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의 세계는 지금] ‘APEC 성공’ 한반도 평화 동력으로 활용

관세협상 타결... 3천500억달러 대미 투자
11년 만에 국빈 방한, 韓中관계 개선 징조
李대통령, 日 나라서 셔틀외교 개최 제안
북핵·한반도 평화 구축은 실질적 진전 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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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달 26일 아세안(ASEAN) 정상회의부터 이달 1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까지 이어진 외교 슈퍼 위크가 종료됐다. 이 기간 내내 이재명 대통령은 APEC 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미, 한일, 한중 정상회담도 매끄럽게 마무리했다. 취임 5개월 만에 대규모 국제 행사를 잘 치러냄으로써 이 대통령의 국익중심 실용외교는 한층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관세협상의 타결로 한미관계의 불확실성이 상당히 제거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요한 압박 속에서도 이 대통령은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했다. 더 나아가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우리나라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지원하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한중 관계의 복원도 중요한 성과다. 11년 만에 성사된 시진핑 주석의 국빈방문으로 2016년 사드 배치 이후 지속돼 온 경색 국면이 풀릴 기미가 나타났다. 서해 구조물 및 핵추진 잠수함 같은 갈등 요인이 있지만 한중 정상은 2009년부터 계속돼 온 한중 통화 스와프의 연장,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 협상의 가속화,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협력 강화에 합의했다.

 

한일 정상회담도 무난하게 치러졌다. 정치적 성향이 상반되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의 회담에서 이 대통령이 대일 정책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강조함으로써 일본 총리의 교체가 한일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됐다. 또 이 대통령은 다음 번 셔틀외교를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인 나라(奈良)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익 중심 실용외교가 본궤도에 올랐다고 평가하기는 이르다. 주변 3강과 관계를 개선했지만 북핵 문제의 해결과 한반도 평화 구조 구축에는 실질적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8월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에게 피스 메이커 역할을 부탁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방한 일정 중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기 위해 노력했으나 북미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오히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 방한 직전 최선희 외무상을 모스크바에 파견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접견하게 했으며 순항미사일도 발사했다.

 

북한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도 난제다. 알렉세이 오베르추크 국제문제 담당 부총리가 APEC 정상회의에는 참석하는 기간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천연자원부 장관이 이끄는 러시아 경제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2만명 이상의 병력을 파견한 이후 러시아는 북한에 현금, 곡물, 석유 등은 물론이고 군사기술을 제공해 북한의 경제난과 식량난이 완화됐다. 러시아가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한 북한은 남북 회담은 물론 북미 회담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로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확보됐다. 한미, 한중, 한일 정상회담이 잘 끝났기 때문에 대러 관계만 복원하면 4강 외교는 완성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지지가 없이는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END 이니셔티브가 제대로 실현될 수 없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지만 말고 정부는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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