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여도 보이지 않는 것들
바람은
잎의 떨림을 통해서만
우리는 그 지나감을 알아챈다.
시간도 그림자의 기울기 속에서
그 흔적은 우리 앞에 나타난다.
잎 하나가 흔들릴 때마다
내면의 침묵도 흔들린다.
기억, 감정, 감각의 여운,
잡히지 않으나 분명히 감지되는 것들.
보이는 것은 점점 사라지고
그 사이에 잠시 머무는 지금,
나는 판단하지 않고 이름 붙이지 않으며 다만 숨을 쉰다.
그 숨은 세계와 나 사이의
가장 근본적인 대화다.
#2. 다가오는 가을
햇살은 여전히 눈부시고,
모래 위엔 여름의 발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닫힌 파라솔 아래,
그늘도 숨을 고른다.
바다는 말 없이 계절을 넘긴다.
소리 없이
입추는 한여름의 가장자리에서
가을의 기척을 데려온다.
바람은 살짝 선선해졌고,
빛은 조금 더 길어졌으며,
고요는 이전보다 더 깊어졌다.
여름의 끝에서,
가을이 살짝 스친다.
입추 !
고요한 해변 위로 계절이 바뀌는 소리….
#3. 시간의 결
처서가 지났건만 여전히 뜨겁다. 물결은 시간의 결을 드러내듯 스며든다.
투명한 물 아래 돌들은 침묵하고 그 위에 스쳐 흐르는 파동은 변주되는 현재의 리듬이다. 정지와 흐름, 영속과 찰나가 한 화면에 겹쳐 있다. 돌은 기억의 무게처럼 가라앉아 있고, 물결은 그 위를 지나가는 의식의 흔적 같다.
인간의 삶 또한 이와 같다. 깊은 바닥엔 경험과 기억이 깔려 있고, 그 위를 시간과 감정의 물결이 덮고 흘러간다. 끝없는 반복 속에서 우리는 존재의 투명한 깊이를 들여다본다.
홍채원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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