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노대 속은 무엇으로 채웠을까?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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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대 뒤편에 설치한 서노대는 모양이 단순하고 독특하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화성에는 19개 유형에 60개 시설물이 있다. 시설물 중 모양이 가장 독특한 디자인은 노대다. 화성에서 가장 높은 팔달산 정상 서장대 서쪽에 서노대가 있다. 크고 화려한 서장대와 단순한 서노대 중 어느 공사가 어려웠을까. 보기와 달리 단순한 서노대가 까다롭고 어려운 공사였다.

 

장대와 노대는 분명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서장대 곁에 서노대가 있고 동장대 곁엔 동북노대가 있다. 기록도 마찬가지다. 의궤 기록을 봐도 장대와 노대는 한 세트로 짝을 이뤄 함께 설명하고 있다. 화성 노대는 기능과 목적이 원래의 기능과 제도에서 완전히 바뀐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안내문을 보면 “적의 동향을 살피고 깃발을 이용해 적의 위치를 알리는 용도로 쓰였다”라고 했다. 즉, 원래 쇠뇌(弩)를 쏘는 시설인데 정탐, 경보, 신호로 기능이 바뀌었음을 말하고 있다. 또 건축 제도를 보면 노대는 원래 대 위에 집을 지어 은폐시설을 하는 것이 설계 기준이었지만 화성 노대에는 집도 안 짓고 다른 은폐시설도 하지 않았다. 왜 기능과 건축 제도가 이처럼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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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모양인 동북노대도 모두 잡석으로 채웠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쇠뇌가 오히려 불편한 무기가 됐다. 신속함에서 뒤처진 모양이다. 쇠뇌가 거의 사용되지 않게 되자 높은 대를 이용해 정탐과 경보 전달로 역할이 바뀌었고 쇠뇌에 필요한 집과 은폐시설은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지휘관이 머무는 장대 전방에서 정보 전달 임무로 바뀌었다. 장대의 전방에 노대를 세운 이유다.

 

노대의 형태는 화성 시설물 중 가장 독특하다. 서노대는 팔각형 평면이 위로 올라가면서 좁아진 형태의 모양이다. 기하학적 형태다. 동북노대는 치성 중 가장 높고 평면이 벌의 허리(蜂腰·봉요) 모양을 하고 있다. 디자인 측면에서 두 노대 모두 상당히 특이한 매스(Mass)다.

 

서노대 공사는 외벽 벽돌을 1척 정도 높이만큼 쌓은 후 속을 채우고 다진 후 다시 1척을 올리는 방식으로 반복적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작은 건축물이지만 보기와 달리 매우 까다로운 공사다. 서장대는 가로세로로 나무를 짜 맞추는 단순 구조다. 손쉬운 구조다. 그러나 서노대는 기하학을 잘 알고 3차원 공간감이 있는 장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공사다.

 

서노대를 보며 궁금한 것은 속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다. 안내문에는 “안에는 흙을 채우고, 겉은 벽돌을 붙였으며, 여덟 방향의 모서리는 돌을 깎아 마감했다”라고 돼 있다. 이 안내문 중 다음 두 가지가 잘못됐다. 하나는, “안에는 흙을 채우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겉은 벽돌을 붙이지” 않았다.

 

다시 말해 원형은 “흙이 아닌 잡석을 채웠다”이고 “벽돌을 붙였다”가 아니고 “벽돌을 쌓았다”다. 흙과 잡석은 재료가 전혀 다르다는 의미다. 붙인 것과 쌓은 것은 시공과 품질이 전혀 다르다는 의미다. 먼저 흙 대신 잡석을 채운 이유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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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로 쌓은 벽체를 장기간 유지하려면 속 채움 재료가 중요하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첫 번째 이유는 흙이 아닌 잡석으로 채운 것은 구조 안정성 때문이다. 서노대는 안정적 외형과는 달리 구조가 매우 취약하다. 성처럼 뒷길이가 긴 돌을 사용한 게 아니고 벽돌로 쌓은 조적조 구조다. 조적조는 횡력에 약하다. 벽돌을 둘러싼 테두리 돌도 구조재라기보다 치장재다. 그래서 지지력을 스스로 지닌 재료로 채워야 한다. 흙보다는 잡석으로 설계했다. 잡석이라야 그나마 구조적으로 안전하다.

