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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가정에서 시작되는 질서가 있는 나라를 기대한다
오피니언 삶과 종교

[삶과 종교] 가정에서 시작되는 질서가 있는 나라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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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훈 만방샘 목장교회 목사

지난 대선에서는 유독 대선 주자들의 부인 이야기가 많이 회자됐다. 그 과정을 지켜본 많은 국민은 질서 있는 가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게 됐다. 가정은 모든 사회활동의 시작이며 끝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세계 어느 나라든지 자손들에게 남기고 싶은 좋은 이야기들이 구전을 통해 전해온다.

옛날에 한 어부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 남편은 작은 배를 타고 어업을 하는데 갑자기 날씨가 험해지고 태풍이 몰아쳐 방향을 잃어버리고 배가 표류하게 됐다.

육지 근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지만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과 사나운 풍랑으로 갇혀 있었다. 남편인 어부는 바다에서 방향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두려움에 빠져있었다. 어부의 아내는 바다의 풍랑의 매서움을 보면서 노심초사 남편을 기다렸다. 남편을 걱정하며 아내가 밖으로 나간 사이에 홀로 집에 남겨진 어린 아이가 울다가 등불을 넘어뜨려 화재가 발생했다.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고 생각한 아내는 서럽게 울었다. 바다에 나간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집은 불에 타 버린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남편이 새벽녘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어부는 살아서 돌아온 것에 감격하며 말했다. “어젯밤 풍랑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해 죽게 됐을 때 갑자기 불빛을 보았다. 그 불빛이 육지 쪽 이라는 것을 알고 겨우 방향을 잡아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방향성은 곧 정체성이다.

나라의 정책이 방향성을 잃는 다는 것은 곧 그들의 정체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아내의 남편을 향한 간절함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이 간절함을 가지고 기도하고 자손들을 걱정하며 애태우는 집단은 바로 연로한 어르신들이다.

오늘날의 가정 속에 물질적인 우상이 많이 자리를 잡고 있다. 가족을 계획살해하고 보험금을 타는 소식부터 가족이라는 존재가 모두의 이기적인 집단으로 변질돼 가고 있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가정은 가정이 아니라 무거운 장애물로 생각하는 사회의 모습들 속에서 우리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가족이란 어려움을 당할 때도 함께 서로 사랑하며 인내하며 그 상황을 이겨나가는 승리감을 누려봐야 한다. 부모님의 존재가 물질적 이유로 평가되지 않고 사랑과 헌신으로 바라보는 사회가 돼야 할 것이다. 노인들의 복지와 그리고 생애의 후반을 가장 존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사회가 될 때 그 사회는 진정한 안정감과 질서와 중심이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십계명이 있다. 그 십계명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의 유대교와 기독교의 모든 교회들이 절대적으로 중요시 여기는 계명이다. 그 계명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고 그 분만을 믿으며 동시에 육신의 부모를 향해서도 분명한 명령이 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한 사회가 중심이 있고 안정된 나라가 되기 위해서 분명히 이 계명이 존중받고 지켜지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때에 젊은이들에게도 삶의 질서와 그리고 미래의 시대까지 바라보며 자신들의 삶을 단거리가 아닌 장기적인 차원으로 바라 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의 소중함을 가르치며 돌아보는 어른공경의 정신이 다시 한 번 새로운 대통령과 새 일꾼들을 비롯해 이 나라 지도자들에게 기대해 보고 싶다.

조상훈 만방샘 목장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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