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유휴지 적극 개발… 소외된 경기북부 살리자” [軍 떠난 자리, 버려진 땅 完]

지원법안 등 국회서 계류·폐기 반복... 李대통령, ‘북부 분도’ 대안 카드로
“공여지 처리 전향적 검토” 지시 속 지자체도 힘 받아 부지 활용 모색

포천시의 한 거리에 정부의 군 유휴지 반환을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걸린 모습. 휴전 이후 정부는 개인 소유였던 땅들을 강제 매입해 군사 기지로 사용했으나, 군사기지 이전 및 통폐합으로 방치된 군 유휴지들에 대한 매각 및 반환 계획이 뚜렷이 없어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박채령기자
포천시의 한 거리에 정부의 군 유휴지 반환을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걸린 모습. 휴전 이후 정부는 개인 소유였던 땅들을 강제 매입해 군사 기지로 사용했으나, 군사기지 이전 및 통폐합으로 방치된 군 유휴지들에 대한 매각 및 반환 계획이 뚜렷이 없어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박채령기자

 

군 떠난 자리, 버려진 땅 도심 속 잠든 軍 유휴지

完. ‘관련 지원법’ 제정 쏠린 눈

수 년째 경제적으로 소외된 경기북부를 살리기 위한 대책 중 하나로 정부·지자체가 군 유휴지 개발에 앞장서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최근 대통령의 지시를 시작으로 지자체에서도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된 만큼, 관련 법안이 탄생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18일 국방부, 경기도 등에 따르면 지난달 1일 이재명 대통령은 “경기북부지역 미군 반환 공여지 처리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해 보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경기북부 활성화의 일환으로 ‘분도’가 얘기되던 상황에서 ‘분도’는 시기상조라고 보고 그 대안으로 미군 반환 공여지를 꺼내든 셈이다.

 

지자체인 경기도는 미군 반환 공여지 처리 문제를 살펴보는 동시에 군 유휴지 및 주변 지역 활용 방안도 같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미군 반환 공여지를 포함한 미군 공여부지는 특별법을 근거로 국가 지원을 받아 개발이 비교적 용이한 반면 군 유휴지는 개발해야 할 법적 근거가 없어 국방부에 ‘기밀 사항’으로 매여만 있었기에, 이를 나란히 논의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도는 대통령의 지시가 나온 바로 다음 날(지난달 2일) ‘주한미군 공여구역 및 주변 지역 등 발전계획 변경안 공청회’를 연 데 이어, 같은 달 30일 ‘군 유휴지 활용 및 지원 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 용역 착수보고회’를 개최했다.

 

그동안 군 유휴지 개발을 위한 법·조례 관련 시도들은 꾸준히 제기됐다.

 

경기도에서는 지난 2023년 ▲민·관·군 협의회의 설치·운영 ▲군유휴지등의 활용 및 지원을 위한 사업 ▲행정적·재정적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경기도 군유휴지 및 군유휴지주변지역 활용과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심의, 의결했다. 다만 국회에서의 법안은 통과하지 못한 채 계류·폐기를 반복했다.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이 2020년 11월 발의한 ‘군 유휴지 및 군 유휴지 주변지역 발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군 유휴지 특별법),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의원이 2022년 11월 발의한 ‘국방·군사시설 사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해당 법안들은 제21대 국회에선 폐기됐고, 제22대 국회에선 1년 넘게 발의 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새 정부가 관심을 갖고 뛰어든 기조인 만큼, 미군 반환 공여지 처리 문제와 함께 군 유휴지 및 주변 지역 활용 방안을 모색한다는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다.

