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적 언어, 상상력·윤리적 감각 지배 생명감·정서 담은 말, 삶 변화의 힘 지녀 AI 아닌 ‘시적 언어’… 인간적 울림 선사
뻐꾸기는 어떻게 우나요? 뻐꾹. 파도는 어떻게 치나요? 철썩. 마음을 기울여 들어본 적이 있다면 알리라. 대기와 지형 그리고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뻐꾸기도, 파도도 울림의 뉘앙스가 다르다는 것을. 약속된 기호의 명명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출렁인다는 것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일상적으로 흔히 쓰는 말들인데 내가 자동판매기 같을 때가 있다. 아메리카노를 누르면 아메리카노가 나오듯이 자동적인 언어 생활을 하면서도 스스로가 기계인간임을 자각하지 못한다.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결제하듯이 점점 더 원격화돼 작동하는 거대한 시스템의 언어가 사유와 상상력 그리고 윤리적 감각을 지배한다.
이런 실험이 있다. 물컵에 ‘사랑’이라고 쓴 뒤 물 분자 이미지를 촬영해봤더니 아름다운 보석의 이미지가 나타났다. 반대로 ‘증오’라고 쓴 뒤 촬영한 결과 보기에도 고통스러운 암세포의 이미지가 나타났다. 긍정적인 말이나 다정한 어휘를 붙여 놓은 물컵의 물 분자 이미지들은 찬란한 생명감으로 빛났다. 인체의 70%가 물이다. 내 안의 세포들을 생명감으로 가득 채울 것인가, 암세포로 만들 것인가. 오래전 베스트셀러 ‘물은 답을 알고 있다’의 질문이다.
말에도 영(靈)이 있다. 시인들은 언령을 모신다. 김승희 시인의 새 시집 ‘빵점 같은 힘찬 자유’ 중 ‘시를 쓰면 그대로 살게 된다’를 보자. “주술 같은 것일까,/지난번 시집에 위궤양에 대한 시를 썼는데/시집이 나온 뒤 위궤양으로 입원까지 하게 됐다/나는 시 쓰기가 두렵다/(중략)/시어는 영매,/그것이 두려울 때 너는 생활에 너무 애착하고 있다/시는 늘 비포장도로로 나아간다.” 시어가 삶으로 그대로 옮겨 오다니. 솔직히 두렵다. 그러나 언령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비포장의 우주를 향해 열려 있는 시인에겐 비록 빵점의 평가를 받는다 하더라도 ‘힘찬 자유’가 늘 함께한다. 소극적 운명애를 넘어서는 자유 의지의 언령도 있는 것이다.
덕담과 축원을 하는 입춘첩 같은 세시 문서도 ‘언령 관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옛 선비들은 입춘첩을 시로 썼다. “푸른 산은 약속한 듯이 늘 문에 닿고(靑山有約長當戶)/흐르는 물은 정이 없는데도 절로 못으로 들어가네(流水無情自入池”처럼 목은 이색이 별서에 붙인 시구도 좋고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같은 이성부 시인의 ‘봄’의 한 구절도 춘련(春聯)을 삼기에 제격이다. 여기에 나만의 입춘첩 시를 더해 본다. 지금쯤 남양성모성지의 복수초 군락이 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화신(花信)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줄탁동시는 눈과 꽃 사이에도 있네/눈껍질 깨고 피어난 병아리/샛노란/저 꽃빛을 보면.” 아직 제목을 정하지 못해 미완성인 것이 아쉽긴 하나 이 행성과 나를 연결하는 생명의 감각 자체가 기껍다. 흔적기관으로나 남아 있는 농경문화 시대의 절기로부터 지구 생명체의 감각을 회복한다는 것은 인공지능(AI)으로선 꿈도 못 꿀 이야기가 아닐까.
나만의 입춘첩 시를 궁리하던 중 초현실주의 시인 앙드레 브르통의 이야기를 만났다. 브르통이 뉴욕에서 떠돌이 맹인 거지를 만난 모양이다. 거지는 ‘나는 맹인입니다’라고 쓴 팻말을 세워 놓고 구걸 중이었다. 행인들은 무심히 그냥 스쳐갈 뿐이었다. 딱하게 여긴 브르통이 문구를 바꿔 놓고 자리를 떠난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맹인 앞에 있던 깡통은 동전과 지폐로 순식간에 가득 차게 됐다. 돈뿐만 아니라 따듯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가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맹인은 어리둥절해하며 팻말의 문구를 행인에게 읽어 달라고 청했다. 문구는 이렇게 바뀌어 있었다. ‘봄이 머지않았는데 저는 그 봄을 볼 수 없습니다.’ 일상어의 표현이 정보만 제공하는 도구 역할에 머물고 있는 데 비해 시인의 새로운 문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서적인 울림의 맥락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시적 언어와 AI의 초지능 언어는 어떻게 다른가. 지구의 생명 시스템을 기억하는 절기를 통해 시의 언령이 입춘을 수행하는 힘이기도 함을 새삼 실감한다. 이상화 시인이 일찍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증명한 바다. 시는 ‘아마도 봄신령이 지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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