 거중기를 말한다. 정약용은 중국 ‘기기도설’에서 원리와 운용 방식만 참고해 거중기를 발명, 화성에 활용토록 제안했다. 거중기는 도르래 원리를 적용해 무거운 물건을 올리는 기계다. 어디에 사용했을까. 거중기는 전체 기계 높이와 비교하면 양중 높이가 낮고 자주식이 아니라 조립과 해체를 반복해야 한다. 거중기의 장점이자 약점이기도 하다. 가장 무거운 중량물인 문 홍예의 선단석을 쌓는 데 사용했다. 선단석 1개는 5t 이상이다.
실제로 화성성역에 거중기는 1대만 운영됐다. 이로 미뤄 여러 곳에 사용하지 않고 꼭 필요한 몇 곳에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사용 빈도는 낮아도 좋게 평가된다.
다섯째, 포루도설의 ‘포루’에 대한 평가다. 포루라는 명칭을 썼지만 실제 내용은 건축물 배치에 대한 계획이다. 포루(대포), 적루, 적대, 포루(군졸), 각성, 노대 배치에 관한 정약용의 제안이다. 시설물별로 중국 제도를 설명하고 문을 기준으로 어느 쪽에 몇 개를 세우라는 식으로 설명한다. 세 가지 관점에서 평가해 본다.
①계획한 총시설물 수의 분석이다. 다산이 제안한 시설물 수는 총 30개인데 실제는 60개가 설치됐다. 계획이 실제의 50%다. 계획과 실제의 차이가 크다. 당초 계획에서 성 규모를 늘린 것을 고려해도 차이가 40%다. 부실한 계획으로 평가할 수 있다.
②계획한 시설물 유형 수의 분석이다. 정약용의 계획은 총 6개 유형을 계획했다. 그러나 실제는 19개 유형이 설치됐다. 계획이 실제의 30%다. 차이가 크다. 계획에 빠진 시설물은 수문, 지, 은구, 장대, 각루, 봉돈, 포사 등 다양하다. 누락된 유형이 너무 많다. 시설물은 성에서 중요한 요소다. 부실한 계획으로 평가된다.
③계획한 시설물별 수량과 배치 위치 분석이다. 포루(대포)는 7개를 계획했으나 실제는 5개소를 설치했다. 적루는 4개 계획에 실제 3개소, 적대는 9개 계획에 4개소, 포루(군졸)는 2개 계획에 5개소, 노대는 1개 계획에 2개소, 각성은 7개 계획에 실제 8개소다.
계획 대비 70%, 75%, 45%, 250%, 200%, 115%다. 순 차이는 적게는 15%, 크게는 150%를 보인다. 차이 자체가 낮은 평가다. 수량 계획도 낮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배치 위치 제안은 차이가 너무 커 평가조차 할 수 없다.
정리하면 도설은 대부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성설보다 높게 평가된다. 그러나 도설도 성설과 마찬가지로 정약용은 사소한 것에 강한 면을 보여준다. 중요하고 비중이 큰 시설물 항목에서 가장 낮게 평가됐다. 핵심에 약하고 변두리에 강한 정약용의 한 단면을 재확인했다.
두 번에 걸쳐 화성에 남긴 정약용의 흔적, 성설과 도설의 기여도를 평가했다. 사실상 정약용 개인에 대한 평가다. 유의할 점은 이번 평가는 화성성역에 끼친 기본계획안에 한정된 점이다. 성설과 도설을 만든 10년 후 정조가 서거하자 그의 18년 유배 생활이 시작된다. 유배 시절 이룬 다산의 학문적 업적은 그 누구도 평가할 수 없을 만큼 높다.
필자는 정약용의 성설과 도설의 가치를 내용보다 ‘화성성역의 출발점(點)’이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원래 ‘점’이란 형상도 없고 크기도 없지만 창조의 시작이다. 점이 없이 창조도 없다. 화성성역 대역사(大役事)의 출발점은 틀림없다. 글·사진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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