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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정월대보름
오피니언 삶과 종교

[삶과 종교] 정월대보름

어느새 설과 입춘이 지났다. 여전히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얼마 있지 않으면 봄이 찾아올 것이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은 순리다. 세월은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秦始皇)도 막지 못했다. 그러니 지난 시간을 한탄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이맘때가 되면 절집 역시 분주하다. 설날에 조상님께 차례를 올린 뒤에는 며칠간 운 맞이 정초기도를 한다. 사흘 또는 일주일 정도 하는데, 한 해 동안 건강하게 아무런 장애 없이 뜻한바 소원성취하기를 염원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불교에서는 1년에 두 번 석 달간 바깥출입을 금하고 참선에 집중하는 안거(安居) 수행의 전통이 있는데, 요즘은 동안거가 막바지에 이르는 시기이다.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는 하안거, 음력 11월 15일부터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라고 한다. 안거를 회향하기 전 7일간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하는 용맹정진을 한다.

동안거 해제일인 음력 1월 15일은 설날이 지나고 첫 보름달이 뜨는 정월(正月)대보름이다. 예로부터 옛 어른들은 중요한 세시풍속으로 여겨졌는데, 음력 14일과 당일에는 여러 풍습이 행해졌다. 오곡밥을 먹고, 아침 일찍 껍질이 단단한 호두와 땅콩 과실을 깨무는 부럼과 귀밝이 술을 마시는 전통을 이어왔다. 지역마다 볏가릿대 세우기, 지신밟기, 쥐불놀이, 사자놀이, 차전놀이 등 다양한 민속행사를 해왔다. 우리 사회가 빠르게 현대화되면서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명맥만 유지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산사(山寺)에서는 몇 가지 풍습이 남아 있다. 쌀, 보리, 조, 수수, 팥 등 다섯 가지 이상 곡물을 넣어 지은 오곡밥을 스님들과 먹는 것이 대표적이다. 세상일에 초연하여 사는 것이 스님들이지만, 그래도 명절이 되면 조금은 마음이 설렌다. 오곡밥을 지어 먹고 법당 위에 뜬 보름달을 바라보며 무탈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석 달 동안의 안거를 마치는 날도 이즈음이기에 마음가짐 또한 더욱 새롭다.

새해가 되어 설과 입춘을 지나 정월대보름이 되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있는 것 같다. 한 달도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로 후보와 지지자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 선을 넘어서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 일로에 있어, 방역 모범국으로 불리던 우리나라도 확진자가 3만여 명을 넘어섰다. 이달 말이나 다음 달에는 20만 명까지 이를 수 있다고 우려하는 상황이다. 방역조치의 장기화로 벼랑 끝에 몰린 영세상인들의 절박한 호소가 들려올 때면 마음이 무겁다.

설, 입춘, 정월대보름으로 이어지는 요즘, 그동안의 어려움과 나쁜 기운을 물리치기를 바라는 염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사찰에서도 국민, 아니 인류가 겪고 있는 난관을 물리치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면서 힘을 보태고 있다. 중국 당나라의 황벽선사(黃蘗禪師, ?~850)는 “不時一番寒徹骨(불시일번한철골) 爭得梅花撲鼻香(쟁득매화박비향)”이라고 했다. “추위가 한 번 뼈에 사무치지 않았다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라는 뜻이다.

비록 1천200여 년 전의 말씀이지만 우리가 겪는 고통을 잘 이겨내자는 희망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인류와 국가는 물론 개인과 가정에 닥친 어려움이 있다면,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월대보름을 앞두고 겨울은 반드시 지나가고 봄은 기필코 온다는 사실을 알기에 지금의 고난에 너무 절망하지 말고 봄을 맞이하여 희망의 꽃을 마음에 피었으면 한다.

오봉도일 스님 25교구 봉선사 부주지·양주 석굴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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