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부대 품었던 의정부 ‘금오동’ 개발도, 보상도 ‘無소식’ [軍 떠난 자리, 버려진 땅⑤]

안보 이유 주민들 삶 수십년 ‘희생’... 부대 이전 1년 넘게 ‘노른자 땅’ 묶여
코앞 민락동은 곳곳 개발 ‘딴 세상’

군 떠난 자리, 버려진 땅 도심 속 잠든 軍 유휴지

⑤ 방치된 제5군수지원여단 부지

image
의정부시 금오동은 제5군수지원여단 부지로 인해 수십년간 개발이 제한돼 주민들이 불편을 감내해 왔다. 부대가 떠난 뒤에도 토양 오염과 규제로 활용이 지연되며 마을은 여전히 멈춰 서 있다. 사진은 좁은 골목에 낡은 단독주택이 빼곡한 금오동과 그 너머 병풍처럼 둘러선 민락동의 고층 아파트 단지 모습. 조주현기자

 

“나라가 옳겠거니 하고 살았는데, 외면 당한 기분이라고 하면 될랑가…”

 

의정부시 금오동에서 40년 가까이 살아온 김씨 할머니(71)는 한숨을 내뱉으며 말문을 열었다. 그에게 금오동은 터전이자 인생이었지만, 동시에 ‘희생’이기도 했다. 이곳 주민들의 삶을 수십년간 묶어둔 한마디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군부대가 있잖아요.”

 

김씨가 사는 금오동 한복판에는 ‘제5군수지원여단’ 부지가 상징처럼 남아 있다. 지난해 부대가 떠났지만 여전히 철문은 녹슬고 휘어진 채 기울어져 있었고 출입구 너머로는 건물 한 채만이 앙상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 안에는 색이 바랜 우편물만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상태로 뒤를 돌아 철문을 등지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승용차로 불과 5분 거리, 아파트가 줄지어 들어선 민락동에 새로 지은 고층 건물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상가와 병원이 고루 들어선 거리엔 활기가 넘친다. 아이들이 뛰놀고, 커피 한 잔에 따스한 햇볕을 즐기는 민락동의 일상은 금오동과는 다른 세상처럼 느껴진다.

 

상반된 풍경 속 금오동은 단순히 ‘생활 격차’라는 말로 설명하긴 부족하다. 통합 생활권으로 성장한 민락동과 달리, 이곳 금오동은 여전히 좁은 골목길과 노후한 단독주택이 뒤엉켜 있어서다. 어떠한 변화의 흐름도, 개발을 향한 시도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 핵심에 5군수지원여단 부지가 있다. 군부대가 빠져나간 지 1년이 넘었지만 이 ‘군 유휴지’가 금오동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군 부지로 사용되며 오염된 땅을 깨끗하게 하는 데만 앞으로 수년이 걸리고, 건물이라도 지어보려고 하면 ‘군 유휴지 주변지역’인 탓에 개발에 제한이 걸려있어 땅을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다.

 

땅을 팔고 싶어도 ‘길 하나 건너있는’ 민락동과 배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딱히 큰 의미가 없다. 현재 민락동엔 1천세대 이상인 대규모 아파트 단지도, 대형마트도 여럿 있지만 금오동은 절반가량이 ‘산지’여서 여건이 다르다.

 

지난해 ‘제5군수지원여단’이 철수한 후 토양오염정화작업을 진행 중인 의정부시 금오동 산 46-10번지의 군 유휴지. 박채령기자
지난해 ‘제5군수지원여단’이 철수한 후 토양오염정화작업을 진행 중인 의정부시 금오동 산 46-10번지의 군 유휴지. 박채령기자

 

김씨의 차분한 말투 뒤엔 곪아버린 감정이 담겼다. “그래도 괜찮았어. 우리 동네에 군부대가 있어서 불편한 점이야 알게 모르게 있었겠지마는 우리 국민 지켜주는 거로 생각하고 살았지. 그런데 작년에 갑자기 없어져 버렸대. 허망하더라고… 수십 년을 ‘이것도 하지 마라, 저것도 안 된다’ 해놓고 마을 사람들만 두고 떠난 거야.”

