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지 않은 모든 삶’에 바치는 빛의 헌사 소설가 임선우 [경기 작가를 해석하다]

경기 작가를 해석하다, 평론가 연재 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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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이은란. 경기문화재단 제공

실패의 그림자를 허용하지 않는 세계에서 우리는 ‘빛나지 않는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임선우의 첫 소설집 ‘유령의 마음으로’(민음사·2022년)를 읽으며 나는 “단 한 번만이라도 저렇게 환하고 아름답게 빛날 수만 있다면 삶에 미련이 없을 것 같았어요”라는 문장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생리가 곧 실패로 간주되는 난임 여성, 역할 대행 알바가 된 연극배우, 연출한 영화가 ‘수면제 밈’이 돼 버린 시나리오 작가, 사고로 수영선수의 꿈을 접은 뒤 도벽을 얻은 은행 보안직원, 조회 수가 0에 수렴하는 웹툰 작가까지. 임선우의 소설에 그려진 등장인물들의 실패는 반짝반짝 빛나는 삶과는 다분히 거리가 멀지만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은 이들의 어두운 삶에 끝내 빛을 깃들게 한다.

 

어쩌면 주위에서 흔히 볼 법한 좌절의 서사는 임선우 소설 특유의 환상성과 배합되면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로 재탄생한다. 그런데 이러한 환상성은 우리가 공유하는 일상과 맞닿아 있기에 마냥 낯설지 않다. 두 번째 소설 ‘초록은 어디에나’(자음과모음·2023년)는 헤엄치는 방법조차 알지 못한 채 슬픔의 해저를 부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초록 고래가 있는 방’의 주인공은 영화 ‘초록 고래’의 처참한 실패 이후 알코올 중독을 겪지만 함께 사는 동생에게조차 이를 내색하지 않는다. 남편을 잃은 뒤 단봉낙타로 변신하는 ‘유미’ 또한 죽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야 비로소 인간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자각되지 못한 슬픔, 표출되지 못한 상실감은 ‘사려 깊은 밤, 푸른 돌’의 주인공이 토해내는 돌로 결정화된다. 그럭저럭 삶을 이어 가지만 내면이 곪아 있는 소설 속 인물들은 돌을 주고받는 가운데 차츰 서로의 슬픔을 들여다보게 된다. 차갑지만 한 줄의 온기가 담긴 푸른 돌의 물성은 고립된 인물들을 연결하는 구심점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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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임선우, 임선우作, ‘유령의 마음으로’(2022). 민음사 제공

 

슬픔과 찬란함이 공존하는 빛은 근작인 ‘0000’(위즈덤하우스·2024년)에서 따스함을 겸비한 사랑의 물성을 전달한다. ‘존재감 제로’의 삶을 살아온 웹툰 작가 ‘나’는 삶과 죽음의 중간지대에서 고양이 ‘오후’를 만나 삶에 대한 애착을 깨닫는다. 무기력한 사물처럼 살아온 ‘나’는 오후가 건넨 빛나는 환생 구슬을 받고 다시 살아보기로, 스스로에게 삶을 사랑할 기회를 주기로 결심한다. 살아있음 그 자체만으로 우리가 함께 빛날 수 있음을, 그렇기에 삶은 충분히 사랑하고 지속할 만한 것임을, 임선우는 따뜻한 빛의 시선으로 말해 주고자 한다. 때로는 물결처럼 은은하게, 혹은 도시 전체를 비출 정도로 환하게. 단단한 슬픔과 빛의 온기가 교차하는 임선우의 소설은 ‘빛나지 않은 모든 삶’을 위한 헌사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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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우作 ‘초록은 어디에나’(2023). 자음과모음 제공, ‘0000’(2024). 위즈덤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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