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동장대 길이 4척을 찾다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의궤 기록의 틈에서 드러난 정조의 비례미학
208척5촌 동장대가 전한 건축의 숨은 질서

지금까지 동장대 전체 길이를 잘못 알아 왔다.
지금까지 동장대 전체 길이를 잘못 알아 왔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동장대는 화성 시설물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세 개의 대로 구성되는데 낮은 곳부터 하대, 중대, 상대라 부른다. 대(臺)란 시설물을 짓거나 어떤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주변보다 높은 평평한 땅을 말한다. 울퉁불퉁한 지형을 깎거나 돋워 수평으로 정리한 것으로 보면 된다.

 

동장대 터는 규모가 커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은 터의 전체 규모였다. 터의 규모, 즉 동장대 터의 가로세로 길이는 얼마나 될까. 가장 간단한 문제를 오늘의 과제로 삼은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연구가를 포함해 대부분 동장대 규모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규모는 해당 터의 너비와 길이를 의미한다. 당시는 너비는 가로 너비 활(闊), 즉 횡활(橫闊)이라 하고 길이는 세로 길이 장(長), 즉 종장(縱長)으로 표현했다. 동장대의 규모에 대한 의궤 기록을 보자. ‘대의 너비 134척’, ‘중대 아래에 이르러서는 동서 길이가 52척’, ‘중대 동서 길이는 71척5촌’, ‘상대 석축의 동서 길이는 81척’ 등 이것이 전부다.

 

먼저 동장대 가로 너비를 알아보자. 의궤 기록 ‘대의 너비 134척’에서 너비는 짧은 변인 가로 길이를 말한다. 즉, 동장대 너비는 134척이다. 검증을 위해 실측해 봤다. 실측한 결과 134척으로 나왔다. 의궤 기록과 일치한다. 따라서 동장대 가로 너비는 134척으로 확정해도 된다.

 

동장대 크기는 가로세로의 치수를 말한다.
동장대 크기는 가로세로의 치수를 말한다.

 

다음으로 동장대 세로 길이를 알아보자. 의궤에는 전체 길이를 하나로 기록하지 않았다. 3개 대, 하나하나를 기록했다. 단위 명칭은 ‘동서장(東西長)’이다. 의궤에 ‘중대 아래에 이르러서는 동서 길이가 52척‘, ‘중대 동서 길이는 71척5촌, ‘상대 석축의 동서 길이 81척’이라 했다. 모두 동서장을 사용했다.

 

동장대는 3개의 대로 구성돼 있으므로 이 세 곳 각각의 동서장 합계가 동장대 전체의 길이가 된다. 1개 대씩 기록한 각각 길이를 합하면 동장대 전체 길이가 된다는 의미다. 합해 보니 전체 길이가 204척5촌이다. 이것이 동장대 3개 대 길이의 합이고 동장대 세로 길이다. 검증이 필요하다. 필자가 복원된 동장대의 세로 길이를 실측해 봤다.

 

실측을 해보니 전체 길이가 208척5촌이 나왔다. 의궤 기록보다 4척이 더 길다. 4척이란 차이는 측정 오차로 보기에는 큰 수치다. 지금까지 모두 알아 온 동장대 길이와 4척의 차이가 있음을 알았다. 의궤에 기록된 길이가 4척이 짧다. 이래서 검증이 중요하다. 실측과 의궤 기록에 왜 4척의 차이가 있을까.

 

원인은 세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실측을 잘못한 경우, 복원을 잘못한 경우, 그리고 의궤 기록에 오류가 있을 경우다. 실측은 여러 번 해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복원 오류도 수긍하기 어렵다. 1970년대 복원 당시 유구가 잘 남아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복원을 잘못해도 전체 길이에서 4척이나 차이 날 수 없다. 의궤 기록을 다시 세밀히 보자.

 

‘총수의 사대’ 아래 4척 물림 부분까지가 하대다.
‘총수의 사대’ 아래 4척 물림 부분까지가 하대다.

