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중부지방 일대에 내린 폭우로 강남역 일대가 또다시 침수되면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기후 위기’가 몰고 올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지성 폭우와 침수의 빈도가 잦아지고 규모도 점점 커지는 것도 이유겠지만, 지난해 침수 방지대책으로 추진한 서초동 반포천 유역 분리 터널이 바로 1년 만에 돌아온 폭우에서 침수를 막지 못했다. 이 터널은 시간당 85㎜의 폭우를 감당할 수 있어 20년에 한 번 오는 빈도의 폭우에 대비토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시간당 100㎜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고 이는 115년 만의 기록이다. 불과 10년 전 시간당 50㎜가 넘는 폭우의 경험으로 새로운 대책을 준비했지만 소용없게 됐다.
거기다, 안이한 리더십은 재난안전시스템 가동력을 떨어뜨려서 인재를 키웠고, 주거환경이 가장 어려운 분들이 큰 피해를 봤다. 기후위기는 그렇게 가장 취약하고 낮은 곳부터 피해가 커지고, 무능한 정책결정자들이 이를 증폭시킨다. 다시 더 짧은 기간 안에 이 기록은 깨지거나 비슷한 규모의 폭우가 더 자주 반복될 것이다. 재난이 일상이 되어 가는 ‘뉴노멀’ 기후위기 시대의 단면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1992년 유엔기후볍화협약 채택에서 2018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총회 1.5℃ 특별보고서 채택까지,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 평균온도가 예상보다 10년 앞당겨진 2030년대에 1.5도 상승을 돌파할 것이라고 경고한 2021년 IPCC 6차 보고서까지. 이제는 논란마저 사라진 기후위기의 과학적 근거들은 차고 넘친다. 지구 평균온도 1.5℃ 상승은, 지난 1만 년 간 이어진 안정적이고 순환하며 예측 가능한 홀로세 기후와 문명, 거기에 적응한 생태계의 생존 한계선이다. 그래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적 협약은 ‘자발적 이행’에서 ‘강제 이행’으로 점점 각 나라를 압박하고, 탄소관세와 유럽의 ‘그린딜’, 미국의 ‘그린 부양안’과 이에 대응한 중국의 신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발표 등 신보호주의 무역까지 등장해 세계 산업계를 갈아엎으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 언론과 정치권, 도지사, 시장 누구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폭우는 그냥 하나의 단면이다. 현재 유럽은 ‘500년 만의 최악’의 가뭄으로 라인강 등 주요국의 젖줄에 비상이 걸렸고, 운하가 멈춰 경제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 와중에 프랑스 파리는 시간당 47㎜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14개 지하철 노선 중 6개 노선이 운행을 중단했다. 이런 소식들도 부유한 산업 선진국들과 후발국들이 몰려있는 지구 북반구 북미와 유럽, 동아시아의 피해 소식들만 실시간으로 들려온다. 더욱 고통스러운 피해를 당하고 있는, 남반구의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다.
위기가 일상인 시절에는 비상한 계획과 준비로 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비상대기 상태로 오래 버틸 수는 없다. 폭염과 폭우, 가뭄과 대규모 산불, 한파, 냉온탕을 오가며 지속적인 긴장 상태로 개인과 지자체, 국가의 자원을 비상 동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매 순간 더 큰 터널만을 계획하고 건설하면서 살 수는 없다. 지리적 조건과 도시 환경마다 약간씩 다르겠지만, 도시 사이사이를 비워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도시 공간 자체가 이상기후 현상들을 완화시키고 흘려보내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이번 홍수만을 예로 보자면, 일부는 터널을 통해 바이패스를 시키더라도, 직강화 하천의 자연 곡선을 살린 물길과 홍수터 기능을 할 넓은 인공 저류지를 만들고, 더불어서 하천 생태계와 바람길을 살리고 수자원도 확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지금까지와는 다른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
기존의 재난안전시스템과 비상대응계획도 ‘기후위기 취약성평가’를 새로운 기준으로 기본 틀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위험지역 평가지표 개발과 선정, 상시 점검 매뉴얼, 유관기관 소통과 역할분담, 자원과 물자동원, 비상 연락체계, 전파와 주민대피, 복구와 지원체계 등을 지역대비체계로 통합 관리하고 교육과 훈련을 병행해야 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사고 대비에 한한 것이다. 시간당 120㎜ 100년 빈도에 맞춘 터널 설계, 재난 대비 기준만을 격상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건 안정적인 기후 조건에서 방법론이다. 기후위기를 일으킨 사회∙경제 시스템을 지탱해온 가치체계에 기반한 방법으로 다시 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윤은상 수원시민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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