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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인간은 왜 존엄해야 하는가?
오피니언 삶과 종교

[삶과 종교] 인간은 왜 존엄해야 하는가?

성경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사람들을 만들자(공동번역 창세 1,26)!’고 전한다. 인간이 하느님을 닮았기 때문에, 인간 모두가 존엄한 존재라는 것이다. 황송한 일이다. 천주교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 평등하고 우리 모두의 지위가 격상된다고 믿는다.

사실 과거 ‘존엄하다’라는 표현은 왕이나 일부 귀족, 뛰어난 몇몇 사람들에게 부여된 표현이었다. 조선 시대만 하더라도 양반과 평민, 노비라는 계급이 존재했고 누구는 천민이라는 표현까지 들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모든 인간이 존엄할 수 없었던 시대였다.

서양의 스토아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이 존엄한 이유를 동물과 구분되는 특징인 도덕성, 이성 능력, 자율능력에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논리 때문에 동물의 존엄성이 인정되지 않았고, 같은 인간이라도 도덕성, 이성 능력, 자율능력에 따라 인간 존엄성이 차별화되기도 하였다. 이는 민족과 종교 간의 우위 싸움으로 번져 많은 전쟁과 수많은 인명피해로 번지게 되었다. 바로 인간 사이에서도 등급, 계급이 있다는 생각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논리는 우리 일상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1등을 해야 하는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 수능에는 등급이 매겨지고, 같은 직장에서도 정규직과 계약직 사이에 보이지 않는 등급이 매겨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연봉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의 능력이 평가되고, 자동차의 배기량에 따라 사람의 지위가 구별된다.

누군가 1등을 하면 꼴등도 생기기 마련인데도 누군가의 우위에 있어야 내가 존엄하다고 느끼는 세상 같다. 나만 생각하는 존엄이 인권을 짓밟고 오히려 특권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하다.

앞서 언급한 ‘하느님 닮은 인간’을 곡해하면 ‘인간이 신이다’라고 여길 수 있다. 그리고 신을 오해해 인간이 세상 만물을 통제할 수 있고, 급기야 자연을 경시하고 세상을 파괴할 수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 사실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사람이지 하느님이 아니다. 그리고 어떤 신이 당신이 만든 세상 만물을 파괴하고 경시하라는 권한을 인간에게 내리겠는가? 신이 만든 인간이라면,

그리고 신이 만든 세상 만물이라면, 서로가 조화롭게 살아가길 바라시지, 인간이 세상 만물보다 우위에 있기를 바라지 않으실 것이다. 정말 무섭게도 종교적으로 성경과 경전, 그리고 세상의 이치를 제멋대로 해석해 종교를 사유화하고 한 종교 집단이 다른 집단에 우위를 점하려 한다.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할 종교가 종교지도자들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인간은 존엄해야 한다. 우리 모두 고귀하고 존귀하다는 당연한 가치가 참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세상이기 때문에 그렇다. 역사적 사건들이 말해주듯 인간 사이 설정된 등급과 계급으로 인해 언제든지 인간은 그 존엄성을 상실하기 쉽다. 그래서 인간 스스로 그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인간은 더 존엄해야 한다. 그리고 나만의 존엄을 위해 누군가는 당연히 희생될 수 있다는 인식을 전환하기 위해서라도 더욱더 인간이 존엄해야 할 것이다.

김의태 수원가톨릭대학교 교회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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