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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조작 없으면 OK”...정부가 ‘브로커’ 부채질 [규칙이 된 반칙 : 정책자금 브로커上]

자금 확보 절박한 기업 틈새 노리고 지원기관 유사한 명함 내밀며 접근
착수금·10% 수수료 조건 신청 대행
정부, 부당개입 관련 TF 신설했지만
“동의한 계약, 위법 없다면 제재 안 해”
되레 대중화·불공정 확대 우려 목소리

정책자금은 중소기업의 숨통을 틔우는 생명줄이다. 특히 수요가 집중되는 3월에는 자금 확보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는데 이 절박한 틈새를 노리는 존재가 ‘정책자금 브로커’다. 이재명 정부는 기업들에 가야 할 자금이 불법 브로커에게 새는 것을 막고자 지난해 말 ‘제3자 부당개입 문제해결 TF’를 발족하고 불법 브로커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현장 상황을 잘 모르는 정부가 브로커를 오히려 대중화해 불공정성을 키운다”며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경기알파팀은 전국 중소기업 수 1위이자 정책금융의 최대 전장인 경기도를 중심으로 정책자금 브로커 실태와 정부 정책의 면면을 파헤쳐 봤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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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내 길거리에 내걸린 사설 현수막. ‘정책자금’과 ‘정부지원금’을 홍보하는 문구가 담겨 있다. 금유진기자

 

규칙이 된 반칙 : 정책자금 브로커 上 “서류조작 없으면 OK” 모호한 부당개입 규정

“방향만 잘 잡으면 5억까지도 무리 없습니다. 성공 시 10%만 주시면 됩니다.”

 

안산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주명화(가명) 대표가 A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경기도에서 열린 한 ‘중소기업 지원시책 설명회’ 현장이었다. 행사장은 최신 정보를 얻으려는 기업인들로 가득했다. 그 속에서 A씨는 먼저 말을 건네 왔다. “저도 처음엔 많이 헤맸다”는 공감으로 시작된 대화는 자연스럽게 명함 교환으로 이어졌다.

 

중소기업 지원기관과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는 경영컨설팅 업체 소속 A씨는 ‘경영본부장’ 직함을 달고 있었다. 그는 과거 회사를 운영했던 경험을 강조하며 “남 일 같지 않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주 대표는 A씨를 경험이 많은 선배 경영인쯤으로 여겼고 정책자금 지원사업 일정을 계속해서 공유하는 그에게 신뢰를 느꼈다.

 

주 대표가 관심을 보이던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개발기술사업화자금’ 접수 마감이 임박하자 A씨는 더 적극적으로 변모했다. 그는 주 대표에게 “기술성 평가 비중이 높은 자금이라 사업계획서를 전문적으로 써야 한다”며 신청 대행을 제안했다.

 

며칠 후 주 대표의 사무실을 찾아온 A씨는 “자금 5억원을 받게 해주겠다”며 착수금 400만원에 승인 시 지원금의 10%를 성공보수로 지급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사업계획서 작성은 현재 대학교에서 활동 중인 현직 교수들이 맡는다는 설명도 덧붙었다.

 

자금이 급했던 주 대표는 계약서에 서명했고 이후 A씨 소속 업체는 일사불란하게 주 대표의 기업 자료 수집과 정책자금 신청 서류 작성, 신청 대행 등을 전개했다.

 

주 대표는 “솔직히 혼자 준비하기엔 부담이 크다”며 “전문가 도움을 받으면 더 빠르게, 잘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고 말했다.

 

결과는 ‘승인’이었다. 공단 조사관이 주 대표의 회사를 찾아 현장 조사를 실시했지만 A씨 업체가 대신 정책자금 신청 서류를 작성하고 제출한 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정책자금이 집행된 날 주 대표는 A씨에게 약속한 5천만원을 전달했다. 정부가 주 대표 업체의 기술 개발, 설비 투자를 지원하고자 내려보낸 자금의 10%가 제3자의 손에 돌아간 순간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는 ‘상호 동의한 계약이고 위법만 없다면’ A씨 업체를 ‘제3자 부당개입’, 이른바 ‘불법 브로커’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제3자 부당개입 문제해결 TF’ 관계자는 “통상적인 범위 내에서 이뤄진 컨설팅, 사업계획서 작성 지원은 부당개입으로 보지 않는다”며 “그 과정에서 허위 서류 작성 등 심사를 왜곡하거나 사기 등 범법 행위가 결합될 경우에만 제재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정부 컨설팅 등록제 추진에… 기업 “3자 개입 정당화”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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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내 길거리에 내걸린 사설 현수막. ‘정책자금’과 ‘정부지원금’을 홍보하는 문구가 담겨 있다. 금유진기자

