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집중된 돌봄, 보호자 신체·정신적 부담 커...다양한 제도에도 ‘신청주의’ 가로막혀 한숨 전문병원·인력 태부족… 기약 없는 기다림 ‘한몫’ 서비스 수요 높고 장기 대기 ‘구조적 문제’ 지적 李대통령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첫발 내디뎌 개인에서 공공의 책임 확대… 사각지대 해소 추진 정부·경기도 ‘돌봄 정책’ 패러다임 전환 필요
장애인 복지제도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돌봄 지원이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경우 돌봄 의존도가 다른 장애 유형에 비해 현저히 높지만, 주요 돌봄자의 약 88%가 여전히 가족이 책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구조는 가족의 희생을 전제로 한 돌봄 체계가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정부가 추진 중인 ‘발달장애인 돌봄 국가책임제’는 이러한 부담을 개인과 가족의 몫에서 사회와 국가의 책임으로 전환하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개인을 넘어 지역사회와 국가가 함께 책임지는 돌봄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무엇이 보완돼야 하는지 짚어봤다. 편집자주
■ 보호자 고령화에 돌봄 한계
“부모들끼리는 내 자녀가 나보다 하루라도 빨리 죽는 게 소원이라는 말을 합니다.”
경기도내 한 발달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만난 구옥순씨(69)의 말이다. 발달장애인 김윤기씨(44)의 어머니인 구씨의 삶에는 피할 수 없는 두 개의 시간이 흐른다. 나의 늙음과 내 자식의 늙음. 그는 “부모의 고령화로 발달장애 자녀를 돌보기 어려워하는 가정이 많다”고 말했다.
박정희씨(70)의 딸 정재영씨(43)는 지능이 3세 미만인 발달장애인이다. 어느새 40대가 된 딸은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다. 관절염 약의 부작용으로 재영씨의 얼굴 피부가 벗겨지고 진물이 흘렀을 때 박씨는 “장애인 전문 병원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수(水)치료를 권유받았지만 비용이 장애인 연금으로는 감당이 안됐다”며 “딸은 나이를 먹어 가는데 마음 놓고 데려갈 병원조차 없다”고 호소했다.
박씨는 현재 상황을 “그나마 행운”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재영이는 시설에라도 들어와 있지만, 시설 밖 부모들은 ‘엄마와 아이가 같이 죽으라는 얘기냐’는 말이 나올 만큼 벼랑 끝에 몰려 있다”며 “실제로 돌봄 부담을 이기지 못해 발달장애 자녀와 함께 생을 마감하려는 부모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호소는 일부 부모의 과장이 아니다. 경기도 발달장애인 돌봄 실태 조사(2024년 1월)에서는 보호자 10명 중 4명꼴인 41.0%가 심한 수준의 우울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년간 ‘죽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한 적이 있다는 응답도 25.9%에 달했다. 발달장애인 돌봄 부담이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음을 수치로 보여준다. 돌봄이 가족 내부에 집중된 구조 속에서, 보호자의 정신적·정서적 부담이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 ‘신청주의’에 막힌 제도들... 녹록지 않은 현실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해보면 도내 다양한 제도가 운영되고 있는 반면 그 혜택들이 모든 부모에게 돌아가기 어려운 구조로 확인됐다.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18조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은 다음 각 호의 복지지원 및 서비스 사회보장기본법 제3조에 따른 사회보험, 공공부조 및 사회서비스를 스스로 신청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즉, 현행 복지 제도는 보호자가 직접 필요한 서비스를 찾아 신청해야만 지원이 이뤄진다.
이 같은 ‘신청주의’로 인해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과 그 가족의 경우 서비스 자체를 잘 알지 못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도 복지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서비스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는 정보 단절’ 문제가 지적됐다.
발달장애인법을 근거로 수행되는 발달장애인 지원 세부사업에는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 △방과후활동서비스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서비스 △발달장애인 부모·가족 지원 등이 있다. 이외에도 경기도에서는 △소득·일자리 △자립 △문화·여가·교육 △건강·의료 등 다양한 지원 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서비스마다 신청·문의 창구도 협회, 수행기관, 상담센터 등 제각각이고 신청 방법도 온라인, 개별 기관 문의 등 방식이 달라 보호자가 일일이 찾아보지 않으면 접근 자체가 어렵다.
