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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부동산이라는 비공식 헌법의 파산, 유예된 시간의 청구서

송일찬 말이되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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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분당의 집을 팔았다. 법률적으로는 단순한 자산 처분이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집은 한번도 단순한 거래의 대상이었던 적이 없다. 우리는 임금의 상승으로 중산층이 되기보다 집값의 상승으로 안도해온 사회에 더 가까웠다. 월급이 멈춘 자리를 자산 가격이 대신했고 복지의 공백은 시세표가 메워 왔다. 국가가 충분히 설계하지 못한 사회안전망을 시장가격이라는 불안정한 기둥에 의탁해온 셈이다.

 

우리 가계 자산의 대부분은 여전히 부동산 등 비금융 자산에 묶여 있다. 이는 개인의 투자 성향을 넘어 성장과 복지를 자산 가격에 기대어 운용한 구조의 결과다. 이른바 ‘자산 기반 복지(Asset-based Welfare)’가 사실상 사회적 안전판을 대신한 것이다. 분당을 비롯한 신도시 건설은 중산층 확장의 약속이었고 실제로 많은 가구의 자산 형성에 기여했다. 그러나 그 성공은 역설적으로 성장의 중심을 토지 위에 고정시켰다. 경제지표보다 아파트 시세가 더 빠르게 체감되는 질서 속에서 부동산은 법전에 적히지 않았지만 지난 수십년간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해온 ‘비공식 헌법’이었다.

 

문제는 이 헌법의 유효기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여년 사이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큰 폭으로 상승했지만 실질임금의 증가 속도는 이에 미치지 못했다. 자산 상승이 보편적 경험이 아닌 일부의 기회로 수렴될 때 부동산은 사다리에서 장벽으로 바뀐다. 이미 집을 가진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 사이에는 재산 격차를 넘어 ‘시간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상승의 기억을 자산 삼아 미래를 설계하고 누군가는 진입의 좌절 속에서 현재를 소진한다. 자산이 국민의 시간을 갈라놓는 순간 민주주의의 토대인 공동체적 합의는 약해지고 정치는 설득보다 박탈감의 언어에 민감해진다.

 

집값은 한때 복지의 대체재였다. 가격은 안정의 신호였다. 그러나 가격에 기대어 유지된 균형은 가격이 흔들릴 때 함께 흔들린다. 이번 매각이 이해충돌을 차단하는 조치라면 이제 질문은 개인이 아니라 구조를 향해야 한다. 우리는 집값 상승에 의존해온 이 균형을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성장의 근거 자체를 재설계할 것인가.

 

핵심은 자본의 방향이다. 토지에 묶인 자본과 신용이 산업과 기술, 생산성 향상으로 이동하지 않는 한 가격의 파동은 곧 정치의 파동이 된다. 토지는 희소성에 갇혀 있지만 생산성은 혁신을 통해 확장될 수 있다. 그럼에도 토지가 가장 확실한 수익 경로로 남아 있다면 혁신은 늘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에 머물 수밖에 없다. 어쩌면 부동산은 성장의 엔진이 아니라 실질적 성장 둔화를 가려온 진통제였는지도 모른다.

 

수도권 집중 역시 같은 맥락이다. 집값은 결과이고 산업 입지와 기회의 집중은 원인이다. 일자리와 교육, 의료, 문화 인프라가 한 점으로 모일 때 집은 주거가 아니라 그 도시에 머물 수 있는 ‘입장권’이 된다. 균형은 구호로 오지 않는다. 산업 정책과 금융 자본의 재배치, 지역 기반 일자리의 질적 확장이 병행될 때 비로소 구조는 달라진다. 자본의 물길이 바뀔 때 사람의 이동도 달라진다.

 

무엇보다 중산층은 자산이 아니라 소득과 제도로 지탱돼야 한다. 집값이 오르지 않아도 삶이 흔들리지 않는 구조, 주거가 복지를 대신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안정적 소득 기반의 사회보험 강화, 토지·주택 이익의 공공적 환수 장치 정교화, 생산성 향상을 유도하는 투자 구조 전환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 가격이 아니라 제도가 안정을 보장하는 질서로 이동해야 한다.

 

집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공동체의 헌법이 돼서는 안 된다. 가격이 안정을 대신하는 사회는 결국 가격에 의해 흔들린다. 집이 경제를 설명하는 나라가 아니라 경제가 집을 설명하는 나라로 나아갈 때 복지를 유예해온 시간의 청구서는 멈춘다. 이번 매각이 체제 전환의 신호인지, 하나의 장면에 그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다. 체제는 선언으로 바뀌지 않는다. 자본의 흐름이 바뀔 때만 비로소 바뀐다. 이제 우리는 다시 가격에 기대어 시간을 벌지, 아니면 유예된 시간을 정면으로 청산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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