 

정부가 ‘제3자 부당개입 문제해결 TF’(이하 TF)를 발족하고 정책자금 ‘불법 브로커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기업들은 오히려 정부가 브로커 활동을 보장하고 위세를 키운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현재 정부는 검증된 업체에 정책자금 신청 컨설팅을 허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이것이 정책자금 신청 과정에서의 제3자 개입을 정당화하고 단속 기준을 무력화하는 ‘반칙의 규칙화’라는 것이다.

 

17일 경기알파팀 취재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12월 TF를 출범하고 ‘불법 브로커 신고센터 운영’, ‘컨설팅 등록제 도입’, ‘중소기업 통합지원 플랫폼 구축’ 등 주요 대책을 공개했다.

 

기업이 정책자금 브로커를 찾는 이유가 복잡한 신청 과정에 있다고 보고 간소화를 지원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한편 불법 브로커 단속과 검증된 업체 양성화를 병행해 컨설팅 수요를 충족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맞춰 정부는 1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재단중앙회 등 4개 금융기관에 신고센터를 설치했다. 이와 함께 불법 브로커 유형을 공개하고 신고센터 이용을 독려하고 있으며 ‘컨설팅 등록제’ 세부 방안을 설계하고 있다.

 

문제는 두 대책이 취지와 달리 기존 브로커의 개입 정당성을 부여하고 세력 확장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정부는 △성공부 조건 계약 불이행 후 수수료 미반환(사기) △대출심사 허위 대응(사기) △허위 대출약속(사기) △정부 기관 인적 네트워크를 위시한 현혹(부정청탁) △정부기관 등 사칭(사기·사칭) △부당 보험영업 행위(보험업법 위반) 등 여섯 가지의 행위에 대해서만 ‘불법’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같은 행위 이외에 금전이 오가는 계약은 물론이고 정책자금 서류 대필과 신청 대행 등의 행위는 ‘합법’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중기부는 12일 ‘제3자 부당개입 문제해결 TF 4차 회의’를 열어 1월부터 3월2일까지 신고센터를 통해 228건의 신고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기부는 전체 신고 건수 중 80% 이상을 ‘정책금융기관 안내 등을 통해 해결 가능한 제3자 부당개입 여부 문의’로 분류했다고 설명했다. 관계 기관 수사 요청 등 후속조처에 나선 것은 정책금융기관 직원 사칭 등 실제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는 일부 신고에 불과한 것이다.

 

TF 관계자는 “정책자금 신청·심사 과정에서의 위법 행위나 사업 세부 지침 위반이 있을 경우 부당 개입으로 간주, 제재를 하고 있다”며 “모든 컨설팅을 일률적으로 부당 개입으로 분류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자 불법 브로커를 단속해야 하는 일선 정부기관도 사실상 단속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도내 정책금융기관 실무자는 “다른 업체가 대놓고 신청 서류 대필, 신청 대행을 진행해도 어디까지가 부당 개입인지 판단하기가 모호해 문제를 삼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기업들은 정부가 추진하려는 ‘컨설팅 등록제’를 놓고 그동안 일부 기업이 공공연하게 제3자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자금 신청서 작성을 의뢰하던 것이 앞으로 ‘필수 수단’으로 변모, 기업 부담과 공적 자금 유출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신모씨는 “브로커에게 정부 인증 전문 업체라는 표지가 붙은 순간 이들을 기용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사이에 큰 격차가 발생할 것”이라며 “업체를 통해 빨리 정책자금을 신청하지 않으면 예산이 소진돼 수혜 대상에서 밀려나는 불상사가 현실화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중기부 관계자는 완성 단계의 대책이 아니며 현장 의견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제3자 부당 개입 유형 논란에 대해 “불공정 논란 등 현장의 혼선을 인지하고 있다”며 “정책자금 신청 과정에서 쟁점이 되는 여러 불공정 행위와 우려를 충분히 수렴,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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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내 길거리에 내걸린 사설 현수막. ‘정책자금’과 ‘정부지원금’을 홍보하는 문구가 담겨 있다. 금유진기자