 

‘경기도 군유휴지 민·관·군 협의회’를 이끌며 군 유휴지 활용 대책 마련에 앞서온 경기도의회 윤종영 의원(국민의힘·연천)은 “최근 대통령의 언급도 있었던 만큼 이제부터는 더 활발히 군 유휴지·미군 공여기지의 반환 및 개발을 논해야 한다”며 “더군다나 그동안 경기도가 지속적으로 문제 해결을 요구해 온 만큼 이제 정부에서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산단·박물관·공원 ‘재탄생’… 세계 곳곳 희생의 무대, 회생

미국 샌프란시스코 프레시디오 군 유휴지가 공공주택으로 개발된 모습. 미국 환경보호청 제공
미국 샌프란시스코 '프레시디오' 군 유휴지가 공공주택으로 개발된 모습. 미국 환경보호청 제공

 

시대가 달라지며 전쟁의 양상은 변했고 안보를 유지하는 방식도 함께 바뀌고 있다. 그 흐름 속에서 자연스레 역할을 잃은 ‘군 유휴지’가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몇몇 나라는 ‘쓰임을 잃어가는 땅’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었다. 미국은 요충지를 정주지로, 독일은 과거의 군 기지를 시민의 공간으로 되살려냈다. 주거지, 공원 그리고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그 땅은 이제 사람들의 일상에 녹아 있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존재했지만 지금은 비어 있는 그 땅. 이곳에 어떤 미래를 담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경기알파팀은 앞서 그 길을 걸어간 해외의 우수 사례를 살펴봤다.

 

■ 국가와 국민의 합작…군 유휴지에 생명 불어넣은 국가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프레시디오’는 넓은 숲과 대지 한가운데에 육군부터 해병대, 해안경비대까지 갖춘 샌프란시스코 항구를 지키던 요새였다. 전략적 요충지였던 이곳은 1989년 미 국방부의 폐쇄 결정으로 200년의 역사가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후 미국 정부는 이 ‘군 유휴지’를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600여개가 넘는 건물을 리모델링해 공공주택과 박물관, 스타트업 오피스, 교육기관 등을 세워 올렸다. 드넓은 황무지였던 이곳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이러한 노력은 국가의 이익을 불러일으켰다. 연간 950만명이 방문하는 명소이자 자립 가능한 공공 공간이 됐으며, 지난해 기준 프레시디오는 연간 1억8천200만달러, 한화 약 2천483억원의 수익을 내며 경제적 효용 가치를 높인 대표 사례가 됐다.

 

독일 서남부 라인란드팔츠주 트리어-페옌 지역에 있던 ‘카스텔나우’ 병영지는 오랫동안 군 유휴지로 남아있다가 최근 공공주택지구로 개발됐다. 카스텔나우 홈페이지 제공
독일 서남부 라인란드팔츠주 트리어-페옌 지역에 있던 ‘카스텔나우’ 병영지는 오랫동안 군 유휴지로 남아있다가 최근 공공주택지구로 개발됐다. 카스텔나우 홈페이지 제공

 

전쟁과 분단의 상징이었던 독일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독일 서남부 ‘라인란트팔츠주’에는 미 개리슨 부대 29곳이 주둔하며 독일군과 함께 국경을 수호했다. 그러나 소련과의 전쟁이 마무리되며 1991년부터 이들 부대 대부분은 군 부지로서의 쓸모를 잃게 됐다.

 

독일은 이 넓은 땅을 활용할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새로운 쓰임을 고민했고, 수년에 걸친 대대적인 개발을 이어갔다.

 

그 결과 군 유휴지들은 공공주택지구와 시민공원, 산업단지로 탈바꿈했다. 트리어 지역은 시민공원과 주거지로, 카이저슬라우테른 미군기지 주변은 IT·R&D 산업단지로 바뀌어 지역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군 유휴지를 단순한 ‘빈 땅’이 아닌 지역 회복, 도시 재창조, 시민 삶의 질 향상의 기회로 전환하고 있다. 국민이 방향을 제시했고 국가는 함께 숨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새 생명을 얻은 이 공간은 지금 시민들의 소중한 보금자리이자 삶의 터전으로, 여전히 그 곁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다.

