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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못 살겠다… 갈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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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못 살겠다… 갈아보자”

최원재 정치부장 chwj7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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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일반적으로 ‘민주당’이라 불리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모르고 있지만 이 당은 올해 창당 67주년을 맞이한다. 이 당의 뿌리이자 정식 당명보다 더 흔하게 부르는 ‘민주당’은 지난 1955년에 창당됐다.

67년 전인 지난 1955년 9월18일 창당 당시 모인 인물은 장면, 조병옥, 곽상훈 등 그야말로 쟁쟁했다. 이런 인물들 중에도 가장 중량감 있는 인물은 역시 해공 신익희였다. 신익희는 갑오경장, 동학혁명, 청일전쟁이 한꺼번에 일어난 1894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대표적 ‘경기 정치인’이다.

10대 후반에 일본에 유학을 가서 신문물을 배운 그는 3.1운동의 주역이었고, 20대 중반의 나이에 상해임시정부 내무와 외무 총장 대리를 맡을 정도로 독립운동가로서 촉망을 받았다. 해방 후, 이승만에 이어 2대 국회의장을 지낸 해공은 이승만의 독재와 독선에 넌더리를 내고 갈라서게 됐다.

그는 1956년 3월28일에 5월15일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후보로 지명됐다. 1948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수많은 선거가 치러졌고, 수많은 구호가 내세워졌지만 60년 전인 1956년 5월, 정·부통령 선거 때 신익희 후보가 나선 민주당이 내걸었던 구호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지금까지 전설처럼 남아있다.

단 여덟 글자로 된 이 선거구호는 당시 자유당의 부패와 무능, 독단에 넌더리를 내고 있던 국민들의 폐부를 찌르고도 남았다. 당시 자유당이 궁여지책으로 “갈아봤자 별 수 없다. 구관이 명관이다!”란 구호를 내세운 것 자체가 이 구호가 얼마나 엄청난 힘을 발휘 했는지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란 이 구호는 민심을 완전히 휘어잡은 걸작이자,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 길이 남을 명구호였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신익희 후보와 부통령 후보 장면의 서울선거유세는 5월3일 오후 2시 한강 백사장에서 열렸다. 당시 서울의 인구는 160만이었고 유권자는 70만4천 이었는데, 거의 절반인 30만 이상이 몰려 든 것이었다. 백사장은 사람들로 인해 ‘흑사장’이 돼 버렸고 심지어 마이크도 안 들리는 한강 건너 흑석동과 한강 인도교에도 시민들이 가득찰 정도였다.

신익희는 이날 연설을 통해 “정치를 잘해서 백성들을 잘 살도록 해야만 될 것인데 오늘과 같은 정치를 해 가지곤 도저히 우리 국민이 행복하게 살수 없어요. 우리가 잘 살 수 있게 하는 올바른 민주정치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국민은 생활고에 허덕이어 못살겠다고 하고 있는데 큰소리로 뭐니뭐니 하는 것은 하나의 공수표에 지나지 않습니다”라며 “우리 정부야말로 우리를 살게 하는 정부다.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이와 같은 신의와, 이와 같은 대세가 우리 정부에 오도록 우리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결국 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5월5일 새벽, 호남 지역 유세를 위해 열차에 오른 후 뇌일혈을 일으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몸이 돼 버렸다. 이승만이 당선됐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이승만의 득표는 504만 표 였지만, 사회당의 조봉암이 216만 표나 받았고, 죽은 신익희에게 던진 ‘추모표’가 185만 표나 됐다. 67년이 지난 오늘날 선거판은 어떤가. 전설의 한강 유세를 벌이며 “못 살겠다. 갈아보자”를 외쳤던 해공이 사무치게 그립다.

최원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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