 

의궤 기록과 실측을 구간별로 비교해 보자. 기록은 하대 길이 56척, 중대 길이 71척5촌, 상대 길이 81척으로 204척5촌이다. 실측은 하대 길이 60척, 중대 길이 71척5촌, 상대 길이 81척으로 208척5촌이다. 하대(下臺) 부분에서 차이가 발생했다. 의궤에 56척, 실측이 60척으로 4척 차이다. 왜 차이가 생겼을까.

 

혹시 하대와 중대의 경계선을 잘못 봤을까. 필자는 와장대가 끝나고 중대 석축이 시작되는 지점을 하대와 중대의 경계선으로 보고 실측을 했다. 근거는 ‘중대 동서 길이는 71척5촌’이라는 기록에서 ‘중대’는 원문에 ‘중대 석축’으로 돼있기 때문이다.

 

실측도 일치한다. 중대 석축에서 중대 길이 71척5촌을 가니 상대 석축이 나왔다. 이 상대 경계에서 상대 길이 81척을 가니 문석대가 나왔다. 이는 중대 길이 71척5촌이 의궤 기록과 일치하고 상대 길이 81척도 의궤 기록과 일치했다. 이런 사실은 실측 시 적용한 하대와 중대의 경계선에 문제가 없음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차이 4척은 어디에 있을까.

 

하대 길이에 숨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대 부분 의궤 설명에서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 없다. 의외로 하대가 아닌 중대 부분 설명에서 찾았다. 의궤에 “중대는 돌로 쌓았는데 높이 7척5촌이다. 그 높이를 반으로 해 4척쯤 물려 또 한 층을 쌓았다”는 기록이다. 상당히 특이한 설명이다. 하대의 길이에 대한 설명이 중대 설명에 있는 이상한 형국이다.

 

중대 설명 중 ‘초퇴사척(稍退四尺)’, 즉 하대 쪽으로 ‘4척 물림’이란 설명이 핵심이다. 범인이다. ‘뒤로 물렸다’란 표현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물린 4척 공간은 하대에도, 중대에도 속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이 4척은 하대 길이 52척, 중대 길이 71척 5촌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오로지 ‘4척 물림’이라 기록했다. 이 4척 부분은 일명 ‘총수의 사대’라 불리는 곳이다.

 

동장대 길이를 알아보며 당시 표현 방식도 알게 됐다.
동장대 길이를 알아보며 당시 표현 방식도 알게 됐다.

 

원문에 ‘4척 물림’이라 기록해 헷갈린 것이다. 만일 ‘총수의 사대 동서장 4척(銃手射臺 東西長四尺)”이라 기록했다면 헷갈리지 않았을 것이다. 또 ‘至中臺下(지중대하)’는 번역문에 ‘중대 아래까지’라 돼있다. 이 말은 ‘중대까지’ 혹은 ‘중대의 시작점까지’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중대 아래까지’란 말이 ‘중대에서 4척 물린 지점까지’로 볼 수 있을까. 결론은 하대의 정확한 경계선은 ‘중대에서 4척 물린 지점’이다.

 

의궤 기록에 왜 이렇게 표현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당시 동장대 길이를 기록하며 3개 대를 사실상 4개 대로 나눠 기록했음이 밝혀졌다. 하대, 중대, 상대 3개 대 외에 총수의 사대를 1개의 대로 취급해 별도로 기록한 것이다. 하대의 경계선은 ‘중대에서 4척 물린 지점’임이 밝혀졌다. 잘못 알려진 하대의 경계선도 알게 됐다. 동장대의 전체 길이가 208척5촌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동장대는 가로 134척, 세로 208척5촌이 정확한 규모다. 동장대 터의 가로세로 형상비는 2 대 3이다. 영롱장 뒤 내탁부를 포함하면 1대 루트 3의 완벽한 비례를 보여주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의 형상비와 같다. 형상비란 가로세로의 비율로 당시 아름다움의 척도로 쓰였다.

 

오늘은 동장대 길이를 살펴보며 비례(比例)와 균제(均齊)를 중시한 정조의 미(美)의식을 엿봤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 전문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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