 

두 번째 이유는 벽돌 쌓기 구조는 장기적으로 줄눈이나 틈새를 통해 빗물이 침투한다. 내부로 침투한 물이 흙과 함께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 외부 벽돌벽에 균열이 오고 결국 붕괴한다. 흙의 팽창과 축소의 반복 때문이다. 토압, 동결융해, 팽창축소에서 보면 흙은 채움재로 매우 불리하다. 반면 잡석은 구조에 유리하다.

 

화성을 토성으로 할 것인가 석성으로 할 것인가의 논쟁에서 정조는 총리대신 채제공과 감동당상 조심태의 반대에도 석성으로 결정한다. 그 이유를 보자. 의궤 ‘재료’ 편에 “토성은 비록 겉면을 회삼물로 쌓는다고 해도 흙과 서로 붙지 않으며 얼음이 깊이 얼 때에는 흙 밑바닥이 가라앉게 되고, 흙은 점점 안에서 부풀러 올라 회가 밖으로 엎어져 쓸모없게 된다”고 했다. 흙의 물성이 장기적으로 매우 취약한 구조임을 정조는 이미 알고 있었다.

 

세 번째 이유는 잡석이 흙보다 얻기 쉬운 재료이기 때문이다. 얻기 쉽다니 의아할 것이다. 서노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다. 당시 이곳은 흙이 없고 전체가 울퉁불퉁하게 솟아난 바위로 된 지형이었다. 흙은 산 아래에서 운반해야 했지만 잡석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무엇보다 팔달산정 인근에서 벌석했고 성과 여장에 사용하고 남은 잡석을 활용했다.

 

이런 사실은 기록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사용 자재와 수량을 기록한 권5 실입 편에 나온다. 확인도 간단하다. 서노대 사용 재료를 보면 장대석, 우석, 보석, 고막석, 잡석, 방전만 나온다. 서노대는 모양이 단순해 재료도 간단하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벽, 계단, 여장, 속 채움만으로 구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벽에는 방전, 장대석, 우석이 사용되고 계단에는 보석이, 여장에는 방전이 사용됐다. 남은 재료는 잡석이고 남은 구조는 속채움이다. 따라서 속채움에 잡석이 사용된 것이다. 서노대에 사용된 잡석량은 1천620짐(負)으로 금액으로는 45냥이라고 기록돼 있다.

 

의궤 기록은 서노대뿐 아니라 화성 모든 시설물에 사용됐음을 확인해 준다. 모든 치성, 문의 육축 등에 채움재로 잡석이 사용됐다. 견고한 전쟁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서다. 수원화성은 건설공사 품질관리의 우수함을 보여주고 있다. 팔달문 해체 보수공사에서 거대한 팔달문 육축 속채움에 잡석이 사용됐음(사진)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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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시설물 전체에 잡석이 사용되지 않은 시설물은 없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화성에서 모든 시설물 속채움에 잡석을 사용했다는 증거다. 화성 시설물은 전쟁 시설물이다. 흙으로 채운 구조일 경우 포탄을 맞으면 한번에 전체가 붕괴한다. 하지만 잡석이면 부분 파괴는 있어도 연쇄 붕괴는 피할 수 있다. 재료의 특성 때문이다.

 

지금까지 독특한 모양의 서노대와 그 속에 무엇을 채웠는지 살펴봤다. 구조 안정성, 재료 조달 용이성, 견고한 품질확보, 의궤 기록 등으로 미뤄 서노대 속은 흙이 아닌 잡석으로 채웠음이 밝혀졌다.

 

오늘은 하찮게 보이는 잡석이 정조의 ‘철옹성 수원화성 비밀병기’였음을 엿봤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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