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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우리 이대로 살아도 될까요?
오피니언 삶과 종교

[삶과 종교] 우리 이대로 살아도 될까요?

요즘 사람들의 마음에 분노가 깊이 뿌리내린 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분노가 터질 때 조절이 안 돼 자신과 이웃을 거침없이 파괴하기도 한다.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은 모든 사람이 경고처럼 들어야 할 말이 됐다. 약자에게 더 포악하게 공격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야만적 사회로 전락하는 슬픈 모습이기도 하다.

미국 사회가 끌어안고 있었던 흑백갈등을 해결하고자 자신을 희생한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런 말을 했다. “용서를 통해 다시 화합하는 일이 없이는 아무도 자기 원수를 사랑할 수 없다. 우리가 용서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서 우리의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결정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돌려세우고 있다. 자기를 따르지 않으면 잔인한 말로 공격을 한다.

잠언 12장 18절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고 한다. SNS의 댓글을 보면 너무 살벌해서 우리가 언제부터 이 지경이 되었는가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정치인들이 진영 논리를 따라 국민을 분열시키고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정치인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 맞서는 것은 당연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목적은 동일해야 한다. ‘어떻게 우리나라 국민의 마음을 하나 되게 할 것인가’ 이런 목적을 가지고 우리가 먼저 마음을 같이한다면 통일이 돼도 세상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분열과 갈등이 더 악화할 테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나고 남부 사람들이 미합중국연방으로 돌아올 때, 링컨의 참모가 남부 사람들을 어떻게 대우할지 링컨 대통령에게 물었다. 그 참모는 적대적인 남부 사람들에 대한 보복도 예상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링컨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들이 결코 떠난 적이 없었던 사람들처럼 대할 것입니다.”

용서는 고통스러운 과거의 사슬에 묶이지 않는다. 가슴 아픈 기억의 어둠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용서는 새로운 관계를 이루기 위해 상대를 끌어안는 사랑의 실천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시시덕거리는 로마 병사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스데반 집사도 자신을 돌로 쳐서 죽이는 무리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나라는 장점이 많은 나라다. 가능성도 큰 나라다.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 가운데 공산당의 침략에서 건져주시고 전쟁의 폐허에서 일으켜 주신 나라다.

우리는 더 이상 이런 상태로 살면 안 된다. 미래를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

지난날의 모든 미움과 증오 그리고 보복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새 역사를 시작할 수 있는 새 출발이 필요한 때다.

안용호 기흥지구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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