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의 숨소리
비가 내린다.
창 위로 스며드는 빛과 빗방울!
세상의 숨소리다.
이름 없는 감정들이 부서지고 흔들리고
그저 다른 모습으로 스며든다.
젖은 공기 속에 머물며
스스로가 비가 되는 순간이다.
한 방울의 투명함 속에서
모든 존재가 서로를 비춘다.
#2. 생명의 수호자
끝없이 반복된 잎맥들의 합창 속,
허수아비 하나가 지휘자처럼 서 있다.
그는 어쩌면 존재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현존을 수행하는 하나의 기표(記標)다.
바람은 스쳐 지나가고
지켜야 할 대상이 없는 순간에도
‘지킴’이라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그의 운명이다.
겨울 웅장한 수확을 약속한 초록의 바다.
살아 있는 몸들의 바다 한가운데
오히려 살아 있지 않은 것이
생명의 자리를 대신해 서 있다.
#3. 가을의 숨결
가을 색이 찬연하다.
햇살에 물든 가지 끝, 한 마리 까치가 가을을 느끼고 있다.
계절이란 단지 풍경의 변화가 아니다.
머무름과 떠남의 언어다.
나무는 잎을 떠나보내며 자신을 비워내고,
까치는 그 가지 위에서 그 비움을 고요히 느낀다.
노란 잎들은 햇빛을 절정으로 노래하고,
그 빛 사이로 바람이 스쳐간다.
모든 것이 흘러가고 변해도,
잠시 멈춰 바라보는 순간에야
비로소 우리는 계절의 숨결을 듣게 된다.
그 고요 속,
까치는 지금 이곳, 여기를 외친다.
홍채원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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