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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평섭 칼럼] 명지휘자가 되려면
오피니언 변평섭 칼럼

[변평섭 칼럼] 명지휘자가 되려면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1989년, 크리스마스를 맞아 동·서 냉전의 종식을 기념하는 음악회가 독일 베를린에서 열렸다. 형식은 연합 오케스트라로 동독·서독, 그리고 독일 점령국이던 미국, 소련(러시아), 영국, 프랑스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것. 이 날 연주 할 곡목은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환희의 송가」로 하는 것도 모두 합의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가 이 연합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것인가에 세계적 관심이 집중됐다. 워낙 역사적 의미가 큰 연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로 각국 대표들이 회의를 시작하자마자 쉽게 결론을 내었다.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자의 이름이 발표됐을 때 미국, 소련(러시아), 동독, 서독 모두가 환영했다. 그만큼 그의 지휘 실력과 세계관과, 명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는 미국 지휘자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진보적 색채가 짙어 미국의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을 했고 인종 차별 폐지를 위해 킹 목사와 행진을 하는 등 미국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이렇게 이루어진 이날 역사적 연주회에서 번스타인은 전 세계에 방송으로 중계되는 가운데 그의 지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의 지휘봉은 열정적으로 오케스트라의 모든 소리를 휘저었고 때로는 그 자리에서 점프하기도 했다. 마치 신들린 모습이었고 청중들은 숨을 멈추고 벅찬 대화합의 소리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동독 사람들은 공산치하에서 느껴 보지 못한 영혼의 자유를, 그리고 서독 사람들은 평화의 소중한 자산이 무엇인가를 새삼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중계를 통해 이 장면을 보는 세계인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러면 번스타인의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을 열광하게 했을까? 무엇보다 ‘통합의 마술’이다. 악기마다 독특한 소리를 그 곡에 맞게 살려내고 그것들을 전체 오케스트라 속에 녹여내는 능력을 번스타인은 갖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느 악기, 어느 소리도 번스타인의 지휘봉에서는 소외되는 게 없었다. 또한 미국 클래식 음악의 상징인 ‘뉴욕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 지휘자이면서도 대중음악과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었다.

예를 들어 뮤지컬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작곡가가 바로 번스타인이며 심지어「워터 프론트」같은 영화음악도 제작하였다. 그러니까 클래식의 영역만을 고수하지 않고 대중음악과의 경계도 허물었다. 끝으로 그가 가진 자산은 특별한 카리스마다. 이 카리스마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이끌었고 그 진솔한 행동은 자연스럽게 단원들 가슴에 전달되는 힘이 됐다.

그는 1990년 10월14일 뉴욕 자택에서 지나친 흡연에 의한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2세. 번스타인이 아니더라도 교향악단의 명지휘자들이 갖는 공통점은 악기마다 다양한 소리를 살려 전체 오케스트라 속에 녹여 내는 통합과 화합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즘 이와 같은 오케스트라의 믿음직한 지휘자가 간절해지는 것은 왜 그럴까?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을 크게 걱정한다. 악기마다 다른 소리를 통합과 화합으로 이끄는 지도자가 없고 무대의 오케스트라는 골목대장들의 난장판 같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개똥벌레 철학 같은 것도 없고, 훗날 역사야 어떻게 기록하든 당장 눈앞의 선거에서 승리하고자 온갖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현실, 철저히 편을 가르는 정치, 그래서 피곤한 국민은 번스타인처럼 위대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그리운 모양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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