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열정과 따뜻한 서정성을 겸비한 작가’ 김혜빈 [경기작가를 해석하다]

[경기 작가를 해석하다, 평론가 연재 ⑤-김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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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종민 문학평론가

김혜빈 소설의 장소는 독특하다. 그의 캐릭터들은 비무장지대 마을의 인쇄소(‘등에 불을 지고’), 아일랜드 이탄지(‘그라이아이’), 침습형 뇌 컴퓨터 제작연구소(‘순환 순수 역학’), 모형 제작소(‘솔리터리 크리처’), 3D 영상 제작사(‘레드볼’) 등에서 활동한다. 캐릭터들도 심상치 않다. 인쇄소가 불타면서 첫 책 출간이 미뤄진 신진 소설가, 태어날 때부터 백발인 소녀들, 자신의 이름을 바꾼 늑대인간, 캐리어에 담긴 아기, 버추얼 휴먼 진이가 등장한다. 장소와 캐릭터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질 예감을 준다.

 

하드보일드 문체인 김혜빈의 서사는 시간과 공간을 종횡무진 넘나든다. 커다란 스케일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늘 묵직한 주제에 도달한다. 근미래에 실제 펼쳐질 수 있는 장면들에는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갈등과 고민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캐릭터들은 공히 ‘화상 자국’ 같은 천형을 안고 있다. 김혜빈의 작품 가운데 비교적 잔잔한 흐름으로 구성된 ‘단지 그것을 위한 베개’에서도 사시안을 가졌거나 얼굴에 반점을 지닌 인물이 나온다.

 

이 캐릭터들의 원천은 젠더 갈등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그라이아이’), 냉대의 시선과 의도치 않은 모멸감을 일상적으로 느껴야 하는 소수자(‘솔리터리 크리처’), 무한경쟁과 암투로 자유를 잃어가는 직장인(‘레드볼’), 공포어린 재앙에 과잉 기술로 맞서다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는 문명인(‘순환 수수 역학’)이다. 우리 자신의 모습이 김혜빈 서사의 베이스다. 그의 소설은 강렬한 주제의식, 스피디한 문체, 스릴 넘치는 플롯으로 장착되어 긴장과 감동을 선사한다.

 

2024 경기예술지원 선정작 ‘단지 그것을 위한 베개’(교유서가)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단지 그것을 위한 베개’에서 세 친구 구나⋅용인⋅다희는 다세대주택 2층에 입주, 남편이 죽은 뒤 홀로 생활하는 아랫집 주인 지타와 일상에서의 사소한 불편과 소소한 희망을 함께 엮어간다. ‘배추밭에 얼굴을 묻을 때’에서도 ‘나’(시내)와 엄마는 경기도 외곽 신도시아파트로 이사 와 중학교 동창 호준이를 우연히 만나 텃밭을 일구며 서로 조금씩 다가간다. 무심한 듯 세밀하게 그 마음들의 이동 경로를 짚어가는 따뜻한 소설을, 그는 쓴다. 낮고 작은 이야기도, 광활한 이야기도 다 쓴다. 열정과 서정성을 두루 갖춘 작가 김혜빈은 매일 독보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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