 

금오동 5군수지원여단 부지는 도심을 끼고 있는 소위 ‘노른자 땅’이다. 바로 옆에는 경기도청 북부청사가 있고, 민락천과 천보산 사이에 자연과 도시를 모두 품고 있다. 입지 조건만 놓고 보면 주거 수요가 몰릴 만한 매력적인 위치다.

 

하지만 주민들이 바라는 건 아파트 몇 채가 들어서는 그저 그런 개발이 아니다. 그들이 염원하는 건 오랜 시간 감내해 온 안보 희생에 대한 보답이다. 오랜 땅에 대한 제대로 된 ‘쓰임’을 바랄 뿐이다.

 

김씨와 금오동 이야기를 마치고 자리를 뜨려던 순간, 어깨 너머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함께 코 바느질을 하던 이웃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잠깐 주는 이런 관심에 괜히 기대하지 말고, 그냥 하던 일이나 하면서 살자고.”

 

 

희생의 땅 → 희망의 땅으로… 부지 활용 ‘무궁무진’

image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으로, 포천시 일동면에 있는 군 유휴지 모습이다. 포천은 곳곳마다 ‘군 유휴지를 반환하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을 정도로 군 유휴지 활용으로 도시에 변화가 있기를 희망하는 주민의 요구와 기대가 큰 지역이다. 박채령기자

 

군 유휴지들은 수년, 수십년째 제 기능을 잃고 텅 비어있다. 기나긴 세월 수도권 최전선에서 ‘안보’를 위해 희생해 온 주민들만이 유일하게 그 자리의 ‘변화’를 기다린다.

 

빗장이 풀리지 않고 있는 군 유휴지가 묵은 먼지를 걷어내고 사람 냄새가 나는 공간으로 거듭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그 쓰임새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집’을 모색한 이들이 있다.

 

경기알파팀은 인프라 격차 해소, 주거 안정,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군 유휴지를 택지지구 또는 공공주택으로 개발 중이거나 개발하고자 하는 전국 사례들을 찾아 그 배경과 방식의 차이를 분석했다.

 

지난 2018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차 수도권 공급계획에는 군 유휴지를 활용해 주택 공급 부지를 마련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서울시내 중소규모 택지 위치도에서 군 유휴지를 활용하는 부지를 하이라이트 처리한 자료. 국토교통부 제공
지난 2018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차 수도권 공급계획에는 군 유휴지를 활용해 주택 공급 부지를 마련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서울시내 중소규모 택지 위치도에서 군 유휴지를 활용하는 부지를 하이라이트 처리한 자료. 국토교통부 제공

 

■ 노는 땅을 노른자 땅으로…주거지로 거듭나는 군 유휴지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군부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던 강원도 원주시 반곡동과 학성동. 민간의 출입이 철저히 제한됐던 이곳은 현재 원주의 중심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군사 도시’로 불렸던 원주가 이제는 그 이미지를 서서히 벗고 새로운 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원주권의 군 유휴지는 ‘반곡지구’와 ‘학성지구’로 나뉜다. 약 53만6천㎡, 축구장 80개 규모의 반곡지구는 과거 예비군 훈련장이 있던 자리로, 2015년 훈련장이 이전하면서부터 차츰차츰 변화를 예고했다. 인근의 학성지구(약 76만5천㎡) 또한 제1군수지원사령부와 국군병원이 있었지만, 올해 초 이들 시설이 이전을 마무리하면서 그 자리가 텅 비게 됐다.

 

케케묵은 시간의 흔적을 지우고 도시의 새 땅을 일구는 작업이 최근 본격화됐다.

