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 높은 관세·중국 약진 위협 VEU 자격 상실·대미 수출 감소 어려움 국가안보 차원, 국내기업 적극 지원을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수출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1.3% 증가했다. 이러한 성과의 최대 공신은 전체 수출에서 25.9%를 차지하는 반도체였다. 반도체 수출액이 151억달러로 27.1% 증가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대미 수출은 어려워졌지만 주력 제품인 메모리 단가가 상승했으며 인공지능(AI)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면서 반도체 수요도 탄탄했기 때문이다.
역대 최대 수출액에 대한 주식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1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오르기는커녕 떨어졌다. 미국의 대중 제재와 중국의 AI 반도체 개발이 한국 반도체 기업의 성장을 억누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미국 상무부 산업보안국은 글로벌 반도체 업체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중국으로 반입할 수 있게 했던 포괄적 허가 제도를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2022년 10월부터 유지돼 온 사전 허가 없이 미국산 장비를 중국에 수출할 수 있는 특혜인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자격이 소멸된 것이다. 따라서 VEU 자격을 잃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산 장비를 중국으로 반입할 때마다 개별적으로 산업보안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반도체 관세도 당면한 리스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반도체에 200~300%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시사했다. 미국으로 제조 시설을 이전하는 기업에는 관세를 면제해 주겠다는 단서가 달려 있지만 반도체 관세가 인상되면 우리 반도체 기업의 대미 수출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중국 반도체의 약진도 위협적이다. 최근 알리바바는 AI 칩을 독자 개발했다. 이 AI 칩은 성능에서 엔비디아의 최신 칩보다 뒤처지고 학습보다는 경량 추론 작업에 적합하다는 한계를 가진다. 그렇지만 이 제품을 생산한 파운드리가 TSMC가 아니라 공개되지 않은 중국 기업이다. 중국 기업이 설계부터 생산까지 전 공정을 모두 책임져 알리바바는 미국의 수출 통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다.
알리바바가 독자적으로 AI 칩을 생산한 결정적 요인은 엔비디아 H20에 대한 불만에 있다. 중국 최대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인 알리바바는 AI 칩을 엔비디아로부터 대량 구매해 왔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국가안보 위협을 명분으로 가장 성능이 우수한 H100의 수출을 제한하는 대신 H20만 허용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H20의 수입을 제한하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성능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7월15일 인터뷰에서 “중국에 최고의 제품, 차선, 세 번째로 좋은 제품도 팔지 않는다. 네 번째로 좋은 제품을 파는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실제로 H20의 연산능력은 H100의 25%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H20으로는 대형 AI 모델 학습을 할 수 없다.
두 번째는 엔비디아가 H20에 우회 접속 통로(백도어), 원격 종료(킬 스위치), 위치 추적 등의 기능을 숨겨 놓았다는 의혹이다. 엔비디아가 의혹을 즉각 부정했으며 이러한 기능이 사용된 사례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그렇지만 미국 의회가 중국이 제3국에서 엔비디아 칩을 우회로 수입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수출용 반도체에 위치 추적·종료 기능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반도체보안법안을 7월 발의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중국은 인터넷·데이터 안전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을 근거로 H20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VEU 자격 상실이 보여주듯이 지난달 말 정상회담 이후에도 미국의 일방적 조치는 계속되고 있다. 반도체가 무너지면 수출은 물론이고 인공지능 대전환(AI Transformation)도 실행하기 어려워진다. 미국과 중국처럼 국가안보 차원에서 정부가 우리 기업을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지금까지 알아서 잘했으니 앞으로도 잘해 나갈 것이라는 안이한 낙관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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