 

■ 경기도, 시도는 있었지만 시작도 못 했다

 

전문가들은 해외의 ‘군 유휴지’ 개발 우수 사례를 참고해 국내에서 낭비되고 있는 군 유휴지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한다. 특히 정부 주도로 대한민국 중심인 수도권과 경기도 지역에서 조속한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경기도를 비롯한 도내 31개 지자체가 마냥 손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정부의 국방개혁에 따라 군 부대 축소가 속도를 내자, 군 유휴지 활용을 위한 지역 차원의 움직임도 분명히 있었다.

 

경기도는 2023년 7월 도내 군 유휴지와 주변 지역을 ▲산업단지 ▲공원 ▲복지시설 등으로 개발하는 계획을 검토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방치된 군 유휴지를 도시재생의 자원으로 삼겠다는 구상이었다.

 

도는 이를 위해 우선 군 유휴지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자 했다. 시·군의 의견을 수렴한 뒤 국방부에 군 유휴지 자료 제공을 요청한 것이다. 당시 도는 자체적으로 310개소, 약 453만㎡(5천㎡ 이상 기준)의 유휴지를 추정했지만, 국방부의 정확한 데이터 없이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국방부는 해당 자료 제공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경기도의 계획은 첫 단추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행정 협조 없이는 현실적인 계획 수립이 어렵고, 유휴지 현황이 공유되지 않는 상황에서 계획은 현실화의 문턱도 넘지 못한 채 발이 묶였다.

 

결국 도의 군 유휴지 활용 계획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다 중단됐다.

 

그로부터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인 지난 5월, 경기도는 다시금 약 1억5천만원을 투입해 연구용역을 추진하며 사업 재개에 나섰다. 도가 7개월이라는 구체적인 예산과 기간을 잡고 자체 조사에 나서자 일각에서는 이번엔 실질적인 계획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하지만 수년째 반복되는 ‘용역→계획→중단’의 악순환을 떠올리면 결과는 또다시 흐지부지 마무리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공존한다.

 

파주 문산읍 선유리 일원에 있는 미군 공여부지 ‘캠프 게리 오웬’의 입구 모습. 박채령기자
파주 문산읍 선유리 일원에 있는 미군 공여부지 ‘캠프 게리 오웬’의 입구 모습. 박채령기자

 

■ 정부-지자체-시민 합심…“현장 목소리 담긴 군 유휴지 개발 이뤄내야”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에서 문제 의식을 가지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승욱 국공유지연구센터장은 “그동안 군 유휴지 문제에 대해 내부적으로 논의는 계속 있었으나 국방부, 기획재정부와 지자체의 목적이 서로 달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여기까지 온 것”이라며 “이제부터라도 정부와 지자체가 협심해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땅들에 대해 종합적인 검토를 하고 각 지역에 맞는 용도로 쓰일 수 있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의 사례처럼 도민들과 꾸준히 소통해 군 유휴지 개발을 함께 해나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최명민 백석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경기북부 주민들도 병원, 복지시설, 관광시설 등을 필요로 하는데, 현실적으로 북부에 ‘수익성’이 없다 보니 이들의 수요가 정책에 잘 반영되지 않는다”며 “정부·경기도 차원에서 군 유휴지, 미군 공여부지 개발 논의를 본격화할 때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충분히 듣고 소통하며 ‘현장이 필요로 하는 시설’을 조성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미군 공여부지 뿐 아니라 군 유휴지 개발 문제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최 교수는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미군 반환 공여지 처리 문제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는데, 경기북부 입장에서는 국군이 이전한 후 남은 군 유휴지 또한 미군 반환 공여지만큼이나 중요할 것”이라며 “이 대통령이 그간 경기도를 남·북으로 나눠 북부의 발전을 꾀하자는 ‘경기분도론’에 대해 ‘시기상조’라고 주장해온 만큼 경기 북부는 재정자립도를 높일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 시기다. 그 방안 중 하나로 정부·지자체는 북부 곳곳에 산재한 군 유휴지를 개발해 북부 도민들에게 돌려준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기α팀

 


※ 경기α팀 : 경기알파팀은 그리스 문자의 처음을 나타내는 알파의 뜻처럼 최전방에서 이슈 속에 담긴 첫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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