 

2019년 원주시는 반곡지구와 학성지구 내 군 부지 이전으로 생겨난 유휴 국유지에 공동주택을 공급하고 이를 통한 자족 기능 강화와 일자리 창출,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두 지구는 정부가 추진하는 ‘국유재산 토지개발 선도사업’ 대상지로도 선정되며 개발에 대한 기대감은 한층 더 높아졌다.

 

‘도심’에서도 군 유휴지가 시민의 터전으로 바뀌는 움직임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8년 12월 ‘2차 수도권 주택공급 계획’을 통해 전국 총 41곳의 군 유휴지 및 공공택지를 주거·공공시설 용도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중엔 서울 강서구 방화동·개화동, 동작구 대방동, 노원구 공릉동 등 4곳의 군 부지가 포함돼 있다.

 

강서구 방화동·개화동 일대의 경우 약 7만㎡ 규모의 옛 군 부지는 현재 개발을 위한 기본 구상이 이뤄지는 단계로, 토지의 용도와 개발 방식, 수용 가능한 주거 규모 등을 두고 여러 그림들이 그려지고 있다. 동작구 대방동과 노원구 공릉동에 있던 군 관사 부지도 공공택지로 탈바꿈하기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의정부 ‘용현 공공주택지구’로의 편입을 기다리고 있는 용현동과 신곡동 일대. 군 유휴지가 개발이 지연되며 아직 땅이 방치되고 있다. 박채령기자
의정부 ‘용현 공공주택지구’로의 편입을 기다리고 있는 용현동과 신곡동 일대. 군 유휴지가 개발이 지연되며 아직 땅이 방치되고 있다. 박채령기자

 

■ 더디지만 개발 계획 진전 중…“지역사회 발전 최우선 해야”

 

군사 시설이 떠나고 남은 자리를 공동주거지역으로 탈바꿈하려는 시도는 의정부시에서도 보인다.

 

의정부 용현동과 신곡동에 있었던 제3야전군 예하 보충대대인 제306보충대대가 해체하며 생긴 군 유휴지가 대표적이다. 이 일대 81만㎡는 현재 국토교통부와 LH의 관할 아래 ‘용현 공공주택지구’로의 편입을 기다리는 상태다. 국토부가 해당 부지를 LH에 맡겨 주택지구로 개발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개발이 현실화하면 지역 주민들에게 더 넓고 안정적인 주거 공간을 제공하는 동시에, 도시 재편과 생활 인프라 확충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군 유휴지를 활용하자는 건 ‘투기’의 일환도 아니고, ‘부동산’에 개입하려는 의도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절차적 한계에 가로막혀 군 유휴지를 그대로 두는 것이야말로 지역의 성장 가능성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고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유휴지 활용을 가로막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지역 발전의 동력으로 전환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이다.

 

최창식 한양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국방부나 지자체가 군 유휴지 개발을 지나치게 법적 절차에만 의존해 풀어나가려다 보니 결과적으로 사업이 지연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부대가 떠난 이후 관리조차 되지 않던 땅을 정부가 앞장서 택지 등으로 재개발한다면 수십 년간 부대 인근에 살고 있단 이유만으로 희생이 강요됐던 이들의 삶에 대한 보상이 가능해짐과 동시에 경기북부권역에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α팀

 


※ 경기α팀 : 경기알파팀은 그리스 문자의 처음을 나타내는 알파의 뜻처럼 최전방에서 이슈 속에 담긴 첫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 관련기사 :

신도시 사이 노른자땅…'軍 유휴지' 개발 깜깜 [軍 떠난 자리, 버려진 땅①]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0713580270

 

빈 땅만 남긴 '韓 군부대', 변화의 바람 '美 공여지' [軍 떠난 자리, 버려진 땅②]

https://kyeonggi.com/article/20250713580276

 

‘내비’에도 없는 곳… 14년째 방치된 ‘탄약고’ [軍 떠난 자리, 버려진 땅③]

https://kyeonggi.com/article/20250723580277

 

‘軍병원’ 사라진 자리… 잡초만 무성 [軍 떠난 자리, 버려진 땅④]

https://kyeonggi.com/article/20250728580397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