 

보험 유도에 기관 사칭까지… 불법 브로커도 활개

정책자금 불법 브로커가 내미는 도움의 손길 이면에는 부당 보험상품 판매, 신청 서류 조작 등 각종 범죄가 내재돼 있다. 또 불법 브로커의 지시에 따라 허위 서류 작성에 가담한 경우 기업인 역시 형사 처벌은 물론이고 최장 몇 년에 걸친 사업 배제 등 큰 타격을 입는다. 특히 경찰청은 ‘민생물가 교란 범죄 척결 TF’를 구성, 정책자금 불법 브로커의 활동을 ‘물가 교란범죄’로 간주해 집중 수사하고 10월까지 대대적인 특별 단속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이 ‘조력자’가 ‘불법 브로커’였음을 인지하는 시점은 대부분 일이 벌어진 이후다. 경기알파팀은 정책자금 신청 대행 과정에서 기관 사칭, 부당 보험 영업, 사기 등 발생하는 범죄 행위 유형과 사례를 분석했다.

 

■ 보험 영업... “자금 받으려면 월 1천500만원 보험 들어라”

경기지역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B대표는 한 경영컨설팅 업체로부터 “절세용 CEO 보험 하나만 가입하면 모든 과정을 대행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B대표는 결국 월 납입액 1천500만원대의 보험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정책자금 신청 대행을 조건으로 보험 가입을 유도하는 행위는 중진공이 규정한 ‘제3자 부당개입’이자 보험업법 제98조(특별이익 제공 금지) 위반으로 금융당국의 엄격한 제재 대상이다.

 

■ 공공기관 사칭... “국가 로고 믿었는데 사기였다”

시흥시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C대표는 정책자금 지원 절차를 알아보던 중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현수막을 발견했다. ‘중소기업 정책자금 최대 10억원 지원, 금리 3~4%’라는 문구에 홀려 상담을 진행했고 5억원의 자금을 받는 조건으로 거액의 수수료를 지급하기로 계약했다. 하지만 이는 정식 기관이 아닌 불법 브로커 D씨의 함정이었다. D씨는 공공기관 명칭과 로고를 무단 도용해 기업을 유인한 뒤 수수료를 챙긴 혐의로 현재 수사를 받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형법상 사기 및 공무원 자격 사칭 혐의의 범죄다.

 

■ 부정청탁... “심사위원과 막역한 사이” 호언장담에 ‘낭패’

화성의 부품업체 대표 E씨는 “정부기관 내부 사정을 훤히 꿰고 있다”며 접근한 불법 브로커에게 정책자금 승인 조건으로 착수금 700만원을 건넸다. 해당 브로커는 중진공 평가위원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선정 가능성을 높여주겠다고 장담했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약속했던 인맥 지원은커녕 브로커와 연락마저 두절되자 E씨는 결국 그를 고소했다. 정부기관 인맥을 내세워 정책자금 지원을 약속하고 금품을 수수한 행위는 형법상 사기 및 청탁금지법 위반에 해당한다.

 

■ 그들이 알려주지 않는 진짜 대가... 자금 환수, 정부 사업 장기 배제

정책자금 불법 브로커들이 기업에 알려주지 않는 가장 큰 대가는 ‘기업의 지속가능성 위협’이다.

불법 브로커의 지시에 따라 기업 매출 규모 등 서류 조작에 가담하거나 조사관 허위 응대에 동조할 경우 대출 즉각 환수, 정책자금 사업 배제 등 제재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관계자는 “‘제3자 부당개입 연루 기업’으로 분류되면 최장 3년간 정책자금 신청이 제한될 수 있다”며 “이미 자금이 집행된 상태라면 기한 이익 상실을 통보하고 집행된 자금을 즉각 환수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법 브로커와의 거래는 기업이 중대한 위험을 자초하는 선택으로 기관의 공식 상담 창구를 이용해달라”고 당부했다. 경기α팀

 


※ 경기α팀 : 경기알파팀은 그리스 문자의 처음을 나타내는 알파의 뜻처럼 최전방에서 이슈 속에 담긴 첫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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