돌봄으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부모나 고령의 보호자가 각 제도의 신청 시기와 기준을 맞춰 모든 혜택을 챙기기에는 역부족이다. 제도는 늘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알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체감은 따라오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다.
■ 도내 발달장애인 인프라 ‘태부족’
경기도내 발달장애인은 2025년 10월 기준 6만6천50명에 달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돌봄 인프라는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경기도청에 따르면 도내 활동지원사는 2025년 8월 기준 3만2천904명으로 발달장애인의 돌봄 수요를 감당하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설 인프라도 충분하지 않다. 도내 장애인 거주시설은 총 165개로 △장애인 거주시설 82개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53개 △단기거주시설 30개 등이다. 전체 수용 가능 인원은 5천295명으로 발달장애인 전체 규모와 비교하면 극히 제한적인 수준이다.
실제로 도내 한 장애인 거주시설에는 입소 대기자만 40명이 넘고 매일같이 입소 문의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해당 시설 관계자는 “입소 기약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대기자 명단에 올려두고 다른 시설이나 지원책을 알아보라고 안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수요에 비해 시설과 인력, 서비스 공급이 구조적으로 부족한 가운데 돌봄 부담은 여전히 개인과 가족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돌봄이 생애주기별로 끊기고 제도가 통합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오롯이 개인에게 떠넘겨진 돌봄을 지역사회와 국가가 함께 책임지는 체제로의 전환 요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 드디어 ‘발달장애인 국가 책임제’ 첫 발
이러한 요구에 화답하듯 발달장애인 돌봄의 패러다임 변화가 시작됐다. 이재명 정부는 ‘장애인 삶의 질 향상과 기본적 권리 보장’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발달장애인 돌봄 국가책임제’를 국정과제 79번에 선정해 돌봄·자립·건강 등 개별 맞춤형 지원체계 구축을 목표로 첫 발을 내디뎠다.
2025년 9월 ‘발달장애인 돌봄 국가책임제’ 시행을 위해 보건복지부 주관 민관 협의체 첫 구성을 알리며 관련 논의를 시작했다.
정부는 발달 장애인 대상 주요 서비스를 확대하고 전 생애에 걸쳐 서비스 간 연계를 강화해 국가가 책임지는 촘촘한 돌봄 서비스 제공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현장에서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국가책임제’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던 발달장애인 가족과 현장 전문가들에게 기대와 희망을 갖게 해준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발달장애인 돌봄의 패러다임을 개인에서 국가 및 공공의 책임으로 전환하고 돌봄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매우 긍정적이고 중요한 방향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전문 인력·인프라 확충·통합된 초개인화 서비스... 돌봄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문가들은 발달장애인 돌봄 정책이 현장에서 체감되기 위해서는 인프라 확충과 전문 인력에 대한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좋은 종사자가 좋은 돌봄을 만든다”며 종사자 처우 개선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양종국 한경국립대 사회통합학부 교수는 돌봄의 성패가 결국 ‘사람’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양 교수는 “도전적 행동과 중복장애를 동반한 최중증 발달장애인을 전담할 전문 인력이 부족해 장기 대기가 반복되고 있다”며 “전문 인력 양성과 함께 임금과 노동 강도를 반영한 보상 체계 마련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애주기별 접근을 넘어 개인 특성을 반영한 ‘초개인화 서비스’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교육과 복지가 지역사회에서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통합 돌봄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미옥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역시 “돌봄은 결국 ‘사람’이 주는 서비스이므로, 종사자에게 적절한 처우와 ‘괜찮은 일자리’라는 인식을 제공해야 좋은 인력이 유입된다”면서 “이는 단순히 비용을 쓰는 것이 아니라, 돌봄의 질을 높여 결과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낮추는 투자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복 장애나 정보 소외 지역 등 여전한 사각지대 해소와 시·군·구 중심의 통합 전달체계 구축을 향후 과제로 꼽았다. 또 장애인 자립지원법 등과 연계해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발달장애인의 주거 지원 강화의 필요성을 제언했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