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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평섭 칼럼] 秋史가 귀양살이 때 걷던 길을 걸으며
오피니언 변평섭 칼럼

[변평섭 칼럼] 秋史가 귀양살이 때 걷던 길을 걸으며

얼마 전 가까운 친구와 함께 제주도를 다녀왔다. 제주도 나들이야 여러 번 있었지만, 이번에는 대정읍에 있는 추사 김정희 유배지를 돌아보며 몹시도 마음이 무거웠다. 추사가 귀양살이 9년 동안 수없이 거닐었을 언덕길을 걸으며 걸음마다 맺혔을 그의 한이 어떠했을까 생각하니 그 아픔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이되는 것 같았다.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는 무서운 것이란 생각도….

마패를 쥔 암행어사가 ‘어사 출두요!’하고 벼락같이 나타나면 산천초목도 떨었다고 한다. 국보 제180호 ‘세한도(歲寒圖)’를 그렸으며 추사체(秋史體)라는 독창적인 글씨체를 통해 동양 최고의 서예가로 이름을 떨친 김정희(金正喜)도 한 때 암행어사 활동을 했다. 강직한 성품의 추사 김정희는 충청도를 암행하던 중 지금의 서천군 비인현감으로 있던 김우영의 비위 사실을 적발했다. 김우영은 요즘 정치로 말하면 집권 여당, 그러니까 안동 김씨 세도가의 인물이었다.

여기서 김정희가 적당히 눈을 감아주었으면 앞으로 닥쳐올 고난의 길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회유와 압력도 있었을 것인데 김정희는 그를 파직시켜버렸다.

그렇게 암행어사로서 정의롭게 권한을 행사했는데 그 결과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1840년(헌종 6년) 6월 김정희는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가려고 여장을 꾸렸다. 그리고 막 출발하려는데 난데없이 의금부에서 나졸들이 들이닥쳐 그를 포박해 갔다. 그리고 혹독한 국문이 시작됐다. 10년 전 있었던 ‘윤상도 옥사(獄事)’에 관여한 죄를 자백하라는 것이다. 그 시절 고문은 가혹했고, 정치적 사건은 사실 여부를 떠나 무조건 결론을 내놓고 엮어 지는 것이어서 김정희도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윤상도 옥사’란 윤상도라는 선비가 1830년 안동 김씨 세도를 질타하는 상소를 순조 임금께 올린 것이 말썽이 되어 처벌받은 사건이다. 그런데 순조 임금이 세상을 떠나고 헌종이 즉위하여 안동김씨 출신의 순원왕후가 수렴청정하게 되자 안동김씨 김우영이 10년 전 문제를 꺼내 김정희를 탄핵한 것이다. 윤상도가 올린 상소의 거친 표현 등이 추사 김정희가 부추겼기 때문이며 뒤에서 조종했다는 것이 탄핵의 요지이다. 탄핵을 올린 김우영은 바로 김정희가 암행어사 시절 비위사실을 적발하여 파직시킨 인물. 그러니까 김우영은 안동 김씨 세도의 그늘에서 추사 김정희에 대한 정치적 보복의 칼을 갈아 온 셈이다.

김정희는 국문이 얼마나 혹독했던지 죽음 직전까지 이르렀는데 우의정으로 있던 조인영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제주도 귀양살이를 해야 했는데 무려 9년이라는 긴 세월, 유배지 제주도에서 죽은 듯 외롭게 보내야 했다. 그 고난 속에 탄생한 것이 국보 제180호 ‘세한도’가 아닌가. 초라한 집 한 채, 보기만 해도 찬바람이 피부를 할퀼 것 같은 추위 속에 쓸쓸히 서 있는 몇 그루 고목(古木), 이것이 ‘세한도’다. 마치 그 찬바람에 떠는 고목이 추사 김정희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사실 그는 제주도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고, 친구마저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맞이했다. 그러면서도 9년이라는 긴 세월, 그에 대한 정치적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안타까운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정치는 상대를 후벼 파고, 진영을 갈라 내 편은 무조건 선(善)이고, 반대편은 악(惡)이라는 논리로 피의 굿판을 벌이는 것이 아닌가.

추사 김정희처럼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 ‘세한도’를 그리는 사람은 없어야 하는데 제2, 제3의 김정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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