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소식통

[삶, 오디세이] 내일은 다르길

법장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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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이어지는 불안정한 날씨로 지구의 모두가 힘들어하는 요즘이다. 우리도 7월의 마른장마 이후 갑작스러운 극한호우로 여러 피해 지역과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폭염. 작년 이맘때도 비슷한 일을 겪었으나 올해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가장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있는지 모른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내년엔 올해보다 더 더워질 것이고 반대로 겨울엔 더 추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여름의 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즐겁게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 대신 “물 조심해라”, “어딜 가든 조심해라”는 말을 당연한 듯 하고 있다. 예전에도 여름엔 더웠고 장마엔 비가 많이 내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 정도가 달라졌다. 과거의 기준으로 그것들을 표현할 수 없어 새로운 기상용어까지 만드는 실정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젠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까와 더불어 근원적인 물음도 필요한 시점이다. 당연히 그 원인은 우리 인간들의 무분별한 자연 파괴와 산업·공업화, 그리고 쓰레기다. 이것 외에도 너무나 많지만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다. 그러나 이것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발전할 수 있었고 지금의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참으로 모순적이고 양날의 칼과 같은 현실이다. 여러 미디어나 사회운동으로 쓰레기 줄이기, 자연환경운동, 재활용이 강조되고 있어도 모두가 쉽게 변화하고 따르지 못하는 것도 이처럼 편리함와 불편함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오늘을 살펴보자. 습식사우나와 같은 찜통더위, 더위를 식혀 주나 싶지만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극한호우, 그 크기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초강력 태풍.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편리함을 쫓고 불편함을 이기지 못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우리의 업보다. 불교에서 업은 두 종류가 있다. 일반적으로 한 개인의 행위에 의해 생기는 업을 ‘불공업(不共業)’이라 하고 한 집단이나 사회가 함께 만들고 함께 받는 업을 ‘공업(共業)’이라 한다. 그리고 공업에 의해 만들어지는 자연환경을 ‘기세간(器世間)’, 그 기세간에 살고 있는 생물을 ‘유정(有情)’, 즉 중생이라 한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바로 ‘공업중생’이다.

 

지금의 이런 모습은 바로 우리, 공업중생이 만든 것이고, 우리가 지금도 내일도 겪어야 하는 공업의 기세간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를 힘들게 할 수 없고 우리의 자손들을 힘들게 할 수 없기에 지금부터 우리의 삶을 바꿔야 한다. 불편함이 편리해지고 귀찮음이 당연함이 될 때 우리의 내일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의 새로운 공업으로 내일의 기세간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온전한 세상으로 바꿔야 한다. 탓이 아닌 배려와 원망이 아닌 실천으로, 오늘 우리의 하루를 조금씩 바꾼다면 그 업이 공업이 돼 다른 누가 아닌 